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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가사 노동하는 게 왜 어색해? 이게 요즘 트렌드라고!

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가사 노동하는 게 어색하다고요? 왜요?

BYCOSMOPOLITAN2021.06.08
 

제2의 니키리, 거기 있나요?

예술가이자 배우 유태오의 배우자인 니키리. 그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이 번 돈은 한국 와서 10년간 남편의 무명 생활을 서포트하는 데 썼으며, 그 과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유태오를 ‘풍파에 치여 소년미를 잃게 할 수 없단 이유로’ 막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니키리를 ‘외조의 여왕’이라 칭했다.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돼왔고 그 개념 또한 변했다. 그러니까 아내가 남편을 돕는다는 의미의 ‘내조’나 아내가 사회적인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와준다는 뜻의 ‘외조’는 낡은 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여자와 남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다가도 결혼 또는 출산을 계기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커리어를 포기하는 쪽은 지금도 대부분 여자다. 궁금해졌다.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니키리처럼 혹은 니키리와는 다른 결로 여자가 커리어를 잇고 남자는 가사 노동을 자처한 커플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지금껏 없었던 진통과 합의를 반복한 결과 얻은 해답을 내놓았다.
 
 

‘합리적’ 역할 분담과 그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2년째 동거 중인 여자 J는 프리랜서다. 20대 후반에 시작한 커리어는 공백 없이 흘렀고 지금도 여전하다. 반면 그의 남자 친구는 일을 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상태. 어느 날 J의 친구가 “오빠가 일 안 해도 넌 괜찮아?”라고 묻자 J는 의외의 속내를 털어놨다. 남자 친구가 회사 일 대신 가사 노동을 전담해주길 바라는 건 애인이 아닌 자신의 의지가 더 크다는 것. 그 이유에 대해 묻자 J는 둘의 만남이 시작됐던 연애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30대 중반, 남자 친구는 3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어. 그런데 사람이 진짜 황당할 정도로 순수한 거야. 사람들에게 치이고, 손해 보며 상처 입고 살았던 게 훤히 보이는데도 늘 주위 사람에게 번번이 자신의 몫을 내어주는 게 진짜 희한하더라.” 거칠기로 소문난 패션업계에서 ‘강해 보여야’ 이기는 거라 믿었던 J는 자신과 다른 그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여겼다. 애인의 ‘홍익인간’ 정신 뺨치는 너른 마음은 연애 내내 J를 지탱했다. 당시 경미한 우울증을 앓던 J는 그와 연애 및 동거를 시작하며 훨씬 더 건강한 마음을 지니게 됐다고 고백했다. “오빠는 나에게 감정적 완충제 역할을 해. 삶이 버거울 때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그런데 오빠가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 입고 돌아오는 모습은 견디기 힘들어. 오빠가 나를 감정적으로 지탱해주듯 나는 오빠를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지켜주고 싶더라.” 지켜주고 싶다는 J의 표정이 결연해 보였으나 나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해 물었다 “경제적인 문제는 없어?” “있지. 평균적으로는 수입이 안정적인 편이지만 프리랜서 일이라는 게 수입이 불안정할 때도 분명 있기 마련이거든. 그렇다고 그 공백을 오빠가 메웠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아.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야.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돈을 벌 수 있는 건 나고, 오빠는 집을 돌보고 내가 하는 일에 일정 부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시너지가 생겨. 재정 상태가 안 좋으니 갑자기 그에게 돈을 벌라고 하는 건 합의된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J는 그의 애인을 두고 ‘가장’이란 표현을 썼다. “꼭 경제권에 기준을 두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결혼하면 가장은 오빠라고 생각해. 이 집의 안위를 지키는 건 오빠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거든.” 이들의 역할 분담에 제동을 거는 건 늘 ‘주위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문제야. 한마디씩 쉽게 하거든. ‘언제까지 집안일만 할 거냐.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식의 말 말이야. 가사 노동을 하는 게 남성성을 잃는 거라 말하는 사람들도 여전하고.” J는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않고, 열등감 없이 온전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깊은 고마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B도 비슷한 이야길 했다. 결혼 전부터 함께 작업실을 내고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던 B와 그의 남편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같이 하던 사업을 접었다. 그 후 B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남편은 다른 사업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자연스레 집안일을 맡게 됐다. “남자의 성격이 중요하죠. 남편도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일 언제 다시 시작할 거냐’, ‘언제까지 놀고 있을 거냐’ 뭐 그런 질문이오. 그때마다 남편은 그냥 ‘우린 한배를 탄 거고 각자의 일이 있는 거다’라며 싱긋 웃고 말아요. 성향상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타입이라 남편이 집안일을 돌보고 제가 일을 하는 구조가 가능한 것 같아요. 아내가 본인보다 돈을 더 잘 벌기만 해도 자격지심이 섞인 발언을 하는 남자들의 사례를 종종 봐왔거든요.” B에게 둘이 함께 일하던 걸 멈추고 한쪽이 일을, 다른 한쪽이 가사 노동을 담당하는 생활을 하니 어떠냐고 물었다. “일단 삶이 엄청나게 쾌적해지고, 정돈됐어요. 자취 생활을 오래 한 남편은 쾌적한 공간이 삶에 주는 활력에 대해 이해하고 있고, 집 안의 물건 위치 하나에도 공을 들이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과 한 공간에 사니 자연스레 제 생활도 윤택해지더라고요. 물론 저도 기본적인 집안일은 함께 해나가긴 하지만 혼자 살 때 온전히 가사 노동에 쓰던 에너지를 지금은 일에 더 쓸 수 있는 게 가장 좋았어요.” 이 역할에 만족하는 건 B의 남편도 마찬가지. B의 남편은 본인이 집안일에 재능이 있는지 몰랐다며 매일같이 다른 꽃을 화병에 꽂아두거나, 예쁜 포스터를 사서 걸어놓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 남편을 보는 건 B에게도 즐거움이었다. 둘이 함께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안정감’이다. 브랜드를 운영하던 시절, 함께 허덕이며 일을 하고 업무 스트레스를 주고받던 때는 가능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장점을 쭉 늘어놓는 B에게도 이러한 관계의 어려움은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B는 말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청소, 빨래, 육아 같은 가사 노동이 ‘일’이라고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보통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장이 밖에서 벌어오는 돈은 귀하다 여기는 반면 집안일은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었죠. 저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진짜 싫었거든요. 그런데 그 모습이 저한테 오버랩될 때가 있었어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날이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돈 벌어왔는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거야말로 내가 혐오하던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인 것 같아 가장 경계하고 있어요. 분명 흔치 않은 역할 부담에 대한 좌충우돌은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그게 남자가 하는 가사 노동을 문제시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같은 ‘뻔한’ 문제는 아닐 거예요.”
 
