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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생수>로 돌아온 전소니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세계
좋아하는 마음은 크게, 순간은 영원처럼. 배우 전소니가 이 세상을 마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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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셔츠, 타이 모두 발렌티노.
소니 씨와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그간 소니 씨가 그려온 궤적을 떠올려봤어요. 곱고 사랑스러운 결의 작품이 많을 거라는 막연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죠.(웃음)
저 사실 밝고 예쁜 모습의 캐릭터를 연기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첫 상업 영화도 <악질경찰>이었거든요. 한동안 어두운 이미지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다가 영화 <소울메이트>, 드라마 <청춘월담> 등을 통해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로 오랜만에 거칠고 어두운 인물을 다시 연기하게 됐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즐거웠죠.
거칠고 어두운 인물이라니, 너무 궁금해지는데요?
제가 연기하는 ‘수인’은 혼자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작품 안에서 ‘수인’이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게 재미있다고 느꼈는데요, ‘수인’은 삶에 많이 지쳐 있고, 어딘가 외로운 구석이 있는 친구예요. 그런 인물이 생존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그게 이 작품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신체를 조종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죠. 다른 세계관에 살고 있는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은 어땠어요?
기생수를 만나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물의 현실감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예상치 못한 일이 그려졌을 때 ‘수인’이 느낄 감정도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오히려 기생수와 공존할 때의 ‘수인’보다 그 일을 겪기 전의 모습이 좀 더 궁금했고, 그 배경까지 잘 담고 싶었어요.

셔츠, 스커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 슈즈 지방시.
‘수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되려고 한 거군요.
네.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캐릭터가 변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래서 전 ‘수인’이라는 인물의 바탕을 잘 깔아두고 싶었던 거죠. 장면 하나하나 이 순간엔 ‘수인’이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사건으로 인해 ‘수인’은 어떤 태도를 갖게 될까를 고민하며 상황 자체에 최대한 녹아들려고 했어요.
‘수인’이 돼보니 어떻던가요?
인생에 혼자뿐이던 ‘수인’에게 함께 목숨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생겨요.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할 때와 달리 함께하는 사람들과 싸움을 해나갈 때는 다른 감정이 들더라고요. 알 수 없는 책임감, 정의감 같은 감정이랄까요.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유대감을 느끼면서 ‘수인’에게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거죠. 나 혼자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정의했던 모든 것이 바뀌어가면서요.
‘수인’의 성장기를 보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부산행> <지옥> <기생수: 더 그레이>까지, 독보적인 세계관을 선보이는 연상호 감독의 ‘연니버스’에 입성한 소감도 궁금해요.
스태프분들이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드디어 이곳에 왔다면서요.(웃음) 사실 연니버스에 입성했다는 특별한 소회보단 이 작품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그럼에도 입성한 소감을 말한다면, 그저 재밌고 즐거웠어요. 현장은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신나고 에너제틱한 기운으로 가득했죠. 감독님과의 작업도요.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니, 내가 책임질게.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네가 채워줘야 해”하고 디렉션도 확실하셨죠. 감독님의 말씀이 제게는 정말 잘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로 다가왔어요.

홀터넥 톱, 드레스 모두 페라가모. 안경 젠틀몬스터. 슈즈 세르지오 로시.
연니버스에 먼저 입성한 구교환 배우와의 합은 어땠어요?
교환 선배랑 함께 연기하는 건 제 오랜 희망 사항이었어요. 출연이 확정되고 나서 ‘강우’ 역할을 교환 선배님이 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소리를 질렀죠. 감독님이 “왜 지금 더 좋아하시는 거죠?”라고 말하실 정도로요.(웃음) 선배님이랑 함께 연기하는 순간순간 배운 게 정말 너무 많아요.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나와는 이런 면이 비슷하고, 다르구나’ 하는 걸 매번 느꼈죠.
문득 어릴 땐 어떤 아이였을지 궁금했어요.
뭔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였어요. 선생님께도 예쁨받고 싶었고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예뻐해주시겠지?’ 이런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성향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 날 사랑해주려면,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긴 거죠.
사랑을 갈구하던 소녀는 어떤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사랑을 받고 싶은 건 누구나 다 똑같잖아요. 이게 어떤 면에선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전 그런 부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성장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땐 마냥 연약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랑받기 위해 ‘나’를 뒷전에 두거나 무시하지 않는 강한 어른이 됐다고 느껴요.

