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 에디터들이 사랑하는 위대한 여성 4인
코스모 에디터 PICK! 위대한 여성에게 보내는 뜨거운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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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

TV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절부터 엄정화는 이미 그곳에서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다. 그는 정상에 오른 배우였고, 만인의 디바이자 ‘연예인의 연예인’이었다. 불과 몇십 년 전, 가수가 감히 영화와 드라마판에 발을 들일 수 있냐며 편협한 시선을 보내던 때도 그는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았다. 그렇게 디스코그래피와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한편,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의 기쁘고 슬픈 개인사가 뉴스를 통해 쉴 새 없이 전해지기도 했다. 2016년 말 엄정화는 만 47세 나이로 열 번째 앨범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을 발표했다. 암을 극복했고, 그로 인해 한동안 목소리를 잃었었다는 소식도 함께 들렸다. 이듬해 초엔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새 앨범을 소개하며 노래하고 춤췄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떨렸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춤동작은 완벽하지 않았고, 손짓과 발끝에는 서사가 서려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노래와 춤을 잘하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도 흉내 낼 수 없는 ‘끼’였다. 그렇게 그에게 매료된 지 9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도 있다. 합창단원에서 가수로, 가수에서 배우로 영역을 옮길 때마다 출신 탓에 배척받은 것, 최고시청률 18.5%를 기록한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첫 방송을 앞두고 덜덜 떨었다는 것, 언제나 연기가 어렵다고 말한 것. 다른 시공간에 있을 것 같던 스타도 매 순간 벽에 부딪혔고, 그 벽을 두려워했다는 것. 그럼에도 “제 목소리는 이렇습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도 제 목소리가 이렇다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목소리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라며 화사하게 웃었던 인터뷰. 일로 연이 닿아 잠시 스칠 때도 그는 매체에 보여지는 그대로 한결같이 다정하고 상냥하며, 소녀처럼 사랑스러웠다. 그가 입는 옷, 마시는 와인, 앉는 의자, 하는 운동은 여전히 궁금하고 따라 하고 싶다. 내 나이를 진즉 지나온 그는 순간의 어려움은 극복 가능함을, 펼쳐질 앞날은 더욱 눈부실 것임을 존재로서 증명하고 있다. 덕분에 더 이상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를 세지 않게 됐다. 그를 추종하는 것만으로 영원히 깨어 있는 감각을 선물받은 셈이니까.
— 서지현(<코스모폴리탄> 패션 디렉터)
WHAT SHE SAID
」마흔다섯에 서핑을 시작했다. 파도에 휘말리고 실패하면 다시 타려고 열심히 올랐다. 못 탈 게 뻔한 파도를 한참을 기다리다 좋은 파도를 탔다. 그 경험이 행복해서 나는 왔던 길을 반복한다. 갖지 못해 힘들어하면서 한 번의 기쁨을 위해 견디고 가는 것, 서핑이 내 인생 같다. - 유튜브 <이소라의 슈퍼마켙> 中 -
아녜스 바르다

새해가 되면 늘상 하던 버릇이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새해 목표를 세우고 빳빳한 새 다이어리에 옮겨 적는 일,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 좀 더 어른스러워지자고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난 여전히 20대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속절없이 늘어나는 숫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다. 요즘은 종종, 아니 꽤 자주 나이 드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나이테는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데 10년 뒤의 내 얼굴엔 과연 어떤 궤적이 새겨지게 될까, 지금의 나를 이루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모든 것은 20년이 지난 어느 날이 되면 비로소 봉우리를 틔우게 될까. 그 생각의 끝엔 늘 아녜스 바르다가 있다. 큐레이터를 꿈꿨던 20대 때 영화 카메라를 빌려 찍은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으로 영화감독의 커리어를 시작한 아녜스 바르다. ‘진정한 누벨바그 영화’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이 된 그는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시도와 설치미술과 사진 작업을 병행하며 90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 전까지 목소리를 냈던 아티스트이자, 이야기꾼이었다. 그러나 내게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 최초의 여성 감독, 여성 감독 최초로 제68회 칸영화제 명예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거장이라는 타이틀에 끌려서라기보다 삶의 나침반 삼아 맹목적으로 좇고 싶은 인물에 더 가깝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매달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로서 벽에 부딪힐 땐 “한 여성으로서 직관에 따라 작업하고 보다 명민해지려고 노력해요. 느낌과 직관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기뻐하고, 의외의 장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바라보죠”라고 말했던 그를 떠올렸고, 여자라서 맞닥뜨리는 절망감에 휩싸일 땐 특유의 다정한 시선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그의 영화를 보며 위로받았다. 2명의 여자 주인공이 페미니스트로 각성하며 연대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와 사회적 규범을 벗어던진 채 뚜벅뚜벅 자유의 삶을 걸어 나간 ‘모나’의 삶을 그린 영화 <방랑자>는 여성으로서 삶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지침서와 같다. 전방위적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 형식과 경계를 넘나든 창작자, 성숙한 어른, 구구와 니니, 기욤. 삶과 작품 안에서 늘 고양이와 함께했던 애묘가. 그에게 닿는 길은 이토록 멀다.
— 천일홍(<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WHAT SHE SAID
」바위들 사이에 작은 샘이 있고, 그 샘은 마르지 않죠.이 철없지만 집요한 낙관주의는 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해요. -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 中 -
홍진경

