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MUSIC IS IN THE AIR! 패션과 음악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패션과 음악, 그 긴밀하고도 완벽한 상호 관계에 대하여.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3.08.11
 

패션쇼의 공기

지난 4월, 잠수교에서 열린 루이 비통 2023 프리폴 컬렉션은 지금 서울이 세계의 중심임을 증명한 쇼였다. 그리고 이것이 증명한 또 하나의 사실, 바로 음악의 중요성이다. 강한 바람과 추위로 어수선했던 쇼장 분위기를 잠재운 건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괴물 소리처럼 느껴진(영화 <괴물>은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북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음악이 우리를 루이 비통의 세계로 단숨에 이끄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의 2024 크루즈 쇼는 또 어땠는가? 영화 <올드보이>의 OST에 이어 <기생충>의 OST ‘짜파구리’가 근정전 앞뜰을 가득 채우며 에디터의 마음속엔 ‘국뽕’이 차올랐다. 지난 7월 5일 열린 발렌시아가 2023 F/W 쿠튀르 컬렉션 런웨이에서도 음악의 힘은 여전했다.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AI 프로그램을 통해 부활시켰는데, 뎀나의 시각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헤리티지와 고전적인 오페라 아리아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 편의 오페라 같은 드라마틱한 모멘트를 선사했다. 사운드트랙마저 쿠튀르 창작물처럼 느껴졌음은 물론이고.
 
이 모든 것에서 알 수 있듯 음악은 패션쇼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필수적이고도 강력한 장치라는 점에서 패션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를 이룬다.
음악과 패션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샤넬, 디올, 루이 비통, 펜디, 발렌티노, 로에베 등 거의 모든 럭셔리 하우스의 런웨이 음악을 책임져온 패션쇼 음악의 거장, 미셸 고베르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로큰롤 스피릿에 죽고 사는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의 말도 인상적이다.
저에겐 음악이 항상 먼저였고, 패션은 그 음악을 받쳐주는 존재로서 음악에 대한 제 애정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때론 아티스트가 패션쇼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기도 한다. 셀린느의 2023 F/W 쇼는 프린스, 밥 딜런, 롤링스톤즈,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친 LA 윌턴 극장에서 열렸다. 퇴폐미 가득한 인디 슬리즈 패션과 함께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Hello Operator’가 쇼의 사운드트랙으로 흘러나오며 2000년대 개러지 록 무드로 쇼장을 채웠고 런웨이 직후엔 인터폴, 스트록스, 이기 팝이 과거 윌턴 극장의 무대에 올랐던 프린스와 롤링스톤즈를 오마주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뿐이랴. 퍼렐 윌리엄스의 데뷔 쇼인 루이 비통 2024 S/S 남성 컬렉션에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노래가 퐁뇌프 다리 위에 울려 퍼졌고, 퍼렐은 뮤지션답게 직접 작곡 및 피처링을 했다.
 
이 밖에도 그 예는 수없이 많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경으로 독일 엘프필하모니에서 열린 샤넬의 2017/18 파리-함부르크 공방 컬렉션, 뮤지션이자 패션 아이콘인 카를라 브루니의 라이브 퍼포먼스로 성공적인 파리 데뷔 무대를 치른 잉크의 2023 S/S 컬렉션 등 패션 하우스는 음악가들과의 협업으로 쇼를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그중 에디터는 고(故) 버질 아블로를 추모하는 열기가 가득했던 루이 비통 2023 S/S 남성복 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래퍼 켄드릭 라마가 프런트 로에 앉아 5년 만에 공개하는 신곡, ‘Count Me Out’을 읊조리며 버질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는 순간, 버질 아블로를 사랑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런지 룩의 대명사, 커트 코베인.준야 와타나베 2022 F/W 맨즈 컬렉션.지방시 1999 F/W​ 컬렉션.글램 룩의 시대를 연 데이비드 보위.톰 브라운 2023 F/W 쿠튀르 컬렉션.장 폴 고티에의 콘 브라를 입은 마돈나.​루이 비통 맨즈의 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독보적인 아방가르드 패션을 선보이는 비요크.

완벽한 러닝메이트

패션과 음악의 긴밀한 관계는 비단 패션쇼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패션 하우스가 음악 앨범을 발매하거나 공연을 주최하기도 하고, 음악이 컬렉션 테마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뮤지션들은 패션의 힘을 빌린다.
 
