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영화평론가 이동진

이달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이 만난 인터뷰이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30대 중반에 13년의 영화 전문 기자 생활을 접고 1인 미디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에게서 ‘나만의 플랜 B’를 원하는 당신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15.08.20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 진행, 저술 활동, 라디오 DJ, 영화 해설,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중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DJ 활동을 빼놓을 수 없죠. 어느새 130회를 넘겼는데, 인쇄 매체 기자 출신이자 영화평론가로서 ‘책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DJ’라는 제안이 낯설지는 않았나요?

<이동진의 빨간책방> DJ 제안을 받았을 당시는 팟캐스트 초창기였거든요. <나꼼수>가 워낙 인기 있었기에 ‘팟캐스트’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생경한 매체였어요. 그런데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책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방송을 제안한 거예요. 처음에는 ‘나는 영화평론가인데 왜 나한테 책 방송을 해달라고 하지?’ 이런 의문을 갖기도 했죠. 그런데 결국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첫 번째는, 2006년 퇴사한 뒤 쓴 6권의 책이 모두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왔고, 그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두 번째는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내 평생 가장 큰 취미였기 때문이에요. ‘하루에 10시간 해도 지겹지 않은 일이라면 책 읽는 일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 얘기를 하는 방송이라는 것,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결국은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했던 시간과 노력이 있었기에 그 내공이 밑거름이 돼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그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저돌적으로 파고들어야 그것에 도전하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에서 우리가 ‘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사실은 ‘양’인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은 어떤 질적인 도약 같은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천재성, 통찰력,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실은 오랫동안 차곡차곡 양이 쌓여 어느 한순간에 질로 전환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양을 쌓지 않은 상태로,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는다고 질적인 무언가가 탄생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질’이라는 결과물이 나타날 때까지 묵묵히 ‘양‘을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겠군요. 누구나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발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희망적이네요.

그렇죠. 제가 자주 인용하는 미국의 화가 척 클로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아마추어는 앉아서 영감을 기다리지만 프로는 일어나서 일을 하러 다닌다”. 그러니까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영감이 왜 안 떠오르지?’라고 하는 사람은 진짜 아마추어인 거예요. 프로는 ‘영감이 다 뭐냐?’라며 그저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할 뿐이죠. 10년 했던 일을 11년 하고, 12년 하다 보면 그날그날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생각이 안 날 때도 있을 거예요. 저에게는 그렇게 양을 쌓아가는 분야가 바로 영화, 책, 음악인 거죠. 그런데 실은 이 세 가지가 제 평생에 가장 중요한 취미예요. 여기에 돈도 허다하게 썼고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쏟았어요. 


취미가 결국에는 일로 재탄생한 거네요.

그러니 인생이 참 흥미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요. 10대 시절부터 저는 음악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항상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공부했어요. 그러면 부모님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음악 듣는 것을 말리셨어요. 한번은 제가 모아둔 LP판을 모두 버리기도 하실 정도로 말이에요. 당시엔 부모님께 원망을 듣고, 저 역시 그저 100% 취미로 여겼던 음악이 수십 년 뒤 일이 되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살면서 도둑질 빼고는 다 써먹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언제나 영화처럼’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9년째 운영 중이잖아요. 어느덧 2200개의 포스트가 있더라고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주 5~6회 글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걸 보고 대단히 성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제가 성실한 것 같긴 해요. 하하. 책임감도 어느 정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무엇이든 스스로 세팅해둔 것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에요. 블로그를 9년째 운영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거나 잠적하고 싶을 때도 많죠. 물론 언젠가는 접을 생각이에요. 하지만 아예 블로그를 접지 않는 한 한 달에 하나 글을 올리는 정도로 방치하는 것은 제 성격과 맞지 않거든요. 저에게 좋은 습관이 있다면 아무리 괴로워도 가급적 벽에 부딪히는 순간까지는 꾸준히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꾸준하게 하는 것이라면 비교적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죠. 


프로필에 적힌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는데, 정말 그 모토처럼 생활하시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시간을 투자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무언가 계획해 움직인 것은 아니고 기회가 오는 대로 잘 살리며 해나가고 있잖아요.

그런가요? 하하. 그 모토는 ‘아, 이걸 내 좌우명으로 삼아 거기에 내 인생을 맞춰 살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세운 것은 아니에요. 그저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러면 이런 습관에서 그나마 제대로 살 방법은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나온 말이죠. 영화감독들도 그래요. 유학파 출신이거나 아주 똑똑해서 미리 테크닉을 정해 첫 영화를 찍을 때부터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는 이들이 있죠. 그런데 잘 살펴보면 다소 인위적이거나 어설픈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어떤 감독은 초반 10여 편의 작품에서는 평범한 연출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개안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사람이 있거든요. 전 후자가 훨씬 더 신뢰할 수 있고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 역시 마찬가지죠. 20대 시절부터 자기 인생의 좌우명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도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20대 시절 지금의 좌우명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철저히 계획하는 사람이었죠. 그때만 해도 인생은 계획대로 통제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아, 저 사람 인생을 참 허투루 사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 스스로 후회는 되지만 돌아가도 그보다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에게 적용할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살다 보니 깨닫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나만의 플랜 B’를 준비하는 코스모 독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늘 ‘변화’를 꿈꾸면서도 시도도 안해보고 안주하는 이가 많은데요. 이직이든 창업이든 나만의 플랜 B를 위해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둘 때 ‘어떤 직장으로 이직할지,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할지’를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실은 많은 가치 있는 일이 지금 하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 전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김남주 시인이 80년대에 쓴 시 중에 ‘원숭이와 설탕’이라는 게 있죠. 그 시를 보면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나오거든요. 그들은 원숭이를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잡아요. 나무가 썩으면 구멍이 생기는데 그 안에 구멍보다 큰 사탕수수를 넣는대요. 그러면 원숭이가 와서 구멍 속의 사탕수수를 잡아당기는데, 원숭이 두뇌로는 손을 넣어 돌려 빼는 법을 알지 못하니까 계속 사탕수수를 꺼내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당황할 때 원주민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걸어온대요. 그러면 원숭이는 사탕수수를 놓고 도망가면 되는데, 갖고 싶으니까 공포를 느끼면서도 사탕수수를 못 놓는 거예요. 결국 사탕수수를 쥐고 있기 때문에 원숭이가 잡힌다는 거거든요. 그 이야기를 접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현재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죠. 어떤 일은 자기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뒤 나가려고 하면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 보이는 길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그만두라는 것은 아니에요. 인생에서 모든 것을 철저히 세팅해 앞으로 가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런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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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주
  •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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