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전 남친' 보다 더 애틋한 '전 절친'에게 하고 싶은 말은?
Not Boyfriend, But Best Friend. ‘전 남친’보다 더 애틋한 ‘전 절친’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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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가 그랬죠. “나 좀 그만 따라 해.” 아직도 어떤 계절의 무슨 요일이었는지 기억나요. 인스타그램이 갓 생겼을 때잖아요. 우리가 런던에서 헤어지고 1년쯤 지났을 때였고요. 언니는 내가 따라 한 근거로 여러 가지를 말했죠. 피드를 올리는 방식, 캡션의 뉘앙스, 옷 입는 스타일까지.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언니는 나를 믿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대충 짐작되긴 해요. 내가 언니를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닮고 싶었던 나의 언니
」런던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또래 친구가 없던 터라 언니를 소개받으며 드디어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몰라요. 그리고 처음 만난 날 언니에게 한눈에 반했죠. 보라색 아이섀도를 칠한 과감한 센스, 언니의 대학과 전공, 동글동글한 글씨체, 마른 체형, 작은 얼굴, 긴 생머리까지 전부요. 어떤 유행이 시작되면 충실히 따라가기 바쁘던 제게 언니의 스타일은 충격적이었어요. 선이 흐릿해 자신을 납작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뚜렷하고 선명한 선을 가진 사람에게 반해버릴 수밖에 없거든요. 인정할게요. 저는… 언니의 따라쟁이였어요. 하지만 언니가 지적한 인스타그램의 감성이나 캡션의 뉘앙스가 아니라, 언니가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하고 싶었어요. 뒤돌아보지 않는 태도와 당당한 말씨, 곧은 자세, 삶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풍요롭게 느낄 줄 알던 생각들. 언니처럼 되고 싶었어요. 제가 언니를 조금이나마 닮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11월이었죠. 우리가 같이 런던 소호를 걷고 브런치 카페에 갔던 거, 기억나요? 제 집 앞 골목처럼 능숙하게 길을 찾으며 걷던 언니의 뒷모습, 노란색 간판, 아침부터 줄을 길게 섰던 런더너들…. 10년이나 지났지만 언니와 함께한 런던의 그 장면들이 너무나 선명해요. 매년 ‘올해는 런던 추억 여행을 가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이유고요.
“네가 맞다고 믿는 거면 그게 맞는 거겠지.”
“그냥 밀고 가야 돼.”
언니가 워털루 다리에서 제게 건넸던 말, 아직도 조용히 되뇌어요.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언니가 그렇게 말해준 덕분에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어요. 내가 믿는 게 맞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어쩌면 영원히 언니를 따라다니며 살지도 모르겠어요.
From. 백가희(수필가)

「
우리는 서로를 서로의 외장 하드라 불렀어. 어릴 땐 어떤 애였는지, 가족과의 사이는 어떤지,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게 없었으니까. 때론 우리는 한 CPU의 듀얼 코어처럼 기능하기도 했어. 너무 가까운 우정은 우정이 아니었음을
」“이 남자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들어봐,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우리는 아주 비슷해져야 했지. 닮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총량이 비슷해야 했다는 뜻이야. 우리의 슬픔과 기쁨, 자괴감과 비애, 자부심과 사랑, 그 모든 것이 어느 한쪽이 더 미세하게나마 우월해진 순간, 서로를 자아의 연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동기화는 깨어질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늘 기묘하게 그 균형을 맞췄어. 이를테면 나는 말랐고 너는 피부가 하어. 나는 커리어가 풀렸고 너는 집안이 좋았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연애를 했고 헤어졌어. 왜 우리는 그토록 서로를 사랑하면서 또한 동시에 견제했던 것일까? 그 질문을 곱씹어보면, 우리는 태생적인 아웃라이어였어. 그렇기에 동족을 갈망한 것이겠지.
그러나 대학교 신입생 때 운명적으로 만난 우리의 동기화 기간은 10년이었어. 서른을 목전에 두고, 언제나처럼 연애 상대에 대한 TMI를 공유하던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
“너는 너무 속물적이야. 어장 관리당하는 상대가 안됐어. 그런 이야기는 더 들어줄 수 없어.”
넌 쓴소리를 했어. 맞는 말이지만 속이 상했지. 장문의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어.
“과거의 네가 조건만 보고 사랑하지도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나는 너를 판단하지 않고 지지해줬는데 너는 왜 그러지 않니?”
