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디자이너, 소설가, 사진가, 콘텐츠 제작자의 애장품은 어떤 아이템?
매일 같은 자리에 있어서 잠시 잊고 살았던 물건들에서 여름의 단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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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푸른 밤
3년 전 여름, 제주도 성산에 거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는 여름이 되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다. 처음으로 함께 바다를 보러 갔을 때, 가방에서 포카리스웨트 비치 타월을 꺼내 백사장에 깔아줬다. 그 이후로 여름 바다에 갈 때마다 이 비치 타월을 가지고 다녔다. 처음 제주도 바다에서 데이트를 하던 그날을 기억하며.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에게 왜 하필 포카리스웨트 타월이었냐고 물었다. 포카리스웨트 광고 영상 같은 청량한 분위기가 나와 잘 어울렸다나? 언제나 나를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그와 함께라면 연애 초반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끝까지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스물한 살 이후 모든 계절에 나와 함께하고 있는 올림푸스 카메라와 로모그래피 필름으로 찍은 제주도의 사진들을 현상하며 나는 찬란한 그해 여름을 기억한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취미와 취향을 존중하고 공유하는 커플이 됐다. 아웃도어 액티비티와 마음 수양 퍼즐을 모두 즐기는. 3년 전 여름에 만나 뜨겁게 사랑한 우리는 다가오는 여름에 결혼한다.
by 애니청(사진가)
Additional Thoughts
자연스레 ‘그’와 제주도의 푸른 밤이 떠오르는 일상 속 물건.
눅스 오일
」
계절이 여름인 것도 잊고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머리카락과 얼굴에 오일을 바르고 데이트에 나섰다. 그 모습마저 예뻐하던 그.
반바지와 샌들
」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그를 따라 어떤 산이든 오르고, 어떤 바다든 풍덩 빠졌다. 그때마다 착용한 것이 필슨 반바지와 베드락 샌들이다. 남자 친구는 내가 같은 샌들을 사서 건넸을 때 설렜다고 했다.
퍼즐
」
남자 친구와 달리 나는 그렇게까지 자연 친화적인 성향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생긴 유일한 취미가 마음 수양을 하며 퍼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하면 우리의 성격 차를 가늠하기 쉬울 것이다.
여름을 나는 무기

나는 여름이 싫다. 내게 여름은 유난히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이라서일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쓰고, 아이디어는 초 단위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여름이 시작되면 이상하게 일상의 속도가 주춤한다. 햇살은 지나치게 쨍하고, 공기는 무겁고, 흐르는 땀방울은 모든 움직임을 더디게 만든다. 덥다는 이유 하나로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에도 예민하게 군다. 그래서 여름은 나만의 속도와 루틴을 찾으려 부단히 애를 쓰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물건들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미리 준비해야 하는 나만의 비장의 무기와도 같다. 여름 출근길엔 늘 선글라스와 맥라렌 팀 볼캡이 든 가방을 챙긴다. 더위에 헐떡이는 내 표정을 가려주면서, 땀이 흘러 머리와 얼굴이 엉망이 되었을 때 수습하기 좋으니까. 게다가 맥라렌 팀 볼캡은 불필요한 설명 없이도 내 취향과 관심사를 조용히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애착 모자기도 하다. 그리고 레드불 F1 팀의 RB20 차량 피규어는 ‘피트 스톱(모터스포츠에서 급유, 타이어 교체 등을 위한 정차)’을 상징한다. 잘 달리다가도 속도를 잃어갈 때, 정확한 타이밍에 멈춰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레드불 팀처럼 나에게도 피트스톱이 필요하다. 다시 내 속도를 찾기 위한 짧고 정확한 휴식의 순간.
by 김지원(F1 콘텐츠 기획자)
Additional Thoughts
여름이 왔음을 상징하는 나만의 패션 아이템.
크리드 향수
」
땀으로 샤워하는 여름에도 끝까지 남는 게 있다면 바로 향기다. 크리드 어벤투스는 남자 향수지만, 내 살냄새와 섞이면 오묘한 향으로 변신한다.
휴대폰 케이스와 선글라스
」
무더운 계절에 튀는 아이템을 하나 얹는 것은 나만의 기분 전환 방법이다.
도쿄의 향수

