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이돌 소속사 비주얼팀 피셜, 아이돌들의 유일무이한 무대의상 탄생 과정은?

아티스트의 유일무이한 무대의상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하여.

BYCOSMOPOLITAN2021.09.12
 
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영혼이여. 소설 〈롤리타〉의 도입부를 다시 읽으면 어쩜 우리 덕후들의 마음을 읽고 묘사해놓은 것만 같다. 내 아티스트, 나의 최애. 내 심장을 굿거리 장단처럼 덩기덕 쿵더러러 뛰게 하는 그들! 사랑에 빠지면 다 알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특히 관심사로 떠오르는 건 그들의 천상계 미모를 더욱 강조하는 의상이다. 그중에서도 제작 의상은 무대나 뮤직비디오 등을 위해 단 한 벌밖에 만들어지지 않는 의상을 뜻하며, 처음부터 아티스트의 체형과 취향, 콘셉트를 두루 고려해 박음질까지 한 땀 한 땀 놓아 완성한 옷이다. 그럼 이 옷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전설의 시작 

지미 팰런의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퓨전 한복. 검은색 배자는 제니만을 위해 스타일리스트 발코가 디자인하고 단하가 제작한 의상이며, 핑크색 도포는 단하의 기성복 제품이다. 제니는 이 쇼에서 기존 도포를 짧게 리폼해 착용했다. 도포 52만원 단하.

지미 팰런의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퓨전 한복. 검은색 배자는 제니만을 위해 스타일리스트 발코가 디자인하고 단하가 제작한 의상이며, 핑크색 도포는 단하의 기성복 제품이다. 제니는 이 쇼에서 기존 도포를 짧게 리폼해 착용했다. 도포 52만원 단하.

아티스트의 의상 제작 과정을 알기 위해선 의상이 만들어지는 이유와 환경, 즉 아티스트의 앨범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기획사가 앨범 제작을 마음먹으면 타이틀곡과 큰 틀의 콘셉트를 구상한다. 해당 단계에서 콘셉트는 커다란 밑그림에 가깝다. 예를 들면 이렇다. 노래는 미정이거나 아직 작업 중이지만 레트로적인 무드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회사 혹은 아티스트의 의지가 있다면, 그것을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예전이라면 이 시점에서 의상은 곧장 스타일리스트의 영역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회사나 아티스트가 스타일리스트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의상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최근의 업계 동향을 살펴보면 그 사이에 팀이 하나 더 생겼다. 엔터테인먼트사가 회사 내부에 전문적인 비주얼 담당 팀을 꾸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경향은 SM이나 하이브, YG 등 주로 대형 기획사에서 발 빠르게 주도하고 있으며, 비주얼 제작에 능통한 매거진 에디터 출신이나 스타일리스트 경력을 보유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나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등과 소통하는 전문 부서는 트렌드를 연구하고 따라가는 역할 이상으로 사회적인 이슈 등을 고려하고 민감하게 반응해 비주얼을 기획한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브랜드나 트렌드를 최대한 미리 배제하는 식이다. 앨범 제작 방향이 정해지면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투입될 차례다. 대개 스타일리스트는 국내외 편집숍에서 의상을 구매하는 ‘사입’으로 의상을 수급한다. 브랜드로부터 옷을 대여하는 협찬 대신 사입을 하는 이유는 수선이나 리폼이 필요한 경우가 다반사라 옷을 빌렸던 상태 그대로 반납하는 게 녹록지 않아서다. 제작은 협찬과 사입이 모두 어려울 경우 진행한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기성복이 콘셉트를 다 반영하지 못할 경우, 혹은 안무를 소화하기에 소재나 실루엣이 적절하지 않을 때다. 제작이 확정되면, 비주얼 부서와 스타일리스트가 프로젝트 관련자의 의견을 모으고 반영한다.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는 미술팀, 뮤직비디오를 책임지는 감독팀, 조명과 세트팀 등 언뜻 보기에 의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모두 고려의 대상이 된다.
 
