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신조어로 쓴 글, 이거 이해하면 젠지 인정!

1990년대생 4인이 MZ세대 신조어로 써내려간 스무 살의 단상. 그들만의 언어와 문법에 코스모가 해석을 덧붙였다.

BYCOSMOPOLITAN2020.09.19
 

패피가 되고 싶은 스무 살이었다고요…

글 유지홍(99년생, 〈힙합엘이〉 에디터)  
멋 부리기 딱 좋은 나이 스무 살. 두발 규제 때문에 어차피 꾸꾸꾸인 패션 암흑기는 끝났다. 고교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패션 피플로 거듭나기 위해 모 유명 패션 커뮤니티에 접속해 어떤 착장을 참고할지 스캔했다. 과연 이곳은 패션계 빠요엔 형님들이 모인 곳. 저마다의 확고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그들은 누구 하나 멋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학생의 가벼운 주머니로는 형님들의 플렉스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저비용 고효율 스타일링을 완성하기 위한 나만의 전략도 세웠다. 겉옷과 신발엔 용돈을 아낌없이 투자했고, 비교적 정품이 아니어도 싼티가 나지 않는 바지류는 최대한 비슷한 보세 제품으로 대체했다. 쇼핑 후 착장을 마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충남의 크리스 브라운이 따로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활보했는데, 내게서 마싸 멋쟁이의 오라가 느껴졌던 건지 눈빛만 보고 길을 비켜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 나란 녀석, 성공해버린 거냐고…! 감격의 사복 패션 데뷔를 끝마친 그날 밤,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패션 커뮤니티에 데일리 룩 사진을 공유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게시물에는  “유행하는 아이템으로만 떡칠해서 투머치다”라는 뼈 때리는 혹평만이 가득했다. 뼈 때리는 악플에 혼미해져 정줄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다시 내 사진을 봤다. 충남을 뜨겁게 달굴 패션 아이콘은 온데간데없고 큰형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잼민이 한 명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겠다는 나의 계획은 정녕 스불재였던 것인가. 그렇게 형님들의 참교육에 데꿀멍해버린 나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의 잡스 패션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꾸꾸꾸 ▶ 꾸며도 꾸민 것 같지 않고 꾸질꾸질하다는 의미. 꾸민 듯 안 꾸민 듯 예쁜 스타일을 뜻하는 ‘꾸안꾸’에서 파생했다.


빠요엔 ▶ 고수를 뜻하는 신조어. 게임 〈뿌요뿌요〉에서 연속 콤보를 하면 ‘빠요엔’ 효과음이 무한 반복되는 것에서 유래했다.


마싸 ▶ ‘마이 싸이더(My Sider)’의 줄임말. 인싸와 아싸의 구별 기준을 초월해 나만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잼민이 ▶ 재미있는 어린아이 혹은 초등학생을 뜻하며, 주로 반어법으로 쓰인다. 패피 형님들에게 처참히 패션 초딩 취급당했다는 맥락이다.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 어쭙잖게 스타일을 인증했다가 상처만 남은 화자의 아픔이 담겼다.


데꿀멍 ▶ ‘데굴데굴 꿀꿀 멍멍’의 줄임말로, 상대방의 용서를 바라며 데굴데굴 구르고 돼지와 개처럼 짖으며 애원함을 뜻하는 말이다. ‘대략 꿀 먹은 멍청이’라는 의미로 확장돼 처절하게 패배해서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어덕행덕’하다 보니 ‘덕업일치’한 성덕 이야기

