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생아 수는 20만 명 대로 역대 최저 수치를 찍었다. 합계 출산율은 OECD 회원국 중 꼴찌인 0.84명을 기록했다. 작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사회지표’에 의하면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20대는 52% 정도의 수치밖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지난 5월 시행된 ‘4차 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53%가 비혼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2030 세대의 절반 이상이 혼인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는 셈.
그리고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4B 운동. 비연애, 비섹스, 비결혼 그리고 비출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수년 전 처음 등장했던 ‘3포 세대’라는 단어가 연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4B 운동은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했던 ‘3포 세대’에서 더 나아가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행위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 수십년 전만 해도 당연시 했던 이 일들은 어느 순간 젊은 세대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이 된 지 오래. 이제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등록된 4B운동의 뜻은 이렇다,“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저항하고자 결혼이나 출산뿐만 아니라 이성과의 연애, 성관계까지 거부하는 운동”. 코스모가 만난 4B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지식백과에 정의된 ‘저항’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되려 그 치열한 과정을 넘기고, 그저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이들에게 물었다. 왜 4B를 시작했나요?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만 한 사회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저출산의 위험성을 내세우며 자꾸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데, 낳을 만 해야 낳죠. 결혼을 할 만 해야 하는 거고요. 저지른 성범죄에 비해 처벌은 약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기엔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고,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고. 쏟아져나오는 언론사들의 기사 댓글란에는 남녀 갈등이 가득하고요. 기대할 만한 미래가 안 보이는데 연애를 어떻게 하나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탓하기 전에 주먹구구, 입막음 식 대응을 하는 이 사회에 더 화가 나더라고요. 지난 몇 년 동안 남녀를 불문하고 지금 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차차 나아지고 있다, 해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이용 당하는 느낌? 4B 운동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인터넷 뉴스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봤죠. ‘4B운동, 2030 페미니즘 여성 때문인가?’ 한숨이 나왔어요. ‘나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거니까 너희 어디 한 번 두고 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고요. 그냥, 저는 이 ‘팍팍한’ 사회에서 그나마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운동일 뿐이에요. JHK / 32세 / 자영업자
몇 년 전 일어났던 ‘웹하드 카르텔’이나 ‘N번방’ 사건만이 아니에요.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고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리벤지 포르노 사건이 흘러나오죠. 어느 날, 뉴스에 스토킹 사건이 보도되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그래도 저번 스토킹 사건보단 심하진 않네’라고 중얼거리고 있더라고요. 혼잣말을 내뱉자마자 저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졌죠. 하도 살벌한 사건이 많으니 여자인 저조차도 무뎌진 거예요. 지난 몇 년간 뭐 달라진 게 있나요? 오래 만난 연인,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판에 누굴 믿고 어떻게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겠어요. 임신이나 출산 문제는 아예 제 고민거리에 올려본 적도 없어요. 가정을 이루기 전에 누굴 만나 섹스를 하고, 연애하는 것 자체가 저한텐 제 신변을 걸고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돼버린 거죠. 이 모든 의심과 장애물을 뚫고 누군가를 만나는 게 에너지 소모에요. 내가 분노를 해도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무력감이 찾아왔고, ‘그럴 바엔 아예 아무도 만나지 말자’를 선택하게 된 거죠. HJY / 29세 / 회사원
부모님 세대까지 갈 것도 없더라고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만 봐도 보이죠. 딩크를 약속하고 결혼했는데 시댁 핑계를 대며 애를 낳자고 한다거나 맞벌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해놓고 육아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임신 중에 (심지어 코로나 시국에!) 성매매 업소 갔다가 들킨 남편도 봤어요. 그 오빠는 심지어 저와도 친하게 지내는 오빠였죠. 하도 팔불출로 유명한 오빠였던 터라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놀랐어요. 심지어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말문이 막히면 ‘너 설마 페미니스트냐?’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한대요.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주변 결혼한 친구들이 너무 불행해한다는 게 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죠. 남편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육아 문제 거기다가 커리어 고민까지. 깊은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 가정이라는 울타리…. 그런 것들은 상대와 탄탄한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하는 건데 이조차도 쉽게 되질 않잖아요. 저하나 건사하며 살기도 너무 힘든 와중에 확실치도 않은 ‘안정감’ 하나 얻자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죠. 인생이 무슨 러시안 룰렛도 아니고. KMJ / 33세 / 프리랜서
‘페미니즘 = 남성 혐오’ 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점점 피곤해졌어요. 남자를 만날 때뿐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만날 때 피로도 자체가 매우 높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대화 주제가 젠더 이슈 쪽으로 흐를 때마다 다들 눈치를 보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죠. 결정적인 계기는 몇 개월 전 소개팅을 했을 때였어요. 첫 데이트 때 분위기가 좋았기에, 두 번째 데이트를 기약한 뒤 서로 메시지로만 연락하고 있었어요. 상대방이 뜬금없이 제게 어떤 게시물 링크를 보내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고부 갈등에 관한 커뮤니티 게시글이더라고요. 하단에는 ‘여자가 페미네’, ‘결혼 잘못했네’ 등등 남자들의 댓글이 대부분이었어요.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를 떠나서 깔끔하게 차단해버렸죠. 2030세대 간의 젠더 갈등이 심해진 데다가,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밖에 나가서 직접 사람을 만나 알아갈 일이 적잖아요? 그러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사례들, 논란들이 모두에게 더 크게 와닿는 거 같아요. 마주치고 대화하기보다 키보드로 전쟁을 일으키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런 식으로 사상 검증을 해가며 ‘얜 페미네’, '얜 한남이네’ 하며 그 사람을 단숨에 판단해버리는 거고요.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날카롭게 서 있는 날을 제가 피 흘려가며 갈아줄 이유도 못 느꼈고요. 그냥 인류애가 사라져 버린 거죠. CYS / 30세 /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