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의 새로운 전염병...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논' 피해자들?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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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의 새로운 전염병...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논' 피해자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해로운 음모론이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여성이 이 피해망상의 거미줄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었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음모론 신봉자가 그 거미줄에서 힘겹게 빠져나오는 중이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2.15
 
건강관리 사업을 하는 33살 셀리 스미스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녀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음모론에 대해 검색했다. 불법 성매매, 가구 쇼핑몰로 위장한 아동 인신매매 사이트(당시 음모론자들은 이곳에서 실종된 아이들의 이름이 붙은 가구를 판매한다고 믿었다), 억만장자 소아 성애자인 제프리 엡스타인에 관한 음모론 등이 그것이었다. 꼭 봐야 할 동영상이 넘쳐났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언론의 실체 또한 파헤쳐야 했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야 했다. 한때 그녀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운동과 건강식 사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인터넷이 매일 자신에게 보여주는 공포스러운 정보에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겪은 셀리의 의식 저변에는 “내가 어렸을 때 필요로 했던 어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깔려 있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23살 약학대생 애나(가명)는 음모론에 빠져 사는 동안 마치 두려움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섭고 괴롭고 불안했어요. 심지어 공황 발작까지 겪었죠.” 그녀는 극우 성향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갭(Gab)’과 텔레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비주류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데 하루 8시간을 쏟았다. 애나는 말한다. “그 밖에 다른 일을 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이런 생활을 “스스로를 갉아먹는 괴물”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2020년 여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여성의 글이다. “무슨 일을 하든 계속 생각이 나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 같은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봤거든요. 하지만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미쳐버릴 것 같아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고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와요.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에요.”
 
 
이 세 여자의 일상을 망쳐놓은 것이 바로 ‘큐어논(QAnon)’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에서 처음 조직된, 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이고 악명 높은 사람들로 구성된 이 극우 음모론 단체는 팬데믹과 함께 세를 키웠다.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당신의 페이스북 피드 절반은 이 큐어논 추종자들이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외 지역에 사는 엄마들, 요가 강사들, 할머니들 말이다. 큐어논의 음모론에 빠지는 건 매우 쉽다. 지인이 올린 자극적인 게시글이나 진실을 주장하는 그럴듯한 동영상 몇 개만 클릭해도 관련 자료가 줄줄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음모론에 빠지기는 쉽지만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던 ‘Q’(큐어논을 대표하는 익명의 극우주의자)의 예측이 빗나갔을 때, 큐어논 신봉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큐어논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곧 불안하고 절박한 심정이 담긴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대로 된 뉴스 기사와 책, 팟캐스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음모론에 대한 믿음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게시판 사용자 수는 어느덧 20만 명을 넘겼다.
 
그럼에도 큐어논 음모론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의 이야기는 큐어논의 유명세에 가려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각성 이후 심리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들은 좀처럼 과거를 잊지 못하며,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와 혼란을 느낀다. 지난해 6월, 한 ‘큐어논 생존자’는 게시판에 이런 글을 적었다. “어떻게 하면 ‘Q’의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좀 도와주세요. 이미 모든 방법을 시도해봤다고요.”
 
 