글 김경민(96년생, 그래픽디자이너)
스물이 되던 해, 나는 여전히 수험생 신분이었다. 유학 준비로 한 학년 유보한 탓에 친구들이 설레는 대학 생활을 할 때 나 홀로 미국 수능을 코앞에 둔 혐생에 치이고 있었던 것이다. 빅뱅을 사랑하는 열혈 VIP였던 나지만,  그해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휴덕까지 했고 마지막 학년은 갱생이 쌉파서블한 듯 보였다. 그러나 좋아하는 장르가 바뀔지언정 한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다. 즐겨 듣던 라디오에서 DJ 가 오혁이 자신의 절친이라며 신인 밴드 혁오를 소개한 것이 혼파망의 시작이었다. 포털에서 ‘오혁’을 검색해봤는데, 반쯤 민 눈썹, 분홍색 컨버스 등 메불메 갈리는 스타일과 숫기가 없는 성격마저 내 취향을 저격하는 그는 좋못사. 그 후 밤낮으로 앨범을 숨밍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모든 직캠과 영상을 찾아봤다. 매일 공부에 치이던 어느 날, 혁오가 게릴라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어덕행덕의 마음으로 수업을 빠지고 이태원으로 날아갔다. 공연이 끝난 뒤엔 주차장에서 존버 끝에 오혁에게 사인도 받았다. “SAT 학원에서 공부하다 말고 달려왔다”라며 말을 걸었는데, 그는 “어려운 시험인데 대단하다”라며 앨범에 ‘2200점! 파이팅’이라는 응원 문구를 남겨줬다. 그 덕분일까. 나는 22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며 목표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이후 음악 레이블과 매거진에서 일하며 덕업일치에 성공했다. 진정한 성덕이란 이런 것.
 
혐생 ▶ 혐오스러운 인생. 좋아하는 것들을 덕질하는 ‘덕생’과 동떨어져 입시에 전념해야 했던 화자의 애환이 담겨 있다.


쌉파서블 ▶ 영어 ‘possible’에 ‘완전’, ‘너무나’처럼 단어를 강조할 때 쓰이는 접두사 ‘쌉’을 붙인 합성어. ‘쌉가능’으로 응용 가능.


혼파망 ▶ 혼돈, 파괴, 망각의 첫 글자를 땄다. 오혁에게 빠져,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화자의 고민이 느껴진다.


메불메 ▶ 모 사건 이후 호날두의 ‘호’ 자도 쓰지 말자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 ‘호불호’의 호를 라이벌인 메시의 ‘메’로 대체.


좋못사 ▶ 좋다 못해 사랑한다는 뜻. 조금 더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리얼로’의 준말인 ‘렬루’를 더해 ‘렬루 좋못사’로 응용할 수 있다.


숨밍 ▶‘숨 쉬듯 스트리밍한다’의 준말. 유사어로는 입으로만 스트리밍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입밍’이 있다.


어덕행덕 ▶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하자’의 줄임말. 관련어로는 성공한 덕후를 이르는 ‘성덕’이 대중적으로 쓰인다. 




스무 살 때 ‘자강두찐’ 풋사랑 썰 푼다

글 황현승(93년생, 소니뮤직코리아 마케터)
대학교 신입생 OT 날, 만취한 나는 실수로 옆 호실로 들어가게 됐다. 아차 싶어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ㅗㅜㅑ… 포착. 당시 그 친구는 아디다스 ‘추리닝’ 차림의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예리한 내 안목은 그녀가 스스로의 외모를 과시하지 않는 힘숨찐임을 알아봤다. 입학 후, 우리는 같은 학부였던 덕에  같은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 있었고, 밀당 따위 알 리 없는 스무 살의 나는 그녀에게 뚜벅뚜벅 직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린라이트 포착. 그녀가 내가 알바하던 곳에 찾아와 잘 챙겨 먹으라며 피자를 주고 갔고, 이를 확실한 호감 표현이라 여긴 나는 흥분한 나머지 친한 동기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다. 가볍게 입을 놀린 게 화근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기대했건만 며칠 후 그녀가 차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대뜸 “너 왜 내 얘기를 남들한테 하고 다니냐”라고 따지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그녀에게 입을 함부로 놀린 놈을 색출하려 킹리적 갓심을 시작했다. 곧 몇 명 안 되는 용의 선상에서 범인을 검거했고, 그 동기 놈에게 왜 피자 썰을 그녀에게 전했는지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 녀석은 자신도 그녀를 좋아해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나 킹받은 나는 주차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녀석에게 욕을 실컷 쏟아부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야말로 상처뿐인 자강두찐이었다. 그녀는 ‘입 싼’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난 눈치였고, 나는 더 들이대보고 싶었지만 뇌절인 것 같아 그쯤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그해 나는 일 년 내내 솔로였다.


