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LVMH 선정 TOP 50 디자이너! 레지나 표와의 만남
“진심은 언젠가는 통해요.” 세상을 향해 진심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외치는 패션 디자이너 레지나 표. 그는 2015년 LVMH가 선정한 TOP 50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고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계 디자이너에게 주는 SFDF상을 2017년과 2018년 연달아 받았으며, 2019년 런던 패션 어워드에서는 여성복 신인상을 수상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로 우뚝 선 디자이너 표지영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그의 팝업 스토어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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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런던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어요.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이번 서울 팝업 스토어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분은 제 드레스를 결혼식 때 입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누군가의 중요한 삶의 한순간에 레지나 표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죠. 런던 스토어의 경우엔 영국의 유명 아트 북 큐레이터가 저희 아트 북 큐레이션도 함께 맡고 있어 좋은 아트북도 만날 수 있고, 영국에서 떠오르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해요. 단순히 옷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레지나 표의 여성상을 표현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어요.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졸업 후 국내 패션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영국으로 건너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여성복 석사 과정을 마쳤고요. 런던을 베이스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잡지를 보면 알렉산더 맥퀸이나 후세인 살라얀 등 내로라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은 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나온 거예요. 도대체 그곳이 어떤 곳이길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모두 거쳐갔는지, 거기서 뭘 했을지 궁금했어요. 유럽의 건축양식이나 예술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이 저를 런던으로 이끌었어요.
커리어를 잠시 내려두고 간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해외 컬렉션 보고 카피하듯이 디자인을 해야 하니 그야말로 ‘현타’가 왔어요. ‘도대체 왜 우리가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없고, 왜 이것들을 따라 해야 하지?’ 계속 불만이 쌓여갔죠. 회사에서 인정받는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제가 원했던 미래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해 런던으로 갔어요. 회사에서 번 돈을 고스란히 모아 학비로 쓰고, 숍이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나름 무작정 떠났던 거죠.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의 스토리가 궁금해요.
석사를 마치고 H&M에서 협업 제안이 왔고, 졸업 작품이 ‘한 네프컨스 패션 어워드’의 우승작으로 선정됐어요. 또 네덜란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이만스 판뵈닝겐 뮤지엄’에서 단독 전시를 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얻었고요. 어려서부터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었는데 협업하면서 받은 커미션이나 상금을 모아 이때다 싶어 레지나 표를 론칭했어요.
런던에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네! 맨 땅에 헤딩.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했어요. 학교에서는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요. 재정이나 운영 같은 것들에 대해 무지했죠. 그리고 제가 이방인으로서 그들 사이로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어요. 외롭기도 하고 실망감이나 좌절을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항상 결론은 이거예요. “내가 잘하면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겠지.” 그래서 디자인에만 전념했고, 그렇게 열심히 하니 영국 패션협회에서 상도 받게 됐어요.
그런 어려움을 딛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어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레지나 표만의 스타일과 꾸준함? 그냥 정말 좋아서 이 일을 한다는 것. 저의 진심이 닿았다고 믿어요.

레지나 표에는 한국적인 미학이 깃들어 있어요. 볼륨 있는 실루엣이나 여밈 디테일, 컬러, 자연적인 소재 등에서 이를 느낄 수 있죠. 한복이나 한국에서의 삶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얼마 전 온지음에 갔다가 느낀 건데, 한복은 지퍼나 버튼을 쓰지 않고 ‘여밈’을 통해 입잖아요. 제가 즐겨 사용하는 디테일이죠. 일부러 의식해 디자인한 건 아닌데 보는 분들이 실루엣이나 디테일, 컬러가 한복을 연상시킨다 하더라고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 속에 녹아 있는 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디자이너로서 행운이죠.
지난 2월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행사에 한복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어요.
그날 정말 한 발자국도 못 움직였어요. 보는 사람마다 다 세워서 물어보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웃음) 어릴 때도 엄마가 TV를 보다가 사극이 나오면 저 때문에 채널을 못 돌렸대요. 한복을 너무 열심히 보고 있어서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한복이나 서울의 풍경이 매일 보는 익숙한 것들이라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2019년 <코스모폴리탄>과의 인터뷰에서 뮤즈를 묻는 질문에 “여성 디자이너에겐 특별한 뮤즈가 필요치 않아요. 저와 제 주변의 여성이 원하는 걸 만들면 되니까요. 뮤즈라는 다분히 환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매일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위해 디자인해요”라고 답했는데요, 이 말이 꾸밈이 없고 참 담백한 사람 같다 느껴졌어요.
아직도 그건 변하지 않아요. 제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자신감 넘쳤으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이나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매력이 오히려 반감되는 것 같아요. 자기 내면을 가꾸는 사람들은 마음속 내공이 깊죠. 그래서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마음대로 입으며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다 바쁘잖아요. 엄마로, 딸로, 수많은 롤 플레이를 하고 사는데 이제 거울 앞에서 몇 시간씩 옷을 입어 볼 시간이 없다고요.(웃음)

