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삽입만 하면, 혹은 사정만 하면 다 똑같이 좋다는 건 오해예요. 남자도 속궁합을 느낍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 제각각이듯 여성의 질 모양도 다르잖아요. 페니스의 크기와 길이, 두께, 각도가 각양각색인 것처럼 질벽의 두께와 모양, 민감도 역시 천차만별인 것 같아요. 어떤 페니스와 어떤 질이 만나 어떤 합을 이루냐에 따라 몸을 맞댈 때의 감흥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요. 제 페니스는 모양이 위로 휜 편인데, 파트너의 질 모양, 쪼임, 탄력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이를 분명 느껴요. 어떤 파트너는 삽입하면 딱 느낌이 달라서, “와…!” 하며 감탄하곤 하죠. 물론 “나는 페니스가 휘었는데, 너는 질이 위로 깊어서 잘 느껴지는 것 같아”라고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얘기긴 한데, 애초에 타고난 모양이 잘 맞으니 흥분이 되고, 여성의 질은 흥분하면 자연스레 수축해요. 그런 반응에 저는 또 흥분하고, 그러면 여자 친구의 몸짓과 사운드도 격정적이 되고…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보면 당연히 속궁합이 맞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추론하면 A는 B고 B는 C니까, 속 모양이 맞으니까 속궁합도 잘 맞는다는 논리랄까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였다고 하잖아요. 그런 둘을 뗐다 다시 붙인 거라면,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명기’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아담(산부인과 의사, 33세 남성) 진짜 잘 맞는 상대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격정이 아닌 애틋함 같아요. 몸은 뜨거운데 내 주변을 감싼 공기는 따뜻한 그런 거요. 속궁합이 심리적 영역이라는 확신을 심어준 파트너는 전 남친 P 몰래 양다리를 걸쳤던 C예요. 친구들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 바람피우는 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다고 털어놨더니, 남친과 속궁합이 안 맞아 한눈파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재밌는 건, 되레 신체의 속궁합이 잘 맞는 건 P 쪽이었어요. 처음 잠자리를 한 날, 그냥 삽입만 했는데도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은 느낌이 올 정도로요. 이런 게 속궁합이구나 싶었죠. 그런 찰떡궁합인 P를 두고도 C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건 C의 소중이 크기나 테크닉이 P보다 더 나았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페니스 크기만 두고 보자면 P가 더 괜찮았거든요. 제가 C와 사랑을 나눌 때 정말 미칠 것 같은 순간은 따로 있었어요. 표현을 많이 하는 성격인 C는 잠자리할 때 이 순간이 왜 좋은지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묘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아, 좋다”, “미치겠다” 이런 거 말고요. “너랑 있으면 녹을 것 같애” 같은 오글거리는 말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녹아버렸죠. C의 섹스 신조는 ‘천천히, 대화하면서 하고 싶어’였어요. P와 15~30분 정도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게 루틴이었다면, C와는 한참 동안 수다 떨며 몸이 달아오르는 사이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게 보통이었어요. 섹스가 이렇게 재밌는 건지, 섹스를 이렇게 대화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건지 처음 알았죠. 분명 만족스럽지만, 교감보다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제 할 일 하는 느낌인 P와의 섹스와는 또 다른 황홀함이 있었으니까요. C에게 “마음이 몽글몽글해”, “나 계속 좋아해줘” 같은 말을 들으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정말 충만했어요. 남자가 그런 말 하는 거 징그럽지 않냐고요?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고, 저도 “네 거 있지, 원래부터 내 거였던 것 같아” 같은 징그러운 말을 육성으로 해봤어요. 그리고 C는 절정에 이르기 전에 꼭 안아달라고 하거든요? 볼이 상기된 채 풀린 눈을 하고서 안아달라고 하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나만 아는 그 눈빛을 보고 주체할 수 없이 절정에 이를 땐 머리끝까지 호르몬이 차올라서 이러다 복상사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자연스레 P와 헤어지고 C와 잘 만나고 있으니, 속궁합은 물리적인 것과는 다른 무엇이지 싶어요. 만약 P의 페니스보다 C의 그것이 작아서 내 안에 조금의 빈틈이라도 만들었다면, 그걸 채워준 건 아마 몽글몽글한 마음이었을 거예요.
