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키스 평점까지 기록한다?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요즘 데이트 트렌드
데이팅 앱과 무분별한 만남에 피로감을 느낀 싱글들이 연애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데이팅 플래너와 데이트 전용 스프레드시트 등 ‘연애 생산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감정에 기반한 로맨스 특유의 즉흥과 우연은 삭제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이 이 시대의 연애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2024년 당시, 연애 경력 10년에 빛나는 29살 몰리는 모든 데이트를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했다. “만난 사람들의 이름, 데이트한 날짜, 만나게 된 경위,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데이트에서 뭘 했는지, 만나는 도중에 어떤 불만이 있었는지부터 외모, 별자리까지 기록했죠.”
몰리는 이렇게 몇 달 동안 그간의 데이트를 기록한 결과, 연애로 이어지는 데 실패하는 공통적인 원인을 포착했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저와 유머 코드가 맞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몰리는 이를 염두에 두고 데이팅 앱 ‘힌지(Hinge)’에서 매칭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스크롤하며 살폈다. 그들의 유머 코드는 어떤지, 그와의 채팅이 재밌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서. 몰리는 자신의 연애를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확인했다. “연애를 일처럼 해보고 싶었어요. 좀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데이트를 하는 거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리와 같은 방식으로 데이트하기 시작하면서 기술도 재빨리 이 흐름에 동참했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연애 스타일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들이 나타난 것이다. 글로벌 온라인 숍 ‘엣시(Etsy)’에서도 데이트 생산성을 높여줄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데이트를 기록할 수 있는 전용 플래너나, 상대의 정보들을 양식에 맞게 기록할 수 있는 데이팅 트래커 스프레드시트 테마 등이 그것. 심지어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정한 사랑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연애 전문가, ‘러브 해커’까지 등장했다.
데이팅 앱 스와이프에 지친 세대가 이런 연애 방식에 매력을 느낀 것은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금융회사 직원이라도 된 듯 연애의 성과 지표를 따지는 것이 권유할 만한 방식일까? 오히려 연애에 방해되거나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연애 트렌드는 소위 ‘갓생’ 문화에서 비롯됐다. 삶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만들려는 현대인의 집착이 연애에도 반영된 것이다. 삶에서 재미를 위한 부분까지 시스템화하고 아카이빙하도록 부추기는 취미 생활 앱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자신이 본 영화를 기록하고 평점을 매기는 ‘레터박스트(Letterboxed)’는 2024년 이후 사용자 커뮤니티 규모가 50%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 독서 앱 ‘굿리즈(Goodreads)’의 회원은 어느덧 1억5천만 명이 넘었다.
연애는 숫자 게임?
사람들이 이러한 도구를 연애에 활용하는 것도 당연하다. 2025년 <포브스>에서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8%가 데이팅 앱에 지쳤다고 답했다. 스프레드시트에 자신의 연애 정보를 기록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 연애 생활을 최적화하면 데이트에서 느끼는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스프레드시트 위 숫자로 만드는 일은 로맨스 코미디 속 러브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25살 아샤라가 꿈꿨던 연애에는 ‘최적화’ 과정 같은 것은 없었다. “23살에 연애를 시작했고, 데이팅 앱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죠.” 그러나 아샤라는 앱에 등록된 엄청난 수의 사람과 정보량에 부담을 느꼈다. 체계적인 것을 좋아하는 아샤라에게 스프레드시트는 당연한 해답처럼 보였다. “인종, 나이, 키, 출신지 같은 인구통계학적인 정보를 기록했어요.” 이어 “별명, 위험 신호, 긍정 신호, 형제 관계, 이별 방식, 심지어는 키스 평점까지도요”라고 덧붙였다. 아샤라는 곧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정보마다 색상 코드를 설정해 그래프로 표시했고, 이후 슬라이드 자료로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자신의 결정을 돌아보고, 자아 성찰의 목적도 있지만, 데이트 상대들을 비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아샤라는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거친 덕분에 현재 남자 친구와 진지하게 만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데이터를 살펴보았더니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가 다른 남자들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 알 수 있었어요.”
