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프리 사이즈는 사실 '프리'하지 않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에 온다. 지금의 몸이 곧 ‘나’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여자가 너무 오랜 시간을 거울 앞에서, 체중계 위에서 보낸다. 여기 모인 2명의 여성은 모두 이상향인 여성의 몸에서 조금씩 비켜나 있다.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경험에 대한 네 쌍의 몸의 대화를 지면에 풀어놓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아름다운 몸이 아니라, 다양한 몸에 대한 상상력이니까.

BYCOSMOPOLITAN2020.05.26
 

측정할 수 없는 삶

프리 사이즈는 사실 ‘프리’하지 않다. 여성으로서 55사이즈를 입지 못한다는 건 대체 얼마나 많은 경험에서 소외된다는 뜻인가.
 
원피스 5만9천원 자라. 목걸이 31만8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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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도(27세)
본명 박이슬, 패션 유튜버, 내추럴 사이즈 모델
2018년 제1회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 시즌 2를 준비 중이다. 유튜브 영상에 다양한 사이즈의 여성을 동원해 탈다이어트, 보디 포지티브에 대해 말한다.
 
 
재킷 가격미정 제이스타일. 원피스 4만9천원 자라. 귀고리 2만6천원 앵브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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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은(31세)
연출가,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평론가
지난 1월 몸에 대한 집착을 다룬 1인극 〈프로듀스 최하은〉을 성황리에 무대에 올렸고, 시즌 2를 준비 중이다. 페미니즘을 이유로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COSMO〈프로듀스 최하은〉이라는 1인극은 1년간 살을 빼서 아이돌처럼 변신하겠다는 프로젝트였는데, 오히려 살이 더 쪄서 90kg에 가까운 채로 무대에 올랐어요.
최하은(이하 ‘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의 연극을 준비한다고 하니 다들 “야, 더 찌는 게 재미있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하하. 꼭 그것 때문에 살 빼기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요. 저는 지금도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꿨는데 저는 너무 뚱뚱하고 못생긴 거예요. 결국 무대 뒤에 있는 연출가라는 직업을 택했고, 이 일이 더 좋고 재미있지만 배우를 하고 싶다는 미련이 남았어요.
치도(이하 ‘치’) 저 역시 사진기자였던 할아버지 영향으로 모델을 꿈꿨는데, 수많은 얼평과 몸평을 들으며 모델 대신 ‘PD’로 방향을 바꿨어요. 어릴 때 제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역할이 많이 없었어요. 방송에선 살찐 여성들은 대부분 개그우먼이거나 엄마, 여자 주인공을 질투하는 친구 역할로만 나오잖아요. 주인공이 될 수 없죠.


COSMO 〈치도 옷 입히기〉는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패션 영상이에요. 속옷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성적 대상화를 특히 경계했다고요.
무서운 건,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한다는 거예요.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고쳐나갈 수밖에 없어요.
여성들이 나서서 성적 대상화를 탈피하자 하는데, 남자에게 선택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말처럼 쉽게 없어지진 않아요. 대학 생활할 때 성폭행을 당한 적 있는데 그때 제 태도가 굉장히 불분명했어요. 마치 제가 원했던 것처럼요. 자책을 많이 했죠. 심지어 성추행을 당하고도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내심 기뻐한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탈코르셋을 하느냐 아니냐로 페미니스트를 가리기도 하는데, 탈코르셋에도 각자만의 맥락이 있거든요. 저도 80kg까지 쪘을 때는 늘 검은 옷만 입었고, 옷 가게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패션 유튜버로서 제 색깔에 맞는 옷을 찾아 꾸미죠. 그럼 저는 코르셋을 벗었다가 다시 주워 입은 걸까요?
뚱뚱한 사람들에겐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는 게 탈코르셋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해요. 저도 인생에 한 번쯤은 로리타 룩을 입어보고 싶은데, 제 취향은 그저 ‘이지’나 ‘유니섹스’ 정도로 정해져요. 뚱뚱한 사람이 꾸미면 그저 우스운 일인 거예요. 일단 코르셋을 입어봐야 벗든지 말든지 결정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옷을 좋아해 패션 유튜버가 됐지만, 패션업계가 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사이즈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빅 사이즈들을 위한 옷은 아니거든요.
저는 가슴둘레로는 77을 입어야 하는데, 팔뚝과 뱃살 때문에 99를 입을 때가 많아요. 마른 사람을 위해 디자인한 옷을 사이즈만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살이 찔 때 복부부터 찐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죠.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도 저한테 맞는 스커트 사이즈가 없더라고요. 2018년에 〈내일 입을 옷〉이라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 패션쇼를 진행했을 때, 여성들이 모두 같은 선택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죠. 그래도 요즘은 제 사이즈에도 예쁜 옷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하나하나 발굴해 유튜브에 올리는 중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보디 포지티브’를 실천하는 방법이죠.


