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리셀 마켓이 그사세인 이유

하위문화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판, 스니커즈 래플과 리셀 마켓의 현재와 미래.

BYCOSMOPOLITAN2020.09.17
 
3년째 한남동으로 출근 중이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출퇴근길이지만, 가끔 눈길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면 한강진과 이태원 사이 몇몇 편집 스토어 앞의 장사진이다. 한정판 스니커즈의 발매일이 되면 매장 오픈 전부터 ‘스니커헤드’들의 행렬이 펼쳐진다. 도대체 신발이 뭐길래 이른 아침, 더구나 발매일 전날 밤부터 저런 고생을 할까 싶으면서도, 리셀이 재테크 기능을 한다는 대목에서 수긍이 된다. 그 신발이 제값의 몇 배에 팔린다더라 같은 풍문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다. ‘고작 신발 하나가…’라고 치부하기엔 리셀은 이미 하나의 현상이 됐다. 스니커즈의 가격도 천차만별, 리셀가 상향 곡선은 상한가를 맞은 주식 차트를 방불케 한다. 한정판이라는 타이틀이 붙거나 특정 브랜드 혹은 유명인과 손잡은 협업 모델, 몇 년에 한 번 출시되는 희귀한 컬러웨이라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치솟기 때문이다. 
 
사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웃돈 더해 사고파는 거래는 20년도 더 전부터 있어온 행위인데, 현재 스니커즈 리셀 마켓은 그 어느 때보다 과열돼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니커즈 리셀 거래는 국내 패션 커뮤니티의 중고 장터, 혹은 해외의 이베이(eBay)나 일본 야후 옥션에서 알음알음 행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사용자 간 거래 중개 시스템을 구축한 플랫폼이 속속 등장했다. 2015년 첫선을 보인 미국의 ‘스탁엑스(StockX)’는 그야말로 스니커즈 신의 신기원을 열었다. 스탁엑스는 중고 신발이 아닌 박스까지 완벽히 갖춰진 새 신발을 되파는, 그야말로 리셀만을 위한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이다. 5년 만에 기업 가치 1조원을 기록하며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섰고, 월 평균 방문자는 2000만 명에 달할 만큼 성황을 이룬다. 스탁엑스의 가치는 가품, 혹은 하자품에 관한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감정 기능에 있다. 스니커즈 전문가로 이뤄진 직원들이 직접 신발을 검품해 수십 가지의 면밀한 체크리스트를 통과한 제품만 취급하며, 거래 확정 후 스니커즈를 발송할 때 검수서와 태그를 동봉해 정품임을 보증한다. 무엇보다 스탁엑스의 가장 큰 혁신은 주식시장의 시스템을 도입해 널뛰는 스니커즈의 시세를 정리했다는 점이다. 스탁엑스에 접속해 원하는 스니커즈 모델을 검색하면, 현재 거래되는 가격과 매수 가격, 매도 가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스탁엑스의 성공 때문일까? 국내에서도 스니커즈 거래 중개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눈에 띈다. 사실 이들 플랫폼 간의 이렇다 할 차별점은 미미하다. 제품 검수와 시세 정보 제공 등 앞서 언급한 스탁엑스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어서다. 유사한 큰 틀 안에서 각 플랫폼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관건은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느냐다. 네이버 계열사인 스노우가 선보이는 크림(KREAM)은 네이버에서 계승한 간편한 UI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전시하는 쇼룸을 오픈해 스니커즈 마니아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도 운영 중이다. 서울옥션블루의 엑스엑스블루(XXBLUE)는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먼저 론칭한 스니커즈 중개 플랫폼이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야 하는 두 업체와는 다르게 웹사이트에서도 거래할 수 있어 비교적 접근이 편리하다. 스니커즈는 물론 슈프림(Supreme)과 같은 스트리트 웨어와 아트 토이를 함께 취급해 리셀 품목의 선택지를 넓힌 것도 가산점으로 작용한다. 무신사의 솔드아웃은 후발 주자임에도 기세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무신사의 기존 구매층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음은 물론, 오랜 시간 쌓아온 웹 매거진 인프라를 활용해 스니커즈 관련 콘텐츠를 선보이며 사용자 유입을 늘리고 있다. 거래 수수료 무료, 배송비 무료 정책이라는 솔깃한 혜택도 제공한다. 스니커즈 마켓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리셀 플랫폼들의 암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격전이다. 선발 주자들의 성취에 편승하려는 유사 중개 플랫폼도 여럿 생겨날 것이며, 앞으로의 스니커즈 리셀 마켓은 점점 더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관전 포인트는 기존 중고 시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것일 테다. 리셀 플랫폼 등장 이전에 중고 거래가 행해지던 웹사이트와 커뮤니티가 리셀의 새 패러다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속수무책으로 우위를 빼앗기고 말겠지. 이제는 즉각적으로 시세 확인 가능한 플랫폼이 나타났으니 판매자끼리 가격 담합을 해 적정가를 넘어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의 매물을 보는 일도 더는 없겠다.  
 
이 같은 한정판 스니커즈 마켓의 호황은 자기만족, 본인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현 MZ세대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남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수단이 한정판이고, 수많은 브랜드가 이런 소비자 심리를 영민하게 공략하고 있다. 과거 서브컬처 내 하나의 카테고리 정도로 형성된 스니커즈 신은 이제 하나의 문화, 이른바 ‘스니커즈 컬처’를 이룩했다. 이와 함께 세계 스니커즈 리셀 마켓 또한 무려 7조원이라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했으니 이제 스니커즈 리셀을 단순히 컬렉터만의 놀이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정교한 시스템을 앞세운 리셀 플랫폼의 등장으로 품을 팔아 한정판 신발을 사고팔던 리셀 문화의 감성 자체가 변화했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스니커즈 커뮤니티 중고 장터에 매복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희귀한 스니커즈를 구하려 눈에 불을 켜고 해외 사이트를 뒤지던 낭만은 없어졌지만, 문화와 경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지금의 흐름이 퍽 재미있지 않나. 요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컬렉터, 또는 마니아만으로 이뤄져 있던 스니커즈 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꿈에 그리던 신발을 얻을 수도, 누군가는 생각지도 못한 부가 수익을 노릴 수도 있는 거대한 판이 생겼고, 스니커즈 컬처의 저변은 향후 계속해 확대될 전망이다. 혹 이 짧은 글을 읽고 흥미가 동한다면, 한정판 스니커즈의 온라인 드로나 래플에 응모해보시길. 적어도 로또 3등보다는 더 확률 높은 투자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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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오욱석(웹진 패션 에디터)
  • Editor 하예진
  • Photo by Nike Korea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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