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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서울'과 '하이파이브' 이재인에게 가장 애틋한 작품은 무엇?

소녀 재인의 세상은 무럭무럭 자라서. 이재인이 꿈꾸는 오늘.

프로필 by 천일홍 2025.08.04
베스트, 팬츠, 슈즈 모두 McQueen. 이어 커프 Tom Wood. 글러브, 리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베스트, 팬츠, 슈즈 모두 McQueen. 이어 커프 Tom Wood. 글러브, 리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보여줬던 액션 연기 못지않은 포즈들을 코스모 카메라 앞에서 펼쳤어요. 복싱도 하고, 카우걸처럼 총도 쏘면서요.(웃음)

전 영상이 익숙한 편이라 사진 작업은 항상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래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모습을 담은 것 같아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인스타그램 너머로 본 재인 씨의 일상에서도 이 화보처럼 활동적인 면면이 보였거든요. 주짓수를 하고 보드도 타던 취미는 여전해요?

시간이 날 때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해요. 요즘은 특히 게임이 좋아졌는데, 아! 한강에 가서 농구하는 것도 좋아해요.


와! 농구요?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랑 1:1이나 2:2로 슛 내기 정도? 그래도 저 슛 잘 쏩니다! 3점까진 아니어도 2.5점 슛까지는 가능해요. 한 손 쏘기로 공을 던지거든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러고 보니 유독 작품에서 운동하는 인물을 많이 연기했네요.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선 육상 선수였고, <하이파이브>에선 태권도를,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는 배드민턴을 했죠.

맞아요. 그 전까지는 주로 정적이고 딥한 계열의 작품이 많았는데, <라켓소년단>을 기점으로 스포츠와 관련된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여러 작품을 해보면서 느낀 건데, 스포츠를 통해 표현 가능한 인간의 감정이나 마음이 있다는 게 특히 재미있더라고요. 스포츠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도 좋았고, <미지의 서울>의 ‘미지’를 통해서는 불안함도 표현해봤고요.


<미지의 서울> 종영 후 여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요.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 재인 씨가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을 보게 됐는데 눈물이 찔끔 난 거 있죠.(웃음)

으아, 저 사실 그 글을 올린 건 살짝 창피하긴 한데(웃음) ‘미지’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 할머니가 얘기하시잖아요. “‘미지’의 이름처럼 아직 모르는 거야.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지만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오늘을 살자.” 그 말이 저한테도 너무 필요했어요. 나중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과거 일을 후회하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그럼 다음 날 컨디션도 좋지 않잖아요. 그게 참 무의미하고, 그저 오늘을 잘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게 너무 와닿았어요. 그리고 전 캐릭터의 이름이 ‘미지’, ‘미래’인 것도 진짜 좋았어요.


왜요?

‘미래’가 없는, 미지의 서울에 남겨진 ‘미지’인 거잖아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름이라는 게 참 좋더라고요.


미래가 없는 미지의 서울, 정말 그렇네요. 그렇다면 ‘재인의 서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미지’, ‘미래’랑 되게 비슷하게 강원도 시골에서 자랐어요. 드라마에서 ‘미지’가 그런 말도 하잖아요.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다고. 제게도 서울이 그런 곳이었어요. 실제로 올라와보니까 정말 ‘미지의 서울’의 느낌이 있었죠. 어딘가 차갑고 삭막해 보이기도 하고.(웃음) 그래도 전 이 도시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차가움 속에 따뜻함이 공존하는 느낌. 그걸 너무 표현해보고 싶어 제 단편영화에 담으려고 했어요. <미지의 서울> 촬영 중간에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그 작품의 배경도 서울이에요. 강원도에서 상경한 인물이 서울을 헤매는 이야기죠.


재인 씨의 연출작이군요?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영화겠어요.

제가 연출도 하고, 주인공도 하고 주변 지인분들께 “도와주십쇼!” 하면서 찍었죠.(웃음) 제 이야기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어요. 제목은 <홈리스 크리스마스>예요.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이 친구한테는 휴대폰도 없고 돈도, 카드도 없는 상태거든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인물이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잘 곳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그리죠.