‘스와이프’ 전문가들의 해답
영국 리즈 대학교 사랑·섹스·관계 연구소의 공동 연구소장 루크 브루닝은 젊은 층이 이러한 연애 방식에 의존하는 건 타당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통제하고자 하고, 직접 나서서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브루닝 소장은 이러한 경향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매칭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데이트할 상대가 자신과 잘 맞는지 미리 확인하려는 것이죠.” 데이팅 앱 ‘범블(Bumble)’의 2024년 연애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선호를 더 잘 바꾸는 경향을 보였다. 조사 대상자의 59%는 데이트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커져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 이에 따라 감정적으로 신뢰할 수 있으며, 함께할 인생의 목표가 명확한 파트너를 찾는다고 밝혔다.
2025년 1월, 캘리포니아에 사는 샘슨 에지엠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대부분의 사람이 연애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연애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앱 ‘스프레드(Spread)’를 출시했다. 이 앱은 사용자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명단을 관리할 수 있는 기록 시스템을 제공한다. 에지엠은 “모든 사람을 위험, 중립, 긍정으로 분류할 수 있죠”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분류해두면 앱이 자동으로 사람들의 순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스프레드는 만났던 사람들의 정보를 나란히 놓고 쉽게 비교할 수 있어요. 한눈에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누구에게 집중하면 좋을지, 누구를 피하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을 돕죠.”
우리가 꿈꾸는 남자는 AI?
이렇게 연애를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연애 최적화’는 연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도록 부추긴다. 이는 우리가 만나는 상대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게 되고, 관계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미 데이팅 앱의 ‘스와이프 문화’에서 나타난 바 있는 부작용처럼 말이다. 데이트 상대를 복잡성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스프레드시트 위 숫자로 보는 것이 언젠간 마주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에 좋지 못할 것이라고 브루닝 소장은 말한다. “그들의 복잡성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들을 마주하는 것도 연애의 일부입니다.”
몰리는 그동안의 데이트를 기록하는 것이 힌지에서 매칭된 사람들을 서로 대결시키는 과정이었다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고 말한다. 과거 거절당하는 기분을 끊임없이 느끼며 자책하던 순간들에서 벗어나 기록을 시작하게 된 것. 결국 그로부터 8개월 후 몰리는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으며, 몰리는 그를 ‘내 사람’이라고 부른다. “제가 쓴 스프레드시트를 보면서 그동안 만나온 많은 사람이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또 그 사람들이 대부분 재미있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바람둥이 기질이 있다는 공통점도요.” 몰리는 말한다. “그런 기록을 살펴보며 저는 다른 유형의 남자를 선택하게 됐죠.”
몰리처럼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 위해 엑셀 강좌까지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연애 최적화’를 위해 당장 스프레드시트를 생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한발 물러서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자. 데이트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일이 일종의 보호 장치가 돼 상처받고 좌절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고, 연애를 컨트롤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연애에서 상대의 의외성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즉흥이 주는 낭만, 재미를 경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어도 괜찮을까? 그것이 진정 이 시대에 우리가 바라는 연애의 모습인 것일까?
시중에는 현재의 삶을 자동화할 수 있는 도구와 정보가 쏟아진다. 브루닝 소장은 연애 최적화 역시 이러한 현상이 반영된 트렌드라고 설명한다. “모든 것이 과도하게 계량화되고 꼼꼼한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연애 역시 피해갈 수 없죠.”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 곧 행복한 삶은 아니다. 게다가 인간 본연의 매력은 수치화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의 스프레드시트에 적힌 모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가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고, 행복감을 주며, 심지어 오르가슴을 느끼게 한다면? 이건 도무지 수치화할 수 없을뿐더러 놀라울 만큼 인간적이고, 통계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일 것이다. 연애에서 효율만을 추구할 수 없는 이유다.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글 앨리스 포터(저널리스트)
- 사진 GETTY IMAGES
- 아트웍 RUTA ZEMAITYTE
- 번역 박수진
- 디지털 디자이너 변은지
스타들의 다이어트 비법 대공개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