6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시기다. 이쯤 되면 나는 겨우내 쓰던 향수를 집어넣고 여름용 향수인 디에스앤더가의 ‘아이 돈 노우 왓’을 꺼낸다. 베르가모트 노트가 매력적인 제품이다. 이 향수를 처음으로 개시한 건 작년 여름, 일본으로 떠난 여행에서였다. 나는 수북이 쌓인 일들을 뒤로하고 잠깐 머리를 식히러 도쿄로 향했다. 도쿄의 편집숍과 빈티지 숍들을 둘러보는 것은 내 오랜 취미이자, 영감과 직결되는 생산적 활동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들른 빈티지 숍에서 캐츠 아이 셰이프가 매력적인 슈슈통의 블랙 뿔테 안경을 살지 말지 오래도록 고민하다 결국 내려놓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됐다. 시간이 흘러 슈슈통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새로운 안경이 나왔을 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 안경을 구매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2025년의 여름, 나는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작년의 도쿄 여행을 그리워하며 이번 여름을 맞을 것이다. 당시에 뿌렸던 향수와 안경, 볼캡, 빈티지 숍, 킷사텐 모닝 토스트, 선크림, 오모테산도… 무작위로 떠오르는 추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소환하면서.
by 이현아(무신사 엠프티 마케팅 담당)
Additional Thoughts
한여름 도쿄의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준 것들.
에뛰드 선크림
」
여름철 내 피부와도 같은 제품이다. 10년 넘게 선크림 유목민으로 살던 내가 어렵게 정착해 10통은 넘게 비운 그런 제품이니 말이다.
모마 볼캡
」
볼캡 하나 챙길 새 없이 무작정 떠난 도쿄 여행. 뜨거운 햇볕 아래, 오모테산도 자이레 모마 스토어에서 발견한 볼캡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뉴욕에서 지낸 여름

한 도시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그 도시의 정경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지는 때가 온다. 장기 여행객이 세금 대신 치러야 하는 것은 내면 깊숙한 곳을 직면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시절의 물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뉴욕의 여름은 실내에서 겉옷을 꼭 챙겨 다녀야 할 정도로 춥다. 나는 시리도록 에어컨이 가동된 뉴욕의 어느 집 공용 부엌에서 요리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서 반찬 그릇 하나, 넓적한 파스타 접시 하나부터 꺼냈다. 오랜 여행으로 생긴 고집 중 하나는, 직접 고급 그릇을 갖고 다니는 일이었다. 그릇은 증거였다. 숙소는 어릴 적과 다를 바 없는, 마감지가 덕지덕지 붙은 싸구려 가구들과 지저분한 카펫으로 조촐했지만 그릇 하나만큼은 나의 것이라는 증거. 기본적인 것들로 만족해야 했던 서글픈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타협하지 않는 나만의 취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부모와 독립하여 내 인생을 착실히 꾸려가고 있다는 걸 알리는 사물이었다. 여름 국수와 루콜라가 잔뜩 올라간 오일 파스타, 냉장고 재료를 탈탈 털어 만든 중국식 볶음밥이 접시에 올랐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이 나간 이케아 그릇 대신 아시아풍의 고급스러운 내 도자기 그릇이 부엌 찬장에 자리를 잡으면 비로소 생활이 시작됐다. 여행이 아니라 생활. 여름이면 모든 이들이 거리로 나와 온 동네가 활기로 떠들썩한 이 도시에서 나는 ‘그것’을 가졌다. 사치였다. 돌아와 밥 해 먹는 생활. 단촐하고 조용한 식탁에서 쓱쓱, 소스 긁는 포크 소리를 들을 때. 그 여름의 나는 행복했다.
by 유지혜(작가)
Additional Thoughts
뉴욕살이의 추억이 내게 남긴 물건.
미피 무드 등
」
뉴욕에서 보낸 그해 여름. 숙소 침대맡에는 미피 모양 무드 등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말랑한 고무로 만들어진 이런 형태의 조명은 사실 20년 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이다. 서른둘이 된 내가 아홉 살의 나에게 선물했다.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만든 그림
」
8월의 어느 날, 폭염을 뚫고 브라이언트 파크로 나갔다. 여름이면 파크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있는데, 그날은 버려진 뽁뽁이 포장지에 물감을 묻혀 저마다의 그림을 찍어내는 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하염없이 그림 만들기에 심취하다가, 엄마가 남들에게 내 그림 실력을 자랑하며 으레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50개 색 크레파스를 사주면 한 색깔도 빠짐없이 다 쓰던 아이였어.” 구분하기 힘든 색깔들의 다름을 알아보며, 전부 써보는 것. 인생도 모두 알아채서 하나하나 소진함이 자랑이 된다는 걸 알려준 것은 엄마였다.
Credit
- Editor 김미나
- Photo By 이호현(메인) / 곽동욱(그 외)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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