자, 이것이 끝이었어. 사소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어. 우리의 스탠스부터 달라졌지. 아웃라이어인 나는 어떻게든 계속 사회의 주류에 진입하려 애썼고, 너는 언제부터인가 아웃라이어로서 살 마음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야. 그렇게 우리의 10년 우정은 끝났어. 그러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지. 너무 가까운 우정은 때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고 부식시킨다는 걸. 우리는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걸.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외장 하드를 두지 않아. 사람들은 나를 거쳐가는 콘텐츠일 뿐, CPU는 하나라는 걸 알았거든. 나의 20대의 전부였던 너에게, 내 모든 걸 알았던 너에게, 이제는 나와는 정말이지 다른 존재가 됐을 너에게. 언젠가 널 우연히 만난다면,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엇갈린 이 길에서 너 역시 잘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From. 이예지(<코스모폴리탄>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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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처음 만난 때가 스무 살이었지. 그로부터 스무 해가 더 지났구나. 문득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다면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모르는 채 몇 번을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너와 나는 비로소 완벽한 타인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 스무 살 너에게
」그사이 나는 소설가가 됐어. 3년 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지.
“20년 전 겨울, 한낮의 얼어붙은 거리에서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 지르던 그녀는 내 인생에서 꺼지라는 말을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그 소설을 당연히 픽션이라고 생각할 거야. 혹시라도 네가 그것을 읽는다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을까? 소설 속 그녀는 바로 나, 화자는 너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을까?
그 겨울의 혹독한 추위, 너에게 내질렀던 날카로운 비명, 내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너의 복잡한 눈빛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소설을 통해서나마 뒤늦은 사과를 건네고 싶었지만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쓰지 못했어. 구구절절 변명조차 할 수 없었지. 소설 속 ‘그녀’를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 자기 상처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다 끝내 외롭게 홀로 남는 사람으로 그리는 것까지만 할 수 있었어.
스무 살의 내 상황은 정말 복잡했지. 대학을 포기했고,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를 연이어 하면서, 가족은 믿을 수 없고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나는 종종 보란 듯이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했어. 그런 나를 너는 매일 찾아왔지. 밥은 먹었니, 잠은 좀 잤니, 아픈 데는 없니 물어봤었지. 오직 너만이 나를 염려하고 보살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너를 견딜 수가 없었어.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너, 우려 섞인 눈빛, 걱정하는 말…. 너의 그런 마음이 나를 더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너를 내 인생에서 내쫓는 것뿐이었어. 네 걱정이 사라지면 최소한 그만큼은 덜 불행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모르지 않았어. 네 걱정 때문에 나는 더 나빠질 수 없었다는 걸.
‘미안하다’는 말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지금 나의 편지는 무용지물이겠지. ‘보고 싶다’는 말은 그보다 유효기간이 훨씬 길지 않을까.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방식으로나마 한 번은 너를 보고 싶다. 하지만 너에게 단 한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뒤늦은 진심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너는 나에게 마침내 고마움으로 남았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답장을 기다리진 않을게. 20년 전 너와 같은 마음으로, 어디서든 네가 잘 지내기만을 바라고 있어.
From. 최진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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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생애 첫 ‘손절’ 인간 Y야. 이제는 네 이목구비가 어땠는지, 키가 컸는지 작았는지도 희미해 한때의 그 깊고 넓은 ‘우정’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 연대였는지 생각하게 돼. 그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고, 특히 너는 내 삶의 든든한 곁이자 동반자라 착각했어. 그래서 너한테 모든 걸 맞추고 공유하는 게 당연하다 믿었지. 네가 전화하면 새벽 4시고 5시고 받아야 했고, 네가 부르면 강남이고 홍대고 나가야 했어. 너의 새로운 남자 친구들이 나타날 때마다 같이 사랑해야 했고 헤어지면 함께 울어야 했어. 그땐 내가 너무 어리고 미숙해서 우정에도 ‘갑을’이 있다는 걸, 관계에도 밸런스가 중요하단 걸 몰랐던 거야. 그 어리석은 사랑의 끝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친구라는 이름의 무게
」조상신이 도와 나는 누구보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 했던 너보다 먼저 결혼하게 됐고, 덕분에 모든 방면에서 늘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어온 너의 자만과 열등감을 마주할 수 있었어. 웨딩 촬영부터 본식까지 친구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넌 없었어. 오히려 훼방을 놓고 이상한 시비를 걸기 일쑤였지. 결혼식 당일은 어땠고? 지각해 헐레벌떡 뛰어온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축의금을 던지고 가버렸던 기억이 여태 생생해. 너한테 난 그 정도의 존재였던 거야. 애초에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결혼하면 가짜였던 관계들이 가지치기하듯 정리된다는 말이 맞더라고. 다행히 난 그때 각성했고 어렵지 않게 관계를 끊어낼 수 있었어. 손절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더라? 일말의 미련도 없었으니 당연하겠지. 네가 사라진 내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편안했고 그 어떤 불편도 스트레스도 없었어.
