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연애할 때 '부캐'가 필요한 이유

‘부캐릭터’로 표현되는 또 다른 ‘나’들이 일상을 휩쓸고 있다. 이 자아들이 썸과 연애의 세계에선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내가 꿈꾸는 사랑엔 어떤 ‘부캐’가 필요할까? 본캐와 부캐 사이를 현란하게 오고가는 사랑꾼들과 멀티 페르소나 세계를 탐구했다.

BYCOSMOPOLITAN2021.01.01
 

부캐와 내숭 사이

마미손과 김다비, 유산슬과 린다G가 부캐 전성시대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썸과 사랑의 세계엔 ‘본캐’를 숨긴 자들의 눈치 게임이 횡행했다. 흔히 ‘내숭’과 ‘여우짓’, ‘허세’로 표현되는 ‘본모습을 숨기는 행위’는 여기서 다루려는 이야기와 결이 다르다. 숨겨둔 자아, 체면 때문에 표출하지 못했던 욕망, 하고 싶지만 하긴 민망한 말을 마음껏 꺼낼 수 있는 ‘뻔뻔할 용기’를 북돋워주는 ‘부캐’를  사랑의 세계에서 풀어나갈 것이라는 얘기다. 매해 소비와 직결된 사회 현상을 예측하고 제시하는 트렌드 분석가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이에 ‘멀티 페르소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 ‘페르소나’에 ‘멀티’라는 접두어를 붙인 이 신조어는 ‘가면을 바꿔 쓰듯 매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며 서로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다층적 자아’를 뜻한다. 회사 안에서와 퇴근 후의 자아가 다르고 일상 속에서와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며 SNS 안에서도 각기 다른 자아로 소통하며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바꾸는 ‘myselves’의 시대, 코스모가 전문가들과 함께 또 다른 ‘나들’과 함께 연애에 임하는 법을 알아봤다.
 

부캐 창조의 득

외국계 IT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이소라(27세) 씨는 ‘본캐’엔 없지만, 갖고 싶은 면을 가진 여성상을 자신의 ‘부캐’로 만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는 항상 연애할 때 혼자 있어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남자 친구에게 집착하고, 나만 바라봐주면 좋겠고 항상 같이 있고 싶은 게 솔직한 제 욕망인데, 그게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물론 완벽히 숨길 순 없지만, ‘나 혼자 시간 잘 보내’, ‘너 없어도 괜찮아’라고 쿨한 척해요. 물론 저랑 오래 사귄 남자 친구는 제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아요. 하하. 그래도 제가 그럴 때마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맞장구쳐주더라고요. 막 자기는 혼자 있으면 큰일나는 사람이라며 능청도 떨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길 때 다툼 대신 가벼운 장난으로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를 뜻하는 페르소나는 보통 타인, 혹은 집단이 요구하는 행동 규범과 역할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이를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멀티 페르소나는 이와 반대로 행동과 역할을 정하는 주체를 타인보다 자신의 욕구에 맞춘다. 이소라 씨 역시 자신이 갖고 싶은 ‘독립적인 성향’을 ‘부캐’를 통해  연애 문제의 해결책을 찾은 경우.
웹 디자이너 김유진(28세) 씨는 ‘되고 싶은 사람’을 부캐로 만들어 ‘놀다가’ 남자 친구를 만났다. “살면서 한 번도 이성에게 좋아한다고 표현한 적이 없어요. 저도 이런 제가 너무 답답하고 싫었어요. 어느 날 친구가 권해 소개팅 앱을 깔고 가입했는데, 왠지 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어쩌다 얻어 걸린 섹시하게 나온 사진을 프로필에 올렸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아주 물 만난 제시처럼 활개를 치고 다녔죠. 그러다 제 눈에 너무 잘생긴 남자를 만났는데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다짜고짜 너 좋다고 고백했어요. 그 남자가 지금 제 남친이에요.”
영화감독이 자신의 예술적 자아, 가치관, 성향을 드러내는 특정 배우 혹은 캐릭터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듯 당신 역시 자신이 꿈꾸는 연애에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를 만들어나갈 ‘캐릭터’를 그려볼 수 있다. 시치미와 뻔뻔함, 능청을 장착한 ‘부캐’라는 장치가 그것을 B급 놀이처럼 즐길 수 있게 한다. 구로연세봄정신의학과의원의 박종석 원장은 연애 관계에서 멀티 페르소나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적으로 거짓 자기라고 표현되며 평소에 무의식적 본능과 사회성 사이에서 적당한 영역을 표출하게 됩니다. 멀티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면 평소의 자신이 겪는 초자아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분리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토요일의 나는 ‘자유로운 힙스터’, 평일의 나는 ‘딱부러진 샐러리맨’으로 캐릭터를 설정해둔다면, 직장에서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주말이 되면 분리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멀티 페르소나는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균형적으로 배분하고, 한계를 억제하며, 때로는 분리할 수 있기에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부캐든 페르소나든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 모습과 진심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이 되는 연기

