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시계를 보면 안 됐다? 금기를 뒤집은 패션계 결정적 물건들
여자는 바지도 입으면 안되고, 바빠도 안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 금기들을 깨부순 과거와 런웨이의 아이템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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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Apron
가능성을 입다.
2026 S/S 미우미우 컬렉션 백 스테이지.
전통적인 여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겹쳐지는 이미지 중 하나는 목에 둘러진 앞치마다. 자수와 레이스로 장식된 앞치마는 오랜 시간 모성과 돌봄, 그리고 가정 내 노동을 상징해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며 이 상징은 집 안에 머물지 않았다. 앞치마를 두른 여성들은 공장으로 향했고, 이는 곧 여성 노동자의 유니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앞치마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의료 현장의 의사와 간호사, 작업실의 예술가, 주방의 셰프까지, 앞치마는 특정 역할을 규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옷으로 진화했다. 집 안과 밖, 노동과 창작, 생계와 꿈 사이를 가로지르며 언제나 ‘앞에’ 걸려 있었던 이 옷은 여성의 이동과 성장을 함께해온 셈이다. 앞치마를 한 여자는 엄마이자 의사, 목수, 공예가, 요리사가 됐다. 이처럼 하나의 옷 안에 자립과 도전, 모성과 성취까지 다양한 서사를 담아낸 사례가 또 있을까? 미우미우는 이러한 앞치마의 역사적·상징적 맥락에 주목하며 2026 S/S 컬렉션 런웨이 위로 끌어올렸다. 도로시아 랭의 대공황기 여성 초상화와 헬가 파리스의 1970년대 베를린 공장 노동자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컬렉션은 포플린과 산업용 면직물 등 견고한 소재로 노동의 물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실크, 자수, 레이스, 플로럴 프린트 같은 섬세한 디테일을 더해 가정과 사회를 넘나들며 다층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여성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컬렉션의 테마 또한 ‘at work’. 노동 현장에서 출발한 앞치마는 이제 하이패션의 문법 안에서 다시 쓰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여성’의 가능성이 놓여 있다.
Part 2. Watch
시간 밖을 넘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성에게 시계는 금기였다. 여성은 바쁘면 안 되고, 시간을 따져서도 안 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사교 현장에서 여성이 시계를 보는 행위는 ‘지루하다’거나 ‘집에 가고 싶다’는 무례한 신호로 간주됐다. 여성에게만 요구됐던 우아한 매너를 지키기 위해 등장한 게 시크릿 워치다. 브레이슬릿, 펜던트, 브로치 등 장신구에 덮개를 만들어 그 안에 시계 다이얼을 숨기는 형태가 바로 그것. 최초의 여성용 손목시계로 인정되는 사례 중 하나인, 1868년 헝가리 코스코비치 백작 부인을 위해 제작한 파텍 필립의 손목시계도 개폐형 보석 덮개 속에 다이얼을 감춘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탄생한 반클리프 아펠의 ‘까데나’ 시리즈 역시 다이얼 각도를 꺾은 자물쇠 모양의 팔찌 디자인으로, 착용자만 살짝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크릿 워치의 시초로 여겨진다. 이처럼 시크릿 워치는 여성에게만 주어진 제약을 전제로 탄생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계는 안 되고 보석은 된다’는 이 제한은 오히려 워치메이킹의 기술적·미학적 도약을 이끄는 동력이 됐다. 시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정교하게 작동해야 하는 구조는 시계를 더욱 작고 얇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석 세팅, 기요셰, 에나멜링과 같은 장식 기법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워치메이킹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고, 다이얼을 감추기 위해 개발된 초소형 무브먼트는 이후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예거 르쿨트르의 101 시크릿 워치.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진 미니어처 무브먼트 경쟁은 기술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하이 주얼리 워치의 근간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101’을 들 수 있다. 1929년 처음 개발된 이 무브먼트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무브먼트 중 하나로 기록되며, 다이얼을 숨긴 채 주얼리처럼 착용하는 시계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역시 ‘레이디 칼라’ 컬렉션을 통해 시크릿 워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등 주요 시계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각 하우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억압에서 시작해 예술의 영역에 이른 시크릿 워치의 진화는 여성을 위한 시계가 거둔 가장 우아한 반전이다.
Part 3. The Suit
실루엣에 자유를, 여성에게 권력을.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슈트.
금기에 대항하고 제약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연 물건은 패션사에 분명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는 샤넬과 생 로랑의 슈트다. 가브리엘 샤넬이 만든 실루엣 해방의 첫 전환점은 1910년대다. 그는 당시 남성용 언더웨어에 쓰이던 저지 소재를 여성 스포츠웨어에 도입했고, 이는 옷에 몸을 맞추던 여성복의 관념을 바꿔놓은 혁명적 선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트위드 슈트는 1954년 하우스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1910년대 시작한 몸의 해방이 1950년대에 이르러 우아하고 현대적인 유니폼의 형태로 완성된 셈이다. 트위드가 왜 중요했는지는 명확하다. 샤넬은 영국 귀족 남성의 아웃도어나 사냥 복식에 쓰이던 트위드를 여성복으로 가져와 성별과 계급의 구분을 흔들었다. 비구조적인 재킷, 활동성을 높인 실루엣, 장식보다 움직임을 우선한 설계는 여성복이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후 전후 시대가 열리고,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이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를 강조한 뉴룩을 발표하면서 여성 실루엣은 다시 한번 극적인 곡선으로 회귀한다. 그래서 1966년 이브 생로랑이 르 스모킹을 내놓았을 때, 단순히 ‘여성이 바지를 입었다’는 개념을 넘어 다시 한번 여성의 몸을 권력 축으로 재설계한 사건처럼 받아들여졌다. 르 스모킹은 본래 남성 흡연실에서 입던 턱시도를 여성복에 들여온 디자인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여성의 바지 착용을 부적절하다 여겼고, 실제로 팬츠 슈트를 입은 여성이 식당이나 호텔에서 입장을 거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생 로랑 박물관은 르 스모킹을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설명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역시 ‘성별 규범을 뒤흔든 디자인’으로 다룬다. 르 스모킹이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그것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회적 저항을 실제로 통과한 옷이었기 때문이다. 르 스모킹의 상징성을 대중문화의 장면으로 굳힌 여성들도 있다.
Bianca Jagger
1971년 비앙카 재거가 결혼식에서 선택한 화이트 턱시도 슈트와 낸 켐프너가 입장을 거부당한 레스토랑에서 바지를 벗어 던지고 재킷을 미니드레스처럼 연출한 일화는 르 스모킹의 저항적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 장면이다. 이 전설적인 일화들은 여성이 남성복을 입는 일이 한때 얼마나 급진적인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샤넬과 생 로랑의 슈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건넸다. 하나는 실루엣의 해방을, 다른 하나는 권력의 전위를 선사한 것.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깨뜨린 금기는 완전히 익숙한 얼굴로 일상 속에 스며 있다. 한때 논쟁이던 것이 이제는 스타일이 됐고, 여성은 더 이상 누군가가 허락한 옷을 입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실루엣을 선택하는 존재가 됐다. 이 두 슈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유행이 아니라 선택권일지 모른다.
Credit
- 에디터 서지현
- 사진 브랜드 / 게티 이미지
- 어시스턴트 이예은
- 아트 디자이너 변은지
- 디지털 디자이너 이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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