저는 ‘보디 포지티브’라는 말이 아직도 멀게만 느껴져요.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봐요. 외모에 상관없이 노력하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을 때 진정한 ‘보디 포지티브’가 가능하겠죠.
‘보디 포지티브’란 내 몸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이어트 강박과 식이 장애를 겪으면서 건강이 바닥을 치고, 그걸 치유하는 지난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COSMO 〈프로듀스 최하은〉의 마지막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나는 지금 무대에 서 있다. 90kg인 채로. 어떠한 자격도 조건도 없이.” 저는 이 자체가 어쩌면 ‘보디 포지티브’라 생각했거든요.
“나는 아직 내 몸을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지금 이 상태가 정말 아름답다고 진심으로 믿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당신들 앞에 서 있다”까지가 그 순간 저의 현실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디 포지티브’가 “나는 지금 여기 존재한다”였던 거죠. 〈프로듀스 최하은 시즌 2〉는 ‘건강’이  키워드인데, 사실 ‘건강해지자’와 ‘살 빼서 아름다워지자’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단 30대치고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니까, “나는 더 건강하려고,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라고 세뇌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비만이 자기 관리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평소 “비만을 합리화한다”라는 비난을 정말 많이 들어요.
비만이 죄인가요? 사실 비만은 유전과 가족 내 생활환경 탓이 크죠. 생물학적〮사회적 유전으로 많은 부분이 결정되는 무언가로 누군가를 추켜세우는 일이 이상해요. 대표적으로 ‘프로아나’처럼 비만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죠.
COSMO ‘거식(anorexia)’을 ‘추구(pro)’한다는 의미에서 ‘프로아나’인가요?
맞아요. 아이돌 사진을 ‘자극짤’로 올리면서 경쟁적으로 다이어트하죠. 그런데 이분들이 살 빼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살펴보면 ‘남자 친구 사귀기’, ‘친구들에게 예쁘다는 소리 듣기’ 같은 거예요. 일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거죠.
COSMO 그게 진짜 ‘자신의’ 욕망일까요?
한참 후에야 깨달은 거지만, 저는 무언가를 이루려면 일단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이어트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의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 아니면 진짜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욕구인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해요.
저는 어떻게 보면 반대인데,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아 다 잘해야 하는 성격이었어요.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죠. 그런데 전교 1등과 졸업생 대표, 명문대 입학 등 남들이 부러워할 것을 정말 다 이뤘는데도 딱 하나, ‘외적 아름다움’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외모가 부족해 모든 걸 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다른 모든 걸 열심히 하는데도 외모가 안 따라주니까 힘든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COSMO 저는 종종 나보다 예쁜 사람을 보면 적어도 나보다 멍청하기를 내심 바라요.
마찬가지예요. 〈프로듀스 최하은〉의 대사 중에 성적으로 개방적인 예쁜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걸레일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있어요.
어딜 가나 가장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죠.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예뻐야 만족할 수 있을까요?


〈프로듀스 최하은〉무대를 마칠 때 놀랐던 게, 제가 보기에 전혀 저랑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마르고 예쁘고 남자 친구도 있는 여자들이 제게 안겨 펑펑 우는 거였어요. ‘이건 누구나 하는 고민이구나, 이게 시스터후드구나’ 느꼈죠.
눈 크기부터 심지어 유두 색까지, 비교라는 게 끝이 없잖아요.
심지어 저는 불행을 비교하기도 해요. 불행 자체는 부럽지 않지만, 불행이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느낄 때가 있죠. 제가 불행하면 그냥 좀 안쓰러운 사람이고, 마르고 하얀 여자가 불행하면 왠지 ‘그림’이 되잖아요? 여자란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하고, 너무 완벽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COSMO ‘보디 포지티브’를 얘기하다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서도 반문하게 돼요. 사람의 매력이란 보편적인 기준이 없잖아요.
답이 없는 문제예요. 누군가의 눈을 보고 사랑에 빠진 적도 있고, 누군가의 말이나 가치관에 반해 사랑하기도 했고요.
‘이 사람은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이들과 이런 점에서 다르네’라는 걸 느꼈을 때 확 끌리죠. 이유야 수백만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개인과 개인이 만나 서로의 개별성을 발견할 때 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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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PYO KI SIK
  • Stylist 김선영
  • Hair 채현석
  • Makeup 함선화
  • Digital Design 조예슬