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자의 삶과 현실의 속살을 드러낸 책?

여자의 삶과 현실의 속살을 드러낸, 여자의 음성으로 활자화된 책 5권.

BYCOSMOPOLITAN2021.03.30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 엘리
‘언어’에 담긴 성차별의 역사가 이 책의 시작점이다. 엘리트 남성에 의해 집필되고 편집되어온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집실. 편집자인 아빠 몰래 떨어진 쪽지를 훔친 ‘에즈미’의 장난으로 ‘bondmaid(여자 노예)’라는 단어가 실종된다. 그때부터 ‘에즈미’는 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를 수집한다. 사전의 권위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버려진 단어들은 대체로 여성의 삶과 그들의 말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에즈미는 알아차린다. 남자들이 쓴 공식적인 역사의 변방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의 잃어버린 이야기가 존재했음을,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나직하지만 힘차게 외친다.
 
 

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 은행나무
2020년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이 된 자전적 소설.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13세 소녀를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온 프랑스 유명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녀의 애정 결핍과 이를 이용한 어른의 간악함 사이에서 이뤄진 동의 아닌 ‘동의’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로 인해 ‘피해자다움’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자기혐오는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루밍’과 ‘가스라이팅’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가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기술하지만 그 분노와 고통만큼은 저릿하게 파고든다.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유선애 | 한겨레출판사
팬데믹이 우리 일상을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온 세상이 ‘세대론’에 사로잡혔던 시절이 있었다니 참으로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마치 ‘종특’인 양 뒤집어씌우고, 그 속살이나 실체까지 마주하는 경우는 좀체 드물었다. “지난 2~3년 사이 내가 강해졌다면 그건 1990년대에 태어난 여자들 덕분이다”라는 저자의 고백은, 굳이 세대를 가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젊음이니 열정이니, 범우주적으로 케케묵은 단어도 이 책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이슬아 등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며 저마다의 커리어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1990년대생 여성 10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결국 ‘사랑’이 아닐까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를, 함께 일하는 동료를, 앞선 사람의 발자취를, 뒤이어 올 사람의 행보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자신을 둘러싼 오늘과 내일을 바꿔나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신데렐라와 유리 천장

로라 레인, 엘런 하운 | 살림
딸이 생긴다면 굳이 읽히고 싶지 않은 명작 동화들이 있다. “수세대에 걸쳐 명작으로 손꼽힌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가면을 쓴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주의적인 호러와 다를 바 없습니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해서다. 악역은 언제나 ‘혼자 사는 나이 많은 싱글 여성’이고 구원자는 늘 백마 탄 ‘백인’ 왕자님, 자고 있는 여자에게 동의 없이 키스한 일이나 처음 본 여자의 외모에 반해 신발을 들고 찾아다닌 얘기는 세기의 사랑으로 둔갑하기 일쑤. 이 책은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등 12편의 명작 동화를 비틀어 다시 써 내려간다. ‘B급 페미니즘 감성’이라 자평하지만, 그 서사가 자못 통쾌하고 상쾌하다.
 
 

 안녕, 생리

신윤지 | 팩토리나인
“중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할 때, 반 아이들이 귓속말로 생리대를 몰래 빌리는 상황이 마치 십수 년 전 나의 과거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충격을 받았다”는 저자의 출간 계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여전히 생리를 데면데면하게 대하고 때론 부끄러워하기까지 한다. 생리의 저주란 저주는 모조리 당첨(?)돼서 본의 아니게 다양한 탐색을 시도해야 했던 저자는 자신이 축적해온 생리 데이터를 언니처럼 그리고 친구처럼 편안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지금도 여전히 생리로 고통받고 있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음을 위로 받고 싶다면, 더 나은 생리 생활을 영유하고 싶다면, 알찬 정보와 따뜻한 위로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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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reelancer editor 박지현
  • art designer 박유진
  • photo by 최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