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세계 유방암의 날, 유방암 재발 위험과 삶에 관한 이야기
<코스모폴리탄>과 한국 노바티스가 10월 19일 세계 유방암의 날을 맞아 조기유방암의 재발 위험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함께 했다. 그 안에서 만난 4명의 환우, 그리고 환자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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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재발 위험은 누구에게나 제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일부 조기유방암 환자(조기유방암 중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형에 해당)의 경우 5년에 걸친 내분비 치료를 마친 후에도 재발 위험은 20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1) 그렇기에 환자에 따라 장기적 치료와 관리가 필요할 수 있고, 유방암 치료를 종료했다고 해서 병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2),3) 이번 캠페인은 유방암 환자가 항암 치료 이후 병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일상과 대인 관계, 사회생활 등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명한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유방암 환우들이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재발 관리에 대해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서로의 ‘원더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인플루언서
스웨이드 재킷 Coach. 셔츠, 귀고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30대 초반의 나이인 지난 1월, ‘침윤성 호르몬 양성 유방암 1기’를 진단받았다. 이후 4회 차 항암을 마치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개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병 일지를 공유하고, 소통한다.
항암 치료를 모두 마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재발하지 않도록 ‘평생 관리’라는 최소 5년짜리 숙제가 남았기 때문에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아프기 전의 나’로 돌아가서 편히 살 수는 없겠다는 속상함과 ‘이렇게 건강을 챙기고 살다가도 재발하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감, 우울함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한 번에 몰려왔죠.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잦은 술자리,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에 소홀했다면, 지금의 저는 6시간 이상 수면을 지키려고 하고, 술은 마시지 않아요. 가끔 정말 비싸고 좋은 술을 먹을 기회가 오면 한 잔 정도는 해야겠다 생각하죠.(웃음) 현재 항호르몬제 복용으로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는데, 머리로 열이 확 오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이를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요가나 프리다이빙을 배워볼 생각입니다.
새롭게 얻거나 배운 점은요?
‘아픈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보게 하고, 먹이고, 입히고, 들려주고, 떠올리게 해야지. 내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돼야지’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어요. 아프기 전에는 저 자신에게 참 모질었거든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굶거나 참치 캔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고, 피곤해도 술을 마시고, 밤새워 영상을 편집한 뒤 해가 뜨면 잠들곤 했어요. 이제는 그때의 삶이 잘못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술자리를 예쁘게 거절하는 방법도 배워가는 중입니다.
인플루언서라는 직업 특성상 외적인 변화도 큰 부담이었을 것 같아요.
항암 탈모를 피할 수는 없었죠. 저는 지인이 알려준 ‘쿨링캡’(항암 치료 시 탈모를 줄이기 위해 두피를 차갑게 식혀주는 의료 기기)을 통해 머리카락을 절반 정도는 지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정수리 가발만 쓰면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죠. 그래도 좋았던 건 보디 제모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웃음)
투병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덕분이었어요. 인생의 우선순위가 저 자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앞으로 내게 좋은 것들을 베풀고 스스로를 가꾸다 보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멋있고 아름다워질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죠. 그리고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순기능으로 작용했어요. 많은 분에게 위로받았고, 또 위로가 됐다는 말도 들었죠. 그런 분들과의 소통이 살아 숨 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FUN FEARLESS FEMALE은?
산전수전 다 겪고도 예쁘고 섹시한 바로 나 자신.
김혜진 임상병리사
스웨터 &Other Stories. 로퍼 Zara. 셔츠,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해 5월, 30대 초반의 나이에 ‘호르몬 양성 유방암 3기 후반’ 판정을 받고, 12월에 마지막 항암을 마쳤다. 현재 재발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치료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30대 초반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건 삶에서 어떤 의미였나요?
‘우리 아기 아직 어린데 어떡하지’ 이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젊은 나이에 겪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이제는 어떤 일이 닥쳐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힘든 순간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암에 걸리고 저희 부모님은 제 병을 고치는 데 총력을 기울이 서 이 과정을 지나왔다면 무척 외롭고 우울했을 것 같아요. 가족의 헌신과 사랑 덕분에 기운이 났고, 암 환자라는 사실조차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감사해요.
