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괴물'을 만든 '괴물' 같은 신인 PD 심나연과 나눈 작품 뒷 이야기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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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괴물'을 만든 '괴물' 같은 신인 PD 심나연과 나눈 작품 뒷 이야기

드라마 <괴물>을 만든 ‘괴물’ 같은 신인 PD, 심나연을 만났다. 두 달 동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 <괴물> 속 작은 시골 마을 ‘만양’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그 뒷이야기.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1.06.10
 
셔츠 11만5천원, 슈즈 22만5천원 모두 코스. 팬츠 가격미정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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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2회까지 봤을 때인가, 너무 끔찍해서 ‘나 이거 정주행 가능할까’ 싶었던 적이 있어요. 보는 저도 힘든데 촬영팀은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저 역시 잔인한 장면을 잘 못 보는 편이에요. 스릴러 장르니까 수위를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의도적으로 덜어내는 편에 가까웠어요. 무서워서 잠을 못 잔 적은 없었지만 수위 높은 장면 촬영을 앞두고는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느라 잘 못 잤던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잘 시간 생기면 ‘잘 수 있는 게 어디냐’ 하면서 정신없이 잤죠.(웃음)
 
 
김수진 작가의 극본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요. 이번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극본상을 수상했죠.
연출 입장에서는 극본을 보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지가 중요하거든요. 〈괴물〉이 그랬어요. 오락성이 옅은 정통 스릴러에 가깝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작품은 아니다 싶었는데, 일단 믿을 만한 두 주연 배우가 캐스팅돼 내부적으로도 ‘오케이’됐죠.
 
 
최근 드라마 방영작 중 장르물이 눈에 띄게 많아요. 제작 당시 이 점을 의식하고 있었나요?
장르 덕에 흥행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오락적인 장르물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죠. 멋 부리지 않은 정통 장르물로 가면 어떨까 했어요. 극본상으로 시골이 배경이다 보니 한국적인 감성을 넣어 차별화했고요.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 하면 영화 속의 마을이 바로 떠오르잖아요. 그런 시그너처 같은 요소가 있었으면 했어요.
 
 
‘만양’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이 폐쇄적인 면이 있기에 인물들이 더 미스터리해 보이는 효과도 있었죠.
워낙 극본에 마을의 모습이 잘 구축돼 있었어요. 레트로한 분위기가 있으니까 요즘 유행하는 복고 정서에도 부합했고요.

 
 
특히 ‘만양 정육점’이 도드라지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실종된 엄마 대신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 ‘유재이’ 캐릭터도 그렇고요.
너무 사실적인 정육점으로 그리면 재미없을 것 같았어요. 약간 판타지적 요소를 넣어 ‘정육 식당’ 혹은 ‘정육 카페’ 같은 느낌을 생각한 거죠. 그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회식도 하고. 일종의 사랑방 같은 거예요. 정육점에서 ‘재이’가 엄마를 기다리며 다부지게 살아간다는 설정과 칼을 갈고 고기를 툭툭 써는 장면 자체도 매력적이었어요.
 
 
하나의 소품 같은 느낌도 있는 거죠?
맞아요. 드라마가 풍성해 보이도록 작가가 설정한 미장센이죠. 오히려 연출에서 그런 부분을 과잉해 살려주려 했어요. 이것저것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고, 장소 물색이나 세트 구성에 자본과 시간을 꽤 많이 들였죠.
 
 
한편 시청자로서 가장 궁금했던 게 있어요. ‘동식’의 서사는 탄탄한 데 비해 ‘한주원’에 물음표가 너무 많았어요. 왜 굳이 함정수사를 하고, ‘만양’까지 내려와 근무할 정도로 이 사건에 집착하는지 납득되지 않아서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물론 극본에는 ‘주원’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잘 설명돼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 초반에는 ‘경찰이라도 잘못 짚었을 수 있다’는 게 제작진의 설정이거든요. 모든 주인공이 완벽하지 않다는 거죠. ‘주원’ 캐릭터가 후반부에 성장하는 스토리가 있으니 초반에는 그런 치기 어린 모습을 잘 살리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동식’의 입장에서 서사를 많이 부여했죠.
 
