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으면 흥분한다? 에세머, BDSM에 대한 모든 것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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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 흥분한다? 에세머, BDSM에 대한 모든 것

“맞으면 흥분하는 거 아니야?” “욕하면서 섹스하는 그거?” 늘 놀림거리 취급당하곤 하는 BDSM. 그중에서도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의 주종 관계를 뜻하는 ‘디엣’은 음습한 오해에 뒤덮여 손가락질받기 일쑤다. 이 모든 오해를 풀기 위해 코스모가 발 벗고 나섰다. 건강한 ‘디엣’ 관계, 이거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긴가요?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1.08.20
 

자, 다음 예시를 보자.

① 평범한 대학생이 백만장자와 ‘우연히’ 사랑에 빠져 ‘서브미시브’(이하 ‘섭’)와 ‘도미넌트’(이하 ‘돔’)로 SM 플레이를 즐긴다는 내용의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주인공 ‘그레이’가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BDSM이라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갖게 됐다는 설정이다.
② 잔혹함의 끝판왕으로 유명한 영화 〈이치 더 킬러〉 속 야쿠자 ‘카키하라’는 피학적 행위를 즐긴다. 악당에게 칼로 고문당하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발기하는(심지어 사정까지!) 식.
③ 헤드라인만 읽어도 분노가 치미는 데이트 폭력과 가학성 성 착취 범죄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요즘. 범죄자들의 변명은 대부분 이렇다. “그저 SM 플레이를 즐긴 것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BDSM, 그리고 돔과 섭의 주종 관계를 뜻하는 ‘디엣’
① 어릴 적 트라우마나 정신 질환과는 관련이 없으며,
②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으로 쾌락을 느끼지도 않는다. 또한
③ 상대방의 ‘확실한’ 동의가 없다면 그 어떤 플레이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확실한’ 동의란 설사 ‘디엣’ 관계로 계약을 맺었다 해도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밝히거나 그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상태가 플레이하기에 적당하지 않을 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오를 거다. ‘아니, 그럼 대체 디엣이 뭔데?’ 그래서 코스모가 직접 물어봤다. 어쩌면 우리를 더 ‘펀’하고 ‘피어리스’한 세계로 이끌어줄 찐 ‘에세머(SMer)’에게!
 
 

잠깐, 그 전에! BDSM 용어 정리

BDSM 속박(bondage), 훈육(discipline), 지배(dominance), 굴복(submission), 가학(sadism), 그리고 피학(masochism)으로 정의되는 롤플레이 성향을 말한다. 각기 다른 성적 취향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지만 실제 BDSM 세계에는 이것을 뛰어넘는 수많은 성향이 존재하고, 그 용어 또한 매우 다양하다.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BDSM 성향 테스트’를 검색해보시라. 3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마주하게 될 테니.
DS(이하 ‘디엣’) 도미넌트와 서브미시브가 서로 지배하고 복종하며 지속적으로 주종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이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서브미시브는 도미넌트에게 ‘마스터’ 혹은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에세머(SMer)전반적인 BDSM 플레이에 참여하는 자. 지배, 피지배, 가학, 피학 등의 행위를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바닐라 무성향자. 일반적이고 보통의 섹스를 즐기는 이들을 말한다.
변태 바닐라(이하 ‘변바’) BDSM 성향이 없는데 있는 척하는 사람. 특히 서브미시브 성향을 지닌 에세머에게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고?

A(35세)는 디엣 관계 안에서 ‘펨섭’, 즉 여성 서브미시브다. A 같은 ‘펨섭’과 남성 도미넌트인 ‘멜돔’은 BDSM의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짝으로 통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디엣과 SM 플레이를 같은 뜻으로 생각한다면 오산. 디엣이 주종, 즉 수직 관계를 바탕으로 즐기는 정신적 유희라면, SM 플레이는 그보다 더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유희를 위한 행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디엣 관계에서 SM 플레이는 가능하지만, 비교적 동등한 관계인 연인이 SM 플레이를 즐긴다고 해서 이들을 디엣 관계라고 부르긴 어렵다. “‘마스터’에게 제 모든 걸 맡기는 기분이 좋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육체적인 가학 행위를 통해 피학적 쾌락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인 교감이 큰 부분을 차지하죠. 마냥 수동적이 되고 싶은 제 본성을 누군가에게 완벽히 인정받는 셈이니까요.” 우리가 SM 하면 흔히 떠올리는 롤플레잉 상황극부터 도구를 이용한 플레이까지, A가 설명한 성생활은 어떤 영화나 매체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용어와 묘사가 난무하는, 상상 그 이상의 세계였다. “플레이할 때 저는 상대방의 지시에 한 번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다가 결국 굴복하길 즐기는 ‘브랫’, 그리고 수치스러운 말과 행동을 요구당하길 좋아하는 ‘디그레이디’ 스타일이에요. BDSM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제 친구는 수갑이나 밧줄 같은 걸로 결박당했을 때 흥분을 느끼는 ‘로프 버니’ 취향이고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죠. 그저 맞고 복종하는 것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낄 때도 많기 때문에 매번 삽입 섹스의 필요성을 느끼진 않아요.” 고통과 통제 속에서 쾌락을 얻는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BBC Future〉에 실린 ‘우리는 왜 고통을 즐기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쾌락과 고통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고통을 느끼는 순간 중추신경계에서 엔도르핀을 분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진정제를 놓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치 불닭볶음면을 먹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하하. 먹을 땐 혀가 얼얼할 정도로 아픈데 묘하게 중독적이잖아요.” 상대방이 내게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임을 믿고 인지하는 상태에서의 고통은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얘기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글쎄… ‘연디’