치료가 끝난 후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재발 위험이 높은 걸 알았기 때문에 과거처럼 먹고 마시며 살진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신체적 혹은 심리적으로 가장 변화한 것은요?
우선 아직까지 머리카락이 짧다는 것, 그리고 한쪽 가슴을 절제했다는 것. 예전처럼 생활하면 나머지 가슴 한쪽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고요. 심리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제 옆에서 힘이 돼준 가족 덕분이에요.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실천하는 것은 뭔가요?
식습관이에요. 먹는 것을 완전히 바꿨어요. 굽거나 볶기보다는 쪄서 먹고, 인공적인 단맛이나 자극적인 맛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어요.
건강을 되찾고 반갑게 느껴진 소소한 일상이 있나요?
항암 치료를 할 때는 약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는데 이제는 식사량도 늘고 밥 먹는 게 힘들지 않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요?
암을 앓기 전보다 몸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좋은 것만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다 보니 오히려 체력도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죠. 식습관이 개선돼 피부도 더 좋아졌습니다.
이번 유방암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암 환자들을 그저 동정 어린 시선으로만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환자가 돼보니 동정보다는 응원이 더 좋았습니다. “당신은 나을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FUN FEARLESS FEMALE은?
유쾌하고 용감하게 유방암 3기를 극복하고 있는 저 자신. 재발이 두렵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어요. ‘암은 극복할 수 있는 세포의 변형일 뿐이다.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면서요.
박경희 의사
레더 재킷 Weekend Max Mara. 셔츠, 팬츠, 귀고리, 펌프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알레르기내과 임상부교수. 약 17년 전, 20대 초반의 나이에 ‘삼중 음성 유방암 3기 후반’ 판정을 받았다. 투병 중에 결혼과 출산, 의사 복귀까지 모두 해냈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요?
처음 진단명을 들었을 때, 왜 그동안 ‘나’를 잘 돌보지 못했을까 자책했어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항암 치료를 모두 마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다행이다, 후련하다. 그렇지만 걱정이 된다. 잡고 있던 동아줄을 놓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모두 제 몫이라는 생각에 두려웠죠. 또 부종, 탈모 등 외모의 변화도 아직 회복되지 않아 정서적으로 많이 위축되기도 했고요. 재발 위험을 안고도 임신과 출산을 결심했습니
다. 당시 고민이 없었나요? 암과 투병하는 나를 지지해주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큰 고민 없이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두었습니다. 오히려 아프지 않았더라면 일에 치여서 결혼과 출산 모두를 놓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암 치료와 재발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환우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루어 짐작해 미리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학은 매일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일을 하는 많은 의사들이 있어요. 쉽지 않겠지만, 불안이 당신의 삶을 잠식하지 않게 하세요. 의외로 시간은 빨리 흐릅니다. 하루하루 나와 주변을 돌보며 살다 보면 그 시간이 1년, 5년, 10년이 되더군요. 인생은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힘이 들어 잠시 걷거나, 멈춰서 쉬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저서 <유방암, 굿바이>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흔적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방암을 경험한 이후 새롭게 얻거나 배운 것이 있나요?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그 끝이 있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후회되거나 아쉬움이 없도록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과거에 힘든 투병을 거쳤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려 노력하다 보니 그 시간이 벌써 17년이라는 세월이 됐습니다. 과거의 내가 포기했더라면 지금 누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겁니다. 과거를 되돌아볼 미래의 나를 그리며 살아봅시다.
당신이 생각하는 FUN FEARLESS FEMALE은?
늘 지혜롭고 인자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자식 낳고 손주 보고, 이런저런 인생의 파고를 넘어 평안과 해탈의 경지에 이른 우리네 할머니들.
