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2030 여성들의 새로운 취미로 떠올랐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30세대 여성 등산 의류 판매량이 103% 증가했으며, 주 소비층인 4050세대의 무려 2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골린이’에 이어 ‘등린이’, ‘산린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 정도.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외부 활동의 제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우리는 대개 비슷한 이유로 취미 활동을 시작한다. 출근길에 퀭한 눈으로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는 것으로 순간의 에너지를 충전하듯, 일상에 밀려드는 불안과 권태를 견뎌내기 위해 헬스장을 끊고, 각종 학원과 동호회를 기웃거린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취미와 등산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아무튼, 산〉의 저자 장보영은 여성 산악회 등산 행사에서 만난 한 산악인의 말을 책을 통해 전한다. “(산을 오르면) 세상 모든 이름과 역할을 초월해 비로소 나 자신이 된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취미 활동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술집에서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정작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주어진 이름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이 도시의 답답함에서 말이다. 혼자 즐기는 느긋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디저트를 곁들인 친구들과의 수다. 홀로 술잔을 기울이거나, 불콰한 얼굴로 친구들과 술집이 떠나가도록 건배를 외치는 즐거움. 산도 그렇다. 혼자 오르는 산과 함께 오르는 산은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각각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 산에서만큼은 나는 SOLO, 혼자 오르는 ‘혼산’의 즐거움
」 패션 브랜드 MD로 일하는 J는 6개월 전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진 후 매주 산을 찾는 ‘산꾼’이 됐다. 업무 특성상 주말 근무를 해야 할 땐 평일에 대체 휴가를 내어 산에 오를 정도. “시작은 평범했어요. 회사, 집으로 귀결되는 일상이 너무 지겹더라고요.” J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 앞에 있는 수락산에 올랐다. “오를 땐 분명 힘들었거든요? 막바지에는 귀에서 제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요. 헐떡이며 정상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는 순간… 이 말이 좀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거예요.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그 도시가 제 손톱보다 작게 보이니 ‘다 별거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왔어요.” J의 휴일 일상이 ‘술’ 대신 ‘산’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술에 취하면 오직 쾌락과 감정만 존재하잖아요? 산에 취하면 존재 그 자체만 남아요. 저한텐 술보다 더 중독적이죠.” 돌이켜보니 산은 J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할 잠깐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1초라도 정신을 팔았다가는 험한 산길에서 언제 다칠지 몰라요. 오로지 내 두 다리에만 집중해야 하죠. 초보자라면 더욱이요.” J는 그럴 때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철저하게 와닿는다고 했다. 그건 외로움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뻐근해진 근육과 거친 호흡만 느낄 뿐이에요. 여기에 더해지는 게 있다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정도? 모두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죠.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듯 산이 제 모든 잡념과 고민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요.” 현대인이라면 다들 그렇듯 J도 빌딩 숲에서 일하며 늘 같은 곳을 맴돌았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던 건 지옥철 속 사람들의 옷차림뿐이었고, 시간의 흐름은 “다음 주까지 리포트 전달 부탁드립니다”라는 클라이언트의 메일로 겨우 가늠할 정도였다. 하지만 산은 달랐다. “혼자 자주 오르다 보니 산의 변화가 선명하게 다가와요. 같은 산이라도 저번 주와 이번 주의 모습이 다르죠. 며칠 전만 해도 붉게 물들어 있던 낙엽이 그새 다 떨어져 있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산수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설령 그게 동네 뒷산일지라도 말이죠.”
「 이것이 바로 인생 전우애? 함께 오르는 ‘떼산’의 쾌감
」 C가 등산을 시작한 건 대학교 산악 동아리에서였다. 다 같이 모여 산에 오르는 일명 ‘떼산’으로 등산에 입문한 것. C는 아직도 첫 등산의 기억을 떠올리면 동아리 부원들에게 한없이 고마워진다. “북한산 백운대였어요. 등산부터 하산까지 무려 10시간이 걸렸는데 저는 원래 그 정도 걸리는 줄 알았어요. 그 뒤로 몇 번 더 산에 오른 뒤 깨달았죠. 동아리 부원들이 제 속도에 맞춰준 거라는 걸요.” 〈오늘도, 등산〉에서 저자 신경은은 말한다. “산에 오를 때는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로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서로 양보하는 마음을 갖는 건 산에 초대받은 자로서의 기본 에티켓 같기도 하다.” C 역시 그들에게서 너그러움을 배웠다. 힘든 구간에서 누군가는 그녀에게 초콜릿 바를 건넸고, 숨을 잠깐 고르고 쉴 때면 “힘내자”라며 서로를 북돋웠다. C는 등산의 고단함과 정상에서의 짜릿함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에게 믿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초보자 친구와 다시 백운대에 올랐을 때였어요. 마지막 암산을 오르는 구간에서 앞에 가던 친구가 줄을 놓쳐 미끄러질 뻔했죠. 그 친구가 다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밑에서 받쳐줬어요.” 잠깐이라도 팔에 힘을 뺐다가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때 C는 깨달았다. 같이 오르는 사람을 믿는 것만큼 나 자신을 믿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나를 믿어야 타인을 도와줄 수 있더라고요.” 정상에서의 짧은 휴식 후 자기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다리를 보며 서로 놀려대는 하산의 시간이 오면 그때부터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 “산에서 미처 나눌 겨를이 없었던 고마움과 서운함을 그때 푸는 거예요.” 여기에 가끔 술 한 잔이 더해지면 분위기는 더 무르익는다. “등산부터 하산의 모든 과정이 인생의 요약본 같거든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전 과정을 함께했으니 못 할 이야기가 없죠. 그 공간이 카페였다면 이런 이야기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그저 푸념을 곁들인 얕은 고민이나 가십만 이야기하다 끝났겠죠.” C는 수많은 산행을 통해 겸손함을 배웠다고 했다. 누군가는 좋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산에 오르기도 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산이 있듯 각자 오르는 이유와 목적도 정말 다르더라고요. 함부로 그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죠.(웃음)” 코미디언이자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의 저자 아레 칼뵈는 “사람들은 유머 감각과 머리숱을 잃어버리는 시기에 등산을 시작한다”며 등산에 빠진 사람들을 귀엽게 놀리기도 한다. 물론 누군가에게 등산은 그저 올라가고 내려가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물론 그마저도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될 일. 결국 등산은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시작이 어떻든,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다. 자연에 옳고 그름이 없는 것처럼 등산에도 정답은 없으니까.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르는 것뿐.
① 쉬운 산이 명산이다 초보자에게만큼은 그렇다. 처음부터 어려운 산에 올랐다가는 등산의 재미를 느낄 틈도 없이 중도 하차하게 될 것. 동네 뒷산도 좋고, 언덕처럼 낮은 산도 좋다. 강조하건대 시작부터 무리하지 말 것. 초보자에게는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② 먹을 것은 최소화하자 초보자들은 등산을 앞두고 먹을 것부터 생각한다. 라면과 휴대용 버너, 심지어 햇반에 반찬까지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물과 초콜릿 바 정도만 챙기고 음식은 내려와서 먹도록 하자. 초보자일수록 짐은 가벼운 것이 좋다.
③ 장비발? 장비필! “진정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은 잠시 잊자. 산에서는 그랬다가 크게 다칠 수 있다. 다른 도구는 제쳐놓더라도 등산복과 등산화 정도는 꼭 준비하자. 저체온증과 미끄러짐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