 

스타일리스트느님이시여 

슈퍼엠의 스타일리스트 김욱 역시 ‘호랑이’의 뮤직비디오 속 의상을 구현하기 전에 해당 뮤직비디오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스타일 힌트를 얻었다. “뮤비 제작팀에서 기와 배경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놨어요. 저는 그에 맞춰 동양적인 룩을 떠올렸죠.” 그리고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레퍼런스를 추가하면 제작소에서 알아서 디자인을 해주기도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편입니다. ‘호랑이’ 의상의 경우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되 기존에 볼 수 있던 한복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도록 신경 썼어요. 전통적인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글로벌한 팬들에게도 보다 편안하게 다가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옷의 형태나 자수를 어떤 느낌으로 어느 위치에 넣을지도 제작소와 상의를 많이 했죠.” 뮤직비디오 속 신비로운 붉은 조명과 멋들어진 기와 아래 슈퍼엠이 한층 더 빛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테마나 콘셉트는 여러 스태프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지만 섬세한 스타일링의 묘미는 말할 것도 없이 온전히 그의 몫이기도 하다. “스트랩이나 팬츠 밑단에 스트링을 넣어 조거 팬츠처럼 연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이톱 슈즈가 그대로 노출되면 이질적일 것 같아 각반을 만들어 신발에 끼웠고요. 멤버에 따라 툭 잘린 형태의 크롭트 디자인으로 개성을 표현했죠. 같은 콘셉트여도 아티스트마다 좋아하고 어울리는 게 다르니까요. 여기에 주얼리까지 동양적 무드로 가면 뻔할 것 같아 과감한 큐반 체인 액세서리로 마무리했습니다.” 엑소의 최근 컴백 앨범인 〈Don’t fight the feeling〉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입은 파일럿 룩도 그의 작품. 실제 빈티지 군복을 모티브로 의상을 디자인했다. 이 파일럿 룩은 부츠를 제외하면 3가지 아이템으로 구성된다. 재킷과 티셔츠, 그리고 팬츠. 단출하다. 이토록 단순한 구성으로도 의상이 지루해 보이지 않는 비밀은 이 군복 자체에 디테일이 가득해서다. 보머 재킷만 하더라도 양 소매에 탈착이 가능한 지퍼를 달았고, 허리 밑단 위에도 지퍼를 추가했다. 재킷 하나가 재킷, 베스트, 크롭트 베스트 등으로 변신 가능했다. 팬츠 역시 뮤직비디오에서 서스펜더를 착용해 티셔츠 위에 올려서 군인의 정석처럼 입기도 하고, 혹은 내려서 캐주얼하게도 입을 수 있었다.

 
 

절 받으세요, 디자이너 선생님 

스타일리스트는 엑소와 슈퍼엠을 담당하는 김욱처럼 직접 디자인 과정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 테마를 잘 살릴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난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일도 흔하다. 디자이너 유호식은 지난 3월 말에 있지 담당 스타일리스트의 의뢰를 받고 있지의 의상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제가 그래픽과 패턴, 봉제까지 모두 가능한 디자이너라 연락을 받은 것 같아요. 스타일리스트와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또 제가 그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있지와의 작업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유호식은 그들의 활동 영상을 속속들이 찾아봤다고 전했다. “있지는 과격한 안무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장식적인 디자인만큼 중요한 게 동작에 방해되지 않게 활동성을 고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평소 운동을 즐겨 하는 편이라 도복, 운동복 등을 참고해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후의 작업은 스무고개와 비슷해요. 스타일리스트가 질문하면 제가 디자인을 통해 답을 내놓고, 또 그걸 보고 스타일리스트가 다른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죠.” 한번에 해치우는 작업이 아니라 연이어 하나씩 쌓아올려 공든 탑을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패치워크 디테일이 감각적인 오버사이즈 티셔츠는 그렇게 완성돼 〈마피아 인 더 모닝〉의 뮤직비디오에서 유나가 착용했다. “티셔츠를 박시한 실루엣으로 결정한 이유는 상체를 격렬하게 움직여도 불편함이 없도록 고려했기 때문이에요. 불필요한 노출을 자제하자는 의도도 있었고요.” 뚜렷한 테마가 있다면 그 분야의 권위자를 찾아야 한다. 한복 브랜드 ‘단하’의 김단하 대표는 한복을 입어야 할 때마다 아이돌 스타일리스트가 단골로 찾는 디자이너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를 처음 세상에 알린 건 블랙핑크가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한복 의상이었다. 그 전까지 총매출의 5%에 불과했던 해외 매출이 절반까지 치솟아 블랙핑크의 어마무시한 파급력에 놀랐다고 밝힌 그는 지금은 오마이걸의 무대의상을 비롯해 펭수의 새해맞이 한복과 화사의 골든디스크어워즈 의상, 송강의 피자알볼로 광고 등 굵직굵직한 아티스트의 한복을 도맡고 있다. 그 역시 협업 의뢰가 들어오면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충분히 리서치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아티스트에게 잘 어울릴 만한 소재와 색상을 상상해보고, 그 후에 아이템을 선정합니다.” 그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아티스트와의 작업도 “하나하나 결정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찰떡같은 옷이 완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제작 과정 