팬데믹이 키운 슈퍼 음모론, 큐어논

물론 미국 역사상 음모론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그러나 2020년은 음모론이 퍼지기에 특히 적합한 시기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개인이나 집단에 심리적으로 조종받았던 사람들을 돕는 단체 ‘앤티도트(Antidote)’의 설립자 다이앤 벤스코터는 사회적 불안과 고립, 팬데믹의 공포가 맞물린 2020년이야말로 음모론이 폭발하기에 딱 맞는 환경이 만들어진 해라고 말한다. 큐어논은 인터넷에서 태동한 음모론 중 최초로 거대한 주류 운동이 된, 이른바 슈퍼 음모론이다. 정부 고위 당직자를 자처하는 익명의 ‘Q’가 극우 성향 온라인 게시판 ‘포챈(4Chan)’에 올린 각종 ‘썰’에서 출발한 큐어논은 SNS를 타고 무섭게 세력을 확장했다(큐어논이라는 단어는 ‘Q’와 익명을 뜻하는 ‘Anonymous’를 합친 것이다). ‘Q’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셀렙과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실은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 성애자들이며, 이들이 전국에서 아동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인신매매당한 아이들을 구할 것"이라며 우매한 대중을 선동했다. 온라인 변두리의 풍문에 불과했던 이 황당한 주장은 백신 무용론, 락다운, 반인종주의, 정부 전반에 대한 불신 등과 뒤섞여 거대한 하나의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벤스코터는 “불안정한 시기에 ‘단순한 답’과 ‘분명한 적’이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준다”라고 설명한다. “잃어버린 삶의 통제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바탕으로 일종의 공동체를 만드는 거죠.”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공인 상담 치료사 레이철 번스타인은 어딘가에 숨은 진실이 따로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사실이 마약처럼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음모론이 주는 쾌감은 마약 중독과 굉장히 비슷해요.” 한때 큐어논이었다가 이제는 음모론 믿기를 그만둔 이들이 현재 끔찍한 정신적 추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번스타인은 이를 “편집증을 겪은 후에 찾아오는 숙취”라고 부른다. 물론 일부 강경한 큐어논 신도들의 경우 대통령 선거 후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도 했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그들의 세상에서 코로나19 델타 변이는 더 많은 사람에게 백신을, 다시 말해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기 위해 정부가 실제보다 그 위험성을 부풀려 말한 바이러스일 뿐이다). 그들은 “설계를 믿으라” 혹은 “머지않아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 같은, 사이비 종교 단체들이 신도들의 비판적인 사고를 억제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레퍼토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큐어논의 예측과 달리 트럼프는 선거에서 패배했고(물론 워싱턴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긴 했지만), 2021년 1월 6일 바이든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진실이 달라졌다고 해서 이들이 “마치 스위치를 끄듯 간단히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라고 벤스코터는 말한다. 실제로 많은 큐어논 탈출자는 자신이 한때 믿었던 이야기와 직접 목격한 진실을 일치시키기 위해 애쓴다. 큐어논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취미에 빠지거나 인터넷에 중독되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큐어논은 추종자들을 친구,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서적 지지 기반이다. 결코 뚫을 수 없는 방음벽이자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상의 커뮤니티다. “자신의 정체성 전체를 새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 심리적 위기와 감정적 위기, 대인 관계의 위기까지도 부른다고 볼 수 있죠.” 벤스코터의 말이다. 심각한 심적 고통을 겪는 큐어논 피해자가 수백, 수천 명 있다고 생각해보라. 벤스코터는 이런 사태가 코로나19 다음으로 찾아올 “공공 보건 재난”이라고 경고한다. 그들 사이에서 새로운 음모론이 떠오르고, 그럼으로써 폭력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큐어논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다들 동감하지만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죠. 산에 불이 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도요.” 벤스코터의 말이다. 큐어논 탈출자들을 도우려는 정신 건강 전문가와 단체는 여전히 소수지만 그래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번스타인과 벤스코터는 그 선봉에 선 이들이다. 번스타인은 2018년부터 큐어논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치료 시에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비슷한 기술을 사용한다. 환자가 어떤 방식으로 심리적 조종을 당했는지 살펴보고,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애초에 그렇게 쉽게 조종당하게 된 환자의 사고 패턴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내는 상담 기술이다. 이 접근법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에 걸쳐 개발됐다. 성적 학대로 기소된 사이비 종교 단체 ‘신의 아이들(Children of God)’의 신도들을 탈출시키는 데 사용했던 강압적인 기술을 좀 더 부드럽게 바꾼 대안적 기술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상담은 제대로 된 상담 치료사가 거의 없어, 아직까지는 틈새 치료 방식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조지아주 애선스에 사는 섀넌 폴리 마르티네스는 한때 극단주의자였으나, 이제는 큐어논과 같은 음모론 집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을 돕고 있다. “현재 정신 건강 업계에는 음모론 피해자 치료와 관련한 지식이 그리 널리 퍼져 있지 않다”라는 게 폴리 마르티네스의 생각이다. 번스타인은 2020년 한 해 동안 자신의 상담 예약이 “늘 비슷하던 수준에서 급격하게 늘어났다”라고 말한다. 벤스코터나 폴리 마르티네스처럼 경험 많은 상담 치료사들 일부는 음모론 추종자들을 상담할 때 자신의 개인사를 활용한다. 예컨대 17살 때 벤스코터는 통일교 신자였다. ‘무니스(Moonies)’라고도 불리는 비주류 종교 집단인 통일교 신자들은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자동차에서 살았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마침내 교단을 빠져나온 그녀는 이후 지금까지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일해왔다(벤스코터는 HBO 다큐 〈The Vow〉를 통해 영화 제작자 인디아 옥센버그를 뉴욕주 북부 지역의 사이비 단체 ‘넥시움(NXIVM)’에서 탈출하도록 도운 사실이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벤스코터는 요즘 수천 건의 도움 요청을 받는데, 그중에는 큐어논 추종자들의 가족과 친구도 다수 포함돼 있다. 번스타인은 일부 상담 치료사들이 큐어논 탈출자들을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약이 필요한 상태” 혹은 “망상에 빠져 있거나 편집증에 걸린 것”으로 일축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2021년 1월 워싱턴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이후 몇몇 매체는 큐어논 추종자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이것이 매우 틀린 정보라고 말한다. 단지 두려움과 외로움 때문에 음모론자가 되어, 어떤 확인을 받고 싶어 하거나 혹은 함께할 공동체를 찾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다. 큐어논은 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곧 출간될 책 〈How Minds Change〉의 저자 데이비드 맥레이니는 최근 출연한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쉽게 음모론을 떠올릴 수 있다. 소음 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것, 모호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뇌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큐어논 피해자들의 드라마틱한 생존기

