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 디자이너 김형빈(29세) 씨는 여초 회사의 진입부터 난관을 겪었다. “이직하고 초반에 꽤 힘들었어요. 전 직장과 달리 남자 직원이 저 하나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말을 안 걸어주는 거예요. 남자들이 많은 회사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먼저 말을 건넨다든지, 회식을 한다든지 해서 친해질 기회가 있는데 여긴 회식도 없고 점심 식사도 각자 하거나 자기 자리에서 간단히 때우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먼저 밥을 먹자고 말하거나 친밀감을 표현하면 오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고요.” 입사 반년 차인 회사원 윤재혁(27세) 씨도 처음 적응하는 시기에 고충이 가장 컸다고 토로한다. “남중, 남고를 나와서 여자가 많은 환경에 대한 환상이 조금 있긴 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보니 저한테만 집중되는 시선이 힘들더라고요. 입사 동기 중 저를 포함해 두 명만 남자고, 나머진 다 여자였거든요. 뭘 해도 눈에 띄고 선배들이 저와 남자 동기 이름을 자주 부르다 보니 다른 여자 동기들이 우릴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계속 봤던 기억이 나네요.”
여초 회사에서 일하는 많은 남성이 맨 처음 느끼는 고충은 ‘눈치’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여자는 이러지 않을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불편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을까?’와 같은 추측 혹은 지나친 신중함이 오히려 문제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심리학 박사 존 그레이는 저서 <직장에서 만난 화성 남자 금성 여자>에서 문제의 원인을 ‘성별 이해 지능’의 부족으로 꼽는다. 즉 남성이 여성의 업무 스타일, 회사 생활 방식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로 여초 회사에 들어가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단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여성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꺼리는 태도는 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일점이라는 역차별
젠더 의식이 과거에 비해 꽤 높아졌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셜 커뮤니티엔 “대표님이 고객이 오면 나한테만 커피를 타 오라고 시킨다”, “탕비실 정리는 늘 여직원의 몫이다”와 같은 하소연이 올라온다. 남성이 다수인 집단에서 소수인 여성에게 특정한 성 역할을 강요하고 재생산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 이런 문제는 남성이 소수인 집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마케팅 회사에서 PM으로 일하는 박성인(35세) 씨는 자잘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찾는 팀원들의 태도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인터넷 연결에 문제가 생기거나 복사기, 스캐너 같은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무조건 저를 호출해요. 휴대폰으로 해결법을 검색해보거나 기계에 붙어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는 등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지도 않고요. 유관 부서나 A/S 센터에 직접 전화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홍진택(31세) 씨는 힘쓰는 일에 무조건 남자만 차출되는 문화는 비교적 없어졌지만 ‘남자는 으레 그럴 것이다’라는 동료들의 편견, 단정이 고충이라고 토로했다. “이젠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회사로 오는 택배를 옮기거나 하는 일을 남자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좀 낮은 편이라 그런지, 요즘엔 여자들이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하는 걸 자존심 상해하더라고요. 그런데 별생각 없이 한 제 행동을 보고 ‘역시 군대에 갔다 와서 상사의 말을 무조건 잘 듣는다’거나 ‘여자라고 무시하냐’는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어요. ‘쟤도 별 수 없는 한남이다’라는 뒷담화를 들은 게 가장 충격적이었죠.” 그는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편협한 태도만큼이나 여성 역시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 선입견이 공고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취재에 응한 남성들이 털어놓은 공통적인 고충이 있다. 바로 ‘뒷담화’다. 홍보 회사를 운영하는 이미성(37세) 씨는 그 때문에 아예 회사를 그만둔 케이스. “여자들은 수가 많아지면 끼리끼리 뭉쳐요. 한 무리가 꼭 다른 무리를 욕하죠. 물론 그들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는 욕이지만요.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거예요.” 출판사 에디터로 일하는 최정환(32세) 씨 역시 여성들의 ‘파벌 형성’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다고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데 뒤에선 살벌하게 서로를 깎아내려요. 문제는 양쪽 다 저한테 그 말을 한다는 거예요. 남자는 그럴 때 그냥 안 보거나 치고받고 싸운 뒤 잘 지내는 성향이 있는데 여자들은 서로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겉으론 완벽히 숨기죠. 그 사이에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 회사원 이태현(29세) 씨는 뒷담화는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낭설’이 돌 때 섬뜩했다고 고백했다. “누구나 잡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는데 어느 날 제가 이상한 사람이 돼 있는 거예요. 회사 내에 누구랑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둥, 전 여자 친구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는 둥, 집에 돈이 많다는 둥… 자기들끼리 소문을 퍼뜨리면서 저를 마음대로 판단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 소문을 만들어낸 동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따지고 나서 상황이 좀 나아졌어요.”
여성과 함께 일한다는 것
많은 전문가가 여성들의 업무 방식 키워드를 ‘협력, 협조’로 꼽는다. 존 그레이는 “여자들은 공동 작업, 협조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지지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여자들도 결과에 신경을 쓰지만 그 과정 중에 당면하는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가는 것에 목적의식과 만족감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반면 업무 이외의 회사 생활에선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 강하다. 회사원 이형섭(30세) 씨는 그런 면이 ‘워라밸’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전 직장에선 워크숍이나 회식이 정말 잦았어요. 지금은 입사 후 1년 동안 회식을 딱 한 번 했어요. 그것도 점심이었고요. 아쉬울 때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느껴요. 특히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사람이라면요.”
많은 남성이 여성을 좀 더 배려하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행 콘텐츠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형진(32세) 씨의 생각은 다르다. “저 사람이 무거운 걸 들고 있을 때 내가 가서 도와줘야 하나, 커피값을 내가 내야 하나 같은 자잘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들은 상대가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게 평등한 대우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김형진 씨의 의견처럼, 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과(혹은 여성이 남성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일하기 위해선 젠더에 따라 (대체적으로) 드러나는 성향, 강점을 제대로 아는 것, 즉 성별 이해 지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한쪽의 특성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대신 서로의 강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 당신이 여자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존 그레이의 말을 기억하라. “여자들은 ‘남자와 여자는 똑같다’라는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 결정, 리더십 등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차이를 똑같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