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영롱킴이 15년 동안 드랙을 한 이유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여자들이 기껏 벗어 던진 코르셋을 주워 입는 사람들이라는 비난도, “남자야, 여자야?”라는 질문도 그만. 화려한 분장과 강렬한 몸짓으로 ‘나’를 표현하는 사람들,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드랙 아티스트를 만나 드랙의 진짜 의미를 물었다.


드랙퀸 나나영롱킴

스무 살의 나이에 드랙을 시작해 현재 15년 차 드랙 아티스트. LGBTQ 기반의 컬처 커뮤니티 ‘네온 밀크’의 팀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9년 독립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나, 나〉를 진행했다.

드랙퀸 나나영롱킴

드랙퀸 나나영롱킴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어가 10만을 넘어섰고, 팀 네온 밀크 멤버들과 함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마마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어요. 드랙을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리고 있는 셈이죠.
처음부터 드랙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뚜렷한 의도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물론 드랙이 대중화되면 좋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퀴어 신 내에서도 드랙은 소수거든요. 아직 불편해하는 시선이 많아요. 네온 밀크는 그저 우리끼리 재미있는 작업 많이 하자고 시작했던 활동인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더라고요. 제가 워낙 성격이 속칭 ‘나대는’ 편이다 보니. 하하.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의미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죠. 스무 살에 처음 시작했을 땐 드랙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공연 기획사에 직접 명함이랑 컴카드 만들어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죠. 당시엔 화장도 엉성하고 의상도 정말 형편없었어요. 믹스매치가 아니라 미스매치. 어느 순간 ‘내가 센스가 없어 사람들이 몰라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패션 잡지도 이것저것 챙겨 보고, 메이크업도 여러 스타일을 시도해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나’라는 캐릭터를 흡수했죠.


드랙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대학 시절 뮤지컬 〈헤드윅〉 공연이었다고요.
연극영화과를 다녔는데 제가 주로 맡는 역할은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어요. 로맨스물에서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주인공, 엄마의 자존심과 같은 아들처럼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퀴어란 걸 알아서 그런 통속적인 연기가 불편하고 몸에 맞지 않다고 느꼈는데, ‘헤드윅’ 역할을 맡아 가발을 쓰고 진한 분장을 한 채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캐릭터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드랙퀸을 ‘여장 남자’로 편리하게 설명하는 것 같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저는 사람들에게 늘 드랙을 ‘내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과 몸짓, 표정을 분장과 의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요. 드랙(Drag, ‘Dressed as a Girl’의 약자)의 기원 자체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릴 당시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가 없어 남성 배우가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것에서 기인했다는 설이 유력하긴 한데, 사실 유래는 따지고 보면 여러 가지일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유독 ‘여장 남자’의 이미지가 강해진 건 드랙이 게이 신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주변에 드랙하는 게이 친구들 보면 대부분 디바를 표현하고 싶어 해요. 휘트니 휴스턴이라든지, 레이디 가가라든지.


왜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니라 휘트니 휴스턴이고 레이디 가가일까요?
공연이나 패션쇼를 보면 남자 옷보다는 여자 옷이 더 화려하잖아요. 그렇지 않던 시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입는 것이 금기시됐으니까요. 요즘은 젠더리스 시대라지만 성 역할의 경계가 완벽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드랙퀸 나나영롱킴

드랙퀸 나나영롱킴

“드랙이 탈코르셋을 답습한다” 혹은 “여성성을 희화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슈퍼볼 하프타임에서 제이 로와 샤키라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볼드한 의상을 입고 나와 쇼 하면 멋진 거고, 그걸 남자가 따라 하면 무조건 여성 비하일까요? 현대사회에서 남성들은 화려하게 치장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코르셋처럼 작용한다고 봐요. 드랙퀸들이 말 그대로 코르셋을 입고 골반에 패드도 넣고 유혹적인 몸짓을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여성들의 행동방식을 보고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끼’예요. 드랙의 과장된 행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 각자가 드랙을 ‘왜 하는지’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드랙의 인기를 몰고온 드랙 서바이벌 시리즈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이하 〈루드레〉)에선 여성스럽지 않은 스타일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죠.
〈루드레〉는 드랙 중에서도 여성적인 스타일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봐요. 음악으로 예를 들면 힙합, 발라드, 록 등의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발라드 장르만 겨루는 프로그램인 거죠. 오늘 저도 화보 촬영 콘셉트를 ‘바비’로 잡았지만, 평소에 굉장히 기괴한 스타일의 화장을 한다거나 TV, 거품, 무당벌레를 표현하는 드랙 분장을 하기도 하죠.


드랙퀸 ‘나나’와 평소 모습인 ‘김영롱’ 중에 좀 더 편하게 느끼는 쪽이 있나요?
뭐 물리적으로는 김영롱이 가발을 안 쓰니까 더 편하겠죠. 하하. 그런데 정말 둘 다 똑같이 편안해요. 주변에 다른 친구들을 보면 드랙 안 할 때 소심하고 말수가 적어지는 사람이 있기도 해요. 저마다 드랙을 하는 이유나 드랙이 스스로에게 갖는 의미가 다르니까요. 여성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고, 여성이지만 드랙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중간에 잠시 드랙을 쉬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10년 넘게 드랙을 했으면 한 단계 치고 올라가야 한다고 느꼈거든요.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데 잘 안 되니까 침체기가 왔어요. 그러다가 2016년쯤 〈루드레〉가 유행하면서 한국 드랙 신도 활기를 얻었고, 저도 다시 재미를 느꼈죠. 드랙 퍼포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걸 보면서 ‘나 쟤네보단 잘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하하.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보다, 지금 머물러 있는 단계에서 계속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는 걸 깨달았죠.


드랙을 언제까지 할 것 같아요?
아마 계속하지 않을까요? 대중화‘돼야’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보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왜 저래?’보다는 ‘이건 뭘까?’ 하는 시선으로요. 사실 사람들은 다 자기밖에 몰라요.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드랙을 맹비난하는 사람들은 정작 드랙을 하지도, 보러 오지도 않거든요.


많은 여성이 사회가 정한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속하고 싶어 지나친 자기 검열을 하곤 해요.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나나로서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물론 젠더 고정관념이 당장 바뀌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모습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요?

여자들이 기껏 벗어 던진 코르셋을 주워 입는 사람들이라는 비난도, “남자야, 여자야?”라는 질문도 그만. 화려한 분장과 강렬한 몸짓으로 ‘나’를 표현하는 사람들,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드랙 아티스트를 만나 드랙의 진짜 의미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