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앤더슨벨 김도훈은 이제 막 첫 장을 넘겼다

밀라노에서의 첫 데뷔쇼에 이어 2024 F/W 컬렉션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앤더슨벨. 론칭 10년이 지났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도훈은 이제 막 한 챕터를 넘겼다고 말한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3.08
 
 
최근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의 두 번째 런웨이 쇼인 2024 F/W 컬렉션을 마무리했어요.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 선생님에게 경의를 표한 컬렉션이에요. 업적도 대단하시지만 선생님의 퍼스널 스타일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비행할 땐 유틸리티 룩을 입으셨는데, 일상에서는 모던하고 세련된 룩을 즐겨 입으셨더라고요. 완전히 매료됐죠. 저희 컬렉션도 선생님의 스타일처럼 서로 다른 것들을 매치해 낯선 느낌을 주려 했어요. 항공 점퍼에 코르셋 디테일을 녹인다든지 프릴 스커트와 믹스매치하는 것처럼요.
 
이번 컬렉션뿐 아니라 밀리터리 스타일에 꾸준한 관심을 드러내왔어요. 개인적인 취향인가요?
어릴 때부터 빈티지 패션을 사랑했어요. 그중에서도 밀리터리 빈티지는 재미있는 요소가 정말 많아요. 오랫동안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녹아든 것 같아요. 앤더슨벨에 리버서블 제품이나 멀티 포켓과 같은 실용적인 디자인이 많은 이유기도 하죠. 디
 
디자인과 실용성을 겸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두 요소 중 어떤 걸 더 중요시하나요?
디자인이 먼저예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밀리터리 빈티지를 좋아해서 그런지 디자인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용성이 따라오더라고요.
 
과거 아식스, 헌터, 레드윙 등과 협업했고 이번 시즌에는 오토링거, 리바이스, 헌터와 동시 협업을 진행했어요. 브랜드뿐 아니라 사진작가 김남진, 재봉틀 아티스트 정민기 등 아티스트들과의 만남도 돋보입니다. 이번 2024 F/W 쇼에서도 아티스트 이병찬의 거대한 설치 작품을 세웠고요. 이렇게 컬래버레이션을 자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브랜드와의 협업을 늘 동경했어요. 협업은 두 브랜드가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작업하는 거니까요. 이번에 리바이스 글로벌과 함께한 국내 브랜드는 앤더슨벨이 처음이라 의미가 더 커요. 사실 세 브랜드 외에도 주얼리 브랜드 리기도, 슈즈 브랜드 유메유메와도 함께했어요. 유메유메와는 2025 S/S 시즌에 정규 협업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아티스트의 경우 신선한 자극을 주면서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과 함께 작업하거나 전시를 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우루과이의 사진작가 제이피 보니노와 진행한 협업 전시가 좋았어요. 패션이나 미술 등 분야에 관계없이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다면 뭘 하겠어요?
글쎄요. 꿈꾸는 대상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칼하트와 협업하고 싶어요. 오리지널 워크웨어에 앤더슨벨이 가진 해체주의적 미학을 더하면 멋질 것 같아요.
 
밀라노에서의 첫 데뷔쇼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론칭 10주년이기도 해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닌데 저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행복해서 얼굴이 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웃음)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놓친 건 없는지 팀원들과 다각도로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꼼꼼하게 준비했는데, 첫 쇼가 맞냐고 묻는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많아 뿌듯했죠.  
 
쇼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SNS에서 영민하게 움직이면 충분히 이름을 알릴 수도 있는 오늘날, 피지컬 패션쇼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할 수도 있다 생각해요. 하지만 쇼를 하지 않으면 그다음의 챕터로 넘어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SNS에서는 바이럴만 존재할 뿐 브랜드의 정체성이나 스토리를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다 느꼈어요. 퀄리티 높은 옷을 보여줘야 하는 건 기본이고요.
 