최근 에세머들 사이에서는 연애 감정을 내포한 디엣을 뜻하는 ‘연디’가 뜨거운 감자다. A 역시 과거에 ‘연디’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연디’로 BDSM의 세계에 입문한 것. A는 ‘연디’를 건강한 디엣 관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에세머 입장에서 봤을 때 그저 환상에 불과해요. 애초에 디엣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계약 관계예요. 감정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만나는 거죠.”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사랑의 감정이 섞인 상태에서 연인에게 가혹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상대방이 동의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디’를 추구하는 ‘펨섭’이 많은 게 사실이다. “워낙 사건 사고가 많잖아요. 저도 처음엔 인터넷을 통해 ‘마스터’를 찾다가 공포감에 휩싸였어요.” A는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마스터’를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한국에 존재하는 BDSM 커뮤니티에서 남녀 비율은 8:2 혹은 9:1 정도다. “‘변바’들의 쪽지가 대부분이었어요. ‘넌 아무한테나 강간당해도 상관없잖아’라는 식의 메시지를 하루에 수십 개씩 받고 있자니 환장할 지경이었죠. 수개월째 제대로 된 ‘마스터’를 찾지 못하고 성희롱만 당했으니 두려움이 제 성향을 이기더라고요. 결국 ‘돔’ 성향이 살짝 있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서 섹스할 때만 플레이를 하는 연애를 하게 됐죠.” 평범한 연애를 즐기다가 섹스할 때만 SM 플레이를 즐기는 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A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바닐라에게만 가능한 관계였다. “원나이트 전용 앱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느낌이라고 보면 돼요. 괴리감이 컸죠. 낮에는 사랑의 말을 속삭이다가 밤만 되면 무릎 꿇고 온갖 야단(?)을 맞는데 혼란이 찾아오더라고요. ‘내가 원한 게 그저 육체적 플레이였던 건가? 아깐 분명 평범한 연인처럼 데이트했는데 지금은 왜 이런 욕을 듣고 있는 거지?’ 그 후로 디엣의 세계에서 좋은 애인을 구하려는 기대를 버렸어요. 이 세계에선 좋은 애인 대신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하는 거죠.”
 
 

신중한 조율 끝에 희열이 있을지니!

사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디엣 파트너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각종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기 때문. 에세머 4년 차인 A 역시 매번 ‘마스터’를 찾는 데 난항을 겪는다. “자연스러운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성향을 깨닫고, 파트너 관계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죠. 하지만 그건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낮아요.” 결국 가장 안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걸러내 찾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A의 설명. 여기서 그나마 안전한 커뮤니티란 본인 인증을 철저히 거쳐야 가입이 가능한 곳을 말한다. “그간 나름의 기준이 생기긴 했어요. 경험상 무턱대고 ‘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이다’라고 허세 부리며 메시지를 보내온 이들의 경우 단순히 섹스가 목적이거나 불순한 의도가 있는 사람이 많았죠. 진짜 ‘마스터’들은 외려 담백하고 조심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이는 극소수이기에 그 과정에서 결국 상처만 받고 바닐라의 세계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죠.” 운 좋게 한번 만나봐도 괜찮겠다 싶은 이와 연결되면 약속을 잡는다. 물론 이 약속은 플레이 약속이 아니다. “저 같은 경우 소개팅처럼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요. 최대한 여러 번 만나 취향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죠.” 둘이 디엣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겠다는 충분한 신뢰가 쌓이면 그때부터 합의의 과정이 진행된다. “예전엔 간혹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 종이 계약서를 쓰기도 했어요. 요즘은 구두로 합의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단, 합의와 규칙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짜죠. 기간부터 플레이에 대한 범위까지, 전부 다요.” 특히 플레이에 대한 합의는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부위에 멍이 들어도 괜찮은지, 자국이 남을 정도로 하는 게 좋은지부터 플레이 전 준비해야 할 도구들, 수용 가능한 언어까지 합의해야 할 항목이 워낙 많기 때문. 계약을 맺고 당분간은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수위를 조율한다. “미리 정해둔 ‘세이프 워드’, 즉 안전어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요. 플레이 도중 너무 과하다 싶으면 신호를 주죠. 흔히 알려진 것처럼 특정 단어를 외치기도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손가락으로 사인을 만들어 보여줘요.” A는 디엣 관계도 결국 연애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수라고 말한다.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을 알라!

“디엣 입문을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요즘은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BDSM 성향 테스트나 SM 플레이 취향 테스트를 할 수 있죠. 테스트 결과만 보고 ‘어? 나도 마스터 한번 찾아볼까?’ 하며 다이빙하듯 이 세계에 휙 뛰어드는 건 말리고 싶어요.” A는 디엣에 대한 이끌림이 그저 호기심인지 혹은 진짜 욕망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약한 성향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큰 피해를 보거나 외려 강한 자극에 중독돼 평범한 연애나 섹스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디엣 관계가 각종 오해에 휩싸이는 것도 이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의 욕망을 기만한 이들 때문에 각종 범죄 사건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미디어에도 자극적인 모습만 비치고… 악순환인 거죠. 연인과 이벤트성으로 가벼운 코스프레 롤플레잉만 해도 성생활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지금까지 섹스를 통해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쾌락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자신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해요. 쾌락을 추구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죠.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요.” 디엣도 결국 파트너와의 탄탄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관계다. 다만 성향과 취향의 차이일 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그런 나 자신을 믿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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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reelancer editor 이소미
    photo by Getty Images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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