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내 몸이 싫은데 이게 보디 포지티브라고?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에 온다. 지금의 몸이 곧 ‘나’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여자가 너무 오랜 시간을 거울 앞에서, 체중계 위에서 보낸다. 여기 모인 2명의 여성은 모두 이상향인 여성의 몸에서 조금씩 비켜나 있다.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경험에 대한 네 쌍의 몸의 대화를 지면에 풀어놓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아름다운 몸이 아니라, 다양한 몸에 대한 상상력이니까.

BYCOSMOPOLITAN2020.05.28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몸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모든 몸이 아름답다”라는 목소리를 체득하기엔, 인간이란 자신의 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마는 모순적인 존재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때로는 나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내 몸을 진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영복 9만9천원 코스. 목걸이 31만8천원, 팔찌 23만8천원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반지 각각 3만원대 모두 앵브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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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경(27세)
몸을 만들고 몸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퍼스널 트레이너. 피트니스 선수이자 스포츠 모델로도 활동한다. 발레부터 현대무용, 애크러배틱, 필라테스, 플라잉 요가, 벨리댄스까지 다 배워봤는데, 근육의 변화가 잘 느껴지고 몸이 발전하는 느낌이 좋아 웨이트트레이닝에 정착하게 됐다.
 
 
재킷 34만9천원 그레이양. 원피스 90만원대 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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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36세)
소설을 쓰고 가르친다.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등 주로 여성의 삶에 대한 서사를 그린다. 평생 44사이즈를 유지하다 최근 15kg이 불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난생처음 운동도 시작했다. 내 몸 부정의 시기, 자기 몸 긍정에 대해 논하기 딱 좋은 시기다.
 

 
COSMO 36년 만에 처음 운동을 시작한 소설가와 몸이 재산인 피트니스 선수의 만남이네요. 민정 작가님은 문학 잡지 〈릿터〉에 보디 포지티브를 주제로 한 단편 〈물의 모양〉을 기고한 적 있죠?
박민정(이하 ‘박’) 학교에서 생존 수영이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임시 교사인 주인공이 수영을 배우게 돼요. ‘나’는 물에도 못 뜨는 맥주병이고요.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데, 제자들이 수영복을 입은 ‘나’를 보고 “임신한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하죠. 부끄러운 마음에 물속에 숨었는데 오히려 몸이 뜬다는 설정이에요.
정명경(이하 ‘정) 원래 몸을 물에 처박아야 물에 뜨죠. 하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얘기예요?
물을 무서워하는 제가 수영을 배웠던 경험과 만약 누군가 내 몸에 대해 뭐라고 하면 물속에라도 숨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만나 구상한 결말이에요. 저는 평생을 마른 몸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살이 찌고 나니 내가 내 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에 직면했어요. 옷이 몸에 맞지 않거나, 남들 앞에서 전신을 보이며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했죠. 전 서른이 넘어 처음 느껴본 감정이지만, ‘어떤 몸’이 예쁘다는 얘기를 10~20대부터 듣고 자란 대부분의 한국 여성에게는 이런 스트레스가 일상적이겠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내게 예쁘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종의 불행감이 생겼다”라는 구절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너 되게 말랐다” 혹은 “예쁘다”라는 말을 줄곧 듣다가 뚝 끊기면 오히려 그걸 의식하게 되죠. 옛날에는 마른 게 스트레스였어요. 살찐 사람한테는 실례일까 봐 살쪘다고 얘기 못 하면서, 마른 사람한테는 함부로 말랐다고 말하잖아요.
마른 게 고민이어서 운동하러 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들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게 트라우마인 사람들인데, 주위에서 “왜 이렇게 앙상해” 같은 말을 무심코 내뱉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말랐다, 뚱뚱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예쁘다는 말도 실례인 것 같아요. 못생겼다고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하면서 예쁘다는 말이 외모에 대한 평가라는 사실은 잊곤 하죠. 제 소설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썼어요. 남자들이 모여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예쁘다는 말을 하는데, 그게 무례한 행동인지 모른다는 거죠. 말랐다 혹은 살쪘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예요.
명경 코치님은 몸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죠?
사회가 심어주는 ‘마른 몸’에 대한 강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제 눈엔 전혀 뚱뚱하지 않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저 역시 그래요. 대회가 끝나면 긴 다이어트 기간의 보상 심리로 폭식을 해 살이 찌는데, 살찐 제 모습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싫을 때도 많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아는 내 몸은 대회 나갈 때의 몸이니, 항상 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다시 운동하고 관리하면 되는데, ‘대회용 몸’과 ‘비시즌의 만들어지지 않은 몸’을 구분해서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렸던 거죠. 요즘은 살이 찌고 많이 먹는 제 모습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떤 모습이든 저 자체니까요.
 
