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코트 1천2백20만원, 가죽 베스트 5백20만원, 가죽 쇼츠 4백 60만원 모두 프라다. 이너 시퀸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터뷰가 공개될 때면 드라마 〈구미호뎐1938〉 방영이 시작된 직후겠어요. 방영을 기다리며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맞아요. 제게 있어 가장 큰 터닝 포인트인 〈구미호뎐1938〉 첫 방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어요. 저 역시 〈구미호뎐〉 애청자라 시즌 1을 복습하면서 방영을 기다리고 있죠. 지난해 12월에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편집본이 궁금해 몇 번이고 편집실을 찾아갔어요.
드라마 주인공이 그렇게 편집실에 막 나타나도 되나요?(웃음)
감독님에게 부담을 주러 가는 건 아니고요.(웃음) 간식거리 사들고 응원차 방문한 거죠. 이번에도 워낙 CG가 많다 보니 감독님을 비롯해 후반 작업 팀이 하루도 못 쉬고 달리셨거든요. 출연진부터 스태프까지 모두가 고생한 만큼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슬리브리스 블라우스 가격미정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허리에 두른 스카프 48만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반지 (왼쪽부터)14만원, 가격미정, 18만원 모두 하랑주얼리.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 원래 제가 출연한 작품을 잘 못 보는데 〈구미호뎐〉은 백색소음처럼 하루 종일 집에 틀어놔요. 좋아하는 OST가 나오거나 반가운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집안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집중하죠. 벌써 다섯 번은 넘게 정주행한 것 같아요.(웃음)
〈구미호뎐〉의 ‘이랑’을 보며 조선의 ‘로키’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즌 2인 〈구미호뎐1938〉에선 어떤 활약을 하나요?
‘로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구미호뎐〉이 〈아이언맨〉 같은 느낌이었다면, 〈구미호뎐1938〉은 〈어벤져스〉 같은 느낌이에요. 초능력을 가진 산신이 셋이나 나와서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으죠. ‘로키’와 ‘이랑’은 시즌 1 때부터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마블 시리즈를 좋아해 디즈니플러스에서만 공개된 〈로키〉 시리즈도 모두 챙겨 봤을 정도예요.
니트 카디건 3백30만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구미호뎐1938〉의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촬영장 분위기가 안 좋은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아요. 시즌 1부터 함께한 촬영·조명·의상·CG·음악·액션 팀 모두 그대로 와서 훨씬 더 친해졌고, (이)동욱 형과도 형제애를 많이 느끼고 있죠. 실제로 친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요.
인어와의 로맨스가 예고되기도 했죠. 구미호와 인어의 로맨스라니, 설정 자체부터 ‘요물’스러워요.
맞아요. 인어 ‘장여희’(우현진)와 ‘이랑’은 반인반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그래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이랑’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처음이다 보니 부정도 해보고, 어색해하기도 하고 서툴기도 한 모습을 보이는데 시즌 1에서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나름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니트 카디건 3백30만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벌써 데뷔 18년 차 배우예요. 그런데도 멜로 연기를 한 적은 없죠.
맞아요. 그래서 팬분들이 엄청 기다리시더라고요.(웃음) 이번 드라마도 장르가 멜로는 아니지만 제가 맡은 부분 중에 멜로의 색깔은 충분히 있습니다. 아니, 자신 있게 멜로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대본을 섬세하게 파고들어 숙지하는 타입이라고요. 〈구미호뎐1938〉에서 잘 풀리지 않았던 대목이 있다면요?
대본도 굉장히 디테일했고 생각보다 연기하기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즌 1 때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존하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설정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그때 잘 만들어둔 덕분에 〈구미호뎐1938〉은 수월한 부분이 많았죠. 대신 캐릭터의 외양을 표현하는 것에 공을 들였어요. 제 머릿속에 뚜렷하게 떠오르는 부분들을 구현하는 데 힘썼죠. 제가 입을 의상부터 헤어, 메이크업까지 모두 테스트 촬영을 해보고 의견을 내는 편이에요. 의상 같은 경우 작품 속 의상을 전담하는 테일러 숍에 직접 찾아가 원단부터 색감까지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기 위해 거짓말 조금 보태 1000개의 원단 샘플을 살펴봤어요. 스태프들이 피곤해하는 타입이긴 하죠.(웃음) 저희 어머니도 늘 “너는 정말 피곤한 아이란다”라고 하실 정도니까요.(웃음) 그런데 전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실제로 잘 구현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위축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면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오고 있어요.
