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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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스타운 외곽에는 치어리딩 팀 ‘빅토리 바이퍼스 올스타스(Victory Vipers All-Stars)’의 훈련 시설이 있다. 자동차 부품 가게 옆, 플라스틱 벽을 친 창고 건물 안에 있는 이 체육관 주차장에서는 평일 저녁마다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티셔츠에 쇼트 팬츠를 입고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소녀들이 한 손에 물병을 든 채 도로를 따라 늘어선 미니밴과 SUV에 올라타는 모습이 그것이다. 차로 30분 거리마다 유명 스포츠 선수가 살고 있을 정도로 이곳 벅스카운티 사람들에게 팀 스포츠는 그들 인생의 일부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곧 자신의 세계가 되는 곳이다.
16살의 매디 하임은 팬데믹으로 체육관이 문을 닫기 전, 빅토리 바이퍼스에 가입했다. 이후 그녀는 곧장 동료들과 어울리며 팀에 적응했다. 자기 표현에 익숙한10대답게 인스타그램과 틱톡(당시 매디의 팔로어는 10만 명이었다)에 립싱크와 댄스 연습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익명의 영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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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상 속 매디는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두 눈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고, 심지어 웃기도 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으며 약간 반항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흡연은 빅토리 바이퍼스의 행동 수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디에게 이 영상에 대해 묻자 그녀는 영상에 찍힌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후에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한 그녀는 “(영상을 보고) 차로 돌아가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저는 계속 ‘영상에 있는 건 제가 아니에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있으니 아무도 절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죠. 영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영상은 분명 조작된 거였어요.”
매디의 말을 믿은 매디 어머니 제니퍼 하임은 경찰에 이 영상이 조작됐다고 신고했다. 그녀는 또한 지난 한 달 동안 자신의 딸이 발신 번호를 감춘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협박 메시지를 받아왔다는 사실도 함께 알렸다. 협박 메시지 중에는 “자살해버려” 같은 내용도 담겨 있었다. 곧이어 빅토리 바이퍼스 치어리딩 팀 소속 다른 2명의 여학생 엄마도 익명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 명은 비키니를 입은 딸의 사진 위로 “나쁜 애”, “복수”, “남자애들을 만나고 다닌다”, “담배 피운다” 등의 글이 적힌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자신의 딸이 “해변에서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관심필요녀69’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한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경찰은 이들이 받은 메시지를 추적한 끝에 ‘핑어(Pinger)’라는 익명 메시지 전송 서비스를 찾아냈다. 그리고 계속된 추적 끝에 예상 밖의 한 인물을 끌어냈다. 에일리의 엄마, 라파엘라 스폰이었다.
이것은 딥페이크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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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관계없는 동영상에 이미지를 합성해 영상 속 인물이 실제처럼 보이도록 조작한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매슈는 교외에 사는 한 중년 주부가 자기 딸의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고도의 AI 기술을 이용해 매디가 팀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만큼 정교한 가짜 동영상을 만들었다며 그녀를 체포했다. 재선을 앞둔, 그러므로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던 벅스카운티의 지방 검사 매트 웨인트라웁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라파엘라 스폰의 혐의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딥페이크는 이제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같은 골목에 사는 이웃도,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누군가도 그렇습니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누가 이 기술을 사용할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는 성인도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로 영화 〈드롭 데드 고저스〉가 생각나는 이야기다. 1999년에 나온 이 유명한 컬트 영화는 미인 대회에 얽힌 살인 사건과 이 대회에 참가한 딸을 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를 치어리더 버전으로, 그리고 디지털 시대 버전으로 바꾼 게 바로 이번 사건이다. 그렇지 않은가?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사진과 자신의 스마트폰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망칠 수 있는데, 굳이 그 사람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할 필요가 있을까? 매디와 제니퍼 하임 모녀는 〈투데이 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매디가 겪은 일을 자세히 보도하며, 자녀를 둔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라파엘라 스폰이 체포된 후 찍힌 사진은 인터넷 곳곳에 도배됐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것은 딥페이크 영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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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 모든 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딥페이크’라는 말은 2017년,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동명의 아이디를 쓰는 한 이용자가 합성 포르노 영상을 올리며 처음 알려졌다. 당시에는 셀러브리티의 얼굴에 에로 배우 몸을 합성한 포르노그래피 영상을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였다. 이후 기술이 스마트해지면서 합성 이미지도 점점 더 리얼해졌다.
하지만 라파엘라를 기소했던 벅스카운티 검사 웨인트라웁의 주장과 달리, 사람들을 속여넘길 만한 고퀄리티의 영상을 만드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직까지는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고 따라 하거나 사진 몇 장을 포토샵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개의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장착한 AI 소프트웨어도 있어야 한다(이 소프트웨어는 구글에서 수 페이지에 걸친 사진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셀러브리티들의 얼굴을 빠른 속도로 학습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입술을 삐죽이는 버릇, 눈썹을 치켜세우는 버릇 등 인물 특유의 움직임까지 본뜬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 수 있다.
딥페이크 전문가 헨리 에이더에 따르면, 2021년 현재를 기준으로 관련 기술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은 보통의 학부모가 사람들이 진짜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 가능성은 “아주아주 지극히 낮다”. 딥페이크, 허위 정보 및 미디어 조작 관련 정책 고문이자 선임 연구원인 에이더는 그 같은 동영상 조작을 위해서는 더 좋은 장비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매디의 영상에는 도저히 조작으로 볼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어색한 각도, 영상 속 연기, 그리고 매디의 얼굴 바로 앞에서 베이핑 펜이 흔들리는 모습 등이다.
