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요즘 젠지는 책을 읽지 않고 이렇게 즐깁니다

지금 시대의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듣고, 쓰는 독서의 시대를 지나 꾸미고, 공유하고, 향유하는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된 요즘 독서 키워드는?

프로필 by 김미나 2026.09.11

KEYWORD 1
책벌레의 드림하우스로 초대합니다

책이 있는 플레이스라고 해서 ‘북 카페’만 생각났다면 당신은 ‘늙크크’일지도. 북 호텔, 북 스테이, 북 코티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요즘 북 플레이스는 대부분 프라이빗한 숙소를 뜻한다. 최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와 고즈넉한 내부 분위기, 조용한 동네까지. 독서를 위한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북 스테이는 성수기 휴가철엔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경남 남해군에 있는 고요별서는 위도상 해남과 별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땅끝에 위치한 스테이다. 고요 속에서 사유하기 좋고, 바다 뷰까지 갖추고 있어 일상에 지친 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쉼터인 것.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호두나무로 만든 원목 책상과 양옆으로 펼쳐진 서가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카뮈, 카프카, 박완서, 한강을 좋아하는 호스트가 직접 읽고 큐레이션한 500여 권의 책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자필 추천서도 오밀조밀 꽂혀 있다. 반포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해금서가는 서가가 있는 메인 서재 겸 침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여성을 위한 별실, 정원에 둘러싸인 오두막 코티지까지 갖춘 아기자기한 숙소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예약 후 사연을 남기면 그에 맞는 책을 3~4권 추천해주는 ‘책 처방’ 서비스가 있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약자의 사연과 큐레이션한 책이 소개돼 꼭 스테이에 머물지 않더라도 내 상황과 비슷한 책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시끌벅적한 핫플 대신 책에 둘러싸인 오롯한 나만의 방은 사실 그 어떤 북페어보다도 독서에 재미를 붙이기 제격인 공간이다.

고요별서

고요별서

해금서가

해금서가



KEYWORD 2
도서전은 도서전을 낳고!

서울국제도서전이 흥행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화제성 뒤에는 이면도 분명 존재한다. 책보다 굿즈팔이에 관심이 더 쏠렸고, 참가 출판사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 신청을 했지만 불합리한 이유로 떨어진 작은 출판사들은 보란 듯이 소규모 도서전인 ‘서울제대로도서전’을 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국제도서전에 못 가거나 안 가는 소규모 출판사들을 위한 ‘서울자체도서전’도 올해로 2회를 맞았고, 독립출판사 발코니는 단독 소규모 도서전을 열기도 했다. 북페어의 열기는 지방 곳곳에서 열리는 도서전에까지 닿았다. 군산북페어는 204팀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찍었는데, 대형 출판사가 아닌 독립 작가와 서점, 소규모 출판사들만 참가한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다가오는 9월 처음으로 개최되는 공주북페어는 책뿐만 아니라 건축 강연과 음악 공연, 출판사의 워크숍까지 준비했다. 익산읽페어 역시 오는 9월 처음으로 개최되는데, 익산 로컬 콘텐츠 기업 비마이크의 주관으로 독립출판사 및 소규모 매거진들을 조명한다. 정보라, 김하나, 황선우 등 팬덤이 탄탄한 작가들이 함께하는 북 토크도 예정돼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크고 작은 북페어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 다른 잡음을 만들어낼지는 아직 모르는 일. 그래도 AI와 숏폼이 도파민을 독점한 시대에, 책장을 넘기며 기꺼이 도파민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꽤나 반가운 일이다. 잠깐 스쳐가는 것일지라도 독서를 한 경험은 마음속에 쌓이니까, 책의 유행은 언제나 환영이다.



