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썸이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데이트도 하고, 사소한 일상도 나누며, 가끔 술 한잔 후 스킨십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관계가 발전도 없고 게다가 끝도 안 난다. 이 아리송한 관계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끝없는 썸의 뫼비우스의띠에서 벗어날 순 없을까? 코스모가 전문가들과 함께 ‘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탐구했다. | 이유,연애,반쪽짜리 관계,가치관 연애관,관계 심리

“연애 안 한 지 얼마나 됐어?”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마땅한 답을 찾기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숫자를 세는 대신 ‘그 남자와 나는 뭐였지?’, ‘지금 걔랑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따위의 의문이 먼저 떠올라서. 연애라고 하기엔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이런 관계를 우리나라에선 ‘썸’, 미국에선 ‘Almost Relationship(이하 AR)’이라고 말한다. 알다시피 이 관계에 내릴 수 있는 뾰족한 정의는 딱히 없다. ‘사람들에게 연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 이외의 모든 관계가 썸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함께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며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 어떤 이에겐 ‘손이나 슬쩍 잡다가 분위기 타면 키스도 할 수 있는 남자’, 혹은 ‘섹스도 하는 관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21세기에 썸은 엄연히 새로운 형태의 관계다. 행동 심리학자 헬런 피셔는 관계의 정의(define the relationship:DTR)를 미루는 이러한 만남의 형태를 ‘빠른 섹스, 느린 사랑’으로 명명한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는 밀레니얼 세대가 50대가 됐을 때쯤엔 4명 중 1명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일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그 1명에 해당하는 이들이 무성애자가 아닌 이상, 적어도 ‘AR’이라는 관계 속에서 연애와 사랑을 하고 있을 거란 뜻이다. 당신이 현재 맺고 있는 관계가 썸이라는 사실에 별 불만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좋지만, 아무리 누군가를 만나도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 패턴에 상처를 받았거나 불만을 느낀다면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보자.   ‘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썸(혹은 AR)은 건강한 관계일까? 뉴욕에서 활동하는 심리 치료사 에이미 하스테인은 ‘No’라고 말한다. “AR은 득보다 실이 더 많습니다. 원론적으론 ‘잠재적 연애’라고 볼 수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시작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이 이상하고 헷갈리는, 어쩌면 잘 풀릴 수도 있는 관계가 소득 없이 끝났을 때 마치 오래 사귄 사람과의 이별처럼 당신의 폐부를 깊숙이 찌를 수도 있어요.” 반복되는 썸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관계 심리 전문가 김정연 코치는 썸에 머무는 이들 대부분이 그와 자신의 관계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회피적 습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그와 어떤 관계로 나아갈지 결정을 미룬 채 그저 후보를 늘리며 고르기만 하는 거죠.” 데이트를 안 한 건 아닌데, 공식적으로 누군가의 ‘여자 친구’라는 라벨을 가져본 지 오래됐는가? 만약 그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되돌아보자. 내가 그의 ‘신호’를 외면하진 않았나? 혹은 상대가 어떤 행동을 저지르기만을 바라며 가만히 앉아 기다린 건 아닌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그가 당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퇴한 적은 없었나? 그러곤 “괜찮은 남자는 멸종했다”거나 “연애나 결혼을 해도 외로운 건 매한가지”라는 말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연애를 안 하는 건 죄가 아니지만, 원하면서 회피하는 건 건강한 멘탈이 아니다.     끊어야 할 ‘썸’ 관계에서 완벽한 균형은 없다. 한쪽의 마음이 더 크기 마련이다. 당신이 썸이었던 남자와 끝나서 슬프거나 속상하다면 그건 그에게 뭔가를 더 원했고, 그는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끊어야 할 썸의 힌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썸남에게 종종 서운함을 느끼는가? 그 관계가 ‘해피 엔딩’이 아니라면 타격이 클 것 같은가? 