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에 대한 미국인들의 진심이 담긴 헌티드 헤이라이드.
LA는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실내에서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토록 하고 있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지역일수록 실외 마스크 미착용자가 많이 보였다. 이를테면 베니스 비치, 애보키니 거리, 로 DTLA처럼. 뉴욕 윌리엄스버그 느낌의 로 DTLA에는 작고 개성 있는 숍이 여럿 있었다. 카페 ‘고 겟 더 타이거’에 가니 마침 작은 파티가 열리고 있어 공짜 커피도 받고 LA 힙스터들도 구경했다. 호박을 조각하던 실내는 모두 마스크 on, 스탠딩 테이블이 있던 외부는 모두 마스크 off. 인파에서 떨어져 따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LA에서는 자국민의 대마초 판매·구매·흡입이 모두 합법이다. 그러니 길에서 특유의 냄새가 풍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LA의 가로수길’ 애보키니 거리에서는 그 빈도가 매우 높았다. 웬만한 옷 가게보다 큰 대마초 전문 숍이 있을 정도니! 그럼에도 실외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애보키니의 쇼핑 거리부터 베니스 비치까지 걸어가며 본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여행객인 우리는 실내·외에서 모두 마스크를 철저히 썼는데 다행히 마스크 쓴 아시아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 같은 건 없었다.
첫날엔 다운타운의 미술관 두 곳을 방문했다. 더 브로드, MOCA 두 곳은 사전 예약을 적극 권장하는데, 같은 시간대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지 않기 위함인 것 같았다. MOCA의 경우 백신 접종 증명서를 보여줘야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 곳곳에 서 있는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내리는 관객이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 수많은 거장의 작품을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선보이는 더 브로드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즐겁게 둘러보기 좋은 곳. MOCA는 처음과 끝이 이어진 구조의 공간을 로컬 작가, 1970년대 비디오 아트 등 주제별로 꾸몄는데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있어 반가웠다. 여행의 기억은 사진과 쇼핑으로 남는 것! 둘째 날부터는 부지런히 숍들을 탐방했다. 유기농 마트와 레스토랑이 있는 실버레이크는 로컬 피플의 여유로운 동네였고, 슈프림부터 마크 제이콥스 매장까지 이어진 페어팩스는 ‘텅장’ 위험 존이었다. 럭셔리 브랜드 부티크에서 빈티지 숍 ‘웨이스트 랜드’로 연결되는 멜로즈 애비뉴는 대표적인 쇼핑 거리. 둘러보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든 곳이 철저한 마스크 착용을 권하고, 입구마다 손 소독제를 두어 마음이 놓였다. 어떤 숍은 ‘입장 시 옷 벗는 건 OK, 마스크 벗는 건 NO’라는 표지까지 걸려 있었으니!
더 브로드 미술관의 대표 작품인 제프 쿤스의 튤립.
미국인들은 핼러윈에 너무 진심이라, 9~10월 내내 핼러윈 무드에 푹 빠져 보내는 모양새였다. 핼러윈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헌티드 헤이라이드 두 곳을 찾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입장 전 12세 이상 모든 이의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했다.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았다면 입장 72시간 이내 검사한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지참하면 된다고. 놀이기구 탈 때와 실내 대기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야외에서는 음료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해리 포터의 ‘버터 비어’, 심슨의 ‘더프 비어’를 실제로 맛볼 수 있다니, 이건 못 참지! 헌티드 헤이라이드에 도착하니 어둑한 저녁이었다. 이곳은 핼러윈 시즌 동안 그리피스 공원에 열리는 임시 테마파크. ‘귀신의 집 몇 개 있겠지’ 생각한 것과 달리 모든 것이 본격적이었다. 공원에 스모그와 조명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냈는데 전기톱 살인마, 늑대 인간, 처키 등 리얼한 분장과 연기가 혼을 쏙 뺐다. 온갖 귀신을 만나게 해주는 트랙터, 3~4가지 콘셉트의 귀신의 집 등 모든 시설은 천장 없는 야외에 설치됐다. 깜짝 놀라 소리 지르는 곳이 많아서였을까, 관람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고 그 덕에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8박 9일을 ‘순삭’한 후, 10월 30일 밤 귀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승무원들은 여전히 페이스 실드와 전신 가운을 착용한 채였다. 비행 시간은 13시간 30분 정도. 도착할 즈음 세관 신고서와 함께 건강 상태 질문서, 특별 검역 신고서 2장의 서류를 추가로 받았다. 입국 심사 때는 백신 접종 완료자 줄로 가서 비행기에서 받은 2장의 서류와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했다. 여권에 자가 격리 면제를 나타내는 2장의 스티커를 받았고, 입국장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 그후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되는지, 자차나 방역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지 등을 안내받았다. 나는 자가 격리 면제자였지만 안전해 보이는 방역 택시를 이용했다. 방역 택시는 구역별 비용이 정해져 있어 미터기를 켜지 않으며, 운전석 및 조수석과 뒷자리 사이에 투명 커버가 설치돼 있었다. 귀국일과 귀국 일주일 차, 두 번의 PCR 검사를 통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서야 내 여행은 완전히 마무리됐다. 출입국 전후 과정은 실제 여행 기간만큼 소요됐다. 출국 전 3일, 입국 후 7일(자가 격리 면제자 수동 감시 기준으로는 10일)이 무탈히 지나야 완전히 자유의 몸인 셈이니까. 여러 서류 준비와 신경을 곤두세운 시간들이 피로했지만, 팬데믹 이후 바깥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음이 감격스러웠다. 태국, 인도네시아 발리 등 여러 나라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무척 반가웠다. 마스크 착용, 손 소독. 또 다른 만국 공통어가 된 기본 방역 수칙을 잊지 않는다면, 서로 열려 있던 세계로 돌아갈 날을 꿈꿔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