KEYWORD 3
낙서하는 게 아니고 ‘책꾸’하는 겁니다

‘다꾸’, ‘신꾸’, ‘백꾸’ 등 온갖 것을 다 꾸미는 젠지들이 이번엔 책을 꾸미는 ‘책꾸’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 커버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유행하던 독서템이었지만, 이제는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팔리기 시작했고, 그 디자인은 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 아예 투명한 PVC 소재의 책 커버를 씌우고 책등 부분에 구멍을 뚫어 키링을 걸기도 한다. 더 인상적인 것은 책 표지에 분위기에 맞는 스티커를 붙이거나 심지어는 자수를 놓아 꾸미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꾸밀 여백이 많다는 이유로 책에 자수 놓기 트렌드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책인데, 구독자들은 자수 도안을 서로 공유하고 꾸민 책을 전시한다. 아예 책을 출간할 때부터 책꾸를 위한 스티커를 함께 내놓는 출판사도 생겼다. 에세이 <딸기를 먹을 때는 울지 않기로 해>를 출판한 자크드앙은 귀여운 딸기 스티커를 동봉해 책을 판매했고, ‘책꾸 대회’를 열기도 했다. 창비 역시 <혼모노> 출간 1주년을 기념해 책꾸 대회를 개최했는데, 상품으로 성해나 작가가 직접 만든 끈갈피와 신간 도서를 선물하기도 했다. 표지만 꾸미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공부를 하듯 책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에 독서 전용 형광펜이나 인덱스를 붙여 표시하고, 필사를 하고 싶은 페이지는 필사 전용 반투명 포스트잇을 이용해 적거나, 책을 읽다 생각나는 것들은 책장 한편에 메모하기도 한다. 이렇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읽은 페이지는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좋다는 것이 책꾸를 하는 20대 J씨의 설명이다. 책에 무언가를 적는 행위를 금기시하던 분위기가 180도 바뀐 요즘이다. 젠지는 독서를 수렴의 과정이 아닌, 표출의 수단으로 삼는다.



KEYWORD 4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요주의 책은?

장르 문학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늘 반갑다. <혼모노> 이후 낯선 장르인 기담집으로 돌아온 성해나 작가는 이번 소설집 <인비인>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그렸다. 이를테면 이베이에서 낙찰받은 ‘오자와’라는 남성의 삶을 대신해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같은. 성해나 특유의 흡인력 짙은 문체에 기이하고 기발한 상상력까지 더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문학동네 부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또 어떻고? 서간문과 시집, 뉴스레터의 형식을 모두 빌린 이 책은 18명의 필진이 문학동네시인선에서 직접 고른 시 한 편과 독자에게 보내는 레터가 함께 실려 있다. 김뜻돌, 김민하, 박정민, 예소연 등 가수, 배우, 작가 할 것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진의 뉴스레터를 응집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500권 출간을 기념해 이를 만들고 엮어온 기획자, 편집자, 번역가, 디자이너, 마케터는 물론 물류 담당자의 이야기까지 담아낸 <세계문학전집 이야기>도 화제의 신간 중 하나다. 그야말로 ‘올 어바웃 세계문학전집’인 셈. 그림, 인터뷰, 담당자들의 이야기, 편집 일지, 디자인 매뉴얼까지 다양한 형식의 산문을 엮어 읽을거리도 다채롭다. 세계문학전집 애독자는 물론 출판사가 일하는 과정을 A to Z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생생한 책이다. 한편 소설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그 출발점이 흥미로웠던 <자몽살구클럽>은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쓴 책이다. 자살을 하고 싶을 만큼 힘든 친구들 4명이 모여 만든 비밀 동아리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그린다. 한로로는 동명의 음반 <자몽살구클럽>을 발매하며 음반 속 노래들이 소설의 사운드트랙처럼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몽살구클럽> 3개의 트랙을 반복 재생하며 소설을 읽으면 상상력이 훨씬 자극된다.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낯선 독서 경험은 <자몽살구클럽>이라 가능한 일이다. 출판업계가 이토록 발칙한 신간들을 내놓는 것은 그저 마케팅의 일환일까? 그보다는 첨단 미디어 시대에도 여전히 종이책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사하고, 새로운 독자를 더 많이 만나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Readers’ recommend!

이제 막 책의 재미에 눈뜬 입문자부터 웬만한 책은 섭렵한 독서 고수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장르라면 역시 소설이다. 책 좀 읽는 이들이 엄선한, 독서 레벨별 추천 소설 4권.


<달러구트 꿈 백화점 0> 이미예 | 팩토리나인

꿈을 사고파는 독특한 세계관과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다음 장을 넘기게 하는 소설. 내용이 어렵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다.

독서 레벨 ★★
by 조현진(여의도 브라이튼도서관 사서)



<낙하> 이희영 | 오리지널스

요즘 젊은 독자층에 인기 있는 키워드, ‘망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소설이 액자식 구성이라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독서 레벨 ★★★☆
by 고혜원(밀리의 서재 마케터)



<침묵> 엔도 슈사쿠 | 홍성사

17세기, 예수회 신부 ‘로드리고’가 일본에 잠입해 박해받는 신자들을 마주하는 내용의 소설. 믿음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치는 섬뜩한 공포와 숭고함.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아주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독서 레벨 ★★★★
by 예소연(작가)



<테오> 앨런 레비 | 오팬하우스

대가 없는 선의와 느슨한 유대감, 오래 잊고 지낸 인생과 온기를 되살려주는 이야기다. 500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쉽게 읽힌다.

독서 레벨 ★★★★
by 이지혜(책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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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미나
  • 사진 김래영·스테이 웹사이트·각 주최측(포스터)·각 출판사(표지)·@o_p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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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 디자이너 변은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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