‘연애 부캐’와 관련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일반적인 남성들이, 혹은 당신이 썸을 타거나 사귀고 싶은 그 남자가 ‘좋아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의미도, 재미도 없는 페르소나다. 영화사에서 일하는 임상아(28세) 씨는 친구 얘기를 들려줬다. “여자들 사이에선 되게 털털한데 유독 남자 앞에선 차가운 친구가 있어요. 남자는 도도하고 자기 손에 도통 ‘안 잡히는’ 여자를 좋아한다나. 튕기고 밀당해야 여친한테 더 신경 쓰고 정성을 쏟는대요. 뭐, 실제로도 인기가 많아 처음엔 아, 진짜 그런 ‘컨셉질’을 해야 하나 보다 한 적도 있는데 가만히 보면 매번 자기랑 똑같은 애들만 만나는 것 같아요. 서로 허세부리고, 밀당하고, 싸우고 상처받다 얼마 안 가서 헤어지더라고요.”
여성을 향한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부캐’는 독이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촉진시킬 뿐이다. 하버드대에서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마리 루티 박사는 저서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조언을 전한다. “연애 지침서들은 여성에게 자신을 완벽한(갖기 어려운) 대상으로 만들라고 가르치죠. 이런 책들은 여성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을 남자가 욕망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박종석 원장도 페르소나가 온전히 자신의 욕망에 기인해 형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물론 때로는 타인의 욕망을 이뤄주고 싶다는 욕망도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나 자신의 소망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잃을까 걱정하는 유기 불안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에서 파생된 페르소나는 무척 연약하고 충동적이며, 감정 기복이 심할 수 있기에 오래 지속되기 힘듭니다. 따라서 내가 만든 캐릭터가 진짜 내가 원한 것인지,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강제된 것인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다움을 찾는 여정

멀티 페르소나는 ‘이성 앞에서 보이는 각기 다른 모습’ 혹은 ‘남자가 열광하는 여성상’을 연기하거나, 그 인격 뒤에 숨거나 흉내 내는 차원의 가면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내면에서 수많은 자신 중 하나를 꺼내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김난도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 인간의 다원성은 확장됐지만 정체성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혼란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자기 안의 더 많은 ‘부캐’와 적극적으로 부딪혀야 한다. 연애할 때 갖고 싶은, 연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다양한 ‘부캐’를 실험하거나 경험할수록 자신의 본캐, 잘 맞는 연애 정체성과 상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즉 많은 ‘나’들을 꺼내 지내보는 경험이 ‘나다움’을 찾는 여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케터 한수진(33세) 씨는 부캐의 여정이 ‘본캐’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상대와 잘 지내보려고 온갖 ‘○○한 여자’가 다 돼본 것 같아요. 쿨한 여자, 자유분방한 여자, 조용한 여자…. 물론 그런 모습도 나 자신이긴 하지만 뭔가 이 빠진 퍼즐처럼 띄엄띄엄 보여준 기분이랄까? 그런 연애는 끝나고 나면 ‘아, 내 진짜 모습은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 더 마음이 아파요. 부캐든 페르소나든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 모습과 진심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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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lancer Editor 류진
  • Art Designer 조예슬
  • Photo by Getty Images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