10년의 결의라고 믿었던 우정의 초라한 말로란!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남아 있는 마음이 없어 슬프네. 어쨌든 고마워 Y야! 이젠 나를 더 사랑하는 법,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법 정도는 알게 된 것 같거든. 그리고 더 이상 나는, 친구라는 이름의 그 한없이 가벼운 연대를 맹신하지 않아.
from. 소쟌킴(스타일리스트,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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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조오련이야?” 지금 너의 모드는 무음
」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첫마디로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해봤는데 역시 가벼운 농담이 좋겠어.
10대 때 처음 만나 이후로 벌써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네. 긴 시간 우리가 우정을 유지했던 비결? 우린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은 단짝이었지만 대부분의 단짝이 그러하듯 아주 중요한 게 닮아 있었지. 재미있는 걸 좋아한다는 거. 내가 기억하기로 우리는 늘 쓸데없는 대화만 나눴어. 쓸 데 있으면 재미가 없거든. 그 많은 쓸데없는 대화 중 기억에 남는 하나는 ‘최근’에 대한 거였어. 일주일까지가 최근이다. 아니다, 한 달까지가 최근이다. 무슨 소리냐, <은혼> 다음 에피소드가 한 달 뒤에 나온다면 그걸 최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다, 아라시 신곡이 일 년 전에 나왔으니 일 년 전까지도 최근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신나게 언성을 높였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어디까지를 최근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렇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최근 만난 적이 없다는 거야.
몇 년 전 여름, 종로에서 만났던 날 너는 차와 꽃 그리고 편지를 건넸지. 뜬금없었지만 뭔가 평소와 다르다고는 느끼지 못했어. 그런데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고 밤이 다 돼서야 카톡이 온 거야. “이번 연말까지는 연락하지 못할 것 같다”라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보내고는 너는 잠수를 탔지. 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편으로 알 것 같기도 했어. 우리의 앞자리가 바뀔락 말락한 시기였고 늘 생각이 많은 너니까 생각할 시간이 평소보다 더 필요했을 거야. 그래서 더 묻지 않고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했어. 해가 바뀌고, 또 해가 바뀌어도 넌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편지는 그날 이후 너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야. 몇 달 전쯤 오래전에 쓰던 네 메일 주소를 찾아 메일을 보냈거든. 네가 잠수를 타고 얼마간은 그저 잘 지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 혹시 네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험난한 치료 과정에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져 원양어선을 탄 게 아닐까, 그래서 진짜 물속으로 잠수를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나는 너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나. 잘 지내고 다음에 또 보자.
from. 조해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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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만 되면 우리 처음 싸운 날이 생각나. 나는 화를 엄청 냈고, 네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나는 휴대폰을 껐고, 난 우리 아지트인 카페에 있었는데 정작 너는 나를 못 찾은 날이지. 그날 저녁 나에게 “네 마음을 못 헤아려서 미안하다”라고 했지만 그 후에도 넌 변하지 않았어. 너는 나를 늘 계속 ‘스페어’처럼 대했지. 남자 친구와 싸우거나 헤어졌을 때면 나를 찾았고, 약속이 펑크나거나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을 땐 뭐 하냐며 불러냈고, 엄마에게 외박 핑계를 댈 땐 내 이름을 말했고, 알바 중 심심해지면 내가 오길 바랐지. 언젠가 나한테 장문 카톡을 보내며 “그 사랑 많던 박한나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다”라고 했지? 결국 널 떠나기 전, 내가 몇 번이나 섭섭함을 참았는지 모를 거야. 내겐 ‘사랑하면 섭섭하게 안 한다’는 지론이 있는데, 너를 끊어낸 후 새로운 친구도 여럿 사귀고 연애도 몇 번 해보니 이 생각이 더 굳어지더라. 그러니 가끔 네 생각이 나서 다시 가까이 지내볼까 하다가도 너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맘을 접었지. 그렇게 7년이 흘렀네. 마음의 벤다이어그램
」얼마 전, 네가 좋아했던 아이돌 촬영이 있었어. 준비할 때부터 네 생각이 조금씩 나긴 했는데, 내 꿈을 응원해주던 네 모습이 그 아이돌과 겹쳐 보이는 거야. 아직 우리가 친한 친구였다면 이 상황을 네가 되게 좋아했을 텐데… 종일 그렇게 네 생각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랑하면 섭섭하게 안 한다’는 명제는 참일지 몰라도 ‘섭섭하게 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대우 명제는 참이 아닌 거야. 그럼 완벽히 맞는 명제가 아닌 거잖아. 내 말을 기억해주고, 딸기 좋아한다고 딸기 디저트 사주고, 내 ‘덕질’에 관심 가져주면서 같이 음악 듣고, 앞니 벌어진 게 콤플렉스인 나한테 “너 같은 모델 있더라”면서 예쁜 외국인 모델 사진 보내주고, 말이 씨가 된다며 에디터라고 불러준 것. 이것도 사랑이잖아. 사랑하는 것과 섭섭하게 만드는 것, 취향을 잘 알아주는 것과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스페어처럼 대하는 것과 세심하게 챙겨주는 것… 모두 서로 여집합이라 생각했는데 널 보면 그게 다 교집합일 수 있겠더라고. 그때 넌 그저 생각이 짧을 뿐이었고 난 그저 속이 좁을 뿐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더라고.
