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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축구 레전드, 지소연이 말하는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

선구자를 넘어 유일무이한 아이콘으로. 축구장에 그리는 지소연의 청사진.

프로필 by 김미나 2026.02.26
재킷 Normor. 어깨에 걸친 카디건 The Matee. 셔츠 Zara. 이너 터틀넥 Muarmus.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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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국, 미국 등 국제무대에서 프로 생활을 마치고 WK리그 수원FC 위민(이하 ‘수원’)으로 복귀했습니다. 홈그라운드로 돌아온 소감은 어떤가요?

해외 리그에서 뛰며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왔어요. 한국 무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나눌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돼요.


축구 선수로서 지나온 모든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지금은 어떤 단계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 시절 초반에는 무작정 잘하고 싶고, 어떻게든 저를 증명해내겠다는 열의로 가득 차 있었어요. 지금은 나 혼자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책임과 부담을 나눠 가져야 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선배, 맏언니,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지소연을 한 단계 성숙하게 했네요.

맞습니다. 해외 리그에 막 진출했을 때는 어렸고, 뭐든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제가 가진 것들을 양껏 공유하고 싶어요.


무려 프리미어리그 첼시 FC 위민(이하 ‘첼시’)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왔죠. 당시에는 부담이 꽤 컸을 것 같아요.

15년 전 영국으로 향했을 때, 꼭 첼시 같은 ‘빅 클럽’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첼시에서 뛰게 됐고, 긴 시간 동안 주장으로서 중심적 역할을 해왔던 것이 저를 성장하게 했죠.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축구 명가인 영국에서 제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켜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정말 열심히 뛰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잘해낸 것 같아 다행입니다.(웃음)


첼시에서 다양한 체격의 선수들과 함께 뛰며 지소연만의 플레이 스타일도 구축했죠.

피지컬이 강하고, 스피드가 빠른 선수들이 많았죠. 저는 체격이 크지도 않고 민첩한 편도 아니라서 그 차이를 인정하고 기술을 좀 더 세밀하게 연마하려고 했어요. 움직임과 판단 속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저의 플레이 스타일이 정립된 것 같아요. 그래서 9년 동안 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웃음)


첼시에서 뛰는 동안 ‘지메시’, ‘첼시의 레전드’ 등 여러 타이틀을 몰고 다녔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기록이 뭐예요?

2014-2015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을 때요. 남녀 통틀어 아시아인 최초로 받은 상이고, 아직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웃음) 웬만하면 우리나라 선수가 이 기록을 깨면 좋겠네요!



팬츠 Fancy Club. 슈즈 Rosenick. 톱, 반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목에 건 축구화 본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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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선수상’을 받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했을지 상상조차 힘든데요.

매일이 경쟁이었고, 매 순간 저를 증명해야 했어요. 그런데 정말 매년 젊고 잘하는 선수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마음속으로 ‘서른 살 전까지는 절대 밀리지 말자,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자’라고 생각하며 버텨왔던 것 같아요. 버거웠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꼈죠.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기도 했나요?

저는 시즌이 끝나도 딱 2주만 한국에 와서 쉬고 나머지는 계속 운동했어요. 그래도 그 2주 동안은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푹 쉬면서 나름의 재충전 시간을 가졌죠.


지소연의 뒤를 이어 많은 선수들이 해외 리그로 진출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엔 분명 힘들 거예요. 하지만 스스로를 믿고 버텼으면 좋겠어요.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을 봤을 때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다고 느껴요. 단기 성과가 아닌, 선수들이 오래도록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꼭 필요하죠.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K리그만 해도 평균적인 지원금이 195억 정도인데, WK리그는 10분의 1 수준이에요. 아마 19억도 안 될 거예요. 너무 열악한 상황이죠. 사람들은 ‘인기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여자 축구에 투자해서 뭐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투자가 선행돼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 호주 등 세계적으로 여자 축구가 발전하고 있는 추세인데, 한국은 점점 더 따라가기 힘들어지니 안타까울 뿐이죠.


텅 빈 관중석을 보면 그 격차가 더 실감이 날 것 같아요.

깜짝깜짝 놀라요. 첼시에서 뛸 때는 평균 관중이 3만 명 정도였고, 미국 리그도 평균 1만 명은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관중 없는 경기장에서 뛰며 영 힘이 안 날 때는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경기하기도 해요. 슬프지만, 그러면 조금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여자 축구 선수들이 파이팅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럼요. 관중이 있든 없든 저희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뛰고 있습니다. 또 제가 은퇴하더라도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축구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했죠. 축구를 통해 배운 가치 중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책임감’.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11명이 한마음이 됐을 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제 플레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경기, 누군가의 노력과 직결돼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 책임감이 경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통용되는 가치라는 것도요.



데님 셋업 MTW. 브라톱 Calvin Klein. 반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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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여성이 그러하듯 팀 스포츠의 매력을 느낄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지소연은 어떤 어린이였나요?

남자애들이랑 축구, 야구 등 공놀이하면서 놀았어요. 당시에는 타석에서 공을 치는 것보다 뛰면서 공을 차는 축구에 훨씬 매력을 느꼈죠.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제가 축구를 잘해서 그때 함께 공 찼던 가수 이승윤 오빠가 저 때문에 축구 그만뒀다고 인터뷰했더라고요.(웃음) 이승윤 씨에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올해는 수원으로 복귀하고 첫 시즌이잖아요. 팀의 목표가 있다면?

팀으로서는 당연히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저희 수원이나 대표팀의 젊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고 싶어요. 적어도 제가 은퇴하는 날까지 그들에게 함께 뛰는 동료이자 조력자 같은 선배가 돼주고 싶어요.


WK리그 개막뿐만 아니라 2026 AFC 여자 아시안컵, 2027 FIFA 여자 월드컵 등 굵직한 경기가 많이 예정돼 있어요.

목표는 늘 국가대표로서 그 자리에 서는 건데요, 그저 매 순간 제 역할을 해낼 뿐이에요. 저도 나이가 있고, 국가대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몸 컨디션이 최상이라면 기꺼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인정하고 내려놓고 싶어요. 그래도 최소 4년은 현역 선수로 뛰는 게 목표기 때문에 2027년 월드컵까지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죠.


지소연 선수의 ‘FUN FEARLESS FEMLAE’도 궁금합니다.

(김)연경 언니요. 배구계의 톱인데, 웃기고 털털하기까지 하잖아요. 연경 언니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제 영향력이 김연경 선수만큼 컸다면, 우리 여자 축구도 더 부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하.


V리그도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WK리그도 곧 그렇게 될 거라 믿어요.

우리 여자 리그가 어디라도 잘되면 저는 너무 좋아요! 그만큼 올라갈 수 있다는 건 다른 종목 팀들에게도 분명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해서요. WK리그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중계권을 확보하고, 한국여자축구연맹에 스폰서를 유치하는 등 하나씩 풀어나가야죠!


지소연이 돌아왔으니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데요!

쉽지는 않겠지만, 저도 기대해봅니다.(웃음)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사진 배준선
  • 헤어 & 메이크업 김라희
  • 스타일리스트 이우민
  • 어시스던트 정주원
  • 디지털 디자이너 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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