ㅗㅜㅑ ▶ ‘오우야’에서 ‘ㅇ’을 뺀 감탄사. 이상형을 발견하고 무의식중에 탄성을 내뱉은 화자의 핑크빛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다.


힘숨찐 ▶ ‘힘을 숨긴 찐따’의 준말.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다가 훗날 의외의 능력자임이 밝혀져 주위를 놀래키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숨길 수 없는 그녀의 미모를 암시.


킹리적 갓심 ▶ ‘합리적 의심’에 접미사 ‘킹, 갓’을 합성. 킹갓 드립은 ‘갓이유(아이유의 신격화)’ 같은 찬사였으나 종종 비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킹받은 ▶ 킹갓 드립의 일환으로 열받는 감정을 강조한다. ‘킹’을 붙이지 않으면 묘사가 안 될 만큼 크게 ‘빡친’ 화자의 분노가 짐작된다.


자강두찐 ▶ ‘자신감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을 뜻하는 자강두천의 변용. 용호상박 강자들의 싸움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종종 반어적으로 쓰인다.


뇌절 ▶ 1절에서 끝내지 않고 계속하다 손해를 보는 행동으로, 적당히 하자는 의미다. 〈나루토〉의 등장인물 ‘카카시’의 기술에서 유래했다.




하얗게 불태웠어, 나의 20대

글 심은보(95년생, 프리랜스 에디터)
스무 살이 됐을 때, 무조건 펀쿨섹한 20대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걸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 다행히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태생부터 인싸인 내가 방 안에서 다꾸나 하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엔프피 그 자체인 나는 홍대의 인디 밴드 신부터 힙합, 더 나아가 전자음악 클럽까지 온갖 힙스터 출몰지를 돌아다녔다. 하나둘씩 인싸 친구가 늘어나면서 든든한 크루까지 얻은 나는 서브컬처에 푹 젖은 채 집보다는 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길거리에 낙서를 하고, 취한 채로 공연을 보던 도중 다른 관객의 머리 위에 올라 크라우드 서핑을 하고 돌아다니며 나름 1K가 넘는 SNS 팔로어를 얻기도 했다. 갓 스무 살이 된 아기 같던 나에게는 ㄴㅇㄱ 상상도 못 한 즐거움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밤의 즐거움은 곧 낮의 피로와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밤샘의 대가는 낮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졸음이었는데, 나는 국산 핫식스는 죽어도 싫던 힙스터였기 때문에 몬스터, 레드불 심지어 한국에 정식 수입이 되지 않던 레알파워까지 마셔가며 졸음과 다퉜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카페인 투혼을 해가며 밤마다 친구들과 함께 서울 거리를 들쑤시고 다닌 기억으로 점철된다. 아이러니한 건 6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매일같이 어울리던 친구들보다는 적당히 연락하며 가끔 만난 친구들과 더 돈독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평생 함께하자던 친구들이 몇 명이나 남아 있는지 세어보며, 스무 살의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은보야, 인생은 개인주의야.
 
펀쿨섹한 ▶ 일본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부 장관의 “기후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다뤄야 합니다” 발언에서 유래했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 ▶ 펀쿨섹과 함께 묶이는 관용어. ‘섹시한 대처’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걸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요”라고 대답해 고이즈미는 ‘펀쿨섹좌’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꾸 ▶ 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


엔프피 ▶ MBTI의 ENFP 타입. ‘재기발랄한 활동가’ 스타일이라 인싸로 통한다.


ㄴㅇㄱ ▶ 한쪽 팔은 아래로, 다른 한쪽 팔은 위로 향한 모습을 형상화한 신조어. 〈복면가왕〉에서 신봉선이 깜짝 놀라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 짤이 유행하며 밈이 됐다. 해당 장면의 자막이 ‘상상도 못 한 정체’였기에, ‘상상도 못 한’ 놀라운 상황을 묘사할 때 주로 쓰인다.


인생은 개인주의야 ▶ 일반인들의 특수부대 체험기를 다룬 유튜브 영상 〈가짜사나이〉에 등장한 대사. 불호령하는 교관의 뼈 때리는 어록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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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하예진
  • Photo by Sergey Fil/Monov/Stocksy
  • Digital Design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