남성 페미니스트가 프로불편러로 사는 이유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Society

남성 페미니스트가 프로불편러로 사는 이유

페미니즘은 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차별당한 적 없고, 좋은 게 좋은 대로 살고 싶어 눈감고 싶었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빨간 약을 삼키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 네 남자가 조금 불편하게 살기로 한 이유는 이렇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03.06
 
 

여태까지 편하게 살았다면

2006년 여름, 월드컵이 막 끝난 직후였다. 회기동 파전골목에서 같은 과 동기 A를 만났다. A는 술을 한 잔 마시자마자 “연애가 너무 하고 싶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너는 방법을 알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다”라며 내게 해법을 요구했다. 당시 나는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까웠고, ‘썸’을 넘어선 연애는 못 해본 새내기에 불과했다. 소개팅을 주선할 만큼 인간관계도 넓지 못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A에게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번호 달라고 해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A의 눈이 반짝였다. 살짝 취기가 도는 채로 지하철을 탄 그는 갑자기 번호를 따오겠다며 열차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A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뒀던 것 같다. 천만다행인 것은 숫기가 없던 그가 결국 누구에게도 말 한 번 걸지 못한 채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저기 마음에 드는 여자 있었는데… 다음에는 꼭 성공해야지”라면서 말이다.
몇 년 전, 한 이성 친구에게 이때의 경험을 말했더니 친구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대뜸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거나 고백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덧붙였다. “여성은 사냥감이 아니잖아, 사람이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시의 나는 여성을 나와 동등한 존재가 아닌, ‘꼬시거나 쟁취해야 하는’ 성적 대상으로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술 취한 남자가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번호를 달라고 한다? 번호를 주지도 않겠지만, 불쾌함을 넘어 공포스러울 것이다. 20대의 나는 여성학 강의를 듣고,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나 정도면 깨어 있는 남자’라는 알량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론으로만 이해했을 뿐, 일상에서는 여성 혐오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앞서 자신의 경험을 말해준 친구처럼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론 내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변화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을 추구하는 운동 및 이론이다. 위의 사례처럼 여성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면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행위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현재의 한국 사회에선, 과거와 달리 남성을 향한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남성들은 불만을 품는다. 허용돼왔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언행에 제동이 걸렸으니까. 그런데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지금까지 남성들이 별문제 없이 살아왔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주류 남성 문화는 여성을 ‘성애화된’ 존재로만 여기며, 자신과 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성차별·성폭력 문제에서 가해자 혹은 방관자였던 남성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살아왔다. 이런 남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이상하지 않은가? 이제 남성들은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을 마주하고 있다. 반성하고, 경청해서, 여성의 입장에 공감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거부할 경우의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다. -박정훈(〈오마이뉴스〉 기자)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

명절에 친가에서 차례를 지낸 뒤 밥을 먹을 때면 상은 늘 두 개였다. 큰 상에는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등이 앉았다. 작은 상에는 할머니, 큰어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가 앉았다.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큰 상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저는 저기서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름진 음식과 불편한 분위기로 오후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친가의 ‘친(親)’이 왜 ‘가까움’을 뜻하는지, 외가의 ‘외(外)’가 왜 ‘바깥’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 불편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몰랐다. 어쩌다 외가에 먼저 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 부치는 외삼촌을 볼 수 있었다. “은아, 이것 좀 먹어봐. 막 부쳐서 맛있다.”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었다. 성별을 떠나 다정함과 따뜻함은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쪽에서 나물을 무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을 부치니 준비도 빨리 끝났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통계청의 자료를 보게 됐다. ‘2018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 결과’라는 자료였다. 2018년 임금 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297만원이라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지만, 나를 놀라게 한 자료는 따로 있었다. 남성 평균 소득이 347만원, 여성의 그것이 225만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성별 임금 격차가 OECD에 가입한 국가 중 가장 크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도 1.5배의 임금을 받는 게 말이 될까? 1.5배를 더 받는 이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불편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페미니스트를 지향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아직까지도 남성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 이상한 눈초리가 따라온다. 남성은 “네가 무슨 페미니스트야?”라고 웃어넘기기 일쑤다. “남자의 페미니즘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다. 동의한다. 남성으로 살아온 시간이 몸에 새겨져 있을 테니까. 남성이라 누려온 특혜, 선선히 받아들였던 호의, 차별을 보고도 눈감아버린 비겁함. 경험이 반복되면서 어떤 것은 당연해졌을 것이다.
우리는 어깨 위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돌을 얹고 다닌다. 그것은 ‘책임’이나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찍어 누른다. 우리 개개인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진다. ‘가부장’이나 ‘안주인’이라는 단어 속에 나의 믿음이나 기호, 취향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 상위가 아닌 여남 평등을 향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짐을 덜어줄 것이라 믿는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는 남성에게도 족쇄를 채운다. ‘남자다움’으로 일컬어지는 거의 모든 것이 그렇다. 함께하기 위해, 함께 가기 위해, 상에 함께 둘러앉기 위해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오은(시인)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악당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신경하고 자신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성차별의 공범이다.
 