서두에서 말한 셀리에게 재앙이 시작된 건 2019년이었다. 그해 셀리는 귀엽고 손재주가 좋으며, 당시 큐어논에 깊이 빠져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때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6년 대통령 선거 때는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 혼합 백신)을 접종한 아들이 거의 죽을 뻔했던 그녀는 이후 건강관리를 중요하게 여겼고 백신에는 회의적이었다(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MMR 백신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큐어논 추종자들 역시 백신에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셀리는 페이스북의 모든 주요 큐어논 계정을 팔로하고 다른 추종자들과 하루에 몇 시간이고 메시지를 주고받게 됐다.
 
권력자들이 어린이들을 납치한다는 음모에 사로잡혔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학대 사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궁극적으로 이 사건이  화제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공포심을 전시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가 뭔가 바꿔야 할 것 같았어요.” 셀리가 큐어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은 믿음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더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행복했던 그녀는 이제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 같았고 항상 슬펐으며 아이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셀리의 할머니는 셀리에게 “정신이 완전히 딴 데 가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들의 사진을 큐어논 커뮤니티에 올리며 이제 다시는 이곳에 접속하지 않겠다는 글을 남겼다. “나는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고 한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중요한 일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일부 회원들은 남으라고 강권했지만, 전반적으로 “회원들이 응원해줬다”라고 셀리는 말한다. “저한테 개인 메시지까지 보내 ‘우리도 그만두려 한다’고 말한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셀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셜 미디어를 끊고 한 달이 지나자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대체 왜 사는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갈 이유가 사라진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나 지난 후였다. 대체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 전까지 믿어온 자신의 가치관 전체를 그냥 갈아엎어버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이야기할 사람, “자기 생각을 남에게 밀어넣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고 그녀는 표현한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상담 치료사들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료 시스템이 모든 걸 기록한 후에 그걸 환자에게 불리하게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셀리는 상담 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구글에서 찾은,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하는 상담소 30~40곳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예약이 너무 많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어요. 그마저도 큐어논 때문에 상담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받아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셀리는 친구를 통해 간신히 한 명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2020년 3월, 셀리는 자신의 집에 마련한 업무 공간에서, 윌리엄이라는 이름의 상담 치료사와 줌으로 첫 화상 상담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상태에 대해  “감정적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라고 말한다. 번스타인은 큐어논 출신 환자들이 흔히 겪는 상태라고 말하며, 모터가 장착된 장난감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차를 몇 번 뒤로 굴린 다음 손을 놓으면 정말 빠르게 앞으로 달리잖아요. 제가 보기에 큐어논 신도들이 그래요. 태엽을 잔뜩 감아둔 상태나 마찬가지죠. 자신들의 믿음을 무슨 수를 써서든 방어해야 할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요.” 셀리는 상담하는 동안 윌리엄이 그 어떤 메모나 영상 녹화도 하지 못하게 했다. 윌리엄은 셀리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녀의 사업이나 어린 시절 등에 대한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2시간이 넘는 상담을 마친 후, 그녀는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상담사는 저를 얕잡아보지도, 책망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어요. 저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을 하는 게 잘못된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죠.” 셀리와 윌리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하며 호흡과 명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셀리가 큐어논에서 위안을 찾은 원인이 된 그녀의 트라우마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물론 성적 학대 피해 경험도 있었다. 11살 때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본 기억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셀리가 자살하고 싶다고 말한 것 때문에 치료 센터에 보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20대에는 이혼을 겪었다. 셀리는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너무나 두려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큐어논은 이런 두려움을 먹고 큰다. “큐어논은 사회 시스템에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바깥세상에 도움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요.”
 
