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은 만만하다. 삶기만 하면 되고 껍데기만 까면 그만인데 금세 배가 찬다. 그 만만함에 이끌려 일주일에 4일 정도 달걀을 삶게 되었다. 정확히 달걀 3개. 그렇게 매일 아침을 삶은 달걀로 시작하다 보니 괜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만함은 잠시 접어 두고 근사함을 좀 더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에그 컵에 세워둔 달걀을 스푼으로 톡톡 쳐서 안을 파먹던 장면. 같은 달걀일진데 에그 컵 안에 있던 달걀은 꽤 특별한 것처럼 보였다. 나의 달걀도 영화 속 장면처럼 근사해지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하나둘씩 에그 컵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매일의 기분에 따라 끌리는 것을 골라 식탁 위에 올렸다. 때론 에스프레소잔이나 위스키잔도 에그 컵이 되었다. 달걀과 에그 컵의 사이즈가 딱 맞을 땐 그날의 운세가 잘 풀릴 징조라도 되는 듯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에그 컵 위로 매끈하게 솟은 달걀은 대머리 아저씨처럼 정겹게 느껴졌고, 호텔에서 먹는 조식인 것 같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잘 차려 먹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에그 컵에 달걀을 놓는 순간 삶은 달걀은 요리가 된다.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 잘 차려낸 것이고 먹기 직전까지 눈으로 먼저 만족하며 즐기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융숭하게 나를 대접하는 일이다. 삶고, 껍데기를 까는 전후의 과정은 똑같지만 기분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약간은 들뜬 기분에 혀끝에 느껴지는 맛과 주변을 둘러싼 공기는 덩달아 달콤해진다. 풀리지 않는 피로감으로 지끈거렸던 어깨와 머리도 가벼워진다. 코끝에선 가벼운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에그 컵 하나로도 꽤 느낌 있는 아침을 맞게 된다.

보통의 에그 컵에 비해 폭이 좁고 곡선이 매우 부드럽게 뻗어 있어 전체적인 디자인이 가볍고 날렵하다. 폭이 좁아서일까, 달걀을 끼워 두면 다른 것들보다 봉긋하게 높이 올라서 있다. 블루 페인팅과 화이트 도자기의 조화는 맑고 산뜻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특히 해가 잘 드는 아침이나 여름 날에 잘 어울리는 에그컵이다. 맑은 햇살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다.

핀란드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 아라비아 핀란드의 빈티지 제품이다. 전체를 감고 있는 브라운 계열의 컬러는 월넛처럼 진한 우드 테이블에 올려 놓았을 때 빛을 발한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에그 컵 입구 쪽에 넓게 두른 원형의 띠는 달걀을 올려 놓으면 꽤 재미있는 모양이 된다. 마치 UFO처럼 보여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다. 이 에그 컵은 따뜻한 라테와 함께 곁들일 때 더 예쁘다. 서로 다른 채도의 브라운이 만나 근사한 분위기를 만든다.
도나 윌슨 메그 에그컵, 루밍(오른쪽)
영국 디자이너 도나 윌슨의 작품. 그녀는 지금까지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다양한 크리처들을 만들어 왔다. 화려한 컬러에 짖궃은 표정을 가진 크리처들은 동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천진하고 깜찍하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넘어 세라믹까지 영역을 확장한 그녀가 만든 에그 컵에도 역시나 특유의 천진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동물과 사람이 그려져 있는 시리즈 작품인데, 하나하나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자꾸만 눈길을 주게 된다. 수줍은 듯 발그레해진 볼과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표정은 상상을 더하게 한다. 나도 따라서 표정을 지어보게 된다. 헤헷, 이렇게 웃고 있는 걸까. 저절로 웃게 되는 에그 컵이다.

아기자기한 그림에 화려한 색을 담아 내는 스페인 타일을 닮았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음각이 되어 있고, 에그 컵 받침과 안쪽에 색이 칠해져 있다. 이 에그 컵은 스페인 서쪽에 위치한 도시 엑스트레마두라의 작은 그릇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다. 색을 칠한 붓의 흔적이 하나하나 눈에 잡히고 물고기 모양도 참 엉성한데, 그런 빈틈이 주는 나른함이 있다. 덩달아 느슨해지는 느낌. 그래서일까? 오후만 있는 주말 첫 끼에 잘 어울리는 에그 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