피케 셔츠 Sporty & Rich. 셔츠 Cos. 미니스커트 Nehera. 꽃 브로치 Lots You. 반지 Swarovski. 안경 Miu Miu by Luxottica. 슈즈 AsicsxCecilie Bahnsen. 타이,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피케 셔츠 Sporty & Rich. 셔츠 Cos. 미니스커트 Nehera. 꽃 브로치 Lots You. 반지 Swarovski. 안경 Miu Miu by Luxottica. 슈즈 AsicsxCecilie Bahnsen. 타이,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렇게 들으니 얼른 보고 싶은데요.

후반 작업이 조금 남았어요. 관객분들께 보여드릴 방법도 잘 찾아볼게요. 사실 <하이파이브> 강형철 감독님께서 제가 연출 쪽에 관심 있는 걸 아시니까, 후반 작업에도 참여시켜주셨어요. CG가 입혀지기 전 컷 편집도 보여주시고, 최종 믹싱할 때도 작업 과정을 보여주셨죠. 그렇게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를 보니까 새삼 이 작품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게 참 대단한 일이구나 싶고요. 연기적으로도 <미지의 서울>과는 다른, 특이하고 색다른 모습의 캐릭터도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어요.


데뷔는 무려 7살 때 출연한 <뽀뽀뽀>였죠. 연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예요?

드라마 데뷔는 <노란 복수초>라는 작품이었는데, 꽃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어요. 촬영장에 가서 그 꽃을 쳐다보고 있는데, 너무 조화 티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와… 너무 가짜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게 제 첫 번째 기억이에요.(웃음)


너무 어렸으니까.(웃음) 지금껏 연기하며 이재인에게 가장 깊게 각인된 인물이 있다면요?

좋아하고 아끼는 캐릭터가 많은데 그래도 가장 애틋한 건 <하이파이브>의 ‘완서’예요. 초능력자인 히어로를 연기해본 경험도 너무 신이 나고 즐거웠지만, 그걸 떠나서 저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기도 하거든요. ‘완서’는 거의 연기를 안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첫 인물이에요. 이번에 강형철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연기할 때 내 본연의 모습과 매력을 보여줘도 되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캐릭터에 맞춰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만나고 나선 내게 있는 재료로 연기를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죠.


재인과 ‘완서’가 가장 맞닿아 있는 지점은요?

촬영이 워낙 많기도 했고, 연기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완서’도 비슷해요. 아파서 학교를 갈 수 없었던 ‘완서’에게도 또래 친구들은 없어요. 대신 하이파이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놀죠. 저도 촬영장에서 감독님과 매일매일 영화 이야기하고, 배우분들이랑 촬영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다니면서 외롭다는 생각 없이 잘 지나온 것 같아요.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인물이네요.

그렇죠. 그 시기에 ‘완서’와 너무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약~간은 후회되는 게 극 중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이 있어요. 아빠한테 왜 나를 구속하냐고, 난 친구도 없다고 말하면서요.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몰입해 감정이 더 올라왔던 것 같아요. 나중에 모니터링하면서 감독님께 “저 너무 과몰입한 건 아닐까요?”라고 했는데, “아냐. 그게 그때 너의 감정이었던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감독님과 촬영하면서 영화를 더 많이 찍고, 또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게는 영화의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웃음)


슬리브리스 톱 Eenk. 이너 톱 Patton. 미니스커트 YCH. 양말 Cladda. 목걸이 Tokokkino. 반지 (위부터)Iceball, Verte. 슈즈 Gianvito Rossi.

슬리브리스 톱 Eenk. 이너 톱 Patton. 미니스커트 YCH. 양말 Cladda. 목걸이 Tokokkino. 반지 (위부터)Iceball, Verte. 슈즈 Gianvito Rossi.

