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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 3D 아트 디렉터가 하는 일?

가질 수 없다면 만들어라! 팬데믹으로 발이 묶인 우리에게 허용된 또 다른 가상의 세계, ‘디지털 월드’는 어떤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지나.

BYCOSMOPOLITAN2021.01.30

디지털이 하는 일 

젠틀몬스터 3D 아트 디렉터 길보영 @justbboyoung    
 
마음의 고향은 회화지만 이제는 기술로 미래를 보는 데 익숙해졌다. 10년 넘게 디지털 필드에서 모로 구르며 얻은 굳은살이란 게 무섭다. 3D 디자이너지만 하는 일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가깝다.
젠틀몬스터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3D 아트워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제품을 착용한 모델이 워킹하는 모습을 3가지 다른 각도로 구현한 작업이었다. 원래는 툴을 익히기 위한 R&D작업이었다. 
3D 작업하는 사람들은 손이 녹슬지 않게 계속 새로운 툴을 연습해야 하거든. 그런데 만들다 보니 콘텐츠로 풀어도 좋을 것 같더라.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된 작업인데 또 3D 특유의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남아 있다. 성별을 구분하기 힘들어 인간보다는 다른 차원의 생물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중성적인 느낌은 철저히 의도한 거다. 처음에는 BFRND라는 남자 뮤지션을 모티브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남자를 생각하고 작업하다 보니 어딘가 자꾸 느끼한 얼굴이 나왔다. 그래서 여자로 초안 모델을 만든 뒤 화장을 제거하고 중성적인 터치를 더했다. 워낙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 조금 어려운 편에 속한다. 피부 톤을 구현하려고 리플렉션도 해보고 투명해 보이게도 하고, 머리카락을 심고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만드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조금 어려운 편에 속한다는 말은,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게 있단 말인가? 
육면체나 구 같은 기본 도형에서 출발하는 책상이나 머그잔 같은 물건은 가장 쉬운 쪽에 속한다. 그리고 형태만 만드는 것과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예를 들어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 세수하는 물결을 만드는 건 어렵다.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이라 이 부분은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테크니컬 아티스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같은 3D 디자이너인 친구가 “겨울 느낌 나게 눈 좀 뿌려주세요”라고 요청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아서 둘 다 웃음이 터졌다. 디자이너들에겐 그런 게 일종의 조크로 통한다. 
 
작가명 KILBO를 검색해보니 블로그가 하나 나오던데, 회화 작업이 많더라. 원래 전공이 회화였나. 
전공은 시각디자인인데, 대학 때도 내가 하는 작업은 디자인보다 회화에 가까웠지.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술이 너무 빨리 발달하다 보니 확실히 회화나 2D 같은 기술만으로는 표현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지금은 3D를 제일 많이 하고 있지만 이걸 가장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하하. 
 
포트폴리오를 보니  ‘디스트릭트’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더라. 코엑스 아티움 건물 전광판의 미디어 아트 작업 ‘wave’로 잘 알려진 에이전시다. 
제일 처음에 입사한 회사는 VKR이라는 광고 에이전시였는데 이름이 ‘Video Killed Radiostar’의 줄임말이다. 주로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점점 디스플레이의 스케일이 확장되는 것에 관심이 갔다. 디스트릭트가 딱 그런 작업을 하는 회사였다. 홀로그램부터 VR, 키네틱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까지 방대한 작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 
 
디스트릭트에 재직할 당시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얘기해줄 수 있나. 
‘라이브 파크’라고 킨텍스에 오픈했던 4D 테마 파크가 있다. 2011년이었으니까 사람들에게 아직 뉴미디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다소 무모하게 도전했던 혁신적인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방문객들이나 작업자나 다양한 형태의 디스플레이와 인터랙티브 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영국 런던 도버 스트릿의 알렉산더 맥퀸 매장에 설치된 스마트 미러 작업에도 참여했는데, 방문객이 거울 앞에 서서 원하는 옷을 터치하면 옷을 입은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는, 일종의 디지털 룩북 같은 작업이었다. 
 