제작소나 디자이너의 색을 담아 1차적으로 완성된 옷은 다시금 스타일리스트에게 전달돼 아티스트가 시착해보는 ‘피팅’ 과정을 거친다. 웨이브이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류시혁은 제작 과정에서 피팅은 절대 생략할 수 없는 단계라며 그 필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제작 과정에서 피팅은 아티스트가 의상을 직접 입어보고, 안무가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디자인뿐 아니라 몸에 맞게 손을 보기도 하죠. 다수의 K팝 아티스트가 펑퍼짐한 옷보다는 몸에 달라붙는 듯 슬림하게 떨어지는 옷을 선호하거든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에 더 적합하니까요. 피팅 때 의상을 부위마다 핀으로 잡아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한 곳에 표시를 해둡니다.” 제작소나 디자이너는 몇몇 아이템과 의상만 디자인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전체적인 스타일링에 필요한 액세서리와 잡화를 추가적으로 구상하고, 비주얼팀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가이드를 계획하기도 한다. 아티스트 역시 모호하게 시안 혹은 콘셉트로만 이해하던 의상을 실제로 보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자리라서 원할 경우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평소 패션이나 의상에 관심이 많은 아티스트일수록 피팅 때 취향을 확실히 얘기하며 더하거나 빼고 싶은 것에 대해 편안하게 말하고, 춤이 메인인 멤버일수록 격한 안무에 의상이 견딜 수 있는지 상의부터 하의 그리고 신발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또한 이 자리에서 스타일리스트는 피팅 사진을 촬영하고 촬영 관계자에게 해당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촬영에 필요한 사안을 공유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무대나 뮤직비디오의 세트와 의상은 시간 관계상 대부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하나를 완성하고 다른 하나를 맞춰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즉각적인 상황 공유만이 답이자 해결책. 의상은 이후 다시 수선을 위해 작업실로 보내져 마무리 수정을 받는다. 김단하 대표는 한복이 특정한 전문 분야의 의복임에도 블랙핑크와의 한복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건 스태프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고 밝혔다. “제가 작업한 제니 씨의 도포를 과감히 반 잘라서 크롭트 저고리로 재탄생시킨 건 담당 스타일리스트였어요. 조끼 형태를 띠는 배자는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은 저희 쪽에서 맡아 분담하듯 작업했고요. 제니 씨가 이렇게 완성된 두 아이템을 레이어드해서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근사하게 선보였습니다. 아티스트와의 작업은 어느 누구의 단독 작업물이라 표현하기 어려워요. 각 전문가의 역량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거든요.” 이렇게 제작을 마친 의상은 최고의 스타일과 비주얼로 담아내기 위해 촬영을 하는 순간까지 현장에서 뜯고, 줄이고, 늘리고, 덧대는 과정을 거친다. 촬영 현장은 언제 어디서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툭 불거져 나오는 곳이다. 조명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서, 세트와 맞춰봤을 때 튀어 보여서, 화면에서 보니 임팩트가 덜해서, 피팅 때 입어봤을 땐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로 춤을 추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불편해서…. 현장에 모인 감독, 연출자, 비주얼 담당, 스타일리스트 등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는 커피 몇 잔으로 며칠을 늦은 새벽까지 버티면서도 툭툭 튀어나오는 문제점을 빠르게 캐치하고, 그럴 때마다 스타일리스트와 어시스턴트는 각종 테이프와 줄자, 바늘과 실, 골무로 가득 찬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번개처럼 등장해 의상을 수정한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림픽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팀워크 스포츠 정신처럼 모두가 마지막까지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고단한 작업이다. 의상 제작 과정은 팀마다, 회사마다, 상황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두는 바다. 개별차는 있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세상에 내 최애는 우주에 단 한 명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입는 오로지 한 벌의 제작 의상은 무수한 사람의 손을 거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는 것. 내 스타가 빛나는 데는 어둠 속에 가려진 수많은 이들의 치열하고도 지난한 노고가 있다. 익숙했던 무대와 뮤직비디오 속 의상을 다시 본다면 조금은 더 반짝여 보일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