고백하건대 내가 에디터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여물지 않았던 초라한 감각에 날을 세워주는 ‘있어빌리티’한 언니들에게서 매력을 느꼈었다. 스타일이나 옷 입는 방식, 외모와 표정, 몸짓에 혹해서 무작정 따라 입고, 따라 사고 흉내 내기에 급급했달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들보다는 자신만의 멋이나 개성으로 남다른 매력 어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렇게 발견한 요즘 내 최애는 역대급 전성기를 보내는 방송인 홍진경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웃긴 얘기를 툭툭 내뱉다가 갑자기 모지리 캐릭터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친근한 옆집 언니 같은 사람. 코미디언이자 유튜버이자 예능인, 거기에 사업까지 야무지게 섭렵하며 의외의(?) 다재다능한 면모로 마흔일곱에 찐갓생을 살고 있는 나의 코믹한 뮤즈 홍진경. 슈퍼모델로 데뷔해 한국인 최초 베네통 모델로 선정됐고 한때는 정통파 코미디언으로 전성기를 보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었다. 코미디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릴 때 훌쩍 파리 유학을 떠난 담대함은 또 어떻고! 이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 등에서 보여준 실감나는 카메오 연기부터 싱어송라이터, 걸 그룹 ‘언니쓰’ 활동 이력까지 있는 그는 홈쇼핑으로 김치 사업에도 도전했다. 급기야 2021년에는 공부의 한을 풀고 싶다며 지식을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를 개설하며 활동 반경을 또 한 번 넓혔다. 특유의 “~하거덩” 말투와 “어머! 저거 뭐야?” 시침 떼면서 정색하는 표정, 웃기다가도 갑자기 감동을 얹어주는 페이크 다큐 콘텐츠를 보면서 나도 어느새 그의 구독자 ‘만재’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를 개그 소재로 희생하며 희화화하는 케이스는 많지만 홍진경의 유머는 격이 다르다. 서툴고 모난 순간을 들켰을 때 창피하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비하는 절대 하지 않고,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투명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통해 건강한 자존감과 담백한 태도, 강한 자기 확신이 무엇인지를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달까? 4차방정식과 1차함수를 매우 고되게 습득하지만 사실 그는 다독가면서 담백한 글을 써내려 갈 줄 아는 멋진 면모도 가지고 있다. 그가 지닌 용기와 대담함, 호쾌한 웃음과 섬세한 감식안은 어떻게 공존하는 걸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보다는 누가 뭐라고 하든 내 신념과 목표에 더 집중하고 나만의 속도대로 살아온 영향일까? 그래서 여전히 궁금하고 알아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 지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진정성 있게 대하고 겁없이 도전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런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언니의 열정과 ‘갬성’을 쭉 응원할게요!
— 정유진( <코스모폴리탄> 뷰티 디렉터)
WHAT SHE SAID
」영어 단어 몇 개 더 아는 게 뭐가 중요해요? 살아보니까 사유를 깊게 하고 좋은 선택을 하는 거, 그게 훨씬 더 필요하더라고.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中 -
조앤 디디온

부끄럽게도 최근까지 내게 이렇다 할 영향력을 주었던 여성은 없었다. 모두 위인이라 칭하는 남성만 있었을 뿐. 이 주제로 친구와 이야기하다 ‘그게 정말 나의 잘못일까?’라는 물음에 닿기도 했다. 근 10년간 디지털 기자로 살다 보니 어떤 인물을 발견하는 일종의 ‘알고리즘’이 매우 납작해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될 수록, 자극적인 스토리를 가질수록, 뷰 수가 되는 인물일수록 내 눈에 더 밟혔으니까.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디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던 수많은 남성의 초상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위대한 여성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중 ‘뉴 저널리즘’의 창시자, 작가들의 작가, 패션 아이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인 조앤 디디온은 충격 그 자체였다. 패션지 기자로 시작한 그의 커리어가 나와 닮아 보여 호기심이 생겼다가 이내 저널리즘 역사에 생생히 남긴 그의 영향력에 매료돼 대표 저서인 <상실>과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1960년대 톰 울프, 존 맥피 등 쟁쟁한 남성 작가들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그는 그렇게 작가, 감독, 저널리스트들의 우상과 영감이 됐다. 시종일관 예민한 표정, 한 손에 들린 담배, 미니멀한 패션 스타일, 시크하다 못해 뾰족한 문체들.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오늘날 매체의 에세이 스타일 기사 시초임을 깨달았을 때는 다시 한번 나의 무지에 반성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라는 그의 말은 무엇이든 1초마다 스크롤해서 넘겨버리는, 도파민 자극 가득한 디지털 월드에 살고 있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다.
— 송예인(<코스모폴리탄> 디지털 디렉터)
WHAT SHE SAID
」나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두려워하는 것. - Why I Write(뉴욕타임즈) 中 -
Credit
- Editor 천일홍
- Photo By 김영준(엄정화 <코스모폴리탄> 2020년 9월호) / Getty Images(조앤 디디온/홍진경) / Official Website(아녜스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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