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여성의 시대! 극장을 찾는 여성 관객의 취향은?
여성 관객을 공략하면 흥행에 성공한다! 미감과 성 인지 감수성이 높은 데다, 취향도 각양각색인 2030 여성 관객을 사로잡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영화계가 여성의 취향을 지속적으로 연구·적용해나가야 하는 이유를 임수연 영화 저널리스트의 시선으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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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찾는 여성 관객의 취향
대부분의 한국 상업영화가 거치는 블라인드 시사회는 여성 6:남성 4의 비율로 모니터링 인원을 모객한다. 실제 극장 관객 성비를 고려해서다. 웬만한 영화는 여성 관객이 더 많이 본다. CGV 홈페이지에 따르면 여성 예매 비율이 <파묘> 54.4%, <인사이드 아웃 2> 65.6%, <파일럿> 64.1% 정도다. 남자들이 더 좋아한다고 하는 액션 영화도 실제로는 여성 관객 비중이 더 높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51.5%, <범죄도시2>는 54%,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은 50.2%다. 이 때문에 영화 기획 단계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여성 관객의 시선을 고려하는 것은 무척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렇기에 최근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은 어떤지, 최소한 그들이 싫어하는 이미지를 간파하고 이를 지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나 페미니즘 텍스트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관객 수 1191만 명을 동원한 <파묘>에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 컨버스 신고 굿하는 MZ 무당 ‘화림’(김고은)이 등장한다. 주인공 설정이 예고편을 통해 공개됐을 때부터 SNS와 여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캐릭터가 신선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인사이드 아웃2>(879만 명)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여름 성수기 시장 승자가 된 <파일럿>(471만 명)의 ‘한정우’(조정석)는 여장을 통해 여성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 시장에서 특기할 만한 흥행(56만 명)을 보여준 데미 무어 주연의 <서브스턴스>는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되는 루키즘(외모를 가치의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과 에이지즘(노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소재로 한다. 올해 노년 여성 배우의 원톱 액션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파과>는 68.5%의 여성 관객 지지를 받아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날 관객 수 3만 명으로 시작해 완만한 드롭률을 보이며 최종 관객 수 55만 명을 기록했다.
물론 여성 관객의 취향은 다양하다. 그들은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고, 페미니즘을 소재로 했다고, 여성 감독이 연출한다고 지지하지 않으며, 극장엔 여전히 남성 중심 영화가 많다. <야당>(337만 명)이나 <범죄도시4>(1150만 명)의 흥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야당>
은 ‘마약 버전 <내부자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 겹치는 속성이 많다. 성 접대 장면을 은연중에 즐기는 듯한 연출이 아니냐며 일부 비판을 받았던 <내부자들>과 달리, <야당>은 마약 중독자들의 난교 파티가 등장하지만 이를 성적으로 관음하는 듯한 시선은 거세했다. <범죄도시4>에는 불편한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시리즈 최초로 사건 해결에 함께한 여성 경찰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점 때문에 상쇄된 듯하다. 한편 지난해 개봉한 <탈주>는 첫날 관객 수가 11만 명에 그쳤지만 총 관객 수 256만 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극 중 북한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동성애자이며 ‘선우민’(송강)과 연인 사이였다는 설정, ‘현상’이 탈북을 꿈꾸는 ‘규남’(이제훈)에게 보이는 광적인 집착이 사랑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는 추측을 좋아했던 여성 팬덤의 지지가 입소문을 견인했다. 한편 남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지만, 적어도 주·조연급 비중의 여성 캐릭터가 무언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면 이 또한 ‘시대에 아주 뒤처지지는 않는’ 영화라고 인지한다. 이를테면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 장교나 대통령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켰다거나, 실제 사건 관련해 알려진 여성은 없지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하얼빈>의 ‘공부인’(전여빈)에게 클라이맥스상 중요한 역할을 안겨준 점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는 평가는 하고 싶지 않다. 특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영화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요즘 관객의 허들을 넘을 수 있다. 오히려 여성 관객이 같은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을 엄격하게 평가할 때도 있다. <검은 수녀들>은 신성모독과 여성 혐오적 폭언을 내뱉는 악령을 두 수녀의 연대로 퇴치한다는 구도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상대적으로 구마 장면의 연출이 약해 ‘욕먹는 구간’의 불쾌함, 수녀가 뱃속에 악령을 품고 순교한다는 설정이 불편하다는 일부 비판을 받았다. <인어공주> <백설공주>의 흥행 실패 요인으로 캐스팅 단계부터 외모와 인종을 이유로 주연 배우들이 사이버불링을 당한 점,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아쉬운 점이 주로 거론되지만 “왜 디즈니의 인종 다양성에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배제되고 있느냐”는 일부 소비자들의 비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성별, 인종, 계급 등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차별. 같은 여성이라도 백인보다 동양인 여성이 더 차별받으며 페미니즘 논의가 지나치게 백인 중심적으로 이뤄진 역사를 꼬집는다) 논의가 한창인 시대에는 디즈니가 보여준 변화 그 이상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백설공주>는 원작의 루키즘을 충분히 극복했는가? 일각의 과도한 페미니즘과 PC가 디즈니를 망쳤다는 비판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주인공 역에 흑인 여성을 캐스팅했으니 다 됐다는 안일한 태도에 그들이 타깃으로 삼았을 법한 여성 관객도 설득하지 못한 것.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안주하는 태도는 오히려 창작자들이 포섭하려고 했던 관객층마저 더 실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혐오’와 같은 키워드로 비판받으면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며 협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이래서 페미가 문제”라고 분개하는 의견도 간혹 보인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디어가 여성혐오 비판에 대한 반발에 한껏 수그리고 들어가는 부끄러운 모습도 제발 안 보였으면 좋겠다. 여성 혐오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오로지 성 인지 감수성만을 절대적인 평가 요인으로 삼는 ‘영알못’이 아니라, 그만큼 업데이트가 잘돼 다른 요소도 입체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높은 소비층이다. 관객의 예민함을 수치화할 수 있는 척도가 있다면 최근 대중발 ‘페미니즘 비판’이야말로 가장 쉽게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는 부문이다. 이마저도 안 되는데 그 밖에 다른 요소가 속된 말로 ‘감다살’일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는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가까이 이 현상을 지켜본 결과, 왜 그런 지적이 들어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차기작은 매우 높은 확률로 흥행에 참패했다. 반면 비판을 수긍하고 반성하겠다고 비공식적으로나마 밝힌 창작자들은 그 이후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철 지난 성차별 유머나 여성 착취적인 연출을 피하고 존재할 법한 여성 캐릭터를 재현하고 나름의 역할을 주라는 것은 요즘 시대 주요 관객층의 최소한의 요구다. 이것마저 못 하겠다면 산업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Writer_임수연(영화 저널리스트)
Credit
- Editor 김미나
- Collage By 최아빈
- Art Designer 진남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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