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파워 숄더, 1990년대 미니멀리즘, 2000년 초 힙합 스타일 등 최근 패션계는 레트로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런 신드롬에 이번 가을 새롭게 합류한 것은 1970년대 부르주아 룩! 주기마다 돌아오는 시대적 트렌드지만 이번 1970년대가 신선한 것은 팬츠 슈트, A라인 스커트, 패턴 블라우스, 트렌치코트 등 기존과 차별화되는 우아한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유분방하고 글래머러스한 스타일과 더불어 팬츠 슈트, 스커트 슈트 같은 클래식한 스타일 역시 1970년대 유행 코드였다.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는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흔들리며 1960년대에 비해 실용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패션에서는 1960년대를 풍미한 미니스커트 대신 우아한 미디스커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1966년에 생로랑의 르 스모킹 룩이 큰 반향을 일으킨 이후 스타일에도 남녀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팬츠 슈트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1970년대에서 매번 영감을 받던 글램, 펑크, 에스닉이 아닌 보다 실용적이고 클래식한 1970년대 스타일을 소환했다. 이를 주도한 디자이너는 단연 셀린느의 에디 슬리먼! 그는 클래식한 재킷, 퀼로트 팬츠, 플레어스커트에 보잉 선글라스와 사이하이 부츠를 매치한 프렌치 부르주아 룩으로 런웨이를 물들였다(이번 컬렉션으로 피비 필로의 흔적을 지우는 듯한 에디 슬리먼에게 호평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이번 쇼는 내가 스튜디오 54에서 경험한 1970년대가 주제다. 당시 스튜디오 54에 온 사람들은 어떤 제약도, 규칙도, 드레스 코드도 없었다. 1970년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입었고, 그 자체로 멋지고 화려했던 시대였다”라며 패턴감이 돋보이는 슈트와 페전트풍 드레스를 제안했다. 지방시의 런웨이에는 컬러 셔츠 및 체크 팬츠 슈트와 플랫폼 슈즈로 1970년대 무드가 드리워졌고, 빅토리아 베컴과 버버리는 아가일 스웨터와 플레어스커트 등 단정한 아이템의 조합으로 1970년대 어번 레이디 룩을 완성했다. 구찌에서는 비앙카 재거의 룩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슈트 룩과 1970년대 스리피스 슈트를 선보였다. 부르주아 룩이 강세지만 1970년대에 뿌리를 둔 정제된 보헤미안 스타일도 지난 시즌에 이어 런웨이를 누비고 있다. 끌로에는 벨보텀 팬츠와 실키한 드레스로 2019년식 보헤미안 룩을 완성했고, 케이트 스페이드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1930년대 플래퍼 룩과 1970년대 특유의 플레어 팬츠 실루엣의 조합으로 레트로 무드를 강조했다.
이토록 다양하게 해석된 1970년대 무드를 현실에서 소화하는 방법은? 의외로 가장 쉬운 스타일링은 팬츠 슈트다. 플레어 팬츠 실루엣의 팬츠 슈트만 있으면 다양하게 1970년대 무드를 즐길 수 있다. 지방시 컬렉션처럼 벨트로 허리를 강조하면 액세서리가 모던하더라도 1970년대 분위기가 드리워진다. 패턴감 있는 블라우스와 플리츠스커트를 활용하면 우아함을 더욱 강조할수 있다. 여기에 트렌치코트나 광택감 있는 가죽 아우터를 더하면 레트로를 동시대적으로 즐길 수 있다. 기존 아이템으로 1970년대 룩을 연출하고 싶다면? 1970년대 실루엣을 완성하는 것이 답이다. 1970년대는 상의는 슬림하고 팬츠나 스커트는 풍성한 A실루엣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플레어 또는 플리츠 스커트를 활용하자. 여기에 벨트와 롱부츠를 더하면 1970년대 레이디로 변신 완료다! 사실 패션에는 단순히 멋져 보이는 스타일 속에 그 시대 문화와 전반적인 사회 현상이 반영돼 있다. 디자이너들은 1970년대 스타일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여성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아하고 글래머러스하지만 자유로움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 그 시대 여성들 말이다.
2019년 런웨이에서 마주하는 1970년대 스타일 아이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