용석경 직장인, 작가
스커트 Allsaints. 니트 톱, 귀고리, 반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6년 전, 마흔 살의 나이에 ‘호르몬 양성 유방암 2기’를 진단받았다. 이후 유방 부분 절제술과 항암 치료, 23회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끝낸 뒤 일터인 삼성전자에 복귀했다. 에세이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살아낸 김에, 즐겨볼까?>를 펴내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항암 치료를 모두 마쳤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이제 환자라는 걸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세요.” 치료 마지막 날 진료실에서 들었던 말이에요. 간절히 원했던 순간이었는데 기쁜 건 잠깐이고 막막함과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변해버린 몸과 마음에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몸을 살피며 불안함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치료가 끝난 후 몸 상태는 어땠나요?
몸이 바로 예전처럼 돌아오지는 않았어요.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가장 크게 느낀 건 체력 저하와 암성 피로였어요. 피부가 예민해져서 발진이 나타나고, 옷의 솔기에도 통증을 느껴 죄다 뒤집어 입어야 했죠. 항암 치료가 끝난 것도 잠시, 곧바로 항호르몬 요법을 진행했는데 극심한 관절통과 감정 기복 같은 갱년기 증상까지 나타났어요.
힘들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고비의 순간마다 힘이 된 건 결국 사람과 일상이었어요. 저의 쾌유를 기원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 의료진, 회사 동료들이요. 살아내려는 본능은 결국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간 돌보지 못했던 나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하고 싶어요. 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추억도 만들어가고 싶고요.
직장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사회로 돌아가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암을 치료하고 사회로 복귀하는 비율은 10명 중에 3명이라고 해요. 암 경험 후 사회로 복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숫자죠. 그럼에도 일상 회복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용기를 냈어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더라고요. 병가 후 복귀라 규정상 연차가 없어 아파도 쉴 수 없고, 병원 치료도 부담스러웠죠. 예전에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회식, 야근, 출장도 고민거리가 되더라고요. 암으로 멈춰진 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나간 동료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어요. 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제도가 보완된다면 복귀해서 적응하는 과정이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제가 속한 팀의 구성원들이 나를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회복을 향한 동기부여이자 든든한 안정감을 줬어요. 특히 복귀 초반에 위축돼 있는 제게 “다시 건강하게 돌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업무는 천천히 적응하시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조용한 위로를 건넨 동료의 말이 무척 큰 힘이 됐죠. 암 경험자라는 이유로 특별히 대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봐주는 것,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기꺼이 손 내밀어주는 것이 참 고맙더라고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유방암 극복 이후 <유방암이지만 괜찮아> <살아낸 김에, 즐겨볼까?> 두 권의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뭔가요?
첫 책은 치료 후 흐트러진 제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은 열망과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집필을 시작했어요. 진단부터 치료, 일상 복귀까지의 여정을 담았죠. 두 번째 책은 저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이들을 위해 제 삶의 변화를 기록해서 함께 나누면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결심하게 됐어요. 얼떨결에 두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어 기쁘고요, 무엇보다 수익금의 일부를 소아암 환아들을 위해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감사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FUN FEARLESS FEMALE은?
저의 어머니 이경연 여사님. 어느새 일흔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단단하고 용감하면서 호기심 많은 여성입니다. 혼자 어린 남매를 키우느라 형편이 어려우셨지만 늘 반짝이는 눈빛으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놓지 않으셨어요.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 Pan H, Gray R, Braybrooke J, et al. 20-year risks of breast-cancer recurrence after stopping endocrine therapy at 5 Years. N Engl J Med. 2017;377(19):1836-1846.
2) Wangchinda P, Ithimakin S. Factors that predict recurrence later than 5 years after initial treatment in operable breast cancer. World J Surg Oncol. 2016;14(1):223.
3) Gomis RR, Gawrzak S. Tumor cell dormancy. Mol Oncol. 2017;11(1):62-78.
심의 코드 FA-11788521_15Sep2028
Credit
- 피처 에디터 김미나
- 사진 배준선
- 헤어 박은총
- 메이크업 김라희
- 스타일리스트 김나현
- 어시스턴트 정주원
- 아트 디자이너 김진림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 지원 한국 노바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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