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랜드의 나르시시스트에게 고함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나나랜드’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정착한 기회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다. 이 유토피아에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이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들이 자기애를 추구할 때 각각 어떤 일이 생길까? 코스모가 전문가와 함께 그 차이를 탐구했다. ::비지니스, 커리어, 커리어팁, 워크, 일, 회사, 나나랜드, 신조어, 자존감, 유토피아, 나르시시스트,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비지니스,커리어,커리어팁,워크,일

웰컴 투 나나랜드올 한 해 당신이 자주 보고 듣게 될 단어가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제시한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 ‘나나랜드’다. 그가 이 신조어에 내린 정의는 이렇다. “진정한 자존감을 찾아 떠난 여행의 종착지.” 건강한 자존감과 연결된 이 유토피아가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뉴스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나나랜드의 정착을 가로막는 녹록지 않은 걸림돌이 있다. ‘나는 중요한 사람’과 ‘나만 중요한 사람’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자,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을 남을 배제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자기 생각에 도취된 나르시시스트. 여기까지 읽었을 때 곧장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가? 혹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쩐지 남 얘기 같지만은 않은가? ‘나나랜드’ 입성에 앞서 당신 주변과 당신 자신의 자존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 의사 등 전문가 군단이 알려주는 나나랜드의 모범 시민이 되는 법.나나랜드의 불청객, 나르시시스트나나랜드가 추구하는 이상, ‘사회의 잣대나 남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삶, 자신의 취향·생각·기준을 주체적으로 좇는 삶’은 사실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세계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것과 자신을 중심에 두는 것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나르시시스트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이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좁기 때문이다.  구로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박종석 원장은 ‘건강한 자존감’을 갖기에 앞서 자존감과 자기애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파악하고 평가하는 능력과 연결돼 있습니다. 흔히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사람은 타인과 자기를 비교한 후 열등감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완하거나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자신을 격려합니다. 반면 자기애적 인격 장애자 혹은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소중하다’,  ‘나는 특별하다’고 확신하죠.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겉과 달리 속으론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할까 봐 불안해하고,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즉 과잉된 자기 보호와 방어가 낮은 자존감의 전형이라는 뜻입니다.” 박종석 원장의 말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는 중요하다. 고로 나는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태도에 빠지기 쉽다. 금융업계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김예진(가명, 26세) 씨는 남과 다른 대우를 원하는 상사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직 수습 사원이라 여러 팀의 업무를 서브하면서 일을 배우고 있어요. 모 팀의 한 과장님이 입사 초기에 신입 기수를 좀 잘 챙겨주셨는데, 그 뒤로 다른 선배들보다 친밀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러더니 일을 시킬 때마다 본인 일을 먼저 도와달라고 말하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부탁까지 들이미는 거예요. 처음엔 거절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먼저 받은 다른 일을 제때 못 하니까 자꾸 혼나서 어렵게 상황을 이야기했어요. 혹시 급하지 않으면 다른 선배가 먼저 지시한 일을 처리하고 나서 시키신 일을 하겠다고요. 그랬더니 화를 내는 거예요. 회사 내 인간관계는 ‘기브 앤드 테이크’라나? 자기가 특별하게 챙겨준 만큼 똑같이 보답하는 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면서요.”김예진 씨의 상사는 자신은 남과 다르기 때문에 ‘예외’로 대접받기를 바라거나, 기대한 것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을 때 화를 내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이런 유형이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이 제공한 친절이나 호의의 유효기간에 ‘끝’을 두지 않는 것. 웹 디자이너로 일하는 손경민(가명, 26세) 씨는 회사 내에서 ‘멘토-멘티’ 관계로 맺어진 사수 때문에 겪은 일을 토로했다.“사수가 오지랖이 좀 넓은 성향이에요. 그래서 제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살피며 자주 상담을 하고 신경을 써줬어요. 물론 그땐 많이 고마웠죠. 문제는 아직도 멘토 행세를 한다는 거예요. 저 입사한 지 2년 됐거든요? 자꾸 후배들 앞에서 ‘내가 쟤를 키웠다’, ‘쟤가 일 잘하는 건 다 나한테 잘 배워서야’라고 하질 않나…. 얼마 전엔 저보고 ‘내 새끼’ 같은 후배니까 본인 동생 결혼식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무슨 생명의 은인도 아니고… 언제까지 고마워해야 하나요?”잘난 자신에게 도취된 이, 낮은 자존감을 지닌 이만이 나르시시스트는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인 심리학자 라마니 더바술라는 자기애가 지나친 이들은 본인의 단점을 축소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배려’를 요구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 비하뿐 아니라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것도 낮은 자존감의 결과입니다. 심리학에선 이를 ‘인지적 왜곡’이라고 합니다.” 더바술라 교수는 이런 유형들이 대체로 외부 세계를 과소 평가하고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손지영(가명, 35세) 씨가 당한 ‘봉변’이 바로 그런 사례. “팀에 직원이 새로 들어왔는데,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런데 자기 능력에 대해 떠벌린 것치곤 하는 일마다 너무 어설펐어요.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칠 정도로 큰 사고를 하나 쳤죠. 수습 후 따로 불러 ‘네 업무 진행 상황을 팀원에게 정확히 공유하고, 앞으로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혼을 냈어요. 며칠 후 그 친구가 저한테 사직서를 들이밀면서 ‘자기가 모든 도의적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더라고요. 기가 차서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본인이 연차가 낮은 만큼 경험이 부족한 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도 월급 받는 만큼은 충분히 일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쐐기를 박더군요. 하하. 그 친구는 아마 자기를 ‘할 말 할 줄 아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어디 가서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겠죠?”건강한 자기애는 이타적이다자기 사랑과 이기주의는 명백히 반대 개념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한 말이 근거다.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반대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게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김난도 교수 역시 온전한 나나랜드는 ‘자기 삶에서 남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이 만든다고 말한다. 이 역설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습을 신뢰한다. 또 타인의 우월함을 자기 비하나 한탄으로 연결하지 않는다’는 뜻. 그는 이 ‘궁극의 자기애’가 발휘될 때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수용력 또한 높아지고 사회의 획일화된 규범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부연한다.박종석 원장의 의견도 같다. “1인 가구, 욜로, 혼밥 같은 사회적 트렌드가 부추기는 개인주의적 혹은 이기적 성향은 특히 20~30대 청년 세대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는 본인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전제하에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많은 전문가가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말하지만 심리학자 김태형은 이에 회의적이다. 그는 저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에서 “비교는 세계를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사람들은 여러 사물 현상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각각의 본질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며 사물 현상 사이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라는 의견으로 근거를 든다. 즉 사회적 비교를 하는 행위보다는 비교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이 건강한 자존감을 쌓는 방법이라는 뜻.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버는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잘못된 기준’을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소속 집단과의 끈끈한 연대도 나나랜드의 바람직한 선민이 되는 지름길이다. 단, 사회적으로 올바른 기준을 가진 집단,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존중하는 집단을 선택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김태형 박사는 ‘진짜 자존감’은 타인을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자존감은 타인과 전혀 상관없이 나의 내면에서 조작되는 주관적 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자기 개념과 자기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 타인의 존재는 필수적이라는 명제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