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한 이유 #러브이코노믹스
주식처럼 사랑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리기엔 정서적·육체적·사회적으로 대표되는, 세부적인 카테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3가지 비율을 정하는 건 당신의 몫이지만 분산은 생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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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갓 20살이 된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다. ‘20살’과 ‘첫 연애’라니.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사실 좀 폭력적이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젊음도 무적이고, 사랑도 무적인데, 젊은 날의 사랑이라니.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처럼 목울대까지 사랑이 울렁거려서 토해내지 않고는 도저히 못 버티겠는 그 느낌. 그가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떠벌리고 싶었다. 만개하는 벚꽃도 우리의 사랑을 위한 엑스트라일 뿐이었다. 나는 내 돈과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를 모두 사랑에 쏟아부었다.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뒤로 제쳐두고, 내 세상 전부를 그로 채웠다. 세상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막을 수 있었지만. 남들 다 그러는 것처럼 우리도 당연히 이별을 했다. 다만 나는 좀 더 충격적인 이별이었다. 그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흔해 빠진 얘기처럼 미팅을 나갔는데 너무 예쁜 여자가 있었다거나, 술에 취해 원나이트 스탠드를 했다면 차라리 나았겠다. 나와 겹치게 시작한 그의 새로운 연인은 나의 친한 친구였다. 내가 그와 헤어져서 엉엉 울 때 괜찮다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 그러니 그때의 내가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근 3개월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폐인처럼 지냈다. 밥을 먹다가도 울고, 노래를 듣다가도 울고, 예능을 보다가도 울었다. 공부도, 시험도, 운동도, 취미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심장이 아파서 타이레놀을 일주일에 두 통씩 털어 넣었다. 그때는 내가 이토록 아픈 이유가 그와의 이별이 슬프고, 그 이유가 너무 충격적이어서라고 생각했다. 사랑과 우정 모두를 잃었으니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의 배신에 내 삶이 통째로 뒤흔들린 이유는 그 사랑이 너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이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즉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가 없어서였음을.
용기 내 시장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시장의 룰을 익히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투자든 사랑이든 시작은 ‘그냥’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에는 반드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경영인 마인드로 우리의 계좌와 사랑에 접근해야 한다. 하찮은 밀당, 유치한 주도권 싸움, 누가 더 사랑하는지를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사랑을 오래 복리로 불려가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베이스캠프를 세워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분산투자, 즉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이다. 시장도, 사랑도 내가 잘한다고 해서 언제나 안정적인 상태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노력과 무관한 일들이 내 계좌와 감정을 흔드는 일은 무조건 생긴다. 당장 지금만 해도 전쟁은 미국과 이란이 하는데 미사일은 우리 계좌도 같이 맞지 않았는가. 지정학적 이슈 등의 외부 요인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고, 그럴 때 잘 조직해둔 포트폴리오가 있다면 이 험난한 시간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다. 포트폴리오가 무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락은 알고 맞아도 아프다. 하지만 알고 맞으면 골이 띵한 대미지 정도로 끝낼 수 있지만 모른 채로 맞으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포트폴리오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에는 어떤 종목을 넣어야 할까? 투자 성향, 사이클, 현재 정세 등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위험 자산이다. 주식, 코인 등 우리가 “투자한다”라고 말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녀석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부동산 투자를 특별히 하고 있지 않다면 사실상 포트폴리오의 본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말 그대로 위험 자산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도 섹터를 분류해 그 자체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투자 경험이 없는 사람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좋은 거 이젠 전 국민이 다 안다. 하지만 그 좋다는 반도체도 지금의 슈퍼 사이클을 맞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도체가 지지부진했던 동안 바이오, 정치 테마주 등 다양한 사이클이 돌았고, 그때마다 개별 주가들은 한 달에 몇백 프로씩 움직이기도 했다. 만일 당신이 삼성전자, 하이닉스에 재산을 올인해두었다고 가정해보자. 