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향수는 하나만 뿌리지 않습니다, 향수 레이어링 조합 4
더 이상 공식에 의존하지 않는 무질서한 향 레이어링의 세상에서, ‘향친자’ 4명의 나만의 향을 위한 갈망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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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레이어링 트렌드가 바뀌었다. 수학의 정석처럼 공식과 답이 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관식 서술형에 가까워졌달까? 이 향수 저 향수를 시도하는 열린 결말 속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난이도는 한층 올라간 모습이다. 디깅 또한 필수 코스가 됐다. 디깅은 종과 횡으로 무궁무진하게 이뤄지며, 타임머신을 타고 엄마 화장대 위 향수까지 물망에 오르게 한다. 문제는 이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작조차 못 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틱톡에 ‘센트 스태킹’ 콘텐츠가 넘쳐흐르지만, 모두 검증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에 주변의 향친자와 향기 전문가 4명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 향을 선택하고 조합하고 있나요?
(위부터)미스 디올 에쌍스 80ml 32만1천원대 Dior Beauty. 코치 체리 90ml 16만5천원 Coach. 꼴렉시옹 엑스트라오디네르 네롤리 아마라 75ml 31만8천원 Van Cleef & Arpels. 에끌라 드 아르페쥬 화이트 티 100ml 13만5천원 Lanvin. 운 자르뎅 수 라 메르 100ml 24만5천원 Hermès. CH.4 텐더 디파이언스 75ml 56만원 Maison Margiela. N°5 오 드 뚜왈렛 75ml 24만8천원 Chanel Beauty.
1 편안하면서도 낯선 향에 대한 집착
」과거에는 향기로 체취를 감췄다면, 요즘은 각자의 체취와 잘 어우러지는 향을 하나씩 쌓는 방식으로 트렌드가 이동한 것 같아요. 확실히 한 가지 향을 썼을 때는 강하고 투박한 느낌이 나는데, 자신을 좀 더 고찰하면서 셀렉한 향은 명확한 공식 없이도 섞였을 때 훨씬 섬세하고 편안하더라고요. 낮과 밤, 계절, 뿌리는 횟수와 위치 등 나만의 루틴을 완성했을 때의 만족도도 높고요. 또 점점 더 니치하고 유니크한 향이 많이 출시되는데, 그걸 내 방식대로 한번 꼬는 재미가 있죠. 저는 향에 대한 기준이 꽤나 명확한 편이라 섞고 싶은 향을 세팅해두고 나머지 제품은 모두 무향을 써요.
요즘 한창 빠진 레이어링 루틴은 샤워 후 유스트의 ‘31허브 바디오일’과 ‘백리향 크림’, ‘노간주 크림’을 1:1:1로 손바닥에 비벼서 믹스한 뒤 근육통이 있거나 부종이 있는 부위에 바르고, 기관지가 안 좋을 때는 가슴 중앙과 넥 라인까지 펴 바른 뒤 보디 괄사로 문질러줘요. 처음에는 피부가 빨갛게 올라오거나 살짝 화한 느낌이 들지만, 계속 풀어주면 아침을 정말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죠. 제 경험상 이 3가지 조합의 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어요. 허브 향이 심신에 안정감을 주고, 캄하고 편안한 에스테틱을 떠올리게도 하죠. 그런 다음에는 목 뒤와 옷에 셀린느 ‘렙틸’이나 나흐 ‘차일드 오브 더 90S’, 에르메스 ‘운 자르뎅 아 시테르’ 중 하나를 뿌려요. 어느 날 최애와 최애를 조합하고 나왔는데 누군가 향기가 정말 좋은데 무슨 향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큰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집에 돌아와 옷을 벗었는데 내가 의도한 여러 가지 향이 고루 날 때도 그렇고요. 보통 공원과 새벽 시간, 고급 에스테틱 등에서 영감을 얻는데 늘 갈 수 없는 곳이고 누릴 수 없는 시간이잖아요. 향 레이어링은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는 확실한 힐링이자 즐거움인 것 같아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혜수
2 옷을 걸치기 전 향기를 먼저 입으세요
」요즘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본인만의 시크릿 레이어링 조합을 찾는 과정을 즐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시간차를 두고 보디 제품과 오 드 퍼퓸, 헤어 미스트를 믹스하는 데 빠져 있어요. 먼저 보디 제품은 텍스처가 가벼운 것부터 사용하고 피부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도록 패팅 시간을 충분히 가져요. 샤워 후 온기가 남아 있는 욕실에서 산뜻한 타입의 보디로션을 두 번 얇게 레이어링하고, 로션이 흡수되는 동안 헤어 드라이 후 미스트를 두세 번 분사해줘요. 팁이 있다면 머리카락뿐 아니라 목 뒤 헤어라인까지 놓치지 않고 뿌려주는 것. 고개를 돌리거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향기가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져요. 마지막으로 오 드 퍼퓸을 뿌리는데 보디 제품과는 반대로 무거운 향을 먼저, 가벼운 향을 나중에 분사해줘요. 여기서 포인트는 옷을 입기 전 맨살에 그대로 향수를 뿌리는 것. 