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이 말 한 마디에 그 여자를 다시 보게 됐다

한 침대에서 자도 아무 일 없을 거라 장담했던 여사친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 같아 감흥 없던 오래 사귄 여친과의 섹스에 다시 불이 붙었다. 바로 그녀의 이 말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를 다시 보게 되는 한마디는 무엇일까? 5명의 남자가 그들의 눈을 희번덕이게 만들었던 말을 고백했다.

BYCOSMOPOLITAN2019.12.23
 

후회하지 않겠어?

조물주는 인간을 만들 때 두 종류의 여자를 빚었다. 여자 그리고 여사친이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와 여자 사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떤 여자를 만나든 첫 만남에 여자 또는 여자 사람으로 노선이 정리됐다. 나만의 취향이 확고해 이상형이 아니면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고, 조금이라도 내 타입이면 ‘금사빠’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친구에서 연인으로’와 같은 전개가 일어날 리 만무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P는 여사친 중의 여사친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3학번 후배였는데 자신을 돌 보듯, 아니 남자 대하듯 하는 나를 오히려 편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집도 가까이 있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택시비도 ‘뿜빠이’하며 점점 더 가까워졌다. P가 자신의 베프를 나에게 소개팅시켜줄 정도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동네 술친구로 우정을 다지던 중, 한 번은 둘이 술을 정말 많이 마신 날이 있었다. 집 방향이 같은 그녀를 데려다주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녹색등이 깜빡였다. 그 순간, 나는 얼른 뛰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이미 횡단보도를 다 건넜는데도 왜인지 우리는 손을 놓지 않고 한참을 걸었다. 그때 나만큼이나 만취한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 그동안 순진하게만 봤던 그녀의 당돌한 태도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P는 마치 ‘나는 네가 뭐라고 답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도발했다. 그녀가 말하는 ‘후회’가 어떤 의미인지 헷갈렸지만 이미 그녀는 내가 알던 여사친이 아니었다. “안 해.” 나는 홀린 듯이 대답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 골목길에서 P는 갑자기 나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말 그대로 시작이었다. 몇 년간 친구였던 우린 더없이 뜨거운 밤을 보냈고, 그날 이후 더 이상 친구로 지내지 못했다. 난 지금까지 그녀에게서 어떤 모습만 보아온 걸까?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한순간에 하나가 된다는 게 이렇게 야하다는 걸 지금껏 왜 몰랐는지, 너무나 황홀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우리는 더 이상 친한 친구도, 연인도, 뭣도 아닌 사이가 됐지만 지금도 그날 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린라이트, 27세
 

뭐 했는지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

5년 만난 여친과 헤어진 뒤, 좀처럼 잊히지 않는 건 그녀와의 잠자리였다. 나의 그것과 그녀의 그곳은 마치 태초부터 하나였던 듯 빈틈없는 속궁합을 이뤘으니까 말이다. 이별 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섹스후연애주의자가 됐다. 나는 마치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전설의 신검을 찾아다니는 무협 소설 주인공처럼 ‘명기’를 찾아 헤맸다. 분위기만 허락한다면 처음 만난 소개팅녀와도 밤을 보내곤 했는데, 그중 적당히 괜찮았던 A와는 FWB로 남았다. 우리는 호텔로 가기 전에 가볍게  을 마시는 게 코스였다. 몇 차례 데이트 같은 만남이 이어지자 속 이야기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감이 생겼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전 여친과의 속궁합을 잊지 못한다는 속마음도 얘기하게 됐다.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난 뒤 의외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한쪽 눈썹을 세워 올렸다. “그 여자랑 뭐 했는지 말해 봐. 내가 다 해줄게.”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두 눈이 희번득 빛났다. A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네가 지금까지 어떤 여자를 만났든, 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라는 선전포고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 섹시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그녀의 당당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호텔 방에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겹씩 서로의 옷을 벗겨내고 마침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게 됐을 때, A는 하얀 복숭아 같은 엉덩이를 흔들며 냉장고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얼음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가 잠시 뒤 나의 것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이성마저 얼려버리는 차가운 감각과 뜨거운 전율이 동시에 전해졌다. 이토록 당당한 여자라면, 망할 전설의 신검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언제까지고 함께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까지, 지금 내 와이프와 나의 이야기였다. -무림고수, 33세
 