직장 동료의 바이오 종목이 개별 호재에 힘입어 박스권을 돌파하고, 옆집 할머니의 정치 테마주가 하루 만에 상한가 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상황에서도 반도체에 대한 믿음 하나로 손가락 꾹 참고 지켜보기만 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믿음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조급함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에이, 지금 들어가긴 늦었지’ 하다가도 계속 오르는 주가를 보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나?’가 되고, ‘지금이라도 사야 해!’가 돼서 꼭 고점에 꼭지를 잡게 되는 것이다.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포모’를 이기지 못해 남의 상승장만 보며 괜히 자기 계좌를 뒤집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사랑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랑도 반드시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사랑을 하나의 감정으로 뭉뚱그려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성격의 자산군 집합임을 알 수 있다. 이해와 다정을 바탕으로 사랑의 근간을 이루는 정서적 사랑, 정서적 사랑 안에서 더 은밀하게 둘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육체적 사랑, 그리고 세상 속에서 ‘우리’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정감까지. 이 셋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같이 쓰지만, 각기 다른 섹터의 다른 자산군이라고 보는 게 맞다. 건강한 사랑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3가지를 잘 구분해 적정한 비율로 담고, 연애 시기와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꾸준히 리밸런싱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쪽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다른 것을 짓눌러버리는 때가 와도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 관계가 문제없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서적 사랑은 모든 사랑의 베이스다. 말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위하는 것. 하지만 정서적 사랑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가장 쉬운 사랑이다. 만일 상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에게 집착하고, 의심하고, 가스라이팅을 가할 때 섹스가 너무 잘 맞아서 헤어짐을 망설이게 된다면 이건 육체적 사랑에 포지션이 과하게 들어간 잘못된 포트폴리오다. 섹스가 좋으면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멍청해진다. 생활력, 책임감, 대화의 깊이, 감정의 안정성 같은 중요한 요소가 ‘그래도 섹스가 잘 맞으니까’라는 한 줄로 정당화된다. 훌륭한 섹스는 형편없는 관계를 꽤 오랫동안 버티게 만든다. 섹스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 장기 보유를 택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신적으로는 이 이상의 소울메이트가 없는데 몸이 안 맞아 고민하는 인연들도 얼마나 많은가. “마음이 중요하지”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섹스는 또 너무 중요한 자산이다. 비중 조절이라는 건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둘이 함께 있을 때 행복한 것을 넘어 사회적 인정, 안정을 갖추었는가도 무시할 수 없는 러브 포지션 중 하나다.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소개하기에 괜찮은지, 괜히 한 소리 들을 만한 부분은 없는지. 이것 또한 꼭 일정 비율로 포트폴리오에 담아둬야 한다. “사랑은 둘이 하는 건데 남들이 보는 게 뭐가 중요해욧!” 같은 말랑말랑한 소리는 하지 말자,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구조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고, 둘이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연애란 수많은 갈림길 중 딱 하나만을 선택해 걸어야 하는 길이다. “걔는 외모가 좀...”, “걔는 연봉이 좀...” 같은 소리에 휘둘리란 얘기가 아니다(만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반드시 손절하시라. 손절은 당장의 손실을 가져오지만 미래의 더 큰 손실은 반드시 막아준다). 하지만 당신의 주변에는 연인 외에도 당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랑이 있다. 부모, 친구, 동료, 하다못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까지. 여러 사랑이 당신의 사랑을 염려한다면 한 번쯤은 꼭 체크해보란 얘기다.
건강한 사랑은 이 3가지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낮에는 말이 통하고, 밤에는 몸이 맞고, 주변의 응원 속에서 함께 피워내는 것. 그럼 어떤 포지션을 어느 정도 잡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가장 맞는 비율을 찾기 위해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그것이 내가 앞서 강조했던 빠르게 시장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좋은 포트폴리오는 유행이 아니라 체질에 맞는 것이다. 공격형, 안정형, 배당형, 성장형 다 좋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당신의 체질에 맞는 러브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해보자. 3가지 사랑이 모두 완벽할 필요도 없고, 셋의 비중이 동일할 필요도 없다. 비율은 취향이다. 하지만 분산은 생존이다. 계란을 절대, 절대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글 니주
- 일러스트 SEOI
- 디지털 디자이너 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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