그쵸. 툭 입어도 멋있는 옷과 멋있는 나 자신이 필요해요.(웃음) 표지영에게 패션이란 뭐예요?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는 어떤 암호. 현대 여성들한테 그런 옷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Bringing the extraordinary to the everyday(일상에 특별함을 가져오다)’가 저희의 코드인 것처럼요.
2023 F/W 컬렉션에서 매니시한 더블브레스트 재킷의 라인을 살리기 위해 변형을 준 단추 디테일, 여기에 우아한 슬립 드레스를 매치한 룩이 기억에 남아요. 이런 것들이 레지나 표식 페미니즘일까 생각했어요.
맞아요. 여자한테도 강한 면이 있고 부드러운 면이 있고, 모든 게 다 공존하잖아요. 저 역시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닌 여성이 편안하고 즐길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길 원해요. 평등해지기 위해 남자처럼 입는 건 과거의 일이죠.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여성의 몸을 이루는 곡선을 살리고 싶어요.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분위기, 각자의 개성을 살렸을 때 더 내추럴한 시너지가 오는 것 같아요.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자연, 특히 바다를 사랑해요. 이탈리아는 정말 애정하는 나라예요. 또 아티스트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패션 외 분야에 있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신선한 자극을 받아요. 아트 전시도 자주 가고요. 인테리어랑 음식에도 관심이 많은데, 다 의식주잖아요. 그래서 저는 옷만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생각해요. 우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죠.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나요?
여성 디자이너들을 존경해왔어요. 가브리엘 샤넬이나 미우치아 프라다처럼 강한 여성상.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클래식과 모던함을 넘나든다는 점이 멋있어요.
브랜드의 초창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기대가 그동안 커졌을 수도 있을 테고, 외부적인 요소도 많이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저희의 디자인 철칙이나 여성상은 그대로예요. 대신 운영이나 회계와 관련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긴 했어요. 브랜드 운영도 비즈니스니까요. 그게 아니면 아트고 취미 생활이겠죠. 그래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키면서 어떻게 디자인을 풀어나가고, 또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은 지금 가장 중요한 화두예요. 레지나 표가 생각하는 패션의 지속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패션이 환경오염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산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딜레마가 컸어요. 내가 왜 이걸 하는지 고민하고, 이 산업에 속해 있는 것 자체가 싫었던 때도 있었죠. 친구 중에 지속 가능성 컨설팅 전문가가 있어 고민을 많이 나눴는데, 그 친구가 “네가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지속 가능하면서도 재미있게 패션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며 인식을 바꿔주면 더 많은 이들이 이 좋은 행보에 동참할 수 있지 않아?”라고 하더라고요. 큰 힘이 됐어요. 당시엔 오가닉 코튼 셔츠 아니면 지속 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 제품이 많지 않았거든요.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매년 지속 가능성을 위한 목표를 수립해요. 패키징은 오래전부터 생분해 비닐을 사용하고 있고, 재활용지를 활용하고 쇼 인비테이션도 이메일로만 보내요. 쇼 개최지를 선택할 때도 세트를 제작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 위주로 보고 있고요.
남성복도 선보일 계획이 있나요?
여성복과 남성복은 구분 짓는 것이 전 뭔가 어색해요. 원한다면 남성들도 입을 수 있겠지만 여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거죠. 제가 여성이고 제가 입고 싶은 옷이니까요. 유니섹스로 입을 수 있는 오버사이즈 아우터나 셔츠, 바지들이 이미 있어요. 실제로 저희 옷을 입는 남자 고객들이 꽤 있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요. 워킹맘으로서 일과 삶의 밸런스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아이를 낳고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존경심이 무한히 커졌어요. 중간중간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봐야 해요.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란 책을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책에 보면 아침마다 일기처럼 3장씩 노트를 쓰라고 해요. 머릿속에 떠돌고 있는 걸 다 쏟아내는 거죠. 그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정리가 된 느낌을 받아요. 솔직히 맨날 세 페이지까진 못 쓰고요.(웃음) 가끔 정말 쏟아내고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머릿속이 꽉 차서 어쩔 줄 모를 때 그대로 막 써내려가요. 그럼 좀 정리가 되고, 안정이 되죠. 이 방법을 추천해요. 그리고 요가를 좋아해요. 요가할 때만큼은 휴대폰도 못 보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요. 도예를 배울 때도 좋았던 건 휴대폰 안 보고 그 시간만큼은 집중할 수 있는 것. 사실 누가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 가지 않는 이상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잖아요?
전 세계가 서울을 주목하고 있어요. 런던에서도 실감할 때가 있나요?
서울이 ‘핫한 도시’로 떠오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처음 런던에 갔을 때는 서울도 잘 모르고 심지어 남한인지, 북한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국 음식점 앞에 줄을 서고, 저에게 한국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냐고 물어봐요. 그동안 한국이 가진 것들에 비해 너무 덜 알려졌던 것 같아요. 저희 남편은 셰프인데 한국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충격을 받았대요.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데 왜 중국이나 일본 레스토랑만 있고 한국 레스토랑이 없냐면서.(웃음) 이제 때가 온 거죠.

런던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다이빙 퍼포먼스와 함께 펼쳐진 2022 S/S 컬렉션.
레지나 표가 어떤 브랜드로 남았으면 하나요?
오랫동안 지속되는 브랜드였음 해요. 예를 들면 마가렛 호웰처럼 시간이 지나도 동시대랑 연결성이 있고 엄마와 딸이 함께 입을 수 있는 그런 브랜드. 레디투웨어 브랜드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 아트랑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레지나 표처럼 글로벌 디자이너를 꿈꾸는 패션 학도, 또는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한다면요?
그냥 자기가 잘하는 걸 하면 돼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뭘 잘하는지 알고 그걸 살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너무 많은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본인이 잘하는 게 스타일링 쪽인지 기획 쪽인지 아니면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건지 디자인을 좋아하는 건지 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싫어하는 것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계속 시대는 변하고 모든 걸 한 번에 다 잘할 수 없는 거니까 계속 배워나가야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거예요.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항상 돌아오는 답은 ‘내 거나 잘하자. 그러면 뭔가 따라오겠지.’ 단순한 듯 보이지만 나중에 잘됐을 때 더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힘 같은 거예요. 너무 휩쓸려 다니면 내 것에 매진할 시간이 없으니까. 기억하세요. 진심으로 하면 돼요.
Credit
- Editor 김소연
- Photo by 김상우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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