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드라마 여주에게 사랑을 배웠어요?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문구의 헛됨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사랑을 잃지 않는 동시에 나를 지키는 연애가 절실하다. 입만 열면 받아쓰기하고 싶어지는 드라마 속 여주들에게서 그 힌트를 얻어보자.

BYCOSMOPOLITAN2021.03.13
 

흑역사는 흑역사라 부르자

“맞아요. 내 마음이 변한 거. 그리고 이제 미안하지도 않을 만큼 지금이 좋고요. 이제 뭘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해요.”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윤송아’
똥차 컬렉터급 연애를 해왔는데 자기만 그런 줄 몰랐던 사람이 hoxy 당신? 모두가 욕하는 구 남친을 애써 편들고 포장해주는 편? 지난 사랑의 아름다운 추억만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새끼는 개새끼고, 흑역사는 흑역사다. 내가 당한 건 ‘이용’이었거나 ‘사기’였거나 ‘더러운 경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침 퉤퉤 뱉어주는 자세가 더 나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다. 잊지 말자.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정신을!
 
 
 

이제는 고전

“결혼을 꿈꾸는 너한테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간이야. 그 중요한 시간을 아무 꿈도 못 꾸게 하는 사람과 낭비하지 마. 이건 널 좋아하는 내가 아니라 좀 더 살아본 내가 해주는 얘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배타미’
언제 적 〈검블유〉냐며 넘겨버리기엔 배타미, 이 언니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결혼을 피하는 남자와 결혼에 목맨 여자라는 남녀 관계의 흔한 클리셰를 전복시킨 통쾌함 이상의 무언가가 그녀의 행간에 녹아난다. 비혼 선언이 더 이상 유난스럽지 않고, 연애의 행복한 결말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담보 잡히지 않아도 되는 시대. 지금 당신의 연애에도 ‘열린 결말’이란 게 있다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가깝거나 먼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마주하는 뜻밖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노오오력은 행운을 부른다

“남들이 날 좋아하도록 한평생 애썼으니, 더는 애쓰지 않으려고요.”
〈에밀리, 파리에 가다〉 ‘에밀리’
프랑스인이 이 시리즈를 싫어합니다! 삐죽삐죽한 가시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고슴도치 같은 파리지앵 사이에서 에밀리 혼자 밝고 귀엽고 보드라운 댕댕이 같기 때문일 거다. 솔직히 나도 마음엔 안 든다. 전문가라기보단 인턴 같은 태도가 특히 그렇다. 파리에서 사귄 친구와의 삼각관계에 고민하다 다신 만날 일 없다는 생각에 내려놓고 사고 치는 것도 마냥 응원할 일은 못 된다. 그런데도 미워지지 않는 에밀리의 미덕은 참으로 노력한다는 것.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면 좋아하게 만들면 된다는 단순한 신념으로 일도 사랑도 우정도 ‘열심’으로 대하는 그녀의 노오오력은 까칠한 파리에서 곧잘 사랑스러움으로 읽힌다. 때로 그 ‘열심’이 사고로 이어지는 게 문제지만.
 
 
 

사랑은 없던 부캐도 만든다

 “그래, 윤선아. 윤선아는 답답하지도 않고 뻔뻔하지도 않고 엄청 괜찮았겠지, 걔는. 근데 걔는 내가 만들어낸 가짜니까 내가 아니야. 넌 그 가짜를 사랑했던 거고.”
〈도시남녀의 사랑법〉 ‘이은오’
너무 평범해 세상이 자꾸 자길 깐다고 생각했던 은오는 양양으로 떠나 ‘윤선아’가 된다. 평범함 대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똘끼’를 입은 윤선아는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현실로 돌아온 은오는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부캐’를 사랑하는 것일 뿐,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잠적을 택한다. 은오에게 소리쳐주고 싶었다. 아니, 상대가 ‘진짜 나’를 알면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든 사람에게 외치고 싶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변한다고. 없던 부캐도 만들어내는 게 사랑이란다, 얘야. 
 
 
 

노 필터, 노 브레이크

“사랑 물론 좋죠. 무엇 때문에라도 일만큼은 잃고 싶지가 않아서요. 그건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거 같아서.”
〈런 온〉 ‘오미주’
빈말은 못 한다. 틀린 말은 바로 정정한다. 속마음은 감출 새도 없이 바로 음성화되니 오해할 일도 없다. ‘김은숙의 후예’ 박시현 작가는 오미주의 입을 빌려 ‘나를 지키는’ 사랑법을 퍽이나 무심하게 속사포로 쏟아낸다. 사랑할 때 가장 치명적이고도 흔한 실수는 바로 진심을 전하지 않는 것임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속살을 온전하게 드러내면 실망할까 봐, 사람들은 차라리 오해받기를 택한다. 그러고는 원치 않는 결말을 마주하곤 한다. 그러나 오미주는 이렇게 말한다. 실망하려면 실망하라고. 이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라고. 하지만 진심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로판’의 근황  

“무언가 완벽하지 않다 해서 사랑받을 가치가 없지는 않아요. … 그 증거가 필요하다면 저를 봐요. 이제 연기는 신물 나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척은 못 하겠어요. 사랑하니까요.”
〈브리저튼〉 ‘다프네’
‘결혼’이 여자 인생의 목표이자 전부였던 시대가 있었다. 흑인과 동양인 귀족이 존재하는 19세기 영국 사교계라니, 로맨스를 입은 엄연한 ‘판타지’ 장르지만 어쨌든 결혼관만큼은 그 시절을 차용했다. 소설 〈브리저튼〉의 참한 여주 다프네는 미드계의 거물 숀다 라임스의 손을 거쳐 결혼 시장에 입성하며 각성하는 몇몇 순간을 맞이한다. 결혼에 인생을 걸지만, 그 인생의 주인공만큼은 ‘자신’이길 바라는 다프네는 사랑으로 상대를 구원하는 성취까지 이뤄낸다. “그 후로 행복하게…”가 유효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솔직히 다들 그거 하나 바라고 있잖아? 페미니즘의 선구자 격인 여동생 ‘엘로이즈’의 사이다 발언에 물개 박수 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연애  

“반쪽짜리 사랑은 싫다. 난 전부를 원한다. 다 가지려면 다 감수해야 한다. 다시 돌아가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니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라라 진’
솔직히 이 시리즈의 묘미는, 아주 사소하다 못해 쓰잘데없는 걱정거리가 뻥튀기처럼 크게 부풀려져 엄청난 감정 노동을 유발하는 현실 연애의 짜증스러운 현장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어리고 사랑스러운 커플의 연애는 ‘사서 걱정+오해+화해와 성장’의 전형적인 삼단 콤보를 거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이와 비주얼만 다를 뿐 지금, 여기, 우리의 연애와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이 유치한 감정싸움판에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순간에 보면 얼추 맞을 거다. 싸우고 난 뒤에 “내 마음 아프게 해도 좋아. 내 마음을 산산조각 내도 좋아. 마음대로 해”라고 말해주는 노아 센티네오 얼굴의 남친만 있으면 완벽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