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당신의 몸을 부위별로 낱낱이 뜯어 분석하는가? 스마트폰으로 포토샵을 하듯, 스와이프 한 번으로 피부 결을 정돈하고 몸의 굴곡을 더하거나 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필터로 보정한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을 쉽사리 비교하게 된다. 가끔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주 귀한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 몸 긍정’ 운동 덕에 우리는 지금까지 완벽한 몸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몸에 대한 느낌은 계속 바뀐다.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10분 전과 지금이 다르다. 내 몸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것은 하나의 여정과도 같다. 우리의 몸은 출산, 수술, 노화를 겪는다. 살이 빠지고, 살이 찐다. 정신 건강과 행복도에 따라 내 몸에 대한 생각 또한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인이 속으로 느끼는 것이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식스팩을 드러낸 ‘핫한’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이들과 살집이 그대로 드러난 ‘보디 포지티브’ 비키니 샷을 올리는 이들이 공존하는 여름이면 내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이 글은 그 갈등을 얼마간 풀어줄 해독제다. 그렇다고 살을 찌우라거나, 빼라거나, 실제로는 결점이 아닌 것들을 짚어가며 내 몸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강의는 아니다. 이 글은 우리가 내 몸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진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대화다. 이 글은 오늘 당신이 당신의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괜찮다고 말한다.
「 “아이를 낳고 내 몸이 달라 보였다” 말린 앤더슨
」 〈러브 아일랜드 시즌2〉에 출연하기 전까지, 말린은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다. 요즘은 신체 긍정의 메시지를 알리고 있으며, 〈Positivity Is Our Superpower(긍정은 우리의 초능력)〉라는 책을 썼다. 2018년 12월, 말린은 제왕절개로 첫째 딸 콘시를 출산했다. 예정일보다 7주 일찍 태어난 콘시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지만, 지난 1월에 다시 둘째 자야를 출산했다. 이 두 번의 임신과 출산 경험은 말린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자기혐오를 떨치게 해주었다. 털이 무성하게 자란 성기. 처진 뱃살. 나는 화장실에서 다 벗은 채로 서서 피를 흘리고 있고, 팬티는 내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제왕절개수술 흉터 때문에 배가 쓰라리다. 남편이 몸을 굽혀 내 패드를 갈아준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예전의 나, 특히 〈러브 아일랜드 시즌2〉에 출연했을 때의 나는 이런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의 나를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찍은 사진들 속 내 눈빛을 자세히 보면, 영혼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곳저곳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으로 내 몸을 낱낱이 뜯어 분석하곤 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뚱뚱하다”며 다이어트를 하라고 강권했고, 그 기억은 내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혔다. 10대 시절 나는 폭식증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먹고 게워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영원히 체중계 숫자를 볼 때마다 피가 말라붙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승무원으로 일할 때 나는 여행 가방에 체중계를 넣어 다니기까지 했다. 옷을 벗고, 더 날씬해 보이는 포즈를 취한 뒤, 배를 잔뜩 집어넣은 채 사진을 찍었다. 〈러브 아일랜드 시즌2〉 방송이 끝나고, 나는 온라인에서 잔혹한 괴롭힘을 당했다. 사람들은 나를 ‘거기 나온 뚱뚱한 사람’으로 불렀다. 원래도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무료 성형수술을 제안받고 곧바로 수락했다. 성형수술을 하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방흡입술은 내 마음을 치유해주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성형수술을 받지 말라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몸을 바꾸는 수술이 내 안의 감정을 바꿔주지는 못한다. 그러다 콘시를 임신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아이가 나를 마주 바라보는 눈을 보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음식과 전쟁을 치르던 그 많은 날들은 콘시를 키우면서 없던 일이 됐다. 둘째 자야를 임신했을 때, 나는 나의 천사 콘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나의 몸도 달랐다. 전보다 몸이 더 무거워졌다. 조산사가 몸무게를 재자고 했을 때, 나는 의료상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재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의 아기가 건강하다면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아야 하는 건 그뿐이었다. 내 배 위에는 길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다. 