2021년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DJ 세바스티앙과 협업해 2017 S/S부터 2021 S/S까지 쇼에 사용된 사운드트랙이 담긴 바이닐을 발매해 패션과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전위적인 비주얼로 매 시즌 이슈를 모으는 뎀나의 동반자이자 뮤지션 비프렌드는 발렌시아가의 2023 S/S 사운드트랙, <엘리펀트> 앨범을 공식 발매했다. 그런가 하면 연극 같은 쇼로 화제가 된 톰 브라운의 첫 오트 쿠튀르 쇼는 영국 뉴웨이브 밴드인 비세이지(Visage)가 1980년에 발표한 곡 ‘Fade to Grey’에서 영감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준야 와타나베의 2022 F/W 맨즈 컬렉션은 자미로콰이의 상징적인 ‘Virtual Insanity’(1996)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해 자미로콰이가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젠틀몬스터가 개버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출시한 볼드 컬렉션, 베니스 전통 오케스트라와 글로벌 앰배서더 선미의 합동 공연을 선보인 골든구스 등 패션과 음악의 만남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패션을 이용한 뮤지션들은? 글램 룩의 데이비드 보위, 과감한 스타일과 히피 룩을 선도한 셰어, 관능적인 룩의 마돈나(특히 장 폴 고티에가 마돈나의 월드 투어를 위해 제작한 ‘콘 브라’는 강인한 여성상의 상징이자 하우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룩이다), 독보적인 아방가르드 패션을 선보이는 비요크 등이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당시 마초 이미지를 강조하던 록스타들과 달리 프릴 장식의 셔츠, 시퀸 보디슈트,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록의 보수적 근간을 뒤흔들며 리카도르 티시, 릭 오웬스와 같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비요크 또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과 패션 세계를 구축해오며 지금까지 패션과 예술계에 영감을 주는 아이콘이다. 패션은 아티스트의 음악적 색채를 더욱 명확히 보여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수단인 것이다.
 
루이 비통 2023 프리폴 컬렉션.생 로랑이 발매한 바이닐.비세이지의 ‘Fade to Grey’(1980)​.셀린느 2023 F/W​ 컬렉션.

영감의 원천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길고 긴 패션의 역사 속에서 음악은 패션의 뿌리가 되기도,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중 가장 눈부셨던 시대는 1960년대다. 패션과 음악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자 청년 문화가 사회 전반을 움직이던 시절. 모즈 룩, 히피 룩, 스페이스 에이지 룩, 유니섹스 등 1960년대를 풍미한 패션 사조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특히 비틀스는 미니스커트를 비롯한 모즈 룩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는 엉키고, 부딪히고, 뒤섞이던 저항의 시대로 그 시대의 패션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펑크 패션을 하이패션으로 끌어 올린 비비안 웨스트우드, 글램 룩 시대를 연 데이비드 보위, 프렌치 시크 룩의 대명사 제인 버킨까지(샹송 특유의 낭만과 자유로움이 그의 스타일에 영향을 줬던 걸까?). 그만큼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다양한 장르가 혼재된, 하나의 ‘빅뱅’과 같은 시대였다.
 
이를 지나 1990년대는 2PAC, TLC, Run DMC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룩과 힙합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 스트리트 패션이 성장 가도를 달렸다. 또 너바나로부터 시작된 그런지 룩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커트 코베인에게 영감을 받은 마크 제이콥스는 1993년 ‘페리 엘리스’ 컬렉션을 그런지 스타일로 선보여 많은 논란을 낳으며 스타 디자이너로 떠올랐고, 에디 슬리먼도 옮겨 다니는 하우스마다 커트 코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음악적 색채가 강한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토록 패션과 음악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오랜 세월 공생해왔다. 최근엔 겐조의 아티스틱 디렉터 니고, 버질 아블로에 이어 퍼렐의 루이 비통까지, 디자이너가 아닌 뮤지션들이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꿰차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까지 발생한 것일까? SNS가 발달하며 ‘패션 아이콘’들의 파급력은 강력해졌고,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럭셔리 브랜드의 소비층이 어려지며 이들의 마음을 자극할 문화적 DNA가 필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문화적 요소 중 음악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디자인 자체야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큰 그림과 비전을 만드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이처럼 패션은 단순히 입기 좋게 디자인돼 발전해온 것이 아니다(음악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힘든 만큼 패션도 마찬가지다). 문화적 코드를 수혈받아왔고 그중 음악이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즐기고 있는 이 패션 스타일이 어떤 음악 장르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지를 알고 즐기면 어떨까? 패션을 비롯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의 힘을 일상 곳곳에서 느낄 수 있을 테니!

Credit

  • editor 김소연
  • photo by BRAND/ GETTY IMAGES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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