 

하나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내가 2012년에 발표한 곡 ‘You’re Not a Lady’는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던 즈음부터 SNS상에서 종종 논란이 됐다. 이 곡의 주제는 ‘주체적인 나’가 되자는 것이고, 발표했을 당시에는 여성에게 임파워링하는 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 팬들이 이 곡을 좋아해줬고, 감명을 받았다는 분도 몇몇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이 곡이 논란이 된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평소 트위터를 자주 하던 나는 어느 날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개념을 접했고, 그제야 이 곡이 3분여 동안 “여자는 이래야 해”라며 맨스플레인하는 내용이라는 걸 깨달았다. 〈캡틴 마블〉의 대사처럼 여성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2015년 나는 이 곡의 후속편 격인 ‘You’re Not a Man’을 발표했다. ‘남자답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권하는 이 트랙을 공개하며, 나는 꽤 진보적이고 색다른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좀 민망한 수준이란 걸 깨달았다.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가하는 억압을 얘기하면서도, 그 기저에 깔린 여성 혐오는 전혀 짚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SNS에서는 여성들이 봇물 터지듯 성차별과 공포, 생존의 위협에 대한 증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 내게 “페미니즘을 이퀄리즘(평등주의)으로 바꿔야 맞다”, “랩이나 잘하라”라는 비아냥이 돌아오곤 했지만, 나에 대한 반발은 고작 그 정도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가 남성 발화자로서 갖는 권력을 반증해줄 뿐이었다.
내가 낼 수 있는 만큼의 목소리는 내보자는 생각으로 연대하는 마음을 담아 가사를 쓰고 트윗을 올리던 중, 전혀 여성주의 행보를 보이지 않던 모 래퍼가 ‘페미니스트’라는 곡을 발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가사를 보며 차분하게 그에 대응할 곡을 기초적인 수준에 맞춰 만들어 올렸고, 다음 날 또 다른 곡을 발표한 동료 슬릭과 함께 뜻밖에 큰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극과 극으로 갈린 대중의 반응 속에 나는 어느새 별점 테러와 악플의 대상이 됐고 힙합 신에서 점차 배제됐다.
이런 결과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억울하지는 않다. 난 여전히 밤길도 걱정 없이 걷는다. 머리는 늘 빡빡 민 채고, 불어난 살은 그다지 큰 스트레스 거리가 아니다. 대기업 여성 임원의 수는 턱도 없이 부족하고, 국가는 여성의 목소리에 응답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처럼, 남성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발언 권력을 누린다.
성별 간 차별을 없애자는 페미니즘에 왜 그렇게 버튼이 눌리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내 손에 있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면, 오로지 제자리를 찾아보는 것만이 당연하지 않은가. -제리케이(래퍼)
 
 

상식을 믿으십니까

나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내가 뭐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보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였는지는 내 삶의 경로와 선택이 말해줄 것이다. 물론 때로는 내가 무엇이라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힘이 있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당장은 딱히 그렇지 않다.
다만 지금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방식의 상당 부분은 페미니즘을 통해 배웠다. 페미니즘은 그다지 평온한 사상이었던 적이 없다.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맞서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내부적으로도 언제나 치열하게 격론이 오간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사상의 장에서도 격론이 벌어지지만, 페미니즘은 언제나 한발 더 나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남자만큼 ‘온전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니 그럼 ‘인간’이란 무엇이며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은 똑같이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말은 그것이 간과하고 있었던 비백인, 성소수자, 소수민족, 가난, 질병, 장애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여성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여성은 대체로 가부장제에 억압받고 있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폭력적인 일반화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여성’이란 무엇인가다. 이것은 용기가 필요한 질문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것들을 모두 다시 따져야 하기에.
내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어서, 스스로의 파멸을 바라는 마조히스트라서가 아니다. 여성들이 무조건 옳다거나, 페미니즘의 이름을 걸고 행해지는 모든 것에 찬동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악당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 치명적인 문제에 있어서라면, 무신경하고 성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공범이다. 성차별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배운 페미니즘은 개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바로 그 ‘정상’과 ‘상식’이 왜 문제인지를 지독하게 따져 묻는 사상이자 학문이고 운동이다. 그러니 무슨 수로 이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최태섭(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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