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가 시대의 새 얼굴이 된 이유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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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가 시대의 새 얼굴이 된 이유

아이돌은 당대에 소비자들이 가장 동경할 만한 것이 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뉴진스가 시대의 새 얼굴이 된 이유.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10.12
 

New wave, New genes

K팝에 새로운 유전자가 도착했다. 민희진 디렉터의 회심의 역작, 뉴진스. 찰랑이는 긴 생머리에 앳된 사춘기 소녀의 얼굴을 하고, 초여름 언덕에서 불어온 신신한 바람처럼 들이닥친 이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수많은 히트작을 탄생시킨 민희진이 하이브 자체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해 탄생시킨 첫 걸 그룹이라는 수식만으로도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티저 이미지를 한 장 한 장 찔끔찔끔 공개하는 신비주의 전략이 우습다는 듯 멤버당 수십 장에 달하는 이미지, 타이틀 3곡의 뮤직비디오, 획기적인 멤버별 뮤직비디오, 자체 앱 ‘포닝’의 셀카와 메시지까지 와르르 풀어버린 물량 공세 전략도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했지만, 그것 역시 전부는 아니다. 지금 모두가 미쳐 있는 Y2K 콘셉트를 누구보다 잘 구현했다는 것 또한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가상의 세계관도 캐릭터도 없다

그렇다면 왜 뉴진스인가? 역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 요즘 아이돌에게 있고 뉴진스에겐 없는 것. 뉴진스에겐 세계관이 없다. 광야도 초능력도 제2의 자아도 없다. 아이돌 멤버들을 구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이를테면 ‘빨간 머리 걔’나 ‘단발 머리 멤버’처럼) 한 명은 튀는 색으로 염색, 한 명은 단발 같은 공식도 없다. 뉴진스는 대중이 멤버들을 구별해 익히게 하는 일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 해린이나 혜인 등 비슷한 본명을 그대로 쓰고, 멤버 전원이 여느 사춘기 소녀처럼 앞머리 없는 5:5 가르마에 길게 찰랑이는 자연모 생머리를 기본으로 하며, 곱슬기가 있는 멤버의 머리는 굳이 쫙쫙 눌러 펴지 않는다.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다. 그러나 거기서 고정되지 않는다. 보통의 아이돌 그룹이 잘 구사하지 않는 전략(한 콘셉트의 콘텐츠에서 여러 번 헤어 스타일링 바꾸기)으로 콘텐츠마다 수많은 스타일로 변신해 “이런 것도 있지, 저런 것도 있어, 이것도 한번 볼래?”라며 보는 이들을 떡밥 홍수 속 혼돈의 유니버스로 빠뜨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안하는 것이다. 이들은 빨간 머리 걔나 단발머리 소녀로 고정되지 않으며 초능력도 제2의 자아도 없는, 캐릭터가 아닌 총체적인 인간임을. 그리고 이들이 가진 다면성이 다면체의 크리스털처럼 얼마나 생생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지를.
 

민희진이 구현한 진짜 ‘여자애들’

본래 아이돌이란 특정 서사 속에 존재하는 특정 캐릭터들이 아니다. ‘캐릭터 해석’이나 ‘2차 창작 스토리’ 같은 건 전통적으로 팬들의 몫이었다. 아이돌은 팬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유니버스 속에 현신할 따름. 공식 설정이란 먹다 흘린 떡밥을 닦아주는 턱받이 정도의 효용이랄까? 민희진 이하 어도어 레이블은 그것을 정확히 알았고 뉴진스에게 가상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부여하는 대신, 이들이 얼마나 생생한 살결과 머릿결을 지녔는지, 입체적인 영혼을 지닌 인간인지 4K로 렌더링하듯 한 프레임 한 프레임 공들여 구현했다. 이것이 어도어가 추구하는 ‘극도의 자연스러움’이다. 바비 인형처럼 날렵한 팬시함도 아니고, 게임 속 캐릭터처럼 매끈한 아름다움도 아닌 자연스러움. 올올이 흩날리는 긴 머리칼, 막 뚜껑을 딴 이온 음료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10대 여자애들의 막 터질 듯한 웃음. 어딘가 서툰 것도, 어설프고 ‘클럼지’한 행동도 더욱 진짜 같은 매력이 된다. 여기 ‘진짜 같은 여자애들’에게 어도어가 한 가지 더한 마법의 소스가 있다.
 

