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슬플 때 베프를 찾아, 단지 슬플 때만
」 친구 A는 자신의 감정을 주변에 쉽게 토로하는 사람이었다. 연인한테 차인 날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고, 상처받은 일이 있으면 2박 3일간 그 얘기만 주야장천 떠들었다. A를 감당하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그는 그만큼 남의 이야기도 잘 경청하며 공감했고, 상대방 역시 자신에게 비밀이 없길 바랐다. A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장 먼저 찾는 건 대학 동창 B였다. B는 A보다 방어적인 사람이었지만 감정적이고 비관적이라는 면에서 닮은 구석이 있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쉽게 우울해지는 A에게 언제나 깊이 공감했다. A가 첫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B는 A에게 따듯한 위로와 공감을 보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래 남에게 호감을 못 사잖아.” B는 A에게 늘 “우리 같은 사람들은”으로 시작하는 위로를 보내곤 했는데, A는 그럴 때마다 세상에 이다지도 못난 게 나 하나뿐은 아니라는 동지애와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의 고통을 지탱했다. 이윽고 볕 들 날이 찾아와 좋은 직장으로 환승 이직을 하게 된 A는 이 기쁜 소식을 B에게 가장 먼저 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B는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 A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커리어가 잘 풀리기 시작한 후로 B와의 연락은 전처럼 잘되지 않았다. 불현듯 A는 자신이 대학 시절 처음 사귄 연인에게 차이고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는 살뜰하게 챙겨줬지만, 그 무렵 써낸 소설로 대학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에는 시큰둥했던 B가 떠올랐다. B가 곁에 있었던 것은 늘 A가 슬플 때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달콤한 위로를 건네면서. B가 ‘우리’에게서 찾은 유대감은 따듯하게 썩어가는 감각과 비슷했다. 모름지기 친구란 잘될 때보다 안 될 때 곁을 지켜줘야 하지 않냐고? 웃을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떠나는 이들의 가벼운 해로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얄팍한 우정보다 더 위험한 건 당신의 슬픔에만 열렬한 공감을 보내는 가장 가까운 친구다. 당신의 기쁨 아닌 슬픔만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당신을 끌어안고 어둡고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모래주머니 같은 존재다. A는 B와 서서히 멀어졌고, 이후 A는 나쁜 일은 삼키고 좋은 일만 말하는 사람이 됐다.
친구 F는 인스타그램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끄는 인플루언서다. 담백하고 지적인 취향, 뛰어난 패션 감각, 이따금 하이엔드 아이템도 언박싱할 수 있는 재력으로 많지는 않지만 충성스러운 구독자층을 보유했다. 한편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친구 E는 인스타그램 대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SNS인 텀블러를 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아무렇게나 찍은 이미지를 턱턱 올리는 용도였다. 그들은 사회에서 만났지만 비슷한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와 왓챠 별점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친구가 됐다. E는 자신이 추천해준 음악이 F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되는 것이 내심 뿌듯했다. E의 생일날, E는 F를 포함한 친구 몇몇을 모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E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친구와 F가 바에서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느 날인가는 자신이 독립 서점에서 발견해 구입한 초판본 서적이 F의 피드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자신이 텀블러에 올린 책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F의 피드에 올라온 것이다. “너도 그 책 샀어?” E는 F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동안 답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구경하다가 재미있어 보이기에 표지를 찍었다”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차츰 팔로어 수를 늘려가던 F는 온라인 매거진에서 인플루언서 몇 명을 모아 진행한 인터뷰 링크를 스토리에 공유했다. 