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멸망 안 해요, 멸망은 내가 해요
」
하지만 이 사실은 인간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우리의 뇌가 그만큼 긴 시간을 시뮬레이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다시 말해 인류라는 종은, 서서히 끓는 비커 속의 개구리와 같다. 죽는지도 모르는 채 서서히 소멸하는. 수사적인 표현이지만 지구는 물리적으로도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47.2℃까지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해 태평양 연안의 홍합과 조개가 그야말로 볕에 ‘익어’ 죽은 채 무더기로 발견됐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임계점을 넘었느냐 아니냐를 두고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지금 추세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된다면 2030년에는 한반도의 5%가 물에 잠기고 332만 명이 직접적인 침수 피해를 입을 것이라 예측했다. ‘티핑 포인트’란 그런 것이다. 인간의 기술로 손쓸 수 없는 상황. 더 암울한 건 인류가 멸종해가는 와중에도 자본주의는 열일을 할 것이고, 따라서 기존의 체제가 ‘리셋’되거나 새 시대가 열리는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이다. 지금도 지구온난화로 더 큰 피해를 입는 건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열대 국가다. 하지만 너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 과학자들이 말하는 ‘생각의 종말’은 1050년 후다. 말도 안 되게 긴 시간 같지만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찰나다. 〈엔드 오브 타임〉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직후에 생명체가 등장하여 아주 잠시 동안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생명체는 곧바로 분해되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