브라톱 보디 by 무이. 스커트 케이트 by 무이. 러그 세이투셰. 헤어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를 하게 된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의 연장선이었을까요? 언제 소니 씨의 삶에 연기가 찾아오게 된 건가요?
저는 무언가 변하고 사라진다는 게 슬펐어요. 사춘기 때 표지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있었죠. 그때의 전 변한다는 건 사라지는 거라고만 생각했나 봐요. 모든 게 유한하니까, 저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무언가를 꿈꿨어요. 옛날 영화는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보잖아요. 영화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게 마법처럼 느껴져 좋았어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마법사 같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쉬운 일 아니에요> <자유로> 등의 단편영화로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았죠? <여자들>의 ‘소니’부터 <밤의 문이 열린다>의 ‘효연’, <악질경찰>의 ‘미나’ 등 강단 있고 주관이 뚜렷한 역할을 자주 맡았어요.
제 인생에서 되게 신기한 경험인데요, 독립 영화를 찍었을 때만 해도 말씀하신 것처럼 강단 있는 인물과는 거리가 먼 역할을 주로 연기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언젠가 스스로 의구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왜 나는 그런 역할을 만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오디션에서 듣는 피드백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주관이 뚜렷해 보인다는 피드백과 함께 그런 역할이 들어오기 시작했죠.
강단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소니 씨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드러난 게 아닐까요?
그러게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었나 봐요.
전 이옥섭 감독과 호흡을 맞춘 <탈출: Send me out> 속 소니 씨를 특히 좋아해요.
워낙 좋아하던 감독님이라 출연 제안이 오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굉장히 짧은 분량이지만,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였죠.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에 저를 떠올려주신 것만으로도 제겐 큰 기쁨이었어요.

재킷 , 스커트 모두 토템.
이옥섭 감독과의 재회를 꼭 보고 싶어요. 이경미 감독이 그리는 여성 캐릭터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도요! 이옥섭 감독님도, 이경미 감독님도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좀 이상한 사람, 해보고 싶어요. 이상해서 매력적인 사람.
매력적이죠. 소니 씨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마치 소니 씨의 서랍장 한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이 순간의 소니 씨는 무얼 보고, 무얼 좋아하는지가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스스로 자신의 취향을 정의해보면 어때요?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좋다고 느낄 때 한 번 더 생각해봐요. 누가 좋다고 해서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하고요. 정말 좋다고 느껴지는 걸 좋아하고 싶어요. 요즘 부쩍 느끼는 건데, 좋아하는 마음이 더 시끄러웠으면 좋겠어요. 화나고 미워하는 건 빠르게 퍼져 나가는 것 같은데, 무언가를 좋아하고 칭찬하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전 좋아하는 게 생기면 좋아한다고 크게 표현하려고 해요. 대상이 뭐든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여요.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해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한동안은 영화에 빠져 있었어요. 아직 못 본 영화를 누군가 봤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가리지 않고 모든 영화를 다 찾아서 보던 때가 있었죠. 요즘은… 집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데, 집을 잘 돌보고 가꾸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인터넷을 보면 너무 잘 꾸민 누군가의 공간에 유혹되기 쉽잖아요. 내 집은 오로지 내가 좋아하고 내가 고른 것으로만 채우고 싶어요.

재킷 케이트. 쇼츠, 슈즈 모두 구찌. 안경 생 로랑.
소니 씨에게 순간은 어떤 의미예요?
너무너무 소중한 것. 지금 이 순간도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계속 사라지고 있잖아요. 한 번도 잡아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쫓아가고 있는 기분인 것 같아요.
최근에 새롭게 느낀 감정도 있어요?
제 방에 천창이 있어요. 누우면 천창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데, 어느 날은 지금껏 살면서 본 가장 밝은 달이 떴어요. 천창으로 달빛이 들어오는데, 방에 불을 켠 것처럼 밝아서 앞이 다 보일 정도였죠. 머리 위로 내려앉는 달빛을 보는데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저 오늘 아침 또 다른 감정을 느꼈어요.
어떤 감정이요?
오늘 아침에 <기생수: 더 그레이> 포스터가 공개됐거든요. 저 이런 기분은 처음 느끼는데, 어떤 기분인지 설명하기도 어려워요.(웃음) 너무 떨리고, 긴장되고,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근데, 너무 좋아서 방방 뜨는 게 아니라, 발이 안 닿는 것 같은 기분이요. 이건 뭘까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까요?
그럼요.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 때문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기뻐요. 한 번도 안 느껴봤던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위로가 돼요. 지금처럼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이것저것에 마음껏 영향받으며 살고 싶어요.

베스트 스튜디오 니콜슨. 귀고리 보테가 베네타.
Credit
- Editor 천일홍
- Photographer 장덕화
- Hair 안홍문
- Makeup 정보영
- Stylist 임진
- Assistant 박한나
- Art Designer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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