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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의생 '익순이' 배우 곽선영이 깔깔 웃는 순간은?

웃음은 묵음, 적절한 포인트에 스타카토. 곽선영은 한 폭의 정물화처럼 질서 속에 풍요로움을 가진 배우다.

BYCOSMOPOLITAN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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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순’으로 각인됐지만 실은 뮤지컬만 10년 넘게 한 베테랑 배우예요.
유쾌한 모습에 집중된 캐릭터다 보니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고마워요.


드라마 종영 후 바로 연극 〈렁스〉로 무대에 섰는데, 그때 새로운 팬이 많이 왔겠네요.
편지를 써주신 팬분이 많은데 ‘익순이’ 캐릭터로 저를 알게 돼 공연을 오신 분들도 꽤 됐어요.


〈렁스〉는 폐 형상으로 만든 숲 그림 포스터를 보고 환경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남녀의 사랑과 다툼, 인간의 탄생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다뤘어요.
남녀 2인극으로, 딱히 등장이나 퇴장도 없이 2시간 내내 말과 감정을 주고받는 내용이었어요. 공연을 보고 부모님을 떠올렸다는 관객들도 굉장히 많았죠. ‘나를 낳기 전에 저런 고민을 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마침 코스모가 이달 환경 특집이에요. 〈렁스〉 연기하면서 환경문제에도 눈뜨게 됐다던데,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나요?
겨울이 너무 따뜻하다거나, 꽃이 피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거나, 무심결에 지나친 현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죠. 지구에서의 인간 수명이 8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마음이 무겁죠. 당장은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집에 있는 식물들을 열심히 키울 뿐이지만요.


식물을 키우는군요.
어릴 적부터 항상 베란다에 엄마가 가꾸던 수십 개의 화분과 함께 자랐어요. 저도 결혼하고 나서부터 하나둘씩 늘리기 시작한 게 지금은 30개가 넘어요.


관리하기 까다롭겠는데요.
같은 종류가 거의 없지만 계속하다 보니 어렵지는 않아요. 예전에 집에 방치된 화분 하나를 무심결에 살린 게 계기가 됐죠. 기둥만 남고 잎이 다 떨어진 채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아이였는데, 물을 주고 신경 쓰기 시작하니까 작은 잎이 다시 나더니 너무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는 거예요. 멜라니 고무나무였어요.


사생활에 대해 공개된 게 너무 없어 궁금했거든요. 책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왔어요.
맞아요. 책은 아직도 좋아해요.


요즘은 뭐 읽어요?
두 권 번갈아가며 읽는데, 하나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라는 책이에요. 식물 얘기 신나게 하다가 책도 나무 얘기라니 좀 이상한가요.(웃음) 쓰신 분이 ‘나무 의사’라고 소개돼 있어요. 아픈 나무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면서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운다는 내용이에요. 다른 하나는 선물받은 책인데, 고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예요. 이거 재미있어요.


박완서 작가님 글 저도 참 좋아해요. 특히 〈나목〉을요. 그러고 보니 또 나무예요.(웃음)
〈나목〉이 작가님 첫 작품이잖아요.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습작 한 번 없이 고료 50만원이 갖고 싶어서 시작하셨대요.


당시 고료가 겨우 50만원이었대요?
네. 에세이에 그런 비화들이 나와요. 저는 만화책을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만화책 보며 깔깔 웃잖아요. 그 책을 읽으면서 제가 그렇게 웃고 있더라고요.


작가님이 예능감이 좀 있으셨죠.
속 시원하게 말씀하실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책을 막 쌓아두고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읽곤 했는데 요즘은 그거 두 권만 읽고 있어요.


원래 다독가들이 하나를 끈기 있게 읽기보다 동시에 여러 권 들춰보는 편이래요.
20대 때 저는 책이랑 막 싸웠어요. 안 읽히는 책 붙들고 끝까지 읽어내야 할 것 같아서.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서가에서 자신을 뽐내고 있는 책들이 있잖아요. 〈총, 균, 쇠〉가 저한텐 그랬어요. 총과 균과 쇠가 어떻게 세상을 바꿨을까 궁금했는데 이건 뭐…(웃음). 아직도 버리지는 못하고 책장에 꽂혀만 있어요.


혹시 대본 읽을 때도 그렇게 고군분투하나요?
평소 엄청난 학구파라고요. 공연을 하려면 사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무대에 올라 대사 한마디라도 뱉으려면 왜 이 말을 하는지 맥락을 알아야 하고요. 개인적인 사연과 사건, 자라온 환경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잖아요. 그걸 쌓는 작업을 하는 거죠.


〈빨래〉의 ‘서나영’ 역이나 〈사의 찬미〉 ‘윤심덕’처럼 같은 배역을 다시 연기할 때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나요?
그렇죠. 그 전에 배역을 공부하면서 찾아봤던 자료를 아카이빙해뒀다가 공연 올리기 전에 다시 봐요. 또 나이를 한두 살 먹다 보면 경험이 쌓이고 새로운 시야가 열리잖아요. 그러면 그걸 더하고 그 전에 했던 걸 덜어내고 하는 식으로 만들어가죠.


뮤지컬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뭐예요?
〈사의 찬미〉요. 제 캐릭터의 색깔을 바꿔준 첫 작품이니까요. 처음에는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이었어요. 극장이 잠깐 스케줄 비었을 때 친한 배우들끼리 모여 우리끼리 즐기면서 딱 2주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올렸던 극인데, 내년이 벌써 10주년이에요.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좋죠.