서둘러 결론 내버리고 그 생각에 갇혀 있느라 밀어내기만 해서 미안했어. 이제 와서 “다시 친해지자!” 하기도 이상한 거 알아. 설령 그렇게 말한다 해도 이제 우리 사이는 너무 멀어졌지. 근데 혹시 너도 나를 떠올렸을 때 씁쓸하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젠가 이런 얘길 허심탄회하게 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 진짜 그런 기회가 오면, 우리 마지막 통화 때 네가 그랬듯 민망함을 무릅쓰고 친근하게 얘기해볼게. 사랑 많던 박한나는 조금 멀리 가긴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고.
from. 박한나(<코스모폴리탄> 피처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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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너는 나와 연이 끊긴 지 17년이 지났어도 단번에 알아들을 거라 믿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저녁마다 운동하겠다고 줄넘기 하나씩 들고 놀이터에서 만나 줄넘기는커녕 걷지도 않고 놀이터 정자에 앉아 3시간 넘도록 그날 꾼 꿈에 대해, 내가 쓸 소설에 대해, 그리고 우주에 있을 외계인에 대해 떠드는 12살 소녀들이. 취향도 고약해서,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가장 끔찍한 외계인이 가장 끔찍하게 인간을 죽이는 방법을 같이 상상했지. 내가 반 친구들을 데리고 소설을 썼을 때 함께 친구들을 죽이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해준 것도 네가 유일했어. 끔찍한 악몽 대결을 펼쳤던 너에게
」너는 네가 꾼 악몽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게 악몽이 아니라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걸 누가 모르겠니? 너도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했지만 영화감독이나 만화가가 된다는 내 앞에서 네 몽상을 풀기 겸연쩍었을 거라는 거. 어렴풋이 알았어. 나도 마찬가지였거든. 내가 만화가라는 꿈을 접은 게 미술 천재인 널 만나면서부터였던 것 같으니, 우리는 꽤 사이좋게 서로의 꿈 하나씩을 갈취한 사이였구나.
어쨌거나 너는 네가 꿈이라 말하는 이야기를 저녁마다 들려줬어. 사람이 매일 그런 꿈을 꾸고 산다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게 맞을 텐데, 그 꿈을 말하는 네 눈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반짝였지. 그 눈이 아직도, 종종 기억이 나. 나도 꼭 저런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싶거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말해줄 때, 내가 즐거운 이야기를 떠들 때, 내가 행복한 걸 할 때 그런 눈이었으면 싶어.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그림 그릴 때 너는 몸에서도 빛이 나. 소설 <천 개의 파랑>에 썼던 “사람은 가끔 스스로 빛을 낸다”라는 구절, 네 생각나서 쓴 거야.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인체 해부당하기 전에 우주선을 탈출하고, 남극에 사는 괴수가 인간을 잡아가 끔찍한 일을 벌이는 걸 목격하고, 집에 침입한 강도와 싸워야 했던 너의 끔찍한 꿈들, 그리고 그 꿈을 들으며 활짝 웃고 있던 나…. 다시 생각해도 고마워, 그 시기에 나랑 친구 해줘서. 네가 없었다면 내 12살은 참 밋밋하고 심심했을 것이 분명하구나. 어렴풋이 네 소식을 들었어. 한국에서 제일가는 예술대학교에 입학해 유학을 갔다는데, 이것도 8년 전 소식이네. 그 이후는 일부러 묻지 않았어. 찾아보지도 않았고. 어디선가 빛을 내며 네 악몽을 펼치고 있을 너를 상상하는 게 더 좋았고 나도 좀 더 열심히 이야기를 펼치고 싶었거든. 그렇게 살다가 우연히 만나자.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악몽이 참 많아. 여전히 악몽을 꾸는 선란이.
from. 천선란(소설가)
Credit
- assistant editor 박한나
- illustrator 김지예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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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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