이너 서클 안의 인사이더 청소년

근원을 추적해보자. 민희진의 가호를 받고 태어난 뉴진스에겐 분명 그녀가 한때 애정을 쏟아부은 에프엑스와 샤이니의 냄새가 난다. 불완전한 10대 청소년들에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멜랑콜리를 포착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분명 교집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전자가 지녔던 위태로움과 결핍, 방황, 아웃사이더라는 정체성이 소거돼 있다는 것이다. 에프엑스가 파티에서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이들이었다면, 뉴진스는 파티 한가운데서 준비해온 안무를 선보이며 까르륵 웃는 여자아이들이다.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등장하는 ‘Hype boy’의 뮤직비디오 속 이국적이고 풍요로운 스페인의 저택에서 다섯 아시안 소녀는 농구부 주장, 여성 댄서, 너드 소년 등 다양한 인물과 관계 맺으며 중심에 선다. 이런 넷플릭스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설정이라고? 나는 뉴진스를 보면서 가장 가까운 레퍼런스로 어떤 아이돌도 아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딸이 떠올랐다. 그녀는 미국 코네티컷의 한 명문 사립학교 재학 당시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거리낌 없이 올려 화제가 됐고, 아이폰을 쓰고 스키장에 가거나 파티에 가고 친구들과 드레스를 맞춰 입은 일상을 공유해 파장이 일었다. 그녀와 그녀만큼 예쁘고 어린 친구들. 애써 연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부와 젊음과 아름다움. 그건 뮤직비디오도 광고 이미지도 아니었고, 진짜 삶이었다. 하이브의 재력과 민희진의 미감으로써야 가장 가깝게 재현할 수 있는 진짜 삶. 그리고 그들은 진짜 삶 안으로, 그 이너 서클 안으로 들어오라 손을 내민다. 포닝 앱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셀카를 공유하며, 선택지에 따라 다른 멤버가 되어보라는 뮤직비디오를 제시하며. 이것이 ‘진짜 여자애들’ 같은 리얼리티에 어도어가 첨가한 마법의 킥이다.
 

영 리치 브이로거의 현신

아이돌은 당대에 소비자들이 가장 동경할 만한 것이 되고자 한다. 요정이기도 했고, 공주이기도 했고, 넥스트 도어 걸이나 힙합 전사일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이돌이 가내수공업으로 무대의상을 맞춰 입거나 반지하 연습실에서 이 꽉 물고 올라오는 시대는 멀리 지나버렸고, 하이 브랜드의 앰배서더 혹은 뮤즈로서 재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곧 아이돌의 업이자 정체성이자 성공 척도가 됐다. 뉴진스는 풍요로운 집안에서 듬뿍 사랑받고 자라나 구김 없는 딸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무해’한, 시대가 가장 열망하는 얼굴이 된 것이다. 한 인물을 표현할 때 ‘무해한’이나 ‘사랑받고 자란’, ‘구김살 없는’ 등의 수식어가 얼마나 위험한 찬사인지, ‘강남 8학군 출신’이나 ‘가정교육 잘 받은’, ‘아빠가 교수’인 게 한 아이돌을 자랑하는 수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돌을 수식하는 수사를 보면 이 시대의 욕망을 가장 쉽게 알 수 있고, 뉴진스는 그 욕망에 적확하게 접근했다. 윤기 나고 고른 옥수수 낱알들 같은 얼굴로 말갛게 웃는 소녀들에게 부족함이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외면과 내면의 풍요. 이것이 어딘가 결핍된 아웃사이더였던 에프엑스나 남자들을 죽이고 싶어 했던 레드벨벳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모호한 그러나 구체적인

그러므로 뉴진스는 이 시대 영 리치 브이로거의 현신이라고 다시 말할 수 있겠다. 유학 생활 중 사립학교 생활을 보여주며 프롬 파트너를 소개하고, 근사한 자기만의 방을 룸 투어하고, 다이어리를 한껏 꾸미고, 풀 파티에 가서 춤을 추고 흘러넘치는 일상을 파는, 부와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구김살 없는 얼굴과 아직은 어설픈 몸짓으로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10대들. 어떤 SF 세계관도 시대가 탐하는 이 설정을 이길 수는 없지 않을까? 뉴진스는 모호하다. 그러나 구체적이다. 진짜 같지만 그것 역시 여느 아이돌이 그렇듯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을 머리칼 한 올까지 손에 닿을 듯 생생하게 빚어놓은 민희진 디렉터의 재능이란, 수많은 스토리라이터를 고용해 세계관을 개발하는 어떤 기획사도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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