추천하는 책, 좋아하는 작가, 자기만의 플레이리스트, 요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신진 디자이너 등등. 스크롤을 내리던 E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건 내가 얼마 전에 추천했던 책의 작가잖아. 며칠 만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될 수 있나? 이 디자이너는 내가 예전에 텀블러에 올렸던 사람인데? 이 노래는 저번에 같이 한강 갔을 때 내가 틀었던 것 아닌가?’ 취향엔 전염성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내 것이 흘러 들어가 온전히 네 것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반복된 복사-붙여넣기는 다른 문제다. E는 분노했고, F를 차단했으며, 텀블러 주소를 바꿨다. E는 내게 F가 친구부터 취향까지 훔쳐 가려는 몰염치한 사람이라 말했고, F는 그 작가는 자신이 먼저 좋아했으며 E에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성인들이 머리핀이나 다이어리 속지를 따라 사는 중학생들처럼 구는 것이 과연 옳은가? 누군가는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때로 취향은 누군가의 영혼이고, 관계를 끊기에는 충분히 결정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은 나의 사례, 그러니까 내 오랜 친구였던 G와의 이야기다. 나와 G는 대학교 OT날,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의 단짝이 될 것임을 알았다. 나와 그녀는 매일 밤 좋아하는 작품,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잠을 설쳤고, 서로에 대한 정보를 포식한 뒤에는 서로를 서로의 외장 하드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무척 닮은 G를 통해 나라는 범주가 넓어지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우리는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공유했다.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 10대 시절 아이돌을 좋아하느라 했던 가장 쪽팔렸던 짓, 심지어 연인의 팬티 색깔까지도 공유했을 것이다. 급기야 그 시절의 나는 “너랑 있으면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헷갈려”라는 퀴어 영화에나 나올 법한 간지러운 말을 쏟아내고 만다. 그러나 G와 나의 관계는 암초에 걸렸다. 내 연인의 친구와 G가 커플이 된 것이다. G와 나, 내 연인과 G의 연인이라는 맞사돈(?) 사각 관계가 형성되면서 G와 나는 연인들의 시선과 평가 앞에서 경쟁하는 객체가 되고 말았다. 악의는 없지만 조심성도 없는 두 쌍의 친구, 두 쌍의 커플로 이뤄진 사각형 안에서 사사롭고 내밀한 정보들이 제멋대로 흘러 다녔고 G와 나의 피부, 몸무게, 키, 말투, 어딘가 좀 이상한 구석까지도 비교되며 우리는 어느덧 서로를 완벽한 타인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남자들 앞에서 우리는 저울 재듯 서로의 피부색과 몸무게를, 콤플렉스를 등가 교환하며 자존감의 균형을 맞췄고, 강력했던 결속은 한없이 연약하게 부서졌다. 닮았기에 미워하는 것은 더 쉬웠다. 이 갈등은 두 남자를 차버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G와 나는 그때 서로를 저울에 올려 가늠하는 감각을 익히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며 우리의 외장 하드 서비스 기간은 종료됐다. 나는 취업했고, 한동안 은둔하던 G는 인턴을 하게 된 후에도 자신의 일을 숨겼다. 나는 그녀가 인턴으로 있는 곳이 동종 업계의 블랙리스트 업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왜 내게 얘기하지 않았냐며 야속해했으나, G는 얼마 후 일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났다. 그러자 나는 돈을 벌지 않아도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G의 재력이 부러워졌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네가 나고 내가 넌지 헷갈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G와 나는 닮았기에, 우리의 저울은 세밀하고 예리하며 날카로웠다. 작별의 시간이었다.
관계는 시소의 한쪽이 가볍거나 무거워져 누군가 이탈했을 때 끝난다. 오랫동안 주고받으며 쌓아온 호의와 적의, 친밀감과 이질감,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균형이 단 한 방울로 깨어질 때 우리는 서로를 ‘손절’한다. 그렇다고 “친구는 비슷한 수준끼리 만나라”는 뭉툭한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공감은 친구를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같을 수 없다. 다만 서로가 다른 사람임을 존중할 때, 그 간격을 지킬 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소꿉친구든 사회에서 만났든, 1년을 알고 지냈든 20년을 알고 지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