재킷 3백31만원 보디. 스커트 1백49만원 라프시몬스 by 무이. 목걸이, 반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는 건 알았지만 헤어, 메이크업, 의상에도 그렇게 많이 관여하는 줄은 몰랐네요.
글씨체까지 연구해요.(웃음) 대본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캐릭터의 글씨체로 대본에 이름을 쓰는 거예요. 그게 시작이죠. ‘이랑’은 조선시대 때부터 살았던 캐릭터기 때문에 붓으로 쓴 것 같은 글씨체를 갖고 있어요.
벌써 만으로는 17년 연기를 했죠. 제 인생의 절반을 배우로 살았더라고요. 연기는 저한테 희로애락인 것 같아요. 굉장히 기쁠 때도 있었고 슬프고 아팠을 때도 있었죠. 어렸을 땐 제 감정과 상관없이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힘들었어요.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웃기는 연기를 해야 할 때요.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기도 하고, 무뎌지기도 했죠. 제가 삶에서 가장 좋아한 연기가 일처럼 느껴지고 흥미를 잃어가던 시기에 저를 구제해준 작품이 바로 〈구미호뎐〉이에요.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죠.
셔츠 3백11만5천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by 무이. 쇼츠 95만5천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목걸이, 양말,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생의 전부였던 게 사라지는 건 정말 슬픈 일이죠.
맞아요. 그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긴 했지만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기계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죠. 지금은 너무 신이 나서 하고 있고요. 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꼭 필요했던 시기인 것 같긴 해요. 당시에는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평가와 경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없었죠. 지금은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우울감에 빠지지 않게 사전에 차단할 줄도 알게 됐어요.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 나올 수 있던 계기가 있나요?
그동안 달려온 길들에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주저앉아 있는 저를 일으켜주고 기다려준. 특히 제 팬분들이요. 사실 배우가 2년 동안 작품을 안 하고 차기작 소식이 없으면 잠정 은퇴라고 봐야죠. 그땐 SNS를 활발히 하던 시기도 아니라서 저의 근황을 알릴 수도 없었거든요.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고요. 근데 기약이 없는 시간을 기다려주셨죠. 팬분들뿐만 아니라 저희 회사도 그렇고요. 잘 알고 지내던 감독님들, 스태프들이 저에게 다시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죠. 지금도 곁에 그런 분들이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베스트 2백59만원 라프시몬스 by 지스트리트494 옴므. 스커트 1백49만원 라프시몬스 by 무이. 셔츠,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미세스 캅 2〉라고 제가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던 드라마예요. 〈낭만닥터 김사부 1, 2〉를 연출하신 유인식, 이길복 감독님이 그때 절 세상 밖으로 꺼내주셨죠.(웃음) 그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어두운 데서 나와서 어두운 거 한번 표현해봐라” 였어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몇 번이고 고사했는데 억지로 저를 끌고 나와줬어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사해요. 이번에 〈구미호뎐1938〉이 유인식 감독님이 연출한 〈낭만닥터 김사부 3〉과 붙는데 선의의 경쟁이 되길 바랍니다.(웃음)
최근에 본 작품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나요?
영화 〈라라랜드〉를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팬인데 가장 최근 개봉작인 〈바빌론〉을 재밌게 봤어요. 장르가 조금 다르고 수위가 높을 뿐이지 그 안에 셔젤 감독이 잘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낸 것을 보고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음악도 정말 좋았고요. 늘 함께하는 음악 감독과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부터 같은 방을 쓴 친구라고 하던데 아직도 100곡이 넘는 미공개 곡이 남아 있대요. 이 사람들 정말 천재구나 싶었죠.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10년 뒤 배우 김범의 모습을 전망해본다면요?
굉장히 막연해요.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 있거든요. 우선 OTT 서비스가 생겨 해외 진출의 문턱이 낮아졌죠. 저희 드라마도 아마존 프라임에 론칭돼 화상이었지만 해외 관객을 대상으로 프리미어도 하고 영어 인터뷰도 많이 했죠. 그 밖에도 현장에서 일상이 된 건 주 52시간 근무제가 생긴 것, 유튜브 쇼츠를 많이 찍는 것, CG 촬영이 정말 많이 생긴 것 등이 있는데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웃음) 10년 뒤에도 여전히 이 시스템과 사회에 뒤처지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