콘시가 세상에 나온 그 상처를 통해 자야도 세상에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내 몸을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여전히 너무나 많은 사람이 살을 빼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막 출산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출산을 하고 나면 당연히 다시 살이 빠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사람들은 내 배가 얼마나 처졌는지에 대한 댓글을 달았다. 왜 사람들은 남의 외모에 대해 그렇게 쉽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몸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몸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나는 전에 입던 것보다 몇 치수 큰 청바지를 입고 거울을 보며 ‘예쁜데!’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면 평화가 온다. 사람들이 나의 몸을 찍은 이 사진을 보고, 아이를 잃었고 또 얻은 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으면 한다. 폭력적인 애인에게 학대당한 적이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생각했으면 한다. 나는 나의 몸, 그리고 나의 메시지가 가공되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보세요. 제겐 셀룰라이트가 있어요. 제겐 뱃살이 있고, 그 위에 제왕절개수술 자국도 있죠.”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겪어낸 사람이다. 이것들은 나의 일부이며, 내 몸에 남은 흔적이다. 내 딸이 내가 셀룰라이트와 뱃살이 드러난 속옷 차림으로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우러나는 내 자신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자라길 바란다. 내가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그거다.
루시 밸 루시는 런던에 사는 석사 과정 대학원생이다. 그는 피부가 매우 연약해, 개방 상처와 수축성 흉터 조직이 쉽게 생기는 유전적 질환인 열성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간호사들이 마취 마스크를 씌웠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난 겨우 12살이었지만, 나와 내 몸이 겪게 될 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온통 상처와 물집으로 뒤덮여 있던 내 피부는 사실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내 목에 흉터 조직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고, 이 흉터가 목구멍을 점점 막아서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청나게 겁에 질려 있었다. 이대로 목구멍이 영영 막혀버린다면? 내가 앓는 병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너무나 두드러져서, 몸 안에서 일어나는 더 심각한 문제가 간과되곤 한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열성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RDEB)을 진단받았다. 우리 가족은 장애를 안고 사는 삶의 고충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다.
덕분에 나는 굉장히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내 외모 때문에 놀림당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춘기를 더 혹독하게 겪었다. RDEB는 나의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10대 소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린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바로 지금, 내 몸에는 상처가 10개 정도 있다. 어떤 상처들은 동전만큼 작고, 어떤 상처들은 이따금 통증 때문에 내가 거의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만큼 크고 쓰라리다. 그래도 다음 달에는 상처의 개수가 좀 줄어들지도 모른다. 상처의 형태와 개수가 계속 바뀐다는 것은,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범한 얼굴이었다가도 바로 다음 날 넘어져 얼굴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단 24시간 만에 ‘통념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수군대는 얼굴’이 된다. 내 얼굴에 상처가 없거나, 혹은 내 몸에 난 상처를 가렸을 때 사람들은 내게 훨씬 더 잘해준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을 바라볼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의 시선에 나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내 몸을 보는 나의 시선까지 바꾸려 노력해야 했다. 내게 이 병이 없었더라면 이 사회가 얼마나 나에게 더 친절했을지 생각하며 몇 시간씩 운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몸을 원망한다고 해서 내 몸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후 내내 울면서 엄마에게 “왜 나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게 생겼냐”라고 물었던 날이었다. 그날 엄마는 말했다. “넌 절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을 순 없을 거야. 하지만 그 아이들과 달라도 아름다울 수 있어.” 나는 그때부터 내가 타고난 이 피부를 받아들이게 됐다. 나에게는 장애가 있다. 나에게는 RDEB가 있다. 이것 때문에 절망적인 기분이 들 수는 있지만, 이것이 곧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나의 몸에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나의 마음에는 결코 한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