배우가 아닌 연출가로서 재인 씨의 다음도 궁금해져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의도치 않게 항상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도 마지막엔 잘 마무리되는 엔딩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관객분들은 사실 엄청 귀한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삶이 너무 바쁘고 지쳐 집에서 쉬고 싶을 텐데, 그럼에도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 거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 동안에는 기분 좋은 느낌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시지프 신화>라는 책을 엄청 좋아해요. 어차피 인간은 계속 똑같은 고통을 반복하는 존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반복하게 되는 이 고통을 웃으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살면서 힘든 순간이야 매번 찾아오겠지만, 그 힘듦과 부조리를 행복하게 겪으면 된다는 건 제 개인적인 철학이기도 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모든 부정적인 사고나 일이 별거 아닌 것처럼 다가와요. 틈틈이 나름의 행복을 잘 챙기면 되니까요. 제 이야기는 그런 빛을 띠고 있으면 좋겠어요.


재인 씨 말대로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만들기 위해선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해야 하잖아요. 이를테면 투자와 예산, 배급 같은 것들이요. 만약 감독 이재인에게 이 모든 제약이 없어진다면 어떤 세상을 만들어볼래요?

너무 많은데! 제가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건 빙하기의 아포칼립스예요. ‘춥다’는 감각이 전 감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영화 <사바하>의 ‘나한’이라는 캐릭터도 마지막에 죽을 때 춥다는 말을 남겨요. 그 말에서 전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그 감정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와 접목시키면 되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할 것 같아요.


10대의 재인 씨는 사람 이재인을 탐구하는 데 빠져 있다고 말한 적 있더라고요. 20대가 된 이재인은 무엇에 골몰하고 있어요?

그때는 나를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를 너무 들여다보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저를 이루는 게 나뿐만이 아닌, 주변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아빠, 친구들. 일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잘 배우고 소통하고, 또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크롭 톱 Fallett. 셔츠, 스커트 모두 Open Yy. 팬츠, 스카프 모두 Leterie. 이어 커프 Dana Burton.반지 Verte.

크롭 톱 Fallett. 셔츠, 스커트 모두 Open Yy. 팬츠, 스카프 모두 Leterie. 이어 커프 Dana Burton.반지 Verte.


‘나’에서 ‘우리’로, 이재인을 이루는 세상의 바운더리가 확장하고 있다는 말로 들려요.

제가 누군가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존재고, 저 또한 누군가를 공감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죠. 예전의 전 누군가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어줄 순 있어도 제 이야기를 하는 건 되게 힘들어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변화하게 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꺼내 보여도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삶에서도, 연기를 함에 있어서도 담대하게 ‘나’를 꺼내둘 수 있게 됐네요.

맞아요. 모두 다 나에게서 출발하는 셈인데, 그게 이제는 두렵지 않아요. 아, 그런데 인스타그램은 아직 무서워요.(웃음) 인스타그램은 숫자로 모든 게 체감되는 매체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저를 주목하고 있다는 게 아직은 낯설고 두려워서 평소엔 로그아웃해둬요. 가끔 사진 올릴 때, 댓글을 읽을 때, 종종 음악 추천해달라고 하실 때 잠깐 들어갔다가 ‘호다닥’ 도망가버려요.(웃음) 갈 길이 아직 한참 남았죠.

카디건, 톱, 팬츠 모두 We11done. 머리에 두른 스카프 Saint Laurent. 허리에 묶은 비니 Shop Cider. 이어 커프 Hey. 목걸이 Engbrox. 슈즈 Converse. 양말, 이어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카디건, 톱, 팬츠 모두 We11done. 머리에 두른 스카프 Saint Laurent. 허리에 묶은 비니 Shop Cider. 이어 커프 Hey. 목걸이 Engbrox. 슈즈 Converse. 양말, 이어폰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Juun.J. 스커트 Moonsun. 웨스턴 모자 Atiissu. 벨트 Polysooem. 검지 반지, 약지 반지 모두 Dana Burton. 중지 반지 Iceball.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Juun.J. 스커트 Moonsun. 웨스턴 모자 Atiissu. 벨트 Polysooem. 검지 반지, 약지 반지 모두 Dana Burton. 중지 반지 Iceball.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redit

  • 피처 에디터 천일홍
  • 사진 원범석
  • 헤어 원이 By 알루
  • 메이크업 이수지 By 알루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 어시스턴트 정주원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 디지털 디자이너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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