흔히 손목 안쪽에 분사 후 귀 뒤쪽에 톡톡 얹는 방법을 쓰는데, 끈적이는 느낌이 남기도 하고 발향 지점이 코와 너무 가까워 은은한 레이어링을 즐길 수 없어요. 저는 무릎 뒤쪽과 발목에 묵직한 우디 계열을 뿌려 먼저 베이스를 잡고, 데콜테 쪽에 산뜻한 시트러스 계열을 더해줘요. 이 상태에서 옷을 입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두 향이 묘하게 섞이며 적당한 강도로 나만의 시그너처 잔향이 유지돼죠. 마릴린 먼로의 “just a few drops of chanel No.5…”와 비슷한 맥락으로 향을 입는 거랄까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카테고리가 다른 아이템이어도 동일한 어코드 제품끼리는 레이어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치 향수로 샤워한 듯 투머치한 느낌이 강해지고, 각 아이템의 매력이 되레 반감되더라고요. 레이어링한 두세 개의 향이 자연스럽게 믹스되지 않고 따로따로 겉도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재미있는 건 실패한 조합을 다른 계절이나 날씨에 다시 시도해보면 성공 레시피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취향이 담긴 플레이리스트처럼 향을 아카이빙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레시피가 생길 거예요.
노운 언노운 PR팀 팀장 김수정
3 향수 멀미 없는 레이어링 루틴
」센트 스태킹 트렌드는 개인이 향을 직접 경험하고 선택해 조합하는, 취향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브랜드가 제안하는 대로 향을 소비하는 경향이 컸거든요. 요즘 향 고관여자들은 향조 간의 밸런스, 잔향의 변화, 계절과 피부 컨디션에 따른 발향 차이까지 정말 디테일하게 고려해요. 물론 수많은 실험과 실패가 동반돼야 하지만, 이렇게 구축된 노하우는 어떨 때 브랜드 메시지보다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도 하죠. 저는 향수업계에서 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향수 멀미가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은은하게 향을 즐길 수 있는 핸드워시와 핸드크림 조합에 꽤 집착하죠.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손을 자주 씻고 또 손끝의 향을 반복적으로 맡게 되거든요.
요즘 빠진 조합은 우디 계열의 핸드워시로 차분하게 베이스를 깐 뒤, 시트러스 그린 계열의 핸드크림을 레이어링하는 거예요.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고 세련된 잔향이 남거든요. 한 번씩 자연스럽게 스치는 향에 순간순간 리프레시되는 느낌도 좋고요. 향수를 레이어링할 때는 실제 내 피부 위에서 향이 어떻게 발향되고 변화하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레이어링이 잘못되면 하루 종일 멀미하듯 답답하거든요. 예전에 아는 분의 플로럴 우디 조합이 좋아서 그대로 따라 했는데, 막상 제 피부 위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파우더리하게 발향되면서 무겁고 답답한 잔향으로 변하더라고요. 같은 조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된다는 걸 알게 됐죠. 이렇듯 향 레이어링은 단순히 유행하는 조합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피부 위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트렌드가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죠.
인터퍼퓸코리아 PR 매니저 김나연
4 방구석 조향사처럼 과정을 즐겨라
」향에 있어 상당히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똑같은 향이라도 뿌리는 사람에 따라 결과치가 다르거든요.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향을 레이어링했을 때 예상과 다르게 발향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이 점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내가 가지고 있는 향을 자유롭게 믹스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남들과 똑같은 향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충족시키기도 하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향을 조합하는 시도도 많아졌어요. 저 또한 자신이 가진 향수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 말해요. 마치 조향사가 된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향을 즐기면서 만족할 만한 조합을 찾으라고요. 유행 조합을 따라 해봐도 어차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요.
조향사 김활
Credit
- 에디터 김아라
- 사진 정우영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 디지털 디자이너 이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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