저도 이 노래 좋아하는데

뜨거운 여름밤 피서지에서 잠깐 사랑에 빠졌다가 마는 서머 플링은 모든 남자의 로망이다. 내 경우엔 높은 확률로 공치는 일이 허다한 편인데, 그해 여름은 달랐다. 돌이켜보면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로 아무도 몰라주는 인디 음악 따위를 고래고래 틀어댔던 건 발악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모래사장에서 어떻게든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슬픈 외침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여름은 정말 달랐다. 하늘이 도우사 A가 다가왔다. “어, 저도 이 노래 좋아하는데.” 그녀는 인디 음악보다는 멜론 차트 100에 랭크된 팝송과 더 어울리는 도회적인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외모만 보면 내 타입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정말로 관심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인디 음악을 알아주는 그녀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우리 무리에 끼게 된 A는 대구에서 간호사로 일한다고 했다. 몇 년간 지속된 삼교대 근무에 지쳐 퇴사를 고민하던 A는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기 위한 일탈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일행도 연고도 없이 해운대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있던 그녀가 그날 밤바다를 보며 어떤 인생의 해답을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외로움을 달래줄 섹스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는 것만은 몹시 명확해 보였다. 20대 전반에 걸쳐 낯선 여성과의 섹스를 갈구해온 나의 육감이 속삭였다. ‘네가 기다리던 그 순간이 지금’이라고. 어느새 나는 그녀와 손을 잡고 새벽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6인실 도미토리에서 눈물이나 훔치고 있을 나의 루저 친구들 모습이 아른거리자,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모래사장에서 뒹굴었다. 정신을 차리고 모텔 침대에 누웠을 때도 온몸에는 까끌까끌한 모래가 가득했다. 오럴을 할 때면 입에 모래가 들어갈 정도로 침대 위가 모래로 흥건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씩 웃어넘길 정도로 우리는 이 섹스에 심취해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생머리, 작은 얼굴, 아담한 체형의 아름다운 몸매. 그날 밤 우리는 〈블루 라군〉의 한 장면을 찍고 난 뒤 헤어졌다.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누가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한여름 밤의 괜찮은 섹스 에피소드 하나면 충분했던 것일 테다. 해운대의 망령으로 남을 뻔했던 나의 숙원이 이뤄진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피서철의 짝짓기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팬티 속 모래의 까슬함을 떠올리면 그날의 야릇한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한여름밤의꿈, 31세
 

싫어!