-멜팅아이스크림(메이크업 아티스트, 29세 여성) 「 여성은 질이 작을수록, 남성은 페니스가 클수록 좋다?
」 유학 시절 많은 외국인 애인과 교제해본 여성으로서 단연코 말할 수 있는 사실,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흔히 외국인의 그것은 크고 흐물흐물하다는 속설이 있는데, 제 경우엔 대부분 사실이었어요. 물론 저도 비교 대상이 많은 건 아니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요. 금발 연인들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페니스에 감탄할 때도 있었지만 제아무리 대물이라 해도 단단하지 않으니까 아프기만 하고 짜릿한 느낌은 없더라고요. 유연하고 유려하게 움직이며 합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의 물건이 제 짝이 아닌 케이스에 잘못 끼여 낑낑대며 마찰을 일으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니 물렁거리는 완숙 가지와 단단하고 아삭거리는 미니 당근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하겠어요. 크고 물렁거리는 페니스에 대한 호감이 유독 반감되는 순간은 오럴 섹스를 할 때예요. 오럴을 싫어하는 여성도 많지만, 전 개인적으로 극호거든요. 전적으로 제게 몸을 맡긴 상대가 무기력하게 자지러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그 사람을 정복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요. 그런 저였지만, 몰캉거리는 촉감으로 목젖을 찌를 듯이 입안을 채우는 페니스는 아무런 전율을 주지 못하더군요. 그렇다고 속궁합을 결정하는 게 페니스의 ‘단단함’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아요. 속궁합은 결국 두 사람의 타이밍이 맞는 거예요. 어느 한쪽만 먼저 끝나는 것 없이 비슷한 속도로 흥분하고, 함께 촉촉해지고, 같이 절정에 이르고, 마주 바라보고 괜히 눈 한번 찡긋하다 스르르 잠드는, 그런 사랑의 루틴이 맞아떨어지는 걸 두고 사랑의 궁합이 맞다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소중이의 모양이 아니라요.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밤새 몇 번씩 해도 피곤하긴커녕, 날밤을 새워도 푹 잔 듯 개운한 느낌이 들어요.
–사랑의조선통신사(화가, 28세 여성) 속궁합은 ‘케파’라고 생각해요. 섹스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거잖아요. 이 탐험에서 어느 선까지 자신을 허락하는지 한계점이 비슷해야 둘이 동행할 수 있어요. 한마디로 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냐는 거죠. 왜,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잖아요. 자주 만나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해보고, 여러 상황을 함께 겪어본 사람과 친밀함이 쌓이고, 특별해지는 것처럼요. 섹스도 다양하게 놀아봐야 뭘 했을 때 제일 재밌는지 알 수 있는 놀이 같아요. 사람마다 섹스할 때 허용하는 수위가 다 다르다 보니, 전 여친 중에는 죽어도 정상 체위만 해야 하는 보수적인 친구가 있는 반면, 애널 섹스나 도기 체위처럼 화끈한 사랑에 스스럼없는 친구도 있었어요. 지금 만나는 애인은 사랑을 나눌 때 다양한 온도를 체험하게 해줘요. 얼음, 구강 청결제, 섹스 토이 숍에서 파는 쿨링 캔디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도구로 입안을 차갑게 한 뒤에 제 것을 예뻐해주죠. 열감이 생기는 젤을 바른 손으로 저의 그곳을 매만지기도 하고요. 발끝이 쭈뼛해져오는 쾌감은 둘째 치고, 애인이랑 섹스로 춥고 더운 사계절을 다 겪어본 느낌이에요. 같이 안 가본 곳이 없는 여행 메이트처럼요. 그렇게 화끈하고 과격하게 해볼 거 안 해볼 거 다 해본 사람은 절대 못 잊죠. 물론 그것도 ‘잘 맞으니까’ 이것저것 더 시도해보고 싶었던 거겠지만요. 무엇보다도 애인이 섹스에 적극적인 만큼 동작이나 소리도 크게 내는 편이라, 내가 잘하는 남자라는 자신감도 들어 신나고 흥분돼요. 느끼고 있다는 게 전해지잖아요. 오늘밤은 날 어디까지 데려가줄지, 생각만 해도 뜨거워지네요.
–나이트트레블러(PD, 30세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