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필독 각! 6인의 창작자에게 물어본 단 한 권의 책

일과 삶, 모든 순간에 책을 펴두는 6인의 창작자 서가에 찾아가 청했다. 책장에서 고이 꺼내 이 계절 내내 곁에 두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골라달라고.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3.11.07
 
때로는 마음 안으로 아무것도 붙잡지 말고 가만히 느낄 수 있다면, 거울과 같은 마음일 수 있다면, 마음에 비치는 하나의 상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가도록 무심해질 수 있다면, (중략) 그렇게 맑게 흘러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모든 걸 쉽게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중 

아미라 | 금속공예가

추천하는 책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안리타|홀로씨의 테이블
제주도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독립 서점에서 구입한 산문집이에요. 제목이 유쾌하다는 생각에 궁금해진 책이었어요. 페이지 하나하나가 주는 메시지가 다른 게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복잡한 생각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어 추천하고 싶어요.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책을 구입할 때 서점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에요. 그 시간 동안 여러 책을 들여다보며 우연히 발견히 글, 또는 문장이 흥미로울 때 구입하게 돼요. 요즘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에 손이 가요. 작업하는 방 한편에 책장이 있지만, 좋아하는 책들을 집 안 곳곳 잘 보이는 장소에 두는 편이에요. 침대 옆 협탁이나 거실장 위에 쌓아두고 틈틈이 읽죠. 

 
우리가 사과를 많이 먹던 그해 겨울에 너는 긴 복도를 걸어와 내 방문을 열고/사과 먹을래/물어보곤 했다. 어느 날은 맛있는 걸로 먹을래 그냥 맛으로 먹을래 그러기에 네가 주고 싶은 것으로 아무거나 줘 말해버렸고/오래 후회했다./그날 사과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된 여러 가지 사과의 맛과 종류에 대해, 다양한 표정과 억양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중 ‘길고 긴 낮과 밤’ 

오세연 | 영화감독

추천하는 책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임승유|문학과지성사
몇 달 전부터 시에 깊이 빠져 최근 시집을 많이 읽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도 시에 대한 영화거든요.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감정이나 관계, 시간, 계절 같은 것들요.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을 읽게 해주는 것, 그게 시가 가진 힘인 것 같습니다. 많은 시집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건 제목 때문이에요. 겨울로 오게 된 사람과 여름에 남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일지, 겨울로 오기까지 지나온 가을은 어떤 풍경이었을지 상상하게 되잖아요.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대부분 누가 쓴 책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화 관련 서적일 경우 특히 그렇고, 소설이나 에세이도 평소 관심 있던 저자의 작품을 눈여겨보다가 신작이 나오면 구매하는 식이죠. 황인찬 시인을 좋아해서 첫 시집으로 <사랑을 위한 되풀이>를 읽은 후에 그의 모든 시집과 산문집, 인터뷰집 등을 마구 구매하기도 했어요. 책장은 기본적으로 장르에 따라 구역을 나눠요. 그 후엔 책의 높이를 맞춰 꽂아두는 편인 것 같아요. 높이가 비슷한 책끼리 같이 서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너무 비슷한 색의 커버는 떨어뜨려 놓으려고 해요. 알록달록한 책장이 제 눈엔 예뻐 보이나 봐요.

 
선생님에게 칭찬받지 못해도 좋아하는 게 정말로 좋아하는 거다.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 중 

유미진 | 현대백화점 커뮤니케이션팀

추천하는 책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 마스다 미리|티라미수 더북
이 에세이는 나고 자란 도시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 상경한 스물여섯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첫 집을 구할 때의 에피소드부터 첫 삽화 일을 따기 위해 원화를 들고 출판사 영업을 다닐 때의 일화 등 그의 넓은 타임라인이 담겨 있어요. 읽고 나니 저도 용기가 나더라고요. 너무나 유명한, 그래서 저 멀리 있는 것 같던 거장이 마치 우리 이모처럼 가깝게 느껴져서요. 덕분에 5년 전 하다 만 후, 다시 할까 망설이던 만화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가을 탄다고들 하잖아요. 가을은 관계에 대한 상념도 많아지지만, 나아가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같아요. 싱숭생숭한 가을날에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아무 맥락 없는 책을 집어 들고 모험을 하는 일은 좀처럼 없어요. 하지만 기분파라서 그런지 책장을 정리하는 룰도 없는 편이죠. 룰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일부러 삐죽빼죽 넣어놓기도 합니다. 책장에 주로 꽂혀 있는 책들은 미관상 아주 아름다운 것,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것, 그것도 아니면 좀처럼 완독을 못 한 것이네요. 이렇게 어떤 규칙 없이 꽂아두면, 꽂아둔 저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서가 안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하는 일이 생기는데요, 그게 참 재미있어요.
 