그녀는 큐어논을 통해 자기와 거리가 먼 (혹은 꾸며낸) 잔인한 일들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스스로의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쳐왔다는 것을 차차 이해하게 됐다. “큐어논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안의 상처받은 부분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걸요.” 큐어논 환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 치료사들은 약 처방을 자주 내리지 않는다. 또한 진단을 급히 내리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런 집단적 맹신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위해 상담 시 주요 신조 3가지를 지킨다. 일단 환자가 자신의 믿음을 바꾸도록 설득하지 않으며, 그에 앞서 신뢰를 쌓는다. 그런 다음 환자의 인생 경험 중 어떤 것이 그런 믿음을 갖게 된 데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환자 자신이 심리적으로 조종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준다. 이 3가지 방법은 가족들의 손에 끌려와 불안해하며 상담 치료에 응했던 이들에게도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환자가 지쳤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셀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음모론에서 전혀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도움받을 곳을 찾는다”라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반대로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상담 치료를 받는 이들도 있다. 앞서 말한 애나의 어머니는 큐어논 운동에 진심이다. 애나는 큐어논이 백신 반대 주장을 퍼뜨리는 것을 보고 큐어논 추종을 그만두고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른다.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부모님은 제가 무언가에 세뇌돼 잘못된 사상을 주입받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애초에 대학을 보낸 게 잘못이었다거나, 혹은 백신 때문에 저렇게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번스타인이 지금까지 맡았던 환자 중 가장 힘들었던 경우는 성경을 들먹이며 믿음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종교가 자신의 정체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다시 말해 상담 치료를 한다고 신앙을 버릴 일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환자들조차 “어쩌면 당신이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속했던 단체로 돌아가 실제로 그런지 직접 확인해보곤 한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발로 스스로 그 단체에서 걸어 나온 게 되기 때문에, 최상의 경우라고 볼 수 있죠.” 과거 셀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반사적으로 휴대폰에서 큐어논 게시판에 올라온 새 글들을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윌리엄에게 상담 치료를 서너 번 받은 후부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호수에 데리고 가 함께 패들보드를 타기도 했다. “내 삶의 방식 전체가 해로운 것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누구라도 음모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셀리와 애나 같은 큐어논 탈출자들은 어디로 가야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셀리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1만3천 달러(한화 약 1천5백50만원)를 써야 했다. 최근 레딧에는 “큐어논의 ‘래빗홀’을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되돌아갈 공동체가 없고 도움받을 곳도 전반적으로 부족한 지금의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글이 올라왔다. 뒤이어 글쓴이는 인터넷이 아닌 오프라인에 ‘구(舊) 큐어논’들을 돕는 단체가 있는지 물었다(그들이 애초에 음모론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소셜 미디어였기 때문이다). 번스타인 역시 공공 보건 현장에 이들을 도울 만한 인력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아직 대대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번스타인이 아는 한 심리 조종과 관련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 기관이나 평생교육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벤스코터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 ‘앤티도트’에서 상담사들을 위한 교육용 영상과 워크숍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그녀는 큐어논 추종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모임을 여럿 만들고, 그 모임들을 합쳐 큐어논을 극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지금 만드는 중이지만, 더 빨리 끝내고 싶어요.”  현재 진행하는 희망적인 연구도 있다. 이런 사회운동이나 사고방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해하려는 사회학자와 단체들의 심화 연구가 여럿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 사회가 그동안 묻기 꺼려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의 공공 보건 영역은 잘못된 정보를 쉽게 믿어버리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고 힘든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모든 재앙은 나 혹은 당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던 것 아닐까? 상담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났을 때, 셀리는 상담 치료를 그만뒀다.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 “상담사가 ‘셀리,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죠.”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전히 분노, 실망, 혼란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Q’가 했던 말 중에는 진짜로 그렇게 된 것도 있거든요. 백신 접종이 의무가 된 것처럼요. 그러면 다시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세상에, 그들이 옳았던 걸까?'
 
하지만 그런 깊은 토끼굴 속에 다시 빠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전보다 훨씬 행복하거든요. 일단 상태가 좋아지면, 좋아졌다는 사실 자체에서 흥분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녀의 건강식품 사업은 다시 번창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개선됐다. 셀리는 여전히 컴퓨터 화면 속에 빠진 채 숨은 권력 ‘딥 스테이트’에 대한 광적인 공포 속에 사는 이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사실은 그저 상처받은 사람들일 뿐이니까요.” 소셜 미디어의 물결에 다시 발을 담갔지만 “지금은 내가 에너지를 쏟기로 한 것과 그러지 않기로 한 것을 구분할 수 있다”라고 셀리는 말한다. ‘Q’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녀는 깨어난 것이다. 셀리는 자신이 왜 큐어논의 음모론에 빠졌었는지 이해하고 있으며 이제 더 이상 큐어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하나의 이야기였죠. 손에 땀을 쥘 만큼 정말, 정말 잘 쓴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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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강보라
    글 앤드리아 스탠리(Andrea Stanley)
    photo by Todd Forsgren
    translator 박수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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