그런데 왜 밀라노였어요?
 사실 파리에 가고 싶었어요.(웃음) 하지만 병목현상처럼 너무 많은 브랜드가 파리에 몰려 있고, 한 번도 쇼를 안 해본 브랜드가 공식 일정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패션 위크의 공식 스케줄이 아니라면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는 또 하기 싫더라고요. 감사하게도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기회를 줬죠. 앤더슨벨 쇼룸이 밀라노에 있기도 했고, 밀라노 패션협회 회장님도 이미 K-붐을 알고 있었거든요. 2년 뒤쯤에는 밀라노에서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파리에 진출할 생각이에요.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3개의 대학교와 4개의 전공을 거쳤어요.
이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 전에는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거든요. 소위 유명한 패션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스스로를 좀 알게 되면서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길을 갔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이게 나의 근간이구나’ 싶었죠. 당시 브래드 피트 때문에 꽂혀 있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온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으면 좋겠다”란 대사가 저의 모토였어요.
 
예측 가능한 루트로만 살면 재미없잖아요.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맞아요. 제 성향도 뻔한 것보다는 서로 다른 것들끼리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스파크에 ‘찌릿’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앤더슨벨이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려고 했어요. ‘Andersson’이라는 스웨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름(성)과 ‘Bell(한국 절에 있는 종)’을 결합해 브랜드명을 지었다고 해서요. 왜 스웨덴이에요? 
첫 유럽 여행지가 스웨덴이었는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곳이었어요.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른 듯했죠. 스톡홀름 특유의 감성도 좋았지만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아크네 스튜디오, 아워레가시 같은 훌륭한 브랜드들이 탄생했단 것이 신기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영감받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 앤더슨벨을 하게 됐고요. 관계성 없는 두 단어를 그냥 합쳤죠.
 
옷에서도 느껴져요. 디자인 철학이 있나요?
스스로에게 설득이 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짜맞추는 게 아니라 설득력 있는 디자인.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으면 안 하는 게 맞아요.
 
멋진 말인데요. 브랜드를 오래 운영하려면 판매율도 중요하잖아요. 주력 국가가 있나요?
마케팅적으로 특별히 주력하는 나라는 따로 없어요. 특정 국가에서 매출이 잘 나오는 건 있지만 그걸 신경 쓰고 겨냥하는 순간 편협한 디자인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옷이든 예술이든 스포츠든, 몸에 힘을 뺐을 때 툭 나오는 것들이 진짜 ‘멋’이잖아요.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여러 방법이 논의되고 있어요. 앤더슨벨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트롱프뢰유 기법을 꽤 오랫동안 적용해왔어요. 실제 데님도 사용하긴 하지만, 데님 하나를 만들 때 폐수가 많이 나오거든요. 이걸 줄이고자 프린트로 대체해서 실제 데님처럼 만들었죠.
 
앤더슨벨이 어떤 브랜드로 남았으면 하나요?
제가 빈티지 제품을 구매할 때의 기준은 지금도 이 브랜드가 건재하는지, 그리고 호황기에 나온 옷인지 아닌지를 봐요. 두 조건이 충족됐을 때 눈에 보이진 않지만 현재와 과거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앤더슨벨도 그런 시간 여행이 가능한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10년, 20년 뒤 저희 아이템이 빈티지 매물로 나왔을 때 높은 가치가 있는 브랜드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앤더슨벨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우리 옷으로 인해 입는 사람의 하루가 달라졌으면 해요.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고 어제와 다른 하루를 살아보게 하는 것. 패션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대화를 나눠보니 김도훈은 무언가를 역사에 남기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네요. 은퇴 후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할 생각이 있나요?
앤더슨벨의 비전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10년 안에 건강한 은퇴를 하고 싶어요. 다음 디렉터는 다른 문화와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패션에 조예가 깊기보다 문화의 흐름을 알고 아트 디렉션에 탁월한 사람. 그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앤더슨벨도 반짝하고 없어지는 브랜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브랜드로 100년은 가야 하지 않을까요?  
 
 

Credit

  • Editor 김소연
  • Photo by 김민주(인물/사무실 배경)/BRAND(백스테이지)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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