나의 음악 경험과 내가 찾은 테크닉, 수년간 작업 활동에서 이룬 성과, 그리고 이젠 내 아이디어로 굳은 성과에서 확실하고 강력한 도움을 받으며 곡을 계속 씁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 중 

김진영 | 다큐멘터리스트 & 콘텐츠 디렉터

추천하는 책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 엔니오 모리코네, 주세페 토르나토레|마음산책
얼마 전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다큐멘터리를 영화관에서 봤어요. 영화 <시네마 천국>의 감독이었던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만든 2시간 30분짜리 다큐멘터리인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생애와 그의 음악 작업기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엔니오 모리코네의 말>은 그 다큐멘터리를 글로 풀어 쓴 책이에요.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음악 작업을 평생 해온 대가의 창작 인생에도 굴곡이 있었더라고요.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최선의 작업물을 낸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다큐멘터리, 그중에서도 인터뷰는 인물의 눈빛과 목소리에서만 전달되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고 믿는데요, 아흔이 넘도록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에스트로의 생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목공을 취미 생활로 즐기는 저희 집엔 제가 직접 만든 책장이 있어요. 이 책장에 어떤 두께, 어떤 높이의 책을 꽂을지 하나하나 설계해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책장이죠. 덕분에 이 책장에는 제가 특히나 좋아하고 아끼는 책들을 선별해 꽂아두었어요. 에세이, 대담집, 만화책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는 편이지만, 결국 저는 무언가를 자신의 이름과 생을 걸고 묵묵히 창작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게 돼요. 

 
이상하지 않아? 우리는 겉모습밖에 볼 수가 없어요. 거의 모든 일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데 말이야.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두더지가 대답했어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

이승희 | 마케터 & 작가

추천하는 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상상의힘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맥커시가 그린 그림책입니다. 8살이든, 60살이든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림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어요. 이 책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겐 용기를, 힘들고 외로운 사람에겐 위로를 준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산다고 느낄 때, 가을에서 겨울로 천천히 넘어가는 이 시점에 읽기 좋은 책이죠.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저는 책을 색깔로 기억하는 편이기도 하고, 깔맞춤을 해두면 괜스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과거엔 장르별로 책장을 정리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책이든 딱 하나의 장르로 분류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책 커버의 색이라는 기준이 생겼어요. 어쩌면 제 책장에 꽂히는 책은 제 눈을 사로잡는 책 커버가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슬픔은 나를 매료시킨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경고하거나 도와주지 않는다. (중략) 슬픔은 왜 그렇게 사적인 일이어야 하는가? 이제 사람들이 내 슬픔을 봐줬으면 좋겠다.
<A Stranger in my Mother’s Kitchen> 중

김진영 | 이라선 대표

추천하는 책  <A Stranger in my Mother’s Kitchen> Celine Marchbank|Dewi Lewis Publishing
40년간 요리사로 일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사진가 셀린 마치뱅크는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생전에 어머니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우연히 어머니가 기록해두었던 레시피들을 발견했죠. 이 책엔 어머니가 남기고 간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는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며 떠난 어머니를 애도하는 5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요리하는 과정, 어머니의 손때 묻은 식기, 그리고 어머니가 직접 메모한 레시피를 그대로 살려 책 사이사이 삽지 형태로 삽입해두었는데, 덕분에 작가가 어머니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어머니와 조금씩 작별해가는 순간순간의 감정이 느껴지는 섬세한 책이에요.
 
책을 고르고 책장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
소위 커피 테이블 북이라고 말하는, 양장 커버의 보기에만 좋은 책보다는 수작업 느낌이 강하거나 디자인적으로 많은 고민과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는 책을 소장하려고 해요. 보통 그런 책들은 소형 출판사의 책이 대부분이고, 발행 부수도 적은 편이죠. 덕분에 지금 소장하지 않으면 평생 가질 수 없는 책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둘 모은 책들이 꽂혀 있어요. 책장을 정리하는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소장한 책들이 시기 순으로 꽂혀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웃음)

Credit

  • editor 천일홍
  • photo by 이예지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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