 
 
COSMO 내 몸 긍정은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하죠. 그런데 트레이너는 직업 특성상 몸에 집착을 해야만 하잖아요.
제 몸에 근육을 만드는 것에 대한 집착은 놓고 싶지 않아요. 외적인 모습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근육을 쌓고 싶기 때문이죠. 직장인들이 승진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듯이, 저는 운동하는 사람이라 더 많은 근육을 갖고 더 예쁜 몸을 만들고 싶어요. 다만 완성된 몸, 좋은 몸매에만 집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작가님은 살찌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요?  
오히려 저는 지금까지 몸에 대해 자유로웠더라고요.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변함없는 키와 몸무게를 유지했으니, 찌거나 빼야 한다는 생각 없이 살았거든요. 살이 찐 뒤, 여성들에게 부여된 강박이 너무 가파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례로 고속터미널 지하 상가에 파는 옷조차 모두 44에 맞춰져 있다는 걸 의식하게 됐죠. 지나가다 옷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많은 여자가 66만 입어도 자기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만 해도 168cm에 45kg, 허리 23인 44사이즈 몸이 너무 말랐음에도 그게 정상이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못생긴 몸인 것처럼 인지하고 살았더라고요. 55나 66을 입게 됐다고, 작년에 입었던 바지가 안 맞는다고 해서 그렇게 슬플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장에 나와 있는 옷도 44사이즈인 상황에서 55, 66인 내 몸을 긍정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죠.
‘예쁘다’와 ‘건강하다’는 말이 분리돼 쓰이는 것도 문제 같아요. 보통 외모를 칭찬할 때 예쁘다고 하지 건강하다고는 잘 안 하잖아요. 건강하다고 말하면 살쪘다는 말로 들리니까요. 사실 가냘프다는 건 몸이 허약하다는 의미거든요. 다양하게 건강한 몸이 있으니 그 사람에 맞는 표현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시즌 때 제 몸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멋있다” 혹은 “엄청 노력했다”라는 반응이죠. 하하. 근육이 많은 몸은 건강하다 혹은 덩치가 있다고 얘기하고, 작고 가녀린 몸을 예쁘다고 표현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은연중에 많은 사람의 눈치를 의식해요. 저 같은 경우는 살이 찌지 않을 때도 근육량이 많아 몸이 일반 여성보다 크고 덩치가 있어요. 직업상 특수한 경우일 뿐인데,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일반 여자보다 큰’ 몸인 거죠. 어딜 가나 그런 시선을 겪어야 하니 불편해요.
 
 
 
COSMO 저 역시 딜레마가 있어요. 모든 몸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하면서도, 저 자신은 항상 마르고 싶거든요. 각자가 생각하는 보디 포지티브는 어떤 의미예요?
제게 ‘내 몸 긍정’은 어느 정도의 자기 혐오도 동반하면서 사회적 시선에 대해 고민하고 싸우는 거예요. ‘나는 자유로운 여성에 대해 얘기해온 소설가니까, 살찐 내 모습도 사랑할 거야’라는 게 생각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니죠. 오히려 살찐 지금의 몸은 내 몸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쪽에 가까워요. 체중 증가를 떠나 팔, 어깨, 턱선 모양이 예전과는 다르니까요. 나는 지금 최면에 걸린 거고,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에 대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죠. 그런데 내 몸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말고 좀 더 아껴주는 게 중요해요. 긍정이나 아름다움의 차원이 아니라 그냥 내 몸을 챙기는 거예요.
내 몸을 싫어하는 것조차도 몸을 받아들이는 과정 같아요. 요즘 헬스장에 다니면서 든 생각인데, 운동의 목적은 살을 빼는 게 아니라 방치해서 망가진 내 몸을 순환시키는 것 같아요. 남들 눈에 예쁜 몸이었을 때는 내 몸을 내버려뒀거든요. 어차피 살이 찌지 않으니, 마음껏 야식을 먹고 운동도 안 했죠. 그런데 지금은 먹는 것에 신경 쓰고 달리기도 해요. 역설적이게도 내 몸을 싫어하는 마음이 내 몸을 건강하게 돌보게 만들었죠. 오히려 지금 더 내 몸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하하.
 
 
 
COSMO 내 몸을 싫어하는 마음이 내 몸과 화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거네요.
저 역시 내 몸에 대해 싫은 부분이 없었다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조차 안 했을 거예요. 어떤 상황이든 내 몸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돌보는 거 자체가 보디 포지티브 아닐까요?  박 처음 보디 포지티브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했어요. 난 내 몸이 싫은데 내 몸을 아름답다고 써야 하나 싶어서요. 결과적으로는 자기 몸을 혐오를 동반해 직시하는 글을 썼듯, ‘보디 포지티브’의 ‘긍정’이라는 개념도 각자 인생 이력에 맞게 해석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의 몸에는 각기 다른 역사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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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PYO KI SIK
  • Stylist 김선영
  • Hair 채현석
  • Makeup 함선화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