젠틀몬스터 같은 패션 브랜드들 역시 3D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이번에 보이드 캠페인의 콘셉트 영상 작업을 맡았는데, 팀에서 모델 워킹 영상을 촬영했고 나는 그 영상 소스를 활용해 3D 툴에서 공간을 만들고 키네틱 인스톨레이션을 구성했다. 실제 촬영한 영상과 3D로 구현한 공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혼합 애니메이션이다. 
 
처음 전화 통화할 때 3D 모션 그래픽 외에 뉴미디어 관련 일을 했다고 소개했는데, ‘뉴미디어’라는 말이 굉장히 모호하게 들리더라. 
디스트릭트에 근무할 때는 디스트릭트를 뉴미디어의 고유명사처럼 생각했다. 디스플레이 개념의 확장을 고민하는 곳이었으니까. 디스플레이를 단순히 모바일이나 PC 같은 화면이 아닌 건물에 프로젝션 매핑하거나, 홀로그램처럼 시공을 초월해 보여줄 수도 있고, 혹은 분수에 미스트처럼 뿌릴 수도 있는 거지. 사실 ‘뉴미디어’라는 단어 자체에 어폐가 있다. 오늘 새로운 기술은 내일 과거의 기술이 돼버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요즘 당신이 상상하는 뉴미디어는 어떤 형태에 가깝나? 
〈Her〉 같은 영화를 보면서 미래의 뉴미디어를 많이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모님이나 친구를 눈앞에 불러오거나, 언제 어디서든 존재를 소환하는 기술 같은 것.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국내 통신사들이 앞다투어 5G 개통을 발표하던 2019년 초에 디지털 기술도 새로운 챕터를 맞이할 거라고 다들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5G 수신기 설치 문제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지만.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어떤 미래를 그리나? 
예전에 AI 관련 기사나 논문을 많이 찾아봤는데 약간 암울하게 느껴졌다. AI 로봇 인터뷰에서 무시무시한 답변들이 많이 나오지 않나.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까?”라는 물음에 “그래도 너는 내 인간 동물원에 가둬놓고 따뜻하게 보살펴줄 테니 걱정 말아라”라고 농담하는 AI 로봇도 있었고. 
 
영화 〈엑스 마키나〉가 생각나는 대화다. 
AI가 스스로 자신이 사람인지 로봇인지 헷갈려 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들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생각보다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수 있다. 
 
3D 작업만 해도 감쪽같이 사람을 속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내가 비전문가라 그럴까? 사실 당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도 3D 작업인 줄 알았다. 
그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 이런 반응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전문가들도 구별하기 힘들 만큼 3D 기술이 발달한 건 맞다. 그리고 요즘은 3D만이 주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을 콘셉트로 제작하는 영상도 있더라. 작년 6월 공개된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티저 영상이 대표적이다. 카메라 워크나 배경의 그리드, 표면에서 느껴지는 질감 모두 3D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세계의 디자인은 점점 현실을 최대한 정교하게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전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까? 지금은 둘 다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실적인 작업물을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굉장한 판타지를 만들고 있다. 나 역시 방법적으로는 두 가지 모두를 연구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이냐의 구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일민미술관에서 VR 전시를 봤는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한 구절을 1920년대 신문에서 유행하던 만문 만화 그림체로 보여주더라. 2D로 만든 VR 세상의 경험이 생각보다 무척 생생했다. 기술보다 어떤 상상력을 가지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단순 3D 영상보다 유저가 리얼 타임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게 만드는 기술이 점점 각광받을 것 같다. 그렇다면 3D 디자이너는 누가 살아남을까? 결국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만 남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사실 나는 3D에 국한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감각적 영감을 주고 싶은 거지. 
 
정확히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진 기술은 햅틱이다. 홀로그램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촉각에 현실감을 주는 거다. 휴대폰 화면은 늘 매끄럽고 차갑지만, 햅틱 기술을 적용하면 화면에 소파가 나왔을 때 실제 소파를 만질 때 손끝에 전해오는 진동과 파장을 재현한다. 소파를 보면서 소파의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까지 느낄 수 있는 거다. 기술을 얘기하면 할수록 감성을 더 강조하게 된다. 결국 기술에 결여된 건 감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