 

커리어의 중요성은 성별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한다

S는 남편과 함께 베트남에 거주 중이다. 한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한 S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교육하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했었다. 교육 현장에서 일하며 S는 더욱 다양한 곳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육하고 싶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둔 건 S가 베트남으로 갈 기회가 생기면서였다. S에게 베트남에서 한국 문화를 전파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다만 베트남으로 갈 경우 S의 남편이 일을 그만두거나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했는데, 딸을 키우는 부부에게 두 번째 선택지는 유효하지 않았다. S의 긴 고민에 종지부를 찍은 건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일을 그만둘 테니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자고 말했다. “남편이 내 커리어를 존중하고 내가 지닌 꿈의 가치에 공감해줬지. 본인도 오랜 시간 일하며 커리어를 쌓았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나보다 남편이 더 후회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 베트남에 온 이후 남편은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전업주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했다. “남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남편에게 더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보이더라. 물론 우리가 한국 사회를 떠나 베트남에 거주하며 지인들의 모난 시선에서 멀어진 점이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면도 있어. 남편 지인들도 모두 일하며 만난 사람인데 그들을 곁에 둔 상태에서 일을 그만뒀다면 위축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편은 나의 일이 자신의 일을 그만두게 할 가장 큰 명분이라 생각했고, 자신이 가사 노동과 육아를 중점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내 것보다 우선시하지 않는 마음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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