그렇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퍼포먼스 마케터 박우연(34세) 씨는 썸으로 상처받았던 기억을 토로했다. “이별의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한 후엔 데이트가 슬슬 그리워졌어요. 마침 제 주변을 맴돌던 남사친이 평소랑 다르게 접근해 오더라고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시작됐고 우린 그 뒤로 흔히 말하는 ‘썸’을 탔죠. 처음엔 구속감이나 의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저 가볍게 데이트하고, 가끔 섹스하는 이 관계가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느 날 밤늦게 그가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했을 때 거절 못 하고 나가는 제가 꼭 ‘콜걸’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어요. ‘이건 아니다’ 생각했고, 그 뒤로 그 친구랑 연락을 끊었습니다. 한동안 기분이 정말 별로였어요.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남녀가 상대를 탐색하기 위해 갖는 ‘썸’이 아니라 그저 썸으로만 정의된 관계는 저한텐 안 맞았던 거예요.” 그와의 관계를 ‘썸’으로만 유지해도 충분한지, 혹은 더 발전하고 싶은지 확실히 한 후 상대의 행동과 의사를 살펴라. 당신은 후자지만 그는 전자에 가깝다면 당장 관계를 멈춰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 ‘n년째 썸만 타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썸이 아닐 수도 있다.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다양한 직업과 가치관, 연애관을 가진 10명의 남성에게 썸의 유효기간을 물은 결과, 돌아온 대답은 놀랍게도 일관적이었다. 10명 모두 ‘연인’으로 발전한 이성과 평균 한 달, 길어야 두 달 동안 썸을 탔다고 응답했다. 꽤 많은 남자가 1~2개월 안에 관계를 결정한다는 뜻. 오랜 기간 썸이라고 믿었던 상대가 있다면 그와의 관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너무 외로울 땐 그가 그저 섹스나 한 번 하기 위해 던지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칭찬 공세를 ‘그린 라이트’라고 믿고 싶겠지만(주로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자가 보이는 행태다)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차리자. 그 남자는 당신의 ‘남자 친구’가 될 생각이 없다.   ‘썸’에서 ‘연애’로 불량한 썸이 판치는 세계지만 썸이 연애의 전 단계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썸의 굴레를 벗어나 연애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긴 시간동안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이에게 썸남을 남친으로 만드는 알량한 기술 같은 건 좋은 답이 아니다. 그 전에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 정의되지 않은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는가? 혹은 진지한 관계를 갖고 싶은가?’ 후자를 원하는데 썸만 반복된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실은 내가 모호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갖고 있진 않았나? 연애를 하고 싶지만 쿨해 보이고 싶어 필요 없는 척, 그저 누군가를 곁에 두는 데만 급급하진 않았는지? 이런 상황을 스스로 반복하는 건 결국 당신의 관계 습관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간혹 ‘연애 고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반쪽짜리 관계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란 조언을 할 때가 있다. 이 허튼소리에 미련이 생긴다면 다음 사실을 기억하라. 그 반쪽짜리 ‘썸남’은 끝까지 당신이 원하는 걸 주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썸남이 ‘나쁜 X’는 아니다. 당신처럼 그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돈나 헤닝은 직설적인 소통을 통해 두 사람이 AR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일단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물론 상대방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겠죠. ‘이 사람 말고도 다른 이를 만나고 싶은가? 혹은 만날 수 있나?’ 만약 둘 중 하나가 지금보다 더 나아가길 원한다면, 그 ‘가능성’이 열려 있는가에 대한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겠죠. 당신과 그가 뭘 원하는지 안다면 서로가 원하는 속도에 맞춰 한 단계 발전하거나, 혹은 (머무르길 원한다면) AR이 주는 관계의 유연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결론은 이렇다. 당신이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면 부질없는 희망을 주는 썸남과 갖는 연애 비슷한 관계, 그의 부족한 ‘대우’에 자족도, 안주도 하지 말 것. 당신은 마땅히 한쪽짜리, 진짜 관계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