J는 나보다 3살 어린 회사 후배였다. 어느 회사에나 서로 티격태격해 주위에서 “아우~ 그만 좀 싸워요”라고 말리는 앙숙 콤비가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같은 팀 후배 J와 내가 바로 그 경우였다. 우리는 팀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훌륭한 아이스브레이커였다. 점심시간이나 회식 자리에서 둘이 ‘갈굴수록’ 팀 전체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가끔은 상사인 내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며 기어오르는 어린 후배가 얄밉기도 했지만, 정색할 법한 상황에서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내 구박을 받아주는 그녀가 오히려 고마웠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저녁 회식 자리였다. 우리는 늘 그랬듯 철부지 남매처럼 서로를 쏘아대고 있었다. 나는 J와 실랑이하다가 별 뜻 없이 “휴, 너란 애는 진짜…. 우리는 앞으로 거리를 좀 두고 지내자. 필요한 말만 하고, 일적으로만 얘기하고. 진짜 딱 직.장.동.료.처.럼. 오케이?”라고 장난을 치는데, 별안간 J가 입을 비쭉 내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싫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한참 어린 후배에게 넉다운당한 모양새가 퍽이나 재밌었는지 “김 대리도 J에게는 못 당하네~ 하하하” 하는 분위기 속에 한바탕 웃음이 오갔다. 사실 내가 어이없어 할 말을 잃은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J의 깜찍함에 무장해제당한 것이라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이후 이상하게 자꾸 J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J는 생활 패턴이 예상 가능한 인물이었다. 행동이 느릿느릿해 모두가 칼퇴하는 날에도 혼자 꾸물대다 항상 10분은 늦게 나가는 타입이었다. 덜렁대는 성격이라, 그녀가 나간 뒤에 사무실에서 기다리면 꼭 빠뜨린 물건이 있다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곤 했다. 나는 할 일도 다 끝냈고, 퇴근할 준비도 다 마쳤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J가 돌아왔고 우린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어가곤 했다. 이따금 “저녁이나 먹고 갈까?” 하며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J도 나와 같은 감정이어서 내가 자신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은 괜히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물론 두고 간 물건은 없었다, 요망한 것.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고 회사 사람들 몰래 2년이나 비밀 연애를 이어갔다. 짜릿한 사내 연애의 마지막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거리를 두자는 나에게 당돌하게 “싫어!”라고 말하며 내 맘을 움직였던 그녀의 마지막 말도 “싫어!”였다. 애석하게도 목적어는 “네가”였고, 부사는 “진절머리나게”였지만…. 이제 남남이 된 우리는 둘 다 이직했기 때문에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 듣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하지만 뾰로통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멀어지기) 싫어!”를 외치던 그때 그 아이의 잔상은 진하게 남아 있다. -그래도나는좋았어, 35세
 

손톱 깎아줄까?

권태기가 슬픈 이유는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는 온 혈관에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상대가, 가만히 있다가도 희미하게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들던 그녀가, 이제는 치열하게 싸우지도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존재로 변하기 때문이다. K와 나는 교제한 지 1년 된 커플이었다. 그 시기의 우리는 서로를 향한 권태를 애써 외면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나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는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은 성가신 마음 반, 그 이야기를 꺼내면 왠지 헤어질 것 같은 두려움 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미건조하게 함께 TV를 보던 중 K가 대뜸 내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손톱 깎아줄까?” 의아한 그녀의 행동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말없이 내 손톱을 깎아주던 K는 조용히 읊조렸다. “손톱 좀 깎아. 날 세우지 말고. 나 할퀴지 마, 아파.”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듣고 난 직후에는 오그라드는 마음이 더 컸다. 난 “뭐라고?”라며 웃었지만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숱하게 고민했을 K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고, 미안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특별한 이벤트나 백 마디 말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려는 용기였으니 말이다. K는 “얘기 좀 할까?”라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너 게임 좋아하잖아. 나 지금 ‘이니시’ 거는 거야.” 참고로 이니시는 영어 단어 ‘initiating’의 줄임말로 먼저 싸움을 걸거나 어떤 행위를 시작하는 상황을 뜻한다. 어색한 대화를 무겁지 않게 이어가려는 그녀의 배려이자 유머였다. 그 순간 ‘그래 나는 이 아이의 이런 모습을 사랑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용기 내어 1년 동안 쌓인 오해와 갈등에 용감하게 직면했다. 한참 대화가 이어졌고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론 내 눈에서도 뭔가가 흐르긴 했다. 나와 싸울 때마다 세상 사납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K를 보며 정나미가 뚝뚝 떨어질 때도 많았는데…. 눈에 쌍심지 켜고 내게 화를 내는 K의 모습에 ‘이 독한 X, 나니까 너를 참아주지 나랑 헤어지고 나면 누구를 만날지. 그 새끼 참 안됐다’라는 모진 마음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 순간만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내가 다 잘못했고, 내가 그냥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 싸울 때는 서로 길길이 뛰어도,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이 사랑싸움이니 말이다. 이후 그녀와 나는 감정이 상할 때마다 말없이 손톱깎기를 상대에게 건네곤 했다. 그러면 서로 피식 웃음을 짓고, 화내고 싸우던 일도 금세 별일 아닌 것이 됐다. 지금은 약발이 떨어져 손톱깎기를 흉기처럼 집어던지며 싸울 때도 있지만. -롬곡이주룩주룩,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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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하예진
  • Photo by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