“그 엄마(라파엘라)가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상은 진짜예요. 영상 속 아이는 자기가 찍힌 게 맞는데도 부인하고 있을 뿐이고요.”
화제가 된 톰 크루즈 합성 영상을 만든 벨기에 출신 비주얼 이펙트 및 AI 아티스트 크리스 우메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처음 매디의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을 때, 에이더는 이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며 세계 곳곳의 수많은 전문가에게 이것이 ‘가짜 딥페이크’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우메도 그중 하나였다. 에이더는 특히 많은 뉴스 매체가 딥페이크 전문가들에게 영상의 진위를 물어보는 대신, 경찰의 판단만 믿고 그대로 보도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특정 포렌식 기술을 이용해 매 프레임을 검토하며 영상이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딥페이크 전문가가 미국에는 매우 적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후 마침내 인터넷 매체 〈데일리 닷〉이 벅스카운티 경찰관 매슈 레이스에게 문제가 된 매디 영상의 메타데이터를 분석했는지 물었다. 이에 매슈는 단지 “육안으로” 확인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 매디가 받은, 괴롭힘이 있었다고 간주된 문자메시지 중 하나는 추적 결과 이든이라는 이름의 17세 소년이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멍멍 왈왈”이라는 말과 똥 이모지가 등장하는 메시지였다). 이 사건과는 관계없지만 또 다른 불편한 진실도 드러났다. 소송 초반, 경찰관 매슈는 다수의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경찰직을 사임했으나 지금도 관련 범죄 기록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치어리더 딥페이크’ 사건이 세계적으로 보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봄, 벅스카운티 지방 검찰은 딥페이크 관련 소송을 조용히 철회했다.
라파엘라에 대한 기소 건 중에는 딥페이크보다 덜 선정적인 다른 괴롭힘 혐의 관련 소송만 남았다. 경찰과 검찰의 태도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들은 이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절하며 극도로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검찰은 〈코스모폴리탄〉의 취재 요청에 “라파엘라의 고소 이유는 동영상 조작이 아니었다”라는 말을 대변인을 통해 밝혀왔을 뿐이다). 아침 토크쇼에서 입장을 밝혔던 매디와 제니퍼 하임 역시 더 이상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코스모폴리탄〉이 여러 차례 보낸 취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딥페이크 제작 혐의가 철회된 이상, 앞으로 법정에서 매디 흡연 영상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라파엘라가 그런 가짜 영상을 조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결론은 아마도 이것이다. 한 10대 아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아왔고 볼 수 있는 평범한 10대 아이가 규칙을 어겼고, 발각됐고, 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한 행동을 부인했다는 것.
지역 경찰이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치어리더의 무고함을 너무나 믿고 싶어 한 나머지 진실을 보려 하지 않으면서 진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재앙 수준으로 꼬여버린 이 대서사시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멍청한 공무원들, 그리고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은 언론인들, 딸의 친구에게 악의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는 중년의 엄마, 그리고 본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평생 이 무자비한 사건에 자신들의 이름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게 될 불행한 두 아이가 있을 뿐이다.
‘치어리더 딥페이크’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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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딥페이크의 존재가 진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무기로 사용되는 현상을 ‘거짓말쟁이의 배당금(liar’s dividend)’이라고 부른다. 딥페이크 전문가 에이더는 “딥페이크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도 하지만, 진짜를 가짜로 오인하게 만들기도 한다”라고 설명한다. 우메는 “딥페이크의 개념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질수록 그것이 가진 위험성도 더 커진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찍힌 증거 영상이 있어도 누군가가 그것을 조작된 가짜라고 주장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딥페이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지금이라고 해서 매디가 특별히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모든 디지털 증거의 진위 여부가 필수적으로 의심될 수밖에 없는 미래, 그리고 여러 버전의 진실 중 우리(혹은 인터넷)가 믿기로 선택한 것이 유일무이한 진실이 될 수 있는 무서운 미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음모론자들은 이미 딥페이크의 위력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 경찰관 데릭 쇼빈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던 2020년 5월. 미주리주에서 공화당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바 있는 위니 하트스트롱은 이 영상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 딥페이크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조지 플로이드가 실제로는 몇 해 전에 이미 죽은 인물이며, 시위 현장에서 인종 간 갈등을 유발하던 전직 NBA 선수의 몸에 그의 얼굴을 합성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이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아마도 단지 대중이 딥페이크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진실을 가리는 요소가 많을수록 비극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향후 딥페이크 기술은 경찰의 과잉 대처, 디지털 성폭력, 살인 등 범죄 관련 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괴롭힘과 학대 피해자들을 주로 변호해온 뉴욕주 변호사 애니 세이풀라는 “유명인과 관련된 딥페이크 사건이 한두 개만 세간에 알려져도 다른 사건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우려한다.

“시스템과 공직자가 가짜 혐의에서 우리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운 일이죠.”
매디는 결국 빅토리 바이퍼스를 떠났다. 그녀는 현재 뉴저지 교외에 있는 한 마을의 체육관에서 치어리더를 계속하고 있다. 에일리는 치어리더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가끔 치어리딩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니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지난해 이후 매디와 에일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에일리 엄마의 괴롭힘 혐의 관련 소송 역시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8월 중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라파엘라의 변호인단은 아직 소송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판이 더 열릴 수도 있고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딥페이크 의혹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라파엘라는 자신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녀 본인은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다만 그녀의 변호사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우리에게 밝혀왔다.
“만약 라파엘라가 유죄였다면, 정말로 매디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동영상을 조작하려 했다면, 왜 고작 흡연하는 영상을 만들었을까요? 더 심한 영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