뮤지컬에서 드라마로 장르를 옮기면서 부담은 없었나요?
작업 환경이 달라지는 것뿐이고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는 맥락에서는 같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거나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뮤지컬에서는 노래를 해야 하고, 연극에서는 2시간가량의 호흡을 이끌어가야 하고, 드라마 현장에서는 카메라 위치를 잘 기억해야 하고.(웃음) 이런 차이점들이 재미있어요.
 
블라우스 35만9천원, 스커트 36만9천원 모두 로맨시크.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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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의 관찰자 시점인가요?
아니에요,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예요. 놀이 기구도 타야 재미있잖아요.


처음에 연기하는 삶을 결심한 계기는 뭐예요?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서클 활동이란 걸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막연히 밴드부에 들어가서 악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간 고등학교에 밴드부가 없는 거예요.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한 연극부에 들어갔어요. 학생극을 만들어 올렸죠. 무대에서 대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데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이건 내 행동이 아닌데, 내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막 웃어요. 커튼콜할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는데 전율이 오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다른 학교 학생이 무대 잘 봤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요. ‘아, 이거 신기하다’ 싶어 그 뒤로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죠. 관객이 돼 연극을 보니까 저도 제게 감동을 준 배우에게 고마운 마음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난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드라마 활동과 무대를 병행할 생각인가요?
그럼요. 뮤지컬도 좋고 연극, 드라마, 영화도 다 해보면 좋죠.


연기를 모니터링할 때 어떤 편인지도 궁금해요.
무대에서는 공연을 올리기 얼마 전에 ‘런’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연습을 해요. 그럴 때 연출가가 각자의 연기에 대해 노트를 만들죠. 공연은 영상으로 찍어 모니터링하면 맛이 살지가 않아 따로 하지는 않아요. 오로지 연출가의 눈을 믿는 거죠.


화면 모니터링은 또 다를 것 같은데요.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누워서도 보지만 배우들은 자기 나오는 드라마는 절대 그렇게 못 본다고요.
오, 그러네요. 생각해보니까 저도 제 드라마는 엄청 긴장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 분명 소파에 앉았는데 정자세인 거죠. 끝까지 손에 막 땀을 쥐면서 봤어요.


‘이익순’이 ‘김준완’을 강도로 오해하고 발차기를 날리는 장면에서 저도 손에 땀을 쥐었었죠.
지인들이 CG 아니냐고 많이 물었어요.(웃음) 저는 정말 열심히 찼는데. 서른 번 넘게 찼던 것 같아요. 기운 빠지면 발 각도가 점점 내려갈까 봐 더 열심히 찼죠. 다음 날 몸이 아프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괜찮았어요.


원래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에요?
대단하게 활동적인 운동을 한다기보다 그냥 조금씩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걷는 거 좋아해 지하철이나 버스 몇 정거장 정도는 늘 그냥 걸어 다녀요.


걷기와 식물 키우기, 독서까지 일관성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늘 걱정이 되는 게 집에서 식물에 물 주고, 수세미 만드는 게 전부인 사람이거든요. 요즘엔 코바늘로 수세미 떠서 주변 사람들 주는데, 거품 잘 난다고 정말 좋아해요. 그럼 너무 뿌듯한 거예요. 아, 오늘도 하나 가져올걸.


소소한 것에 따뜻해하는 사람이네요.
그래서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항상 인터뷰하고 집에 가서 후회해요. 나는 삶의 하나하나가 다 즐거운데 남들 눈에는 너무 재미없는 사람처럼 비쳐질까 봐서요.


예전에도 인터뷰 말미에 “저 너무 재미없죠”라고 말한 적 있던데요.
기억나요.(웃음) 제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없고 달변가도 아니라 인터뷰어가 너무 무료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재미없는 사람이라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집에 가서 또 후회했죠. 그런 말은 하지 말걸…. 근데 오늘 또 하고 있잖아요.(웃음)


〈슬기로운 하드털이〉에 신원호 PD와의 사전 미팅 장면이 나와요. 당시에 본인이 나름대로 웃긴 사람이라고 대답했어요.
맞아요. 그때 제가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했더라고요.


그렇게 대답할 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사실 곽선영이 웃겨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본을 받으면 그 안에서 해낼 수 있다는 의미였죠. 전 오히려 그게 웃겼어요. 전 웃기는 사람이 아닌데 신원호 PD님이 저한테 웃긴 면이 보인다고 해서요.


그때 너무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웃길 수 있어요”라고 하니까 약간 똘끼 있어 보였어요.
그런가요?(웃음) 제가 그때 엄청 긴장했거든요.


평소에 뭘 보고 많이 웃어요?
저 사실 잘 웃고 웃음을 잘 못 참기도 해요. 공연할 때 그래서 애먹은 적도 많아요. 〈렁스〉 연습할 때는 인사말 영상을 찍으려는데 시작할 때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이상하게 웃음이 터져버려 끝까지 찍지를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해가 안 가는데 의외의 호흡에서 툭 건드려질 때가 있잖아요.


허파에 바람 든다고 하죠, 그걸.
그런 거였을까요?(웃음) 하여튼 그때 정말 많이 혼났죠.


저는 그 미팅 영상을 보고 ‘뭔가 숨겨둔 개그 본능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해 질문을 준비해 왔는데, 막상 만나니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딱히 계산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을 내뱉는 게 빵 터지는 사람이란 걸요.
부디 아름답게 정리해주시길 바라요.(웃음)


그럼요. 아름답고 재미있는 인터뷰였어요.
집에 가서 전 또 후회하겠죠? 손에 땀을 쥐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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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KIM YE RIN
  • Photographer KIM YEONG JUN
  • art designer 이상윤
  • Stylist 김보라
  • Hair 백흥권
  • Makeup 김수빈
  • Prop Stylist 고은선
  • Assistant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