 
하긴 ‘주원’이 ‘성장캐’임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모든 서사를 설명해주는 것도 이상할 수 있겠네요. ‘만양’에서 외지인이니까 신비감도 있어야 하고요.
저도 한때 ‘주원’의 서사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주원’의 동기를 다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요. 그래도 어쨌든 초반에는 선택을 해야 했던 거죠. 사실 투톱 체제로 가는 드라마가 쉽지는 않아요. 배우의 표현력에 많이 기대야 하는 부분도 있죠. 극의 판도가 자기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다행히 여진구 씨가 의도를 잘 이해해줬어요. 또 후반부에 ‘주원’ 서사로 넘어가면서 ‘동식’의 매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오히려 ‘동식’과의 케미가 좋아졌죠. 시청자들도 그 둘의 공조를 잘 이해하고 인정하더라고요.
 
 
두 사람의 ‘브로맨스’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니 ‘주원’과 ‘재이’의 투샷에서 없는 멜로 라인까지 발굴한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던데요.(웃음)
사실 멜로 라인이 없는 드라마라 되도록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게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워낙 둘이 젊고 예쁘니까.(웃음) 다들 “야, 이게 맞는 거냐?” 하면서 찍었어요.
 
 
좋은 배우들을 많이 발굴한 작품이기도 해요. 트위터에서 “〈괴물〉은 연기과 교수님들이 나와서 싸우는 것 같다”라는 평을 본 적 있어요.
실제로 김신록 배우는 대학에서 오래 강연하신 분이에요. 그에게 배운 제자도 많고요. 그런데도 신인 같은 자세로 임해준 것 같아요. 다들 연극 신에서 서로 알음알음 아는 분들이다 보니 현장에서 금방 친해졌고 분위기도 좋았어요.
 
 
디렉팅도 많이 안 주는 편이었다고요.
일단 배우들 의견을 들어요. 다들 자기 캐릭터를 누구보다 제일 잘 알아요. 한 인물만 보고 가니까 오히려 더 앞서가기도 하거든요. 저나 작가님이 발견 못 했던 것도 집어내요. 다만 저는 컷 디렉팅을 많이 줘요. 현장에서 최대한 효율성을 발휘해 찍어야 하니까요. 배우들 컨디션을 고려해 진행에 도움을 주는 거죠. 로케이션도 많고 촬영 장소도 많고. 지하실 한번 들어가면 지하실 신을 다 찍어야 나올 수 있었거든요.
 
 
장르물이다 보니 디테일도 중요하고 컷도 많죠. 가장 품이 많이 들었던 장면이 뭔가요?
‘(강)진묵’의 집에서 ‘(강)민정’ 살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연결 부분이 진짜 어려웠어요. 2회부터 8회까지 쭉 이어지는 부분인데, 하나의 사건이 계속 토막토막 반복해서 나오잖아요. 그때그때 다르게 보여줘야 하고, 나오는 인물도 점점 추가되고요. 찍어야 하는 신이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데다 타임라인이 복잡해서 배우들도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보통 드라마는 1~5회, 6~10회 간격으로 촬영하는데 저희는 1~8회를 한번에 생각하며 섞어 찍으려니 한 3개월은 걸렸어요.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에 계절 배경이 좀 달라 보이는 부분이 있어요. 촬영하는 동안 봄이 와버려서.
 
 
안 그래도 신하균 배우가 인터뷰 중 가장 어려웠던 장면으로 ‘이동식’이 ‘진묵’의 집에서 ‘민정’의 손가락을 발견한 뒤 혼자 회식 장소인 ‘만양 정육점’으로 오는 장면을 꼽더라고요. 뒷부분의 반전까지 고려해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타임라인대로 찍으면 가장 좋은데, 상황이 그렇게 되지가 않죠. 배우에게 부담스러울 걸 알면서도 그 장면을 오히려 먼저 찍었어요. 초반에 촬영장 온도를 확 높이려면 무거운 신부터 찍는 게 효과적이기도 하거든요. 회식 자리라 여러 명이 등장하는 신이다 보니 수도 없이 반복해서 찍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제작진 합을 잘 맞췄죠. 다행히 신하균 배우가 담백하게 잘 표현해주셨어요. 나중에 편집해보고 매끄럽게 안 붙으면 다시 찍자는 생각으로 찍었던 장면이에요.
 
 
사실 산 채로 손가락을 자른다는 소재가 상당히 잔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성 혐오 범죄라 다루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사체 없는 살인은 기소 불가능하다’가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제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과학수사가 너무 발달해 사체가 있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범인을 잡을 수 있거든요. 다만 사체 일부가 나오는 장면이나 진범인 ‘진묵’의 진술 부분은 최소한으로만 표현하려 했어요. 특히 ‘진묵’이 ‘왜 죽였는지’ 말하는 부분에서는 컷을 거의 할애하지 않고 ‘주원’과 ‘동식’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죠. 제 편집 의도는 ‘들을 가치가 없다’였어요.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제가 중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드라마의 주제는 살인 사건과 그에 대한 복수가 아닌 ‘작은 이기심이 우리를 괴물로 만든다’예요. 하지만 ‘동식’과 ‘주원’에 너무 이입이 돼서 그런지 수사 도중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뭐 그럼 좀 어때’ 하게 되던데요.
“범인 잡으려고 그런 건데 그게 대수야?”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주원’은 함정수사를 해서 피해자를 낳았고, ‘동식’은 사건 현장에서 바로 신고하지 않았죠. 제작진은 그 역시 큰 범법이라 생각한 거예요. 그걸 ‘동식’과 ‘주원’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설정이고요. 어떤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을 용납하지만, 〈괴물〉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이동식’과 ‘한주원’ 역시 수사 과정에서 괴물이 된다는 게 작품의 시작점이에요.
 
 
드라마의 세계관이란 말씀이시죠?
그렇죠. 개개인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작품이 갖는 가치관, 세계관이 기저에 깔려 있는 거죠. 그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제작진이 수용해야 하고요.
 
 
드라마 종영 후 인터뷰에서 “〈괴물〉이 날 살렸다!”라고 표현했어요. 드라마 PD가 된 계기와 그간의 고민이 궁금해요.
어릴 때 〈일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했어요. 드라마 중에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제일 좋아했고요. PD가 선망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사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항상 그만두고 싶어요.(웃음) 근데 막상 한 일주일 쉬고 나면 또 일이 하고 싶어져요.
 
 
그만두고 싶다 생각할 땐 언제예요?
촬영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계속 재능과 판단력의 한계에 부딪히잖아요. 나는 아직 여기까지인데 그 이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감이 생기고, 아이디어도 더 생각이 안 나죠. 그러면 그냥 늘 하던 대로 찍게 되는 거예요. ‘이 신이 재미없다’ 생각되면 자괴감이 들면서 ‘멘붕’이 오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데 70명의 스태프는 저만 쳐다보고 있고.
 
 
큰 현장을 이끌어가야 하는 직업이니 성격에 맞지 않으면 정말 힘들 것 같네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10년 가까이 본 연출부 동료들이 있는데 제가 멘탈이 무너질 때 많이 잡아줘요. 피곤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한숨 자고 와”라면서 달래주죠.
 
 
다행히 유종의 미를 거뒀네요. 올해 백상예술대상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호평받은 것 같나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괴물〉에 대한 호평과 함께 쓴소리도 다 알고 있어요. 지금은 촬영 끝난 지 좀 돼서 그냥 쉬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생각하고 있고요. 인터뷰 같은 것도 요청이 들어오면 쑥스럽지만 제 입장에서는 ‘내가 뭐라고 거절해’ 하는 심경으로 응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해준 작품인데 ‘모두가 고생했다’고 대변해줄 사람이 연출가밖에 없잖아요. 당장 저는 다음 작품이 더 걱정이에요. 시청률이 대박 난 건 아니지만 다음에는 진짜 더 잘해야 할 텐데.
 
 
안 그래도 애청자들, ‘괴물러’들은 ‘드라마는 완성됐는데 시청률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더군요.
시청률이 아쉽지 않다는 건 다 거짓말이죠. 장르물 특성상 마니아층을 저격해야 하지만 그 ‘마니아층’이 ‘대중’이었으면 좋겠는데.(웃음)
 
 
‘이렇게 했으면 시청률이 더 잘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모르겠어요. 정말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웃음) 시청률은 장르를 타는 것도 아니라서요. 결국 만드는 사람들이 ‘이거 재미있다’라는 확신을 갖는 수밖에 없어요. 배우들이 “우리 대본 재미있어요”라면서 신나게 찍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면 가장 행운이고요.
 
 
이제는 ‘심나연 연출’을 믿고 드라마를 고르는 사람들도 생길 텐데요.
조금은 그럴 수 있겠죠? 그게 고맙죠.“내가 〈괴물〉이라는 작품의 연출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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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예린
    fashion editor 이병호
    photo by 김영민
    art designer 박유진
    hair 박규빈